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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생존 최원일 함장과 장병들이 사건 발생 13일만인 7일 오전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천안함 침몰 당시 상황에 대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천안함 생존 최원일 함장과 장병들이 사건 발생 13일만인 7일 오전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천안함 침몰 당시 상황에 대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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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사고 생존자들은 7일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사고 당일에 비상 상황은 없었으며 사고 직전까지 정상적으로 근무했다고 밝혔다. 답변한 생존자들은 3초 간격으로 '꽝'하는 소리를 2회 들었으며 충격과 함께 몸이 붕 떴다고 말했다. 또한 어뢰나 기뢰 폭발시 관찰되는 물기둥을 봤다는 생존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래는 천안함 생존자와의 일문일답이다. 

- 사고 발생 후 보름이 다 되어 가는데 실종자 가족을 유가족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은 생존자가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한 명이라도 살아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생존자 여부에 대해 함장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함장 최원일 중령) "저는 아직도 실종자 장병들이 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살아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복귀 신고를 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 사고 시간에 대한 부분이 논란을 빚고 있다. 사고 당시 장병들은 몇 시쯤에 사고가 난 것으로 느꼈는지 알고 있는 대로 말해달라.
(작전관 박연수 대위) "합동조사단에 의해서 21시 22분으로 발표가 됐다. 마지막으로 제 눈으로 확인한 시각은, 함교에 당직사관이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가 있는데 그걸로 확인한 것은 21시 24분이었다. 그러나 컴퓨터 우측 하단에 표시되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 시간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확답할 수가 없다."

- 사고 직전에 어떤 상황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 바란다.
"함교 당직사관으로서 정상 근무를 하고 있었고 특이 사항이 있었으면 나에게 보고됐을 텐데 별다른 보고가 없었다. 상황이라고 할 만한 내용이 없었다. 상황이라는 용어 자체도 잘못된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상황 없었다."

(기관장) "당시는 행정업무를 위해 기관장실에 있었다. 정말 고속 추진을 위한 기관작동이 있어야 했다면 당연히 내가 기관작동실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기관장실에 있었고 어떤 비상상황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 소나 선임하사에게 묻겠다. 사고 직전이나 그 전에 이상징후가 포착된 것 있나.
(음탐하사 홍승현 하사) "음탐기상 특별한 신호가 없었고 당직자는 정상근무였다."

- 천안함이 사고해역에서 맡았던 주 임무는 무엇이었나. 
(함장 최원일 중령) "20개월 근무를 했다. 그동안 16회 정도 근무를 했는데 그 구역은 누구보다 자신있는 구역이고 주 임무는 도발 대비 태세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 사고 순간에 폭발음이 있었는지, 그 이후로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병기장 오성탁 상사) "지하2층 격실에서 업무보고를 준비하고 있었다. 순간 쾅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붕 뜨고 정전이 됐다. 앞에 있던 컴퓨터에 얼굴을 맞았다. 오른편에 있는 출입문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암흑 속에서 손을 더듬어서 출입문을 잡으려고 했으나 없어서 당황하던 중 바닥에서 출입문을 찾아 배가 90도 기울었음을 알았다. 귀가 아플 정도로 폭발음이 매우 컸고. 컴퓨터 책상이 무너져서 바닥에 있는 출입문이 열리지 않았다.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문 위에 쌓인 집기들과 물건을 치워서 15분 만에 나왔다."

- 조타를 담당했던 사람에게 질문드린다. 당시에 쿵 하는 소리가 났을 때 뭐라고 판단했나.
(조타 담당) "외부에 의한 충격이라고 생각했고 나머지는 모르겠다."

- 화약 냄새나 여타의 폭발 징후를 감지했나.
(병기장 오성탁 상사) "제가 탄약을 담당하는 병기장으로서 말씀드리지만 그 순간 화약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 논란 중에 하나가 후타실에 5명이 왜 있었을까 하는 거다. 후타실에 누구누구 있었나.
(병기장 오성탁 상사) "제가 병기장 담당이면서 체육도구 담당이다. 저는 그 시간이면 항상 운동을 했었는데 사고 당시에는 업무보고차 후타실에 가지 않았다. 이번에 그 안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다섯 명은 항상 그 위치에서 운동했던 인원들이다."

