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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 독일의 대형사고 수습, 우린 왜 이렇게 못하나

<조선유사>(박영수 지음, 살림 friends 펴냄)는 소소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책이다.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우리 역사, 그 숨은 이야기들을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다루지 못한 진짜 조선 이야기'란 부제가 붙었다.

 

"기생 다리 올리기? 그런 일 해본 적 없다네!"

 

이야기는 모두 50꼭지. '기생의 다리 들기 해보셨습니까'란 글은 목창명(1645~1695)이란 사람이 안성고을 수령인 자신의 사촌형 목창우를 놀려먹은 이야기다. 

 

그는 병조판서를 역임했는데 온화한 성품에 지조가 뚜렷하면서도 한편으론 평소에 농을 즐겼단다. 이런 목창명을 보러 안성 고을 수령으로 있는 사촌형 목창우가 한양에 올라온 김에 들른다.

 

"참 형님 제가 얼마 전 읽은 옛글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더군요. 옛글에 따르면 기생의 다리를 치켜 올리지 않은 사람은 죽어 저승에 갔을 때 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런 글 읽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기생 다리 올리기? 그런 일 해본 적 없다네!"

"저는 지난번 평안도에 갔을 때 기생 다리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 죽어서 벌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만, 형님은 아직 면하실 수 없겠군요."

 

목창우는 안성으로 돌아가다 수원에 이르러 그곳 수령인 친구에게 부탁을 한다. "기생 하나만 급히 보내주게"라고. 이에 수원 수령은 "자네의 동생이 이미 편지를 보내 형님이 색에 빠지지 말게 당부했노라"며 기생과의 만남을 말린다.

 

그러나 목창우는 진지하게 제발 기생을 보내줄 것을 통사정한다. 수원 수령은 결국 "자네 마음에 드는 창기를 직접 골라보게"라며 수원 고을의 모든 관기를 불러 모아 안성 고을 수령인 목창우 앞에 대령한다.

 

목창우는 기생들을 차례로 보다가 그중 한 기생 앞에 섰다. 그러고는 기생 다리 한쪽을 잡고 농을 거는 척하다가 갑자기 번쩍 쳐들었다.

"어머나!"

느닷없는 일에 기생은 당황했지만 목창우는 혼잣말하듯 말했다.

"자. 나도 기생다리를 들었다! 이제는 죽더라도 벌을 받지 않겠지."

 

수원 수령은 목창우가 기생을 찾는 까닭을 이미 알고 있던 터라 말리는 척, 도리어 부추김으로써 목창명의 유쾌한 농에 동조한다. 안성 고을 수령 목창우의 느닷없는 기괴한 행동에 놀랐던 주변 사람들이 그 이유와 내력을 알고 깔깔 웃었음은 물론이다.

 

역사는 기록하지 않았지만 백성들은 기억한 우리의 숨은 역사들

 

<조선유사>겉그림
ⓒ 살림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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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는 이처럼 유쾌한 이야기 몇 꼭지가 더 소개된다. 낮에도 종종 술에 취해있으나 재주가 많아 버릴 수 없는 손순효,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갔을 때 문장을 더 잘쓴다고 감히 임금에게 말하는 술꾼 손순효에게 성종은 급기야 은잔을 하사하며 당부한다. "이 은잔으로 하루에 딱 한 잔만 마시라"고.

 

코딱지만한 은잔으로 딱 한 잔만 마시다보니 거의 매일 술이 고픈 손순효는 세공쟁이에게 부탁하여 은잔을 양푼만큼 큰 사발로 늘려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성종도 두 손을 들고 말았다는 '멋지고 지혜롭게 술을 즐긴 손순효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우복룡은 아전들의 착취로 세금조차 낼 수 없는 농부의 마지막 재산인 닭을 삶아 세금 대신 바치게 한다. 그러나 돌연 취소하여 아전들이 그 닭을 부당하게 착취하여 먹게 만든다. 그런 후 농부 대신 평소 착취를 일삼던 아전들이 세금을 물게 한다는 '우복룡의 닭 한 마리 지혜'는 한 고을 수령의 묵묵하고 따뜻한 마음과 지혜에 감동한 이야기다.

 

<열하일기>란 연행문을 남긴 연암 박지원에게는 이런 속사정이 있다. 그의 부인은 가난한 살림에도 남편을 위해 항상 술을 담갔으나 손님이 왔을 때만 딱 두 잔 주겠노라 한다. 그리하여 박지원은 아내한테 매일 술을 얻어먹으려고 허구한 날 길거리에 나가 술손님을 낚시한다.

 

우리는 흔히 여름철에 쉽게 상하고 마는 녹두 나물을, 세종의 총애를 받았음에도 쉽게 변절하고 만 신숙주에 빗대 숙주나물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알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정설로 굳혀지다시피 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대체 신숙주와 숙주나물은 어떤 관계일까. 저자는 세 가지 근거를 제시, 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

 

숙주나물의 명칭에 대한 다른 유례가 있다. 신숙주는 1460년 2월 좌의정으로 있었고 1461년 7월 충청도 도체찰사로 임명되었다가 1462년 5월 영의정이 됐는데 그 무렵 기근이 들어 식량이 귀했다. 이에 신숙주는 빨리 자라면서 영양이 풍부한 녹두열매를 중국에서 수입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콩나물처럼 키워먹게 하였는데 이 때문에 녹두 나물을 숙주나물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숙주나물을 녹두를 열매로 먹을 때보다 영양이 큰 바 고마운 마음에서 그런 명칭을 붙였다는 것이다. 일설에는 세조가 녹두 나물을 즐겨 먹으면서, 총애하는 신숙주가 기근을 해결하고자 수입했음을 감안하여 녹두 나물을 숙주나물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 책 속 '숙주나물의 어원에 대한 고찰 중에서

 

사실이 이렇다면 신숙주로서는 좀 억울할 것도 같다. 배고픔을 면하라고 녹두를 들여 도왔더니 그걸로 부정적인 의미로만 해석하니 말이다.

