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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 재협상을 요구하는 거대한 물결의 촛불집회는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우려를 낳았다. 수구언론은 촛불집회를 반미친북좌파의 시위로 몰아가려고 애를 썼고 서울대 전상인 교수는 동아일보에 촛불집회가 '참 나쁜 반미'라는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진보학자로 알려진 최장집 교수는 촛불을 끄고 국회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운동 중심의 정치를 비판하면서 정당 중심의 정치를 주창하기도 했다.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 촉구 24차 촛불문화제가 31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네티즌과 시민,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 촉구 24차 촛불문화제가 31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네티즌과 시민,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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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정치참여는 투표, 정치인 접촉, 정당활동, 캠페인 등 대의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일어나는 전통적 참여와, 청원, 시위, 납부거부, 농성 등 대의민주주의의 틀을 벗어나는 직접참여로 구분된다. 전통적 참여는 대의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직접참여는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시각은 촛불집회 참여자들이 기존의 제도권 정치에 불만을 가진 불만, 소외세력이나 급진파들일 것이라는 가정을 내포하고 있다. 즉, 투표 등 대의민주주의 절차는 등한시하면서 직접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선입견이다.

여기에는 대의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국민은 온건한 국민이고, 직접참여를 하는 국민은 대의민주주의를 등한시하는 과격한 국민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이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불만 급진주의 가설'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경험적으로 확증되지 못하였다.

오히려 집회참가자들은 정치에 전략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자원(대인신뢰, 자기효능감, 진보이념, 정치적 관심)을 가진 집단이며 이념적으로도 극단적이지 않고 온건하다는 '전략적 자원 가설'이 더 많은 경험적 지지를 받고 있다.

시민직접 참여가 대의민주주의 위협?

이 가설에 따르면 시위참여자들은 교육수준이나 수입이 높은 편이며, 정치참여에 필요한 자원을 가지고 있어 직접 참여뿐만 아니라 제도권 정치에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의 직접참여는 통로가 다른 의사표현의 한 방법일 뿐이며, 대의정치에 위협이 되기보다는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또 하나의 집회참가자의 성격을 설명하는 경쟁적인 가설은 '상황 가설'로서 집회의 성격이 다양해짐에 따라 집회참여자의 사회적 성격을 일반화하기는 어렵고 집회의 성격이나 쟁점에 따라 참여자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가령, 서구유럽의 경우 New Right 운동에는 고연령, 저학력자들이 주로 참여하고, 노동운동 같은 Old Left 운동에는 남성, 중장년층, 노동자계층이 주로 참여하며, New Left 운동에는 젊은층, 고학력자, 고소득자, 여성이 많이 참여한다는 것이다.

2005년 세계가치조사, 2007년 대선 직전 전국 직접설문조사(R&R조사), 2008년 촛불집회 현장에서 수집한 설문조사, 2008년 8월 촛불집회 직후 실시된 전국 전화 설문조사(내일신문) 등 다양한 자료를 사용하여 한국에서 직접참여의 동인을 설명하기 위해 위 세 가지 가설을 검증하였다.

그 결과 '불만 급진주의'가설을 지지하는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하였다. 의회에 대한 불신이 전통적 참여보다는 비전통적 참여로 이끈다는 주장은 확증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에 불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두 가지 형태의 참여에 모두 적극적이었다. 투표참여자는 기권자보다 모든 직접행동(청원, 납부거부, 스트라이크, 농성 등)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뿐만 아니라 전략적 자원이라고 간주되는 다양한 태도 (대인신뢰, 내적 효능감, 이념)가 직접행동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서구에서의 연구 결과와 마찬가지로 '전략적 자원' 가설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와 사회적 변수는 직접 행동의 종류와 정치적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남으로써 부분적으로 '상황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가령, 2008년에는 진보적 유권자들의 촛불집회 참여가 두드러졌지만, 2005년 자료에는 영남유권자가 납부거부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나온다. 2008년 집회에는 젊은이들의 참여가 두드러졌지만 2007년 조사에서는 연령에 상관없이 전연령대에서 고르게 직접참여를 했던 것으로 나온다. 참여정부 기간 동안은 고연령, 보수성향 유권자의 직접참여가 적극적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불만 급진주의' 가설은 매우 그럴 듯해 보여서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일부학자들이나 언론이 자주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가설은 아직 어느 나라에서도 확증된 적이 없다. 그저 언론의 가설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시민의 직접참여가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주장은 경험적 연구결과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의민주주의 발달할수록 시민 직접 참여 활발

발전된 서구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시위의 일상화'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시위가 빈번하다. 대도시의 대규모 시위도 자주 발생한다. 정당, 의회 등 대의민주주의가 더 발달한 나라일수록 직접참여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벨기에는 투표가 의무라서 95%의 국민이 투표를 하는데 70%의 국민이 시위참여 경험이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집회나 시위란 의회를 통해 대변되지 않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통로에 불과하다. 이들은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장치로 정치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이다.

한국정당의 문제는 지역정당이라는 데 있다. 정당을 개혁하지 않아도 당선되는데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정당혁파에 나설 이유가 없다. 그러니 시민이 정당에 들어가도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자연히 시민들의 직접참여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그나마 시민들의 직접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민주당이 지금만큼이라도 변한 것이다. 게다가 현행 선거제도 하에서는 지역정당을 극복하는 것도 시민이 정당으로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 대안 없이 정당과 대의민주주의의 발전을 외쳐봐야  공허할 뿐이다.

정치학은 과학이어야 한다. 논평가나 언론도 객관적 증거나 논리에 입각해서 책임있는 주장을 펼쳐야 할 때이다.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는 행위가 한국의 지성리더십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cafe.naver.com/chomagic에도 실렸습니다. 전체논문은 http://www.kpsa.or.kr/AsaBoard/asaboard.php?bn=publication에서 볼 수 있습니다.



태그:#직접참여, #촛불집회, #지역주의, #최장집, #전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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