- 사고 직전에 통화했던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였고 어떤 상황에서 끊었는지.
(통신장 허순행 상사) "21시 14분부터 18분 몇 초까지 통화한 것으로 안다. 전탐실 후부 계단에서 아내와 딸과 통화를 했다. 아내가 임신한 상태라 그것에 관련된 통화를 했고 딸에게는 엄마가 많이 힘드니까 도와주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후 통신실로 복귀했다."

- 갑판에서 물기둥을 본 적이 있나.
(병사) "사고 당시 함교 우현 견실을 맡고 있었다. 함 외부를 관찰하는 업무이다. 쾅하는 소리와 큰 진동을 느꼈지만 물기둥은 보이지 않았다."

- 군자재의 노후, 불안감을 얘기하곤 하는데 천안함 같은 경우도 배에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지적들이 있다. 보수 측면에서 자주 사역활동을 했었나.
(기관장 이채권 대위) "일부 병사들이 함정 내에 물이 샌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함정 내부와 외부 사이의 온도차에 의해서 파이프에 물이 응결되는 것을 물이 샌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안전점검을 받은 게 언제이고 그 결과는 어땠나.
(기관장 이채권 대위)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다. 부임한 지 50일 됐는데 그 이전에 안전점검을 받았던 것으로 안다. 전임에게 인수인계 받은 자료가 제 방에 있는데 그 자료들을 확인해야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함은 출항 2~3일 전부터 장비 작동을 시작하는데 (문제가 없었던 것을 보면) 선체 노후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 사고 발생 후 배가 오기까지 한 시간 동안 뭘 하면서 기다렸나. 함장에게 어떤 지시를 받았나.
(작전관 박연수 대위) "함정에서 외부로 나온 다음에 함장님께 지시받은 내용은 구조 세력이 왔을 때 어느 방향으로 대원들을 옮길지를 판단하는 임무 지시를 받았다. 또한 배에 수면이 닫는 부분까지 들어가서 선측을 파악하는 임무를 받았다."

(통신관) "당직근무를 서고 있었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장비들이 떨어지고 끼인 대원들이 있었다. 장병을 구조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렇게 전투 상황실에서 2명의 하사를 구조해 올라왔고, 올라와서는 추워하거나 심리적 불안 보이는 장병들을 안정 시키는 활동을 했다. 환자가 먼저 구조될 수 있도록 안전 관리에 신경을 썼다."

(부함장 김덕원 소령) "우현으로 배가 기울고 제일 먼저 함장실에 갔다. 함장실 도어를 풀고 갑판으로 올라왔다. 함미 쪽은 보이지 않았고 여러 대원들이 갑판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밑에서는 함장실 문이 잠겨 있어서 풀기 위해 대원들이 노력했다. 함장이 구출돼 올라온 이후 인원파악하고 통신망을 통해 상황 전파한 뒤 침착하게 구조세력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작전관과 제가 고속정이 계류 가능한 위치 확인해 보라는 지시에 따라 확인했다. (고속정으로 이동 중) 작전관이 떨어지자 고속정으로 환자가 직접 이동하기 어렵다는 판단 뒤 구명정을 입고 해경 립을 이용해 이동하도록 결정하고 기다렸다."

"휴대폰으로 함대사와 교신 유지하면서 고속정 립 등에 지원 요청했다. 생존 인원 중에 부상 정도가 심하지 않은 대원은 함 내부로 다시 들어가 생존 인원 추가 확인하고 구조했다."

- 일반 사병들 가운데 사고 직후 함미 부분을 본 사람이 있나. 구조 직후에 말을 자제하도록 지시사항을 전달했다고 했는데 구조된 다음에는 해경에서 한 시간 동안 뭐라고 교육했나.
(함장 최원일 중령) "해경에서 교육한 것을 말씀드리겠다. 바로 사관실로 이동, 장병들은 응급치료를 위해 침실에 배치됐다. 해경에서 명단을 파악하고 작전사령관과 참모총장에게 통화를 통해 지휘보고가 이뤄졌다. 핸드폰을 회수한 것은 구조가 해경, 해군, 관공선 등 여러 곳을 통해서 이뤄졌기 때문에 구출 상황에 대한 혼선이 이뤄질까봐 수거한 것이다. 피흘리고 다리 골절된 환자가 많았다."

