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워낭소리>와 <똥파리>의 성공 이후, 잘 만들어진 작은 영화들의 바람이 거세다. 현재 재독학자 송두율 사건을 그린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와 6·25전쟁 중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인 '노근리 사건'을 소재로 한 <작은 연못>이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장애인의 성문제를 다룬 또 한편의 의미 있는 영화가 오는 22일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관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섹스 볼란티어>가 바로 그 영화다. 관객들은 영화 속 다큐멘터리를 따라가면서, 비장애인 누구도 선뜻 생각하지 못하는 장애인의 성욕 문제와 만나게 된다. 휴먼드라마로 끝나버리는 여타의 장애인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가장 은밀하고 음침한 성욕을 끄집어내어 장애인을 인격체가 아닌 도움만을 받아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시각에 일침을 놓는다.

그렇다면 장애인의 성욕에도 자원봉사 할 것인가? 감독은 관객들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는 대기업 자본이 장악하고 있는 한국의 극장 망과 불법복제가 판치는 온라인에서 영원히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0원개봉"이라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22일 오전 0시, 관객과 만난다. 장애인 문제와 같은 사회적 메시지와 불법복제 등 영화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많은 관객들과 공유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라고 한다. 

"비장애인이 쓴 장애인에 대한 색안경을 담았다"

 영화 <섹스볼란티어>를 만든 조경덕 감독.

영화 <섹스볼란티어>를 만든 조경덕 감독. ⓒ 한상언


지난 18일 <섹스 볼란티어>를 연출한 조경덕 감독을 만났다. 다음은 조 감독과의 일문일답.

- 지난해 33회 상파울로 국제영화제에서 <섹스 볼란티어>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 받은 것을 축하한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해외의 여러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영화제에서 초청했는지 궁금하다.
"작년에 전주국제영화제에 처음 초청, 상영되었다. 그 이후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그 다음에 상파울로 국제영화제에는 직접 참석했고, 싱가폴 국제영화제, 휴스턴 국제영화제, 부에노스아이레스 독립국제영화제, 캐나다 릴월드 영화제에 초청됐다. 어제 메일이 왔는데, 이탈리아 밀라노 국제영화제에도 감독상이랑 편집상 노미네이트 되었다고 한다."

- 제목이 자극적이다. 이 영화 <섹스 볼란티어>는 어떤 영화인가?
"말 그대로 성 자원봉사다. 제목 자체만으로는 굉장히 선정적이다. 이 영화는 제목 이면에 있는 장애인을 둘러싼 척박한 환경, 비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색안경 등을 담아낸 작품이다."

- 장애인의 성문제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장애인을 그린 많은 영화들처럼 상을 노리고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도 같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뭔가.
"일본에 어학연수 갔을 때였다. 일본 <아사히신문>에 연재되었던 장애인 성문제에 관한 기사가 책으로 묶여져 나와 굉장한 반응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일본이란 나라니까 이런 것이 가능한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책이 한국에 번역, 출판되더라.

그 책에 대한 누리꾼들의 리플을 보니까 욕이 굉장히 많이 들어 있었다. '왜 장애인들을 비하하느냐', '성이 개방된 유럽이나 일본의 이야기 아니냐' 등등. 그래서 다시 관심을 가지고 봤다. 보니까 그것은 그쪽 나라에서의 장애인을 특화한 성매매의 일종이었다. 그래서 '정말 대가가 오가지 않는 자원봉사로써 성이 가능할까?', '성과 자원봉사라는 이질적인 단어의 조합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생겼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 엄밀히 말한다면 이 영화는 장애인의 성을 다룬 영화라기보다는 장애인에 관한 이야기이자, 성에 관한 영화이다."

그는 왜 '0원 개봉'이란 칼을 빼들었나

 영화 <섹스 볼란티어> 포스터.

영화 <섹스 볼란티어> 포스터. ⓒ 아침해놀이

- 장애인을 다룬 많은 영화들이 휴머니즘에 입각해 있거나, 인간승리의 모습만을 강조함으로써 사회 내에 도사리고 있는 장애인 문제에 대한 근본적 접근을 방해하고 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 영화와 주류 영화(할리우드, 충무로영화)들 간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그간 장애인이 소재가 되었던 영화들이 착한나라 이야기였다면, 이 영화는 나쁜 나라 이야기이다. 그동안 숨겨져 왔던 적나라한 환경들을 보여주고, 비장애인의 불편한 눈높이를 냉정하게 이야기 했다. 과연 우리가 장애인들과 소통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문제들을 이야기 했다. 그런 것이 차이가 아닐까?"

- 배급을 특별한 방식으로 한다. 무료개봉으로 알고 있는데 제작한 이로서 손해를 감수하고 무료개봉을 한 이유는?
"'무료 개봉'하니까 "공장폐업 대방출'의 느낌이 든다. 정확히 말하면 '0원개봉'이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영화개봉을 하든지 부과판권시장에 내놓든지 간에 기본적으로 불법 복제되어 온라인상에 140원짜리 꼬리표를 달고 내가 모르는 곳에서 유통된다. 이 영화는 제목의 선정성 때문에 낚시당하기 좋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부과판권시장의 업체들에게 제안이 들어왔고, 지금도 오고 있다.

불법과 합법시장이 지금 9:1이다. 그렇게 낚여서 이 영화를 보게 되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또한 그들을 배불리는 것도 싫었다. 차라리 9:1중 1이 내게 소중하고 절실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포기할 것이다. 정확히 말해 포기는 아니다. 이 영화의 제작과정에서 자원봉사로 참여하신분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나도 자원봉사의 의미로 이 영화를 의미 있게 세상에 내놓고 싶은 것이다."

"프로듀서 입장에서 장애인분들께 죄송"

- 수익이 나야 영화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없을 텐데, 이 영화 이후에는 영화작업을 안 하나?
"영화작업을 더 하기 위함이다. 지금 모두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고 지금도 진행형인데 그것을 바꾸려는 시도가 미미하다. '이런 판에서 과연 다음 영화를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든다. 이것을 공론화 시키려는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들이 영화내용의 문제라면 콘텐츠 유통에 관한 것은 침묵하고 덮었던 영화산업의 문제들이다. 이를 공론화하려는 것이다. '0원 개봉'이 이것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래야 콘텐츠 만드는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19일 국회 상영회를 했다, 혹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작년에도 장애인분들 모시고 국회 야외에서 상영회를 준비했었다. 그때 도와주는 의원실도 있었는데도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서 좌절되었다. 이 영화를 온라인상에 무료배포하면서 장애인분들이 밖에 나와서 영화를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작년 전주국제영화제 때도 계단으로 된 극장에서 상영되는 바람에 많은 장애인분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프로듀서 입장에서 정말 죄송하다. 좋은 환경의 극장에서 장애인 분들이 편히 오셔서, 보고 이야기 하면 좋은데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온라인상에서라도 이야기가 오간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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