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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 기념 특별기획으로 '유러피언 드림, 그 현장을 가다'를 연중 연재하고 있다. 그 첫 번째로, 시민기자와 상근기자로 구성된 유러피언 드림 특별취재팀이 '프랑스는 어떻게 저출산 위기를 극복했나'를 현지 취재했다.

이번 글은 특별취재팀의 편집자문위원을 맡았던 김용익 서울대 의대교수의 기고문으로, 김 교수는 '한국형 저출산' 문제의 주요한 원인으로 우리나라의 기업문화를 지적했다. [편집자말]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이 프랑스의 인구조사기관인 INED를 방문해 연구원 앤 솔라즈(Anne SOLAZ)로부터 프랑스의 가족지원정책 등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이 프랑스의 인구조사기관인 INED를 방문해 연구원 앤 솔라즈(Anne SOLAZ)로부터 프랑스의 가족지원정책 등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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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은 아이를 6명 낳았습니다."

솔라즈(36) 프랑스 국립인구문제연구소(INED) 박사의 말을 들으며 나는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솔라즈 박사의 부모는 한 40년쯤 전에 아이를 낳았을 것이고, 그 시절에는 프랑스 부부들도 아이를 많이 낳았던 것이다.

가족 계획이 시작되기 직전인 1960년에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를 몇 명이나 낳았을까? 놀라지 마시라. 평균 6.0명을 낳았다. 평균 6명을 낳았으니 10명쯤 낳는 부부들도 많았을 것이다.

1960년 평균 6명 낳던 나라가 20년 만에 절반으로 뚝

폭발적인 인구 증가에 1962년 가족계획 사업이 시작됐다. 가족계획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출산율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1970년에는 4.5명, 1980년에는 2.8명을 낳았다.

 1960년대의 가족계획 포스터
ⓒ 정부기록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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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수를 줄이는 데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남아 선호 사상이었다. 그래서 나온 슬로건이 유명한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그때만 해도 '아들·딸'이었지, '딸·아들'이라는 말은 없었다.

아들을 꼭 낳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시어머니였다. 때문에 남아선호 사상을 버리기 위한 계몽 사업은 시어머니에게 집중됐다.

다시 30년이 지난 지금,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낳는 데 시부모(혹은 시어머니)의 영향력은 무시할 만하다. 시부모의 강권으로 아이를 낳는다는 '착한' 부부도, 그런 강권을 하는 '나쁜' 시부모도 찾기 어렵다.

시댁의 전통적 영향력에서 벗어난 젊은 부부들은 이제 아이는 낳는 데서 자유로워진 것일까? 천만에 말씀이다. 이제 젊은 부부들의 아이 낳기는 절대적으로 직장의 영향을 받는다.

우선 여성들을 보자. 임신, 출산, 육아의 전 과정에서 여성들은 직장이 두렵다. 과거에는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관례였던 적도 있었다. 이제 그 정도는 아니지만 임신과 육아는 대기업에서도 여전히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중소기업이라면 알아서 나가 주는 것이 미덕일 것이고, 비정규직이라면 아예 회사에서 나가 달라고 할 것이다. 좀 사치스러운 이야기지만 직장을 다니면 모유 수유는 포기하는 것이 좋다.

결국 직장을 다니는 여성은 아이와 직장의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여자에게 직장이란 '딸·아들 구별 말고 낳지 말고 키우지 말자'를 원하는 '시어머니'다. 좋게 보면 손자 손녀를 낳든지 말든지 키우든지 말든지 아무 관심이 없는 시어머니 정도일까?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프랑스의 로레알 회사에서 소피 메이어(여, 34)씨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두 번째 아이는 세 쌍둥이였다. 그 동안 다른 사람이 내 일을 대신해 줬다. 세 쌍둥이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11개월을 쉬게 되어 있는데, 회사 규칙으로 1개월을 더 쉬게 해주어 12달을 쉬었다. 12개월이나 쉰 후에 바로 승진해서 원하는 부서로 갔다. 주변의 직원들도 다 축하해 주는 분위기였다. 12달 동안 봉급은 같았다. 회사가 40%만 봉급을 주지만 정부가 나머지 60%를 보충해 주어서 실제 수령액은 똑같았다."