(내연장 정종욱 상사) "함미로 가서 전원을 복구하려고 했으나 CP실을 나와서 함미를 가려고 나왔을 때 함미가 절단되어 없었다. 바다 달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함미가 없어졌음을 알았다. 그 이후에는 함교 쪽으로 올라가서 함장 지시에 따랐다. 고속정이 도착했을 때 적일지 모르니까 전원 머리를 숙이고 있으라는 지시를 들은 것 같다. 이상이다."

(김정운 상사) "작전부 침실과 CP침실에는 비상 조명이 다 켜진 상황이었다. 환해서 대피할 수 있었다."

- 물기둥 못 봤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 중 물기둥을 본 사람은 없나.
(전탐실 김수길 상사) "CP침실 맨 하부에서 잠자기 위해 들어와 있어 남들보다 첫번째 쿵 소리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전탐장이기 때문에 쿵 소리와 동시에 빠져나와 전탐실로 향하려 했는데 3~5초 이후 꽝 소리가 들렸고 배가 기울고 있다는 느낌 받았다. 소화호스를 타고 5~7분 걸려서 탈출하는데 함미가 없었다. 사람들 소리나는 쪽으로 갔다."

"함정에서는 야간에 적에게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등화관제를 실시하기 때문에 함교에 있는 대원이 아니면 함 바깥에 물기둥을 볼 수 없다." 

- 사건이 발생하고 난 다음날 9시 25분이라고 말했다가 나중에 9시 22분으로 발생시각을 번복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며 함장이 생각하는 사고 이유는 뭔가.
(함장 최원일 중령) "27일에 25분이라고 말씀드린 거는 그때 당시 상황이 저는 책상 위에 앉아서 KNTDS자료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모니터 우측 하단에 있는 컴퓨터 시계에서 9시 23분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 함정은 보통 항해 중에는 정각과 30분 두 차례에 걸쳐 보고를 하는데 저희 배는 정각과 30분에서 5분전, 6분전에 보고를 했었다. 그래서 25분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 다음날은 제가 지휘 보좌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위성송신이 끊긴 시간을 보니까 22분이라고 발표가 됐고 저는 (처음 KNTDS 모니터에서 봤던 9시 23분을) 컴퓨터상의 오차라고 생각했다. 사고원인은 나도 모르겠다. 선체 인양해 조사해야 알수 있을 것 같다."

(부함장 김덕원 소령) "아까 질문에 대해 추가로 말씀드리면 야간 중에는 등화관제도 있지만 대원들이 외부로 나갔을 때 실족해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문을 모두 폐쇄한다. 그러므로 그 당시에 외부를 볼 수 있는 대원은 좌우현 견시 2명밖에 없다. 그리고 그 2명도 360도를 다 보는 것이 아니라 전방을 주시하기 때문에 후미에서 물기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확인이 어렵다고 본다."

- 함미 부분에 체육시설이 있었다고 했는데 체육시설로 갈 때는 어떤 복장을 하고 가나.
(전준영 병장) "운동할 때는 보통 내의와 반바지를 입고 한다. 운동을 했을 거면 복장이 아마 그랬을 거고. 저 같은 경우는 침실에서 쉬고 있었는데 만약 특별한 상황이었으면 저도 근무복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속옷을 입고 침실에서 쉬고 있었다.
사고가 발생하고 구조를 기다리면서 처음에는 당황을 많이 했는데 주변 장교와 하사관들이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말해서 그때부터 안정을 많이 찾았었다."

- 9시 16분경에 백령도 초병들은 큰 소음을 들었다고 보고했다. 배에 타고 있었던 사람 중에 9시 16분경에 큰 소음을 청취한 사람이 있나.
(통신장 허순행 상사) "14분부터 18분까지 통화를 했는데 안쪽에서는 그런 소음은 일체 들리지 않았다."
(갑판병 황보상준 일병) "16분 당시 함교 좌현 외부에서 당직을 서고 있었는데 그 시간에 아무런 소음도 듣지 못했다."

- 디젤엔진이나 가스터빈실 근처에 있었던 사람들, 폭발음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달라.
(내연장 정종욱 상사) "함이 기동할때 저속 6노트로 움직이면 디젤엔진을 쓰게 되어 있다. 군생활을 17년 했는데 배에서 폭발했다는 자료는 보지 못했고 얘기도 듣지 못했다."

