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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그 따위로 하려면 관두세요."

 

종종 회의장 문을 박차고 나갔다. 타협한다 싶으면 거칠게 항의했다. 집회, 시위, 농성장에 가면 검정 빵모자를 눌러쓴 그가 꼭 있었다. 지난해 겨울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이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미디어법 무효' 단식을 하며 풍찬노숙을 할 때도 그는 선뜻 나섰다. '혼자 하면 외롭잖아'가 이유였다. 경찰이 최 위원장을 잡아갈 때 그도 함께 잡혀갔다.

 

그는 영안실 전문가이기도 하다. 택시노동자가 분신했는데 가족들이 장례 치를 상황이 아니라면 선뜻 나섰다. 돈을 모았고, 의사를 불러댔다. 주로 잘 안 풀리고, 남들 관심 없는 일에 많이 개입했다. 

 

38년 운동권, 연합정치에 개입하는 까닭

 

박석운(56)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그는 박해 받는 노동자와 인권문제에 가장 정열적으로 참여했다. 한미FTA 반대, 이라크 파병반대, 국가보안법 철폐투쟁, 언론악법 폐지투쟁. 주로 돈 안 되고, 빛 안 나는 일들을 찾아다녔다. 그런 그가 돌연 연합정치의 전도사가 됐다.

 

나이 들었으니 정치하려나? 천만의 말씀. 박 대표는 지난 6일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연합정치'에 대한 길고 긴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그는 "왜 정치 안하냐고 물으면 '바빠서 할 시간이 없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바빠도 정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정치에 개입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이명박 정부 때문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용산살인진압, 언론법 날치기, 4대강 녹슨 삽질, 노동법 날치기, 세종시 번복 등총체적 역주행을 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며 "연합정치로 MB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선거연합이 완성되면 결과는 명확하다"며 "연합정치가 성사되면 한국 정치에 엄청난 괴력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는 민주당 중심으로의 연대"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선거연합은 원래 다수 정치세력의 집권 전략과 소수 정치세력의 교두보 전략이 변증법적으로 상승 발전하는 것"이라며 "이걸 부정한다면 '그대 아직 꿈을 꾸고 있는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다만 그는 "과거 비판적 지지와 다른 점은 소수정당들도 각자 자신의 지지율에 맞는 만큼 권력을 분점하게 된다"며 "묻지마 연대가 아닌 명백한 정책중심 가치연대, 상층만의 결정이 아니라 중앙과 기초단위가 함께 논의한다는 점" 등을 들어 과거 연합정치와 다른 점을 설명했다.

 

"광우병 촛불 때문에 연합정치에 대한 생각 바꿨다"

 

특히 그는 "지금 연합정치에 나서지 않는 건 공허한 허무주의적 태도라고 생각한다"며 "지금이야말로 운동가들이 현실정치를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때라고 본다"고 말했다. 참가 전략은 아니지만 개입 전략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합정치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은 "광우병 촛불 사건 때문"이라며 "운동권이 백만 촛불의 주도권을 잃어 버리고 처절한 촛불 보복을 당한 점, 공정택 서울교육감이 탄생하게 된 것은 운동권의 좌편향적 오류 탓이었다"고 자성하기도 했다.

 

다음은 박석운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5+4회의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국민참여당 등 야5당과 희망과대안, 2010연대, 시민주권모임, 민주통합국민행동 등 4개 시민단체의 회의) 주체였다. 진보신당이 탈퇴해 4+4회의를 진행 중인데, 지금도 되고 있나.

"평론가들은 연합정치가 끝났다고 말한다. 사실 어려움이 많다. 민주당이 전혀 전략적이지 않기 때문에 참 어렵다. 진보신당은? 교두보 전략이 없다. 실현될 수 있는 전략적 목표를 가져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5+4회의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평론가들은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묻고 싶다. 연합말고 다른 길이 있는지. 민주당은 소수야당 협조 없이 단독 집권할 수 없다. 소수야당은 집권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왜 소극적인지 답답하다."

 

- 지금은 어느 단계까지 온 셈인가.

"9부 능선까지 왔다가 도로 미끄러져 8부 능선으로 밀린 상태다. 만일 3월 15일까지 합의한 내용이 인준됐다면 9부 능선에 서는 건대 다시 1/10로 내려왔다. 그러나 곧 9부 능선에 오를 거다. 마지막 남은 능선이 있는데, 그건 개문발차 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 4+4로 출발하되, 문은 열어놓고 나중에 진보신당을 태워 가야 하지 않겠나. 그럼 정상에 오르는 거다.

 

선거연합이 완성되면 결과는 명확하다. 국민들은 MB정권에 대한 심판을 벼르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과 진보개혁진영은 준비가 아직도 안 돼 있는 것 같다. 그게 제일 문제다. 이 상황에서 선거연합을 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심판의 길'을 여는 준비를 끝내야 한다. 연합정치가 완성되면 한국정치에 엄청난 괴력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 막판에 야합하는 식은 안한다고 했었는데, 결국 그렇게 되어가는 것 아닌가.