칼퇴근 꿈도 못 꾸는 직장문화... 아이는 언제 키우나

한국의 남성들은 어떤가? 남성 육아 휴직제도가 있지만 이를 챙기는 남자는 용감한 남자일 것이다. 물론 저출산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가족친화 기업'이 된 직장들도 제법 생겨나고 있다. 2009년 11월 보건복지가족부는 가족친화 인증기업 20개소를 선정해 인증서를 주었다. 그러나 직장이 여성을 차별하지 않고, 출산 육아를 지원해 주면 '가족친화 기업'이 되는 것일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뜻밖에도 늦은 퇴근 시간이다. 여성들은 '칼퇴근'의 눈치를 본다. 출세하고자 하는 남성들은 아예 퇴근 시간을 잊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출근 시간은 잘 따지지만 퇴근은 따지지 않는다.

물론 노동자들도 적은 봉급에 잔업수당, 야근수당을 더하기 위해 야근을 원하기도 한다. 이것들은 예외적인 수입이 아니라 정규적인 소득의 일부분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일을 '부지런히' 하는 나라다. 2007년 한국인은 연평균 2316시간을 일하는데 OECD 평균은 1672시간이라고 한다. 이 긴 노동시간을 줄여서 일자리를 나누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이다.

물론 일자리 나누기도 중요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긴 노동시간이 저출산의 원인이자 한국인들이 평생학습을 하지 못하고 젊어서 배운 지식을 평생 우려먹고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직장이 이렇게 시간을 다 뺏어가서야 어떻게 엄마 아빠들이 집안일을 나누어 하고 아이를 키울 시간이 남는다는 말인가? 언제 삭아가는 업무 능력을 보충하고, 노후에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한 자기 학습을 한단 말인가?

청와대의 '얼리 버드'를 우려했던 이유

사정이 이러한 데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 퇴근하지 말고 주말도 쉬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대통령을 따라 가느라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2008년 청와대 결산 분석을 해보니 특근매식비를 2억 원이나 늘려 썼다고 한다. '월화수목금금금' '얼리 버드'라는 취임 첫해 근무 분위기 때문에 새벽 출근자, 야근자, 주말 근무자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이 분위기가 오래 가지 못했기 망정이지 출산율이 더 곤두박질 칠 뻔했다.

귀가가 늦어지는 또 하나의 원인은 접대 문화다. 한국에서 중요한 일은 모두 저녁 늦은 시각에 만찬 석상의 술자리에서 이루어진다. 서양 사람들이 중요한 일을 모두 낮 시간 사무실에서 처리하고 저녁이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니 한국 남자들은 이른 귀가가 너무 낯설다. 어쩌다 일이 일찍 끝나면 동료들과 술 한 잔 같이 하고 평상시 귀가 시간인 아홉시, 열시가 되어 집에 들어가야 마음이 편하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프랑스편> 특별취재팀 자문을 맡은 김용익 서울대 의대교수.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프랑스편> 특별취재팀 자문을 맡은 김용익 서울대 의대교수.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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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한국 직장의 야근 문화와 접대 문화가 저출산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이 문화를 같이 하는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 보육대책을 잘 정비해 놓고도 출산율이 1.4명 선을 넘지 못하는 이유다.

예전에는 집안일만 하던 여성은 이제 집 안팎의 일을 모두 하는 이중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남성들은 밖의 일만 하고 안의 일을 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자면 '안' 해주는 것이 아니라 '못'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왜? 직장이 잡고 있으니까... 여성문화의 변천에 남성문화의 변화는 지체되고 있고, 그 지체의 배후에는 직장문화가 있다.

여성에게 직장은 '매운 시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원망스러운 시아버지'이기도 하다.

왜 프랑스 이야기를 안 하느냐고? "칼퇴근하면 눈치 안 보이냐?" 이런 건 프랑스에서 말도 꺼내지 못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어떻게 물어 본다는 말인가? 서구 사회에서 근로 시간을 줄이는 것은 저출산 대책이 아니다. 이건 서구의 노동운동이 100년 넘어 싸워서 얻어낸 투쟁의 성과다.

퇴근시간을 지키는 것, 이건 동아시아와 서구의 문화적 차이이기도 하다. 서구에서 직장과 노동자의 관계는 철저한 계약관계이기 때문에 계약된 시간 이상 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직장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느낌이 있다. 칼퇴근을 하면 매정한 사람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이런 문화가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늦은 퇴근 시간의 폐해는 이미 한계를 넘기고 있다.

직장이 좋은 시어머니, 좋은 시아버지가 되는 날이 오지 않으면 우리의 아들, 며느리들은 손자 손녀 볼 생각을 말아야 할 것인가? 노동운동에서도 새로운 성찰을 해야 할 시점이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프랑스편> 특별취재팀: 오연호 대표(단장), 김용익 서울대 의대교수(편집 자문위원), 손병관 남소연 앤드류 그루엔 (이상 상근기자) 전진한 안소민 김영숙 진민정(이상 시민기자)


태그:#저출산고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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