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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기도 양평의 작은 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오늘은 집에서 중간평가 문제를 만들고 있는데 고향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내용의 요지는,  

 

"전교조 명단이 공개됐는데 학부모가 네가 전교조인 걸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노조활동을 해서 잘 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 당장 탈퇴해라."

"시골학교에서 아이들만 열심히 가르치면 되지, 왜 나가서 투쟁이나 하고 다니느냐."

"명단이 공개되고 나서 전교조를 탈퇴한 사람이 늘었다고 하니 너도 얼른 탈퇴해라."

 

전화상으로 '버럭' 화를 내시며 하는 말씀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여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무리겠다 싶어 평생 안 잘리고(?) 아이들 열심히 가르치며 살겠다고 하고 전화를 급히 끊었습니다.

 

사실 명단이 공개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졸업했던 고등학교 선생님들 중에 누가 전교조 선생님인지 찾아보며 그때의 추억에 잠겨보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던 터였습니다. 그런데 부모님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억울한 마음이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전교조 명단이 공개돼서 당신의 자식이 피해를 보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부모님이 안쓰러웠습니다. 또 자신의 신념대로 당당히 노조 활동을 하는 행위 자체가 다수의 국민에게 비판받고 국회의원들의 정치활동에 이용되는 현실이 씁쓸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보수언론이 전교조가 투쟁에 집착하고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보다는 그 나이엔 별로 쓸데없어(?) 보이는 인권만을 강조하는 교사집단이라는 듯이 보도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전교조가 그렇게 각인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사실 전교조는 교육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조합입니다. 전교조는 교사를 노동자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교육노동자의 권리나 임금보다 학생의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해왔고 모든 학생들이 좋은 교육환경에서 차별받지 않고 교육받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학생의 인권을 무시하고 성적에만 목매게 하는 교육제도와 소수의 가진 자를 위한 교육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얘기해 왔을 뿐입니다. 그것이 권력에겐 눈엣가시가 되었나 봅니다. 이젠 교사들에게 무자비한 해직의 칼날을 들이대고 굴종의 삶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말씀처럼, 지금 사회는 힘없는 사람이 처자식을 굶기지 않고 밥이라도 먹고 살게 하고 싶으면 그것이 불의라 할지라도 고개를 돌리고 외면해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노조활동을 해도 뒤에서 없는 듯하라던 부모님이 화를 내며 당장 탈퇴하라는 협박(?)까지 하게 되는 상황까지 오게되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정부가 나에게 요구하는 삶의 방법이라면, 자신의 신념과 생각을 말하는 것이 전교조가 비판받는 이유가 된다면 저는 끝까지 전교조의 편에 서고 싶습니다.

 

다음 달이면 세상에 태어날 아들과 제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이 커서 세상을 살아갈 때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고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이 사회에 없다고, 불의를 못본 체 하고 고개를 돌리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가르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태그:#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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