"각 당의 공천이 진행 중이긴 하나, 공천을 끝내기 전에 연합을 해야 한다. 안산 상록을 단일화 협상과정에서 확연하게 확인된 바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지도력 수준으로 볼 때 공천하고 나면 내부 통제력을 잃게 된다. 연합할 수 있는 상황을 잃게 된다. 이 위험한 도박에 MB심판을 맡길 수는 없다."

 

- 연합정치 후보는 모두 국민참여경선을 치르게 되나.

"민주당은 서울시장 후보자의 경우 경선 없이 투표를 치르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야당들은 나름대로 명분과 실질이 있기 때문에 더 협상해야 한다. 특히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가 쉽게 포기 못할 것이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아주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경기지사 필연적으로 예비경선을 해야 한다"

 

- 경기지사는 어떻게 되나.

"필연적으로 예비경선을 해야 한다. 민주당은 국민참여경선과 여론조사를 6:4로 배합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후보는 4+4회의에서 '시민 4단위'에 결정권을 위임했다. 우리는 국민을 대행해 협상에 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과도하게 요구하다가는 자칫 비판받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 시민 4단위가 생각하는 규칙은 무엇인가.

"지금은 명시하기 쉽지 않은데.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모두 승복할 수 있는 방안이어야 연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동원 경선의 폐단을 막는 경선이 돼야 한다. 공정성이 담보될 수 있어야 한다. 특정후보의 유불리보다는 국민들이 관심 가질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는 경선에 참여 안하나.

"지금으로서는 '4+4'는 개문발차(開門發車·차의 출입문을 연 채 출발하는 행위)식 일수밖에 없다. 일단 야4당이 경선을 하고 나중에 진보신당이 결심해서 경선에 참여하겠다고 하면 같이 하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다. 버스는 먼저 출발했지만 나중에라도 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민노당과 창조한국당은 다 합의를 했나.

"창조한국당은 후보가 없고 민노당은 후보가 있다. 그러나 양당 모두 시민단체들이 민주당과 합의하면 적극 수용한다는 긍정적 입장이다. 민노당은 야권연대를 성사하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창조한국당은 후보가 없으니 반대하지 않고 있다."

 

- 물밑논의는 진행 중이지만 국민들은 연합정치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못 받는다.

"늦어도 4월 15일까지 연합을 완성하기로 최종시한을 정했다. 전국적 차원의 합의가 성사되는 걸 의미한다. 이때까지는 국민들이 연합정치가 '되는구나' 실감나도록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수도권 포함 전국적 수준의 합의를 이루는 게 목표다."

 

- 지금까지 협상은 몇 차례나 진행됐나.

"30~40차례 심층협상을 했다. 이틀에 한번 꼴로 주3회 만난다. 특별협상 기일을 정해놓고 매일 한 적도 있다. 지난해 12월 준비모임, 지난 1월 10일부터 예비협상, 1월 16일부터 진행된 본 협상이 3월 16일에 일단락됐다가 다시 추가협상하고 있는 거니까 전체로 30~40회 된다. 나름대로 상당한 공력을 투여한 거다."

 

"전민항쟁을 할 수 있나? 쿠데타를 할 수 있나?"

 

- 결과적으로는 민주당 중심으로의 연대 아닌가.

"선거연합은 원래 다수 정치세력의 집권전략과 소수 정치세력의 교두보전략이 변증법적으로 상승 발전하는 과정으로 진행되는 거다. 이걸 부정하면 '그대 아직 꿈을 꾸고 있는가'다.

 

다만, 87년의 비판적 지지, 92년의 정책연합 수준과 다른 점은 소수정당들이 무조건 지지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거다. 소수정당도 자신의 지지율에 상응하는 만큼 권력을 분점하게 되는 형태로 연합정치 판이 짜여진다.

 

옛날에는 '묻지마 연대'였다. 이번에는 명백한 정책중심 가치연대다. 둘째, 그때는 상층의 두 사람(DJP)의 결단이었다. 이번에는 중앙의 연합논의와 광역단위, 기초단위의 연합논의가 중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때는 2당 연합이었지만 지금은 5+4회의다. 같은 점은 권력을 분점한다는 것이다."

 

- 박 대표는 운동가다. 왜 지금 연합정치에 나서나.

"학생운동부터 치면 38년째 운동권이다. 왜 정치 안하냐고 물으면 '바빠서 할 시간이 없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빠도 정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내가 정치에 개입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이명박 정부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총체적 역주행을 하고 있다. 용산살인진압, 언론법 날치기, 4대강 녹슨 삽질, 노동법 날치기, 세종시 번복 등 작년 만해도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 일을 너무 많이 했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개탄했다. 이명박 정부는 100만 촛불에도 마이동풍이었다.