- 16분에 미상의 소음이 청취됐고 보고가 됐는데 그 보고가 천안함에는 안 왔는지. 안 왔다면 왜 안 안왔는지.
(함장 최원일 중령) "전탐 당직사관이 대답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전탐 당직사관) "함대에서 보고를 받고 특이사항으로 판단되었다면 각 함으로 보고가 된다. 그러나 내가 근무를 서는 동안은 문자, 유·무선 어떤 통신으로도 특이사항이 보고되지 않았다."

- 함장은 몇 시에 어떤 내용으로 첫 보고를 했나. 포술장이 "뭐에 맞은 것 같다"고 보고했다는데 뭐에 맞은 것 같다고 보고를 했나.
(함장 최원일 중령) "갇힌 상태에서 출입문 쪽을 보면서 통신장에게 상황보고부터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통신장이 최초 상황보고를 했고 그래서 나는 최초 상황보고를 듣지 못했다. 함장실에서 나온 후 비상 통신기와 핸드폰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제가 그걸 계속 잡고 있으면 현장 지휘가 어렵다고 생각해 정다운 중위하고 통신장 허순영 상사를 배치시키고 방송 형식으로 계속 보고했다.  

'뭐에 맞은 것 같다'고 했던 것은 "외부충격이 컸다"라는 식으로 장교들끼리 얘기를 하고 있었다."

(포술장 김광보 중위) "최초로 올라왔을 때 가지고 있던 핸드폰으로 지통실에 전화를 했다. 너무 경황이 없어서 지통실 직통 번호가 아니라 군 부대 교환대를 이용해 지통실에 전화를 했다. 정신이 없는 상태여서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급하게 말하면서 구조요청을 했고, 저희가 있던 위치, 눈에 보이는 것들 관련해서 말을 한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없다."

- '꽝' 하는 소리가 두 번 났다고 했는데. 파편 같은 것은 보지 못했나.
(전탐장 김수길 상사) "꽝 소리가 두 번 났다고 느낀 것은 꽝 소리가 난 다음에 침대를 빠져나왔고 3초쯤 후에 쿵 소리가 또 났다. 그래서 두 번 났다고 얘기한 것이다. 소리의 차이는 느끼지 못했다. 처음 쿵 하는 소리를 듣고서는 어디에 부딪힌 줄 알고 외부로 나와서 전탐실을 향했던 것이고 쾅하는 소리는 폭음과 비슷했는데 체스트와 전등 떨어지는 소리들과 합해져서 들렸다."

- 소리가 먼저 나면서 몸이 붕 떴나, 선후관계가 어떻게 되나.
(병기장 오성탁 상사) "선체 지하 2층에 있었는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붕 떴고 그와 동시에 배가 기운 것으로 판단했다."

- 폭발음이 들렸다고는 하는데 화약냄새도 안 났고 암초 가능성도 제기가 되고 있다. 그 가능성은 전혀 없는건가.
(조타장 김병남 상사) "암초에 걸리게 되면 기본적으로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뻘에 걸리면 배가 출렁출렁 거린다. (그런데 두 가지 징후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외부충격 아니었나 생각했다."

- 첫 보고때 사고원인에 대한 내용은 없었나. 그 뒤 바로 속초함에서 타격을 가했는데. 2함대에서 (사고 원인을) 묻지 않았나.
(함장 최원일 중령) "그 당시 상황은 급박한 구조 상황이었다. 가장 다급한 게 구조였고 사고원인은 차후 상황이었다. 해경에 구조된 이후 사고 원인으로 함이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얘기했고 그 전에는 립 요청, 환자상태 체크 등을 주로 했다."

- 사고 원인이 여러가지로 점쳐지고 있다. 암초, 기뢰, 어뢰, 선체 피로에 대한 사고 가능성등이 제기됐다. 지금 생존자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암초 충돌, 피로파괴, 내부 폭발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기뢰나 어뢰로 좁혀지는데.
(함장 최원일 중령) "답답한 심정이다. 생명과 같은 천안함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면 좋겠다. 저는 아직도 천안함 가족들이 옆에 있는 듯이 가슴에 묻혀 있다. (저는) 실종자 가족 생각뿐이다." 


태그:#천안함, #생존자,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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