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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여 동안 계속된 '한명숙 법정 드라마'는 무죄로 막을 내렸다.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공언한 대로 결백을 입증했고 검찰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형두)는 9일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해 "뇌물을 줬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 내용을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검찰은 그야말로 완패를 당했다. 지난 3월 8일 첫 공판을 시작으로 지난 2일 13차공판에 이르기까지 검찰이 내놓은 주장은 그 어느 것 하나 재판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의심스럽다", "상식에 맞지 않다"고 하는 등 그야말로 수모를 안겨줬다.

 

게다가 재판부는 곽영욱 전 사장의 자백이 사실상 검사의 강압과 회유에 의한 것이라고 밝혀 검찰을 패닉 상태로 몰았다.

 

[무죄 이유 #1] 믿기 어려운 곽영욱의 입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기 전 이번 재판의 쟁점들에 대한 견해를 자세히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가장 큰 쟁점이던 곽영욱 전 사장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에서부터 법정 증언에 이르기까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주었는지 여부와 돈의 액수 등에 대해 계속 말을 바꿔 와 일관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곽 전 사장이 검찰 수사 중 처음에는 한 전 총리에게 10만 달러를 주었다고 인정했다가 나중에 '검사가 무서워서 거짓말을 했다'고 진술을 바꿨고 또 3만 달러를 줬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다른 혐의에 대해 선처를 바라고 거짓말을 했다'고 번복했다. 그러고는 또 다시 5만 달러를 줬다고 말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돈을 건네준 방법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한 전 총리에게 바로 건네준 것 같다고 했다가 법정에서는 앉았던 의자에 놓고 나왔다고 번복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곽영욱의 입'을 믿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로 그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자신의 기억과 다른 진술을 쉽게 하는 성격이라는 점도 들었다.

 

재판부는 "검찰에서 곽씨는 검사가 무서워서 허위 진술을 했다고 하는데 이는 자신이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도 검사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사실이라고 진술했다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곽씨는 자기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본인의 기억과 다른 진술을 쉽게 할 수 있는 성격임이 드러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다른 증거가 나타나 검사가 다른 진술을 요구하면 다시 거기에 맞추어 새로 기억났다고 하면서 자세한 진술을 하고 있어 더욱 신빙성이 의심스럽다"고 강조했다.

 

[무죄 이유 #2] 검찰의 강압수사와 회유

 

재판부는 또 검찰의 강압수사와 회유 의혹에 대해서도 변호인 측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곽 전 사장의 악화된 건강상태와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구치소 생활, 그리고 그가 횡령혐의와 증권거래법위반 혐의로 수사받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검찰 및 법정에서 나온 곽 전 사장의 진술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곽씨는 계속 구치소에 있다가는 사망한 후에나 구치소를 벗어날 수 있다는 극단적인 공포를 느꼈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그런데 검사는 곽씨를 더 압박해 그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재판부는 곽씨에 대한 강압적 심야조사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곽씨가 구속된 후 한 전 총리에 대한 뇌물 공여 사실을 일시적으로 시인했다가 부인하자 자정 무렵까지 검찰 조사가 이어졌고 뇌물 공여를 부인하는 조서를 작성한 지난해 11월 19일에는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조사가 이어졌다"며 "이날 아침 9시 구치소를 출발해 하루종일 검사의 추궁을 받은 곽씨로서는 생사의 기로에 서는 극단적인 두려움을 느끼게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공판을 진행하면서 이날 새벽 조사의 성격과 관련 "부장검사가 곽씨에게 수사 받느라 고생했다, 건강유의하고 재판 잘 받으라는 내용의 의례적인 면담을 했다"는 해명을 내놓았지만 재판부는 "수긍하기 힘들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또 곽 전 사장이 검찰에서 진술한 주요 내용이 조서에 빠져 있는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곽씨는 법정에서 '검사님이 전주고 나온 놈들 대라고 했잖아요, 정치인 대라고 그랬고'라고 진술했지만 검사는 이와 같은 중요한 수사과정에 대해 아무런 기록도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뇌물 공여 최초 진술과 그후 부인하는 과정에 대해서 아무런 조서가 작성돼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무죄이유 #3] 의심되는 검찰의 봐주기 수사

 

재판부는 검찰이 곽 전 사장의 횡령액을 줄여주고 증권거래법위반 혐의에 대해 내사를 종결하는 등 뇌물 공여 자백을 대가로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의심도 내비쳤다. 

