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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정(장희빈, 이소연 분)과 동이(최숙빈, 한효주 분). MBC 드라마 <동이>.
 장옥정(장희빈, 이소연 분)과 동이(최숙빈, 한효주 분). MBC 드라마 <동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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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BC 드라마 <동이>에서 두 여인의 '훈훈한 의리'가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보스'인 장옥정(장희빈, 이소연 분)과 '행동대원' 동이(한효주 분)의 진한 의리가 등장인물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까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드라마 속의 두 여인은 '친구' 아니 '조폭' 이상의 우정을 연출하고 있다.

동이가 '임신촉진제'를 민간 약방에서 구해 장옥정 처소에 몰래 반입한 직후에, 하필이면 중궁전(중전의 처소, 인현왕후전)의 탕약에서 독성 성분이 검출되어 궐이 발칵 뒤집힌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을 연상시키는 사건이다. 

설상가상으로, 동이가 약재를 구입한 그 약방의 의원마저 시체로 발견된다. 그 약재에 위험성분이 없으며 또 그 약재와 중궁전의 탕약이 무관함을 증언해줄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장옥정 측은 꼼짝없이 살인미수의 누명을 덮어쓰게 되었다.

이제, 온 대궐의 관심은 내명부 감찰부에 체포된 동이의 진술 한마디에 집중되었다. 정치적 중립성을 이미 상실한 감찰부는 "그 약재를 장옥정 처소에 갖다 주었다"는 동이의 진술만 확보하면, '그 약재가 유해한지 여부'와 '그 약재가 중궁전에 들어갔는지 여부'를 조사하지도 않은 채 곧바로 장옥정에게 혐의를 덮어씌울 계획이었다.

설령 동이가 그 약재를 장옥정 측에 전달하지 않았더라도, 동이가 그렇게 했다고 진술만 하면 감찰부는 장옥정을 중전 살인미수범으로 몰아붙일 심산이었다. 감찰부는 전형적인 '정치 검찰'이었다.

'조폭' 이상의 의리를 보여준 장희빈과 동이

하지만, 감찰부의 불순한 의도는 두 여인 사이의 끈끈한 의리 때문에 결국 좌절되고 만다.

동이가 묵비권을 행사하며 감찰부가 원하는 그 한마디를 결코 실토하지 않는 가운데, 느닷없이 장옥정이 "저 아이는 돌려보내고 나를 조사하라"며 감찰부에 자진 출두했다. 동이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픈 의지가 장옥정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천것'에 불과한 자신을 위해 스스로 감찰부 조사실에 들어간 '보스'의 의리에 보답하고자, 동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포도청 시신 보관실로 잠입해 죽은 의원의 사체에서 무죄의 증거를 채취해내는 대담성을 발휘한다.

검찰은 물증을 확보해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책임을 부담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정치 검찰'은 도리어 피고인에게 무죄의 증거를 요구한다. 여느 경우 같았으면 장옥정과 동이도 감찰부가 깔아놓은 덫에 빠졌겠지만, 두 여인의 의리가 원동력이 되어 결국 동이가 무죄의 증거를 찾아내는 성과를 이루게 된 것이다.

천민 출신의 궁녀에서 정1품 후궁으로 수직상승하고 영조라는 걸출한 임금을 길러낸 최숙빈(숙빈 최씨, '동이'는 실명 아님)의 일대기를 묘사하고 있는 드라마 <동이>는, 위와 같이 최숙빈의 정치적 성장에 도움을 준 핵심요소로서 최 숙빈과 장 희빈 사이의 '조폭 이상의 의리'를 설정했다.

'서민 출신'이라는 두 여인의 공통점 때문에, 드라마 속의 그런 설정이 꽤 그럴싸하게 보인다. 어찌 생각하면, 그런 설정이 있어야만 훗날 발생할 두 여인의 정면충돌이 보다 더 드라마틱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이> 홈페이지의 '기획의도' 코너에서 천명된 바와 같이, 이 드라마의 기본취지는 '가장 밑'에서 '가장 위'로 올라간 한 여인의 성공담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 숙빈의 생을 움직인 원동력이라든가 그의 정치적 성장을 일궈낸 핵심요소와 관련하여서는, 어느 정도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100% 상상으로 이루어지는 드라마가 될 경우, 시청자들은 최 숙빈의 삶으로부터 아무 교훈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문록>으로 본 동이와 장 희빈 실제 관계

이문정의 <수문록>.
 이문정의 <수문록>.
ⓒ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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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장 희빈과의 관계가 최 숙빈의 삶에서 차지한 위치는 어떠했을까? 두 여인의 실제 관계는 어떠했을까?

장 희빈의 아들인 경종의 치세를 주로 정리한 기록물 중에 이문정(1656~1726년)의 <수문록>이란 책이 있다. 일종의 정치평론서인 이 책에는, 최 숙빈과 장 희빈이 어떤 인연으로 맺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담겨 있다.

이 일화는 두 여인의 남편인 숙종 임금의 낮잠으로부터 시작한다. 음력 기준으로 숙종 19년(1693) 연초의 이야기다.