 

게다가 그의 부인이 "의(義)를 위해 죽지 않고 부끄럽게 혼자 살아 돌아왔냐?"며 신숙주를 비난하고 바로 그 앞에서 자결했다는 일화까지 덧붙여져 신숙주에 대한 후손들의 평가는 그야말로 변절자의 대명사이다. 그러나 그의 부인 윤씨는 사육신 사건 이전에 질병으로 죽었고 신숙주는 그 무렵 사신으로 파견되어 아내의 임종조차 보지 못했단다.

 

혹은 춘원 이광수가 역사소설 <단종애사>에서 사실과 달리 그의 부인이 그를 비난하고 자살했다고 썼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실처럼 믿게 된 것은 아닐까? 사실 그동안 숙주나물을 볼 때면 신숙주와의 관계를 떠올리곤 했다. 쉽게 변절한 신숙주처럼 쉽게 시어 버리는 숙주나물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참에 이 부정적인 의미는 잊으련다.

 

변절자 신숙주와 극적으로 대비됨으로써 더욱 의로운, 목숨 바쳐 의(義)를 다한 성삼문(成三問)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도 소소하지만 재미있다.

 

오늘날 사주팔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미신이라며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주팔자가 평생을 좌우한다는 믿음으로 좋은 사주팔자를 얻고자 태어나는 시각을 조절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오늘날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600여 년 전의 성삼문도 그의 외조부가 사주팔자가 좋은 시각에 태어나게 하려고 갖은 애를 썼다니 말이다.

 

성삼문의 어머니가 산통으로 고생하는데 명리학에 해박했던 외조부가 평생 복록을 누릴 사주팔자의 시각에 태어나게 하려고 가급 묵직하고 넓적한 다듬이돌을 가져다 막게 한다. 그러나 기다리다 지친 산모는 "이제 낳아도 되는가?" 세 번 묻고 결국 참지 못하고 낳고 만다. 때문에 삼문이라고 이름 지었다나.

 

조금만 늦게 태어났으면 삼족을 멸하는 죄를 받지 않고 평생 복록을 누릴 사주팔자를 얻어 부귀영화를 누렸을까. 어쨌든 너무 빨리 태어난 것이 문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도인이 세 번 물었을 때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너무 늦게 태어나 성삼문이 그리 되었다는 이름 유례도 있다. 너무 대비된다. 혹, 성삼문에 대한 동정 때문에 지어진 극적인 유례들 아닐까?

 

어른들 앞에서 맞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 이유는?

 

책 속으로 좀 더

▲어른들 앞에서 맞담배를 피우면 안되는 이유는? ▲고사에는 왜 돼지머리를 올릴까?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다'는 말의 유래는 ▲기생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주막의 역사와 목로주점 및 선술집의 어원 ▲'참을인(忍)자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는 말의 유래는?▲청백리란 말은 언제 생겼을까?

 

▲'영문을 모른다'는 말의 유래 ▲무속신앙에 장군이 많은 까닭 ▲중요한 일을 앞두고 왜 목욕재계를 했을까 ▲두루마기의 유래 ▲'흥청망청'의 어원은 ▲삼계탕의 유래-닭고기와 인삼을 같이 삶는 까닭은 ▲수결에 일심(一心)이 많은 까닭은 ▲'첩' 혹은 '소실'의 유례 ▲고을관아를 왜 '동헌'이라 부를까

 

▲'순애보'의 어원과 그 의미는 ▲이지함이 정말 <토정비결>을 썼을까 ▲사랑방에 대하여 ▲사주팔자와 팔자란 ▲'칼'과 '검', '도'의 차이는 ▲독도의 어원 ▲잔치와 모꼬지의 어원 ▲방석,꽃방석, 돈방석, 바늘방석의 어원 ▲막걸리와 동동주, 그리고 모주의 어원 ▲엽전,푼돈,무일푼,개평의 어원 ▲백일장의 유례는 ▲입춘에 입춘대길이라고 쓰는 이유는

이 책은 이처럼 역사는 기록하지 않았지만 당시 사람들의 풍속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우리의 역사, 그 숨은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들려준다.

 

책은 전체적으로 조선전기와 중기, 후기로 나눠 50꼭지를 소개, 그와 관련된 이야기 50꼭지를 이야기 끝마다 덧붙였다. 이런지라 이야기는 모두 100꼭지이다. 이야기들 대부분은 이처럼 시시콜콜하지만 재밌다.

 

최근 몇 년,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쓴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음에도 역사는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딱딱하고 어렵게만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조선유사> 속 이야기들은 말랑말랑, 부드럽고 재미있다. 읽다가 '피식' 웃음까지 나올 만큼 말이다. 이참에 우리의 역사와 친해지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조선유사>-조선왕조실록에서 다루지 못한 진짜 조선이야기 | 박영수 | 살림Friends | 2010년 3월 |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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