 

재판부는 먼저 같은 횡령 혐의를 받았지만 기소 내용에 있어 큰 차이가 있는 이국동 전 대한통운 사장의 사례를 들었다. 이국동 전 사장은 곽씨가 대한통운 사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대한통운 부산지사장이었다.

 

재판부는 "이국동씨의 경우 비자금으로 조성된 금액(299억 원) 전체를 기소했고 곽영욱씨의 경우 전체 비자금 중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서만 기소를 했다"며 "검사는 두 사건의 사안이 다르다고 하지만 이런 차별적 기소는 곽씨가 뇌물 공여 진술을 하게 된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게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곽씨가 대한통운 사장 재직 시절 차명으로 자사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여 60억여 원의 차익을 남긴 혐의에 대한 검찰의 내사종결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재판부는 "검찰은 곽씨의 주식거래가 악재나 호재시 손실회피를 위한 매도나 차익실현을 위한 적극적 매수를 하지 않아 장기보유 투자자의 전형적 거래패턴이라고 하지만 곽씨는 대한통운 사장으로서 모든 정보를 관장하고 통제하는 우월적 지위에 있었다"며 "따라서 곽씨에게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거래의도'가 있다고 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어 "곽씨가 이러한 거래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우리사주 구입을 장려하는 마당에 굳이 차명을 이용해 거래했을까 하는 의심도 든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모두 인정한다 해도 곽씨는 업무상 횡령혐의로 기소돼 있고 증권거래법위반으로 내사를 받는 궁박한 처지를 벗어나려고 한 전 총리 뇌물 공여 부분에 대해 검사에게 협조적인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무죄이유 #4] 돈 주고받기 불가능한 총리공관

 

재판부는 2006년 12월 20일 총리공관 오찬에서 곽 전 사장과 한명숙 전 총리가 돈을 주고 받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도 분명하게 밝혔다.

 

재판부는 "동석자가 있는 오찬자리라는 상황, 오찬을 마친 후 의전에 따라 퇴장과 배웅이 이루어진다는 정황, 또 오찬 중에는 동석자 간에 오찬 후에는 경호원, 수행과장 등 다수의 주시 속에 행동이 이루어진다는 정황을 고려하면 한 전 총리가 오찬 직후 다른 사람 모르게 곽씨로부터 돈을 수수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오찬장 주변은 공식적인 경호와 의전이 촘촘하게 이루어지는 공간"이라며 "오찬이 끝나면 총리 수행과장과 경호팀장 등 누구든지 방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인데 이런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는 한 전 총리가 대담하게 돈 봉투를 받아서 서랍장 등에 숨겨놓고 나온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곽씨는 하필이면 다른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는 총리공관 오찬장에서 돈을 건넸는지에 대해 총리가 된 후 따로 만날 수 없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며 "만약 한명숙·곽영욱 두 사람이 인사청탁을 하고 돈을 주고받을 정도의 스스럼없는 사이라면 이같은 곽씨의 진술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결론으로 "이 사건의 유일한 직접증거인 곽씨의 뇌물 공여 진술은 일관성, 합리성, 객관적 상당성이 부족하고 그의 인간됨과 진술로 얻게되는 이해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한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정황 증거들만으로 한 전 총리가 5만 달러를 수수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뇌물수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인사청탁 여부 등에 대한 판단은 아예 내리지 않았다.


태그:#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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