"선대왕(先大王)이 베개에 기대어 조는 사이에, 홀연히 꿈에서 신룡(神龍)이 땅속에서 나오고자 하되 나오지 못하다가 가까스로 머리 뿔을 드러내고는, 울며 선대왕에게 말하기를 '전하, 속히 저를 살려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여기서 '선대왕'은 숙종을 가리킨다. 숙종 사후에 기록된 글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이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숙종의 꿈에 나온 '신룡'은 태아를, '땅속'은 여인의 몸을 상징한다.

신룡이 땅속에 갇혀 울부짖는 꿈에 놀란 숙종은 얼른 눈을 떴다. 누군가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으며 지금 그 아이가 뱃속에서 위급한 상황에 빠졌을 것이라는 직감이 숙종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땅속'은 장옥정이었다. 당시 장옥정이 중전 자리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두 차례나 아들을 낳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장옥정의 둘째 아들은 생후 10일 만에 사망했고, 당시에는 장남인 세자 이윤(훗날의 경종)만 생존해 있었다.

'옥정이 세 번째 아들을 낳았나?'라는 궁금증이 생긴 숙종은 중궁전으로 급히 달려갔다. 그는 다른 여인의 몸속에 자기 아들이 생겼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왜 숙빈은 큰 독 안에 결박돼 있었을까

중궁전에 도착해서 장옥정의 모습을 뜯어봤지만, 그에게서는 임신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숙종은 본능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담장 밑에 있는 큰 독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독이 엎어진 상태로 있었기 때문이다.

"저 독은 어째서 거꾸로 세워두었느냐?"
"빈 독은 본래 거꾸로 세워둡니다."

중전 장옥정이 그렇게 대답했지만, 숙종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환관에게 독을 똑바로 세워보라고 지시했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이 벌어졌다고 <수문록>은 전하고 있다.

"그 속에서 결박당한 여인이 나타났다. 선대왕이 크게 놀라 살펴보니, 얼마 전 밤에 가까이 했던 나인(궁녀)이었다."

독 안에 결박돼 있던 여인은 다름 아닌 궁녀 최씨(훗날의 최숙빈)였다. 임신의 주인공은 장옥정이 아니라 최씨였던 것이다.

얼마 전에 한밤중에 우연히 만난 숙종과 궁녀 최씨가 급속히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최씨의 배가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숙종은 궁녀 최씨가 임신을 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왕의 승은을 입은 궁녀의 몸에 태기가 있다는 첩보를 누구보다 빨리 입수한 쪽은 장옥정이었다. 그래서 장옥정이 문제의 궁녀를 불러다놓고 체벌을 가하던 중에 숙종이 갑자기 들이닥쳤던 것이다. 체벌이 그대로 진행되었다면, 최씨의 아이는 '땅속'에 영원히 갇혀버렸을 것이다. 아버지인 숙종의 꿈에 나타나 "살려달라!"고 애원한 신룡은 바로 그 아이였던 셈이다.

최 숙빈 성공의 원동력은 장 희빈에 대한 원한

드라마 <동이>.
 드라마 <동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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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화가 최숙빈과 장희빈의 첫 인연을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기록상으로는 그러하다. '인연'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악연'이라고 표현해야 더 정확하다.

<수문록>에 담긴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최 숙빈과 장 희빈은 처음부터 악연으로 뭉친 여인들이었다. 이들은 첫 단추부터 원한으로 맺어진 사람들이었다.

특히 최 숙빈의 입장에서, 장 희빈이란 여인은 결코 가까이 할 수 없는 원수였다. 자신의 아이를 죽이려 한 장 희빈에게 최 숙빈이 어떤 마음을 품었을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명약관화한 것이다.

그런 악연이 계기가 되어 그들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치열한 싸움을 전개한다. 이때 생긴 원한이 계기가 되어, 훗날 최 숙빈은 장 희빈이 사약을 받도록 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최 숙빈은 비약적인 신분상승의 주인공이 된다. 

처음부터 악연으로 똘똘 뭉친 두 여인의 실제 관계를 살펴보면, 끈끈한 의리로 뭉쳐진 드라마 <동이> 속 두 여인의 관계가 역사적 실제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실제의 두 여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물고 뜯는 관계였던 것이다.

<동이>는 어차피 픽션이므로, 역사서나 논문처럼 사료에 완전히 얽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무리 픽션일지라도 실존 인물을 다룬 픽션에서는 그 인물과 관련된 핵심부분에서만큼은 사료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 숙빈의 출세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 중 하나는 장 희빈과의 악연이었다. 이런 악연이 원동력이 되어 최숙빈은 '걸어서 하늘까지' 출세한 성공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최 숙빈과 장 희빈의 끈끈한 의리'라고 하는 <동이>의 설정으로는 최 숙빈의 성공요인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 장 희빈에 대한 원한이 최 숙빈의 성공을 만들어낸 원동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삶에서 가장 핵심적인 키포인트를 잘못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드라마 <동이>는 '절반의 실패'를 안고 출발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태그:#동이, #최숙빈, #숙빈 최씨, #장희빈, #장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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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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