 

그렇다면, 전민항쟁? 쿠데타? 다 말도 안 된다. 뭘 할 수 있나. 결국 선거로 심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중앙권력을 바꾸는 선거는 아니지만 지방권력을 바꾸는 의미가 있다. 선거를 통해 국민에게 심판의 길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 사회운동가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 국가보안법, 노동인권 등 주로 서민층 관련 운동을 해왔는데 정치라니 좀 낯설다.

"이명박 정부의 총체적 역주행의 가장 큰 피해자는 노동자 서민이다. 용산살인진압 사건을 보라. 민주주의를 바로세우는 일이 민중진보진영에서도 아주 중요한 과제가 됐다. 민중진보진영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쟁취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그런데 혼자 힘으로 안 된다면 당연히 힘을 합쳐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만들어야 한다. 나는 현시기 사회운동의 가장 중요과제가 '반MB 선거연합'이라고 생각했다. 진보대연합은 피할 수 없는 기본과제다. 두 과제를 통합적으로 수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반MB선거연합은 진척이 잘 되는데, 진보대연합은 잘 안 된다. 고민이다."

 

- 운동가가 정치개입하면 변절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제 직접 정치에 나설 것인가.

"내가 출마하는 게 아니다. 나는 운동가다. 국민이 이 잘못된 정권을 심판하도록 판을 만드는 것까지가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야권연대로 MB를 심판하는 것 여기까지다. 지리멸렬한 정치권을 그냥 바라보는 것은 운동가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선거연합 촉진자로 협상에 참여해 중재하고 감시하고 촉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협상의 들러리가 아니다."

 

"우리는 협상의 들러리가 아니다"

 

- 지금 연합정치에 나서지 않는 건 무책임하다는 건가.

"말하자면 속수무책이다. 공허한, 허무주의적 경향 아닌가 싶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비평만 하면서 지내는 허무주의적 태도라고 본다. 사회운동은 현실사회를 바꿔나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지금이야말로 운동가들이 현실정치를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때라고 본다. 그동안엔 정당과 거리 두면서 사회운동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정당과 직접 관계를 맺으면서 촉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참가전략은 아니지만 개입전략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미 유권자들의 투표참여운동을 조직했는데.

"2010 유권자 희망연대를 만들어 4대강 무상급식 운동을 중심으로 국민적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또 민중진보 중심의 국민주권운동본부도 발족됐다. 무상급식처럼 일반 민중들이 자기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것을 끊임없이 찾고 제기해야 한다."

 

- 왜 연합정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나.

"광우병 촛불 사건 때문이다. 2007년 한미FTA 반대투쟁으로 30년 만에 감옥을 갔고 다음해인 2008년에는 광우병 촛불 때문에 또 감옥에 갔다. 독방에서 여러 생각을 했다. 운동권이 백만 촛불의 주도권을 잃어 버리고 처절한 촛불 보복을 당한 점,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패배한 점. 둘 다 좌편향적 오류를 범한 결과였다.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공정택의 당선은 결국 MB와 한나라당은 일부 특권층 부자들만으로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고 정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는 망상을 갖게 됐다. 이걸 깨야 한다고 결심했고, 2009년 경기교육감 보궐선거와 2010년 지방선거에서 MB 심판의 길을 만드는데 일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 지난해 4월 8일 경기교육감 선거를 통해 민주교육감을 당선시킬 수 있었다. 그 선거는 자신감을 얻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됐다."

 

한달 생계비 100만원 쓰는 38년 운동가의 꿈

 

- 김상곤 교육감 선거 당시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이었다.

"승리 원인은 두 가지였다. 민주진보세력이 이른바 민주당까지 포괄하는 연합군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반대만 한 게 아니라 정책적 대안을 제시했다. 무상급식, 혁신학교, 고교평준화. 우리교육은 도저히 손 쓸 수 없다고 모두 포기하고 있었는데, 김 교육감이 혁신학교로 작은 희망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이게 잔잔하지만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 38년간 사회운동을 해왔는데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나.

"작은 수입들이 있다. 아내도 사회운동을 하면서 작은 활동비를 받고 있다. 부부의 월 생계비는 100만 원 정도. 대신 빚이 많다. 1억 원 정도. 아직까지 신불(신용불량자)은 아니다. 28살 된 아들이 하나 있는데 컴퓨터와 친하다. 사회운동에는 관심이 없다. 엄마아빠만 해도 된다는 식이다. 그나마 애가 하나라서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 사회운동 말고 해온 게 없다. 꿈이 뭔가.

"서민대중이 대접받는 사회? 노동자 민중이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주체로 나서는 것. 개인적으로는 죽기 전에 통일되고 진보정치가 집권하는 걸 보고 싶다. 하하."


태그:#박석운, #한국진보연대 , #연합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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