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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 앞에 있는 해군 아파트. 15개동 약 600여 세대로 이뤄져 있다.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 앞에 있는 해군 아파트. 15개동 약 600여 세대로 이뤄져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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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이 침몰한 지 사흘째가 되던 지난 3월 29일 밤이었다.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 취재를 마치고 걸어서 퇴근을 하는데, 소형차 한 대가 섰다. 2함대 사령부에서 근무하는 장교(중위)였다. 그는 "가까운 곳까지 가면 태워주겠다"며 차 문을 열었다. 거부하지 않고 그 차에 올랐다.

천안함 침몰에 대해 그의 견해를 물었다. 앞만 보면서 천천히 차를 몰던 그는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다.

"지금 실종자 가족들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분들을 보니까 천안함 실종자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라. 가족이니까 얼굴이 닮지 않나. '저 분은 박 상병 어머니, 저 분은 김 일병 형님이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많이 괴롭다. 얼마 전까지 함께 근무했던 부하들의 가족들이 내 가슴을 치면서 울고 있는 것 아닌가."

그는 "불과 1개월 전까지 천안함을 탔다"고 했다. 그러면서 "생존자들의 말대로 '꽝'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50cm 정도 떴다면 실종자들은 많이 다쳤을 것"이라며 "그만큼 천안함은 좁고 불편한 배"라고 말했다. 그는 "가슴 속에 할 말이 가득해도 지금은 할 수 없고, 생존자들 역시 그러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숙소인 해군 아파트로 돌아갔다.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지금은 할 수 없다.'

5일, 평택 포승읍 해군 2함대 사령부 앞에 있는 해군아파트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역시 이것이었다. 2함대 사령부 앞에는 해군 장교와 부사관들이 머무는 아파트 단지가 조성돼 있다. 단지는 19평에서 25평까지 15개 동 약 600세대로 이뤄져 있으니 작은 규모는 아니다. 외관만 본다면 여느 아파트 단지와 다르지 않다.

조용하고 공기 좋은 곳에 위치해 있으니 주거 환경은 좋은 편이다. 하지만 아파트에 입주해 있는 군인들은 "민간인이자, 외지인 입장에서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군 장병들이 가장 기피하는 곳이 바로 평택 2함대"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 앞 해군 아파트 주차장은 평일 낮 시간인데도 차가 가득하다.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 앞 해군 아파트 주차장은 평일 낮 시간인데도 차가 가득하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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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좋아 보이죠? 왜 그런지 압니까? 지금 해군이 모두 비상 아닙니까. 여기 사는 아빠들은 거의 대부분 사령부에서 비상근무 하고 있거나, 배 타고 멀리 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용해 보이는 거죠. 단지 규모에 비해 머무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한 부사관의 말이다. 결국 외지인이 느낀 '조용한 주거 환경'은 사실 '비상 상황'의 결과일 뿐이었다. 이 부사관의 말을 듣고 보니 해군 아파트 단지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평일 대낮인데도 아파트 주차장에 차가 많고, 단지 규모에 비해 너무 조용하다는 것.

김아무개 대위는 "입주 군인들 약 3분이 1이 배를 타고 바다에 떠 있으니, 차를 쓸 일이 없다"며 "남자들이 배 타고 나가 있는 시간이 많으니, 아내나 아이들은 아예 아파트에 같이 살지 않고 고향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 대위는 평택 2함대에 근무하는 어려움에 대해 담담히 말을 이었다.

"2함대에 근무하면 24시간 비상대기라고 보면 된다. 주말이나 공휴일? 어디 멀리 못 간다. 집에서 늘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북한이 설치해 놓은 해안포의 각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우린 비상이 걸린다. 2함대가 서해 NLL을 담당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피로와 정신적 긴장이 너무 크다."

그는 경남 진해 쪽에서 근무하다가 2개월 전 평택으로 왔다고 했다. 김 대위는 "해군 장병들이 가장 기피하는 곳이 바로 평택 2함대"라고 덧붙였다. 박아무개 부사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천안함 침몰로 안 그래도 힘든 2함대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며 "이 아파트에서 웃고 다니는 사람 봤나?"라고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남편이 군을 떠났으면 좋겠다"

봄 햇살이 좋아도 해군 아파트에는 활기가 없었다. 아이들 등하교 시간에만 잠시 활기가 느껴질 뿐이다. 단지 한 가운데 있는 상가 역시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 식당 주인은 "손님으로 꽉 찬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천안함 침몰로 인해 아파트 분위기가 더 침체된 것 같다"고 말했다.

천안함 침몰 사고로 해군 가족들이 받은 충격은 더 큰 듯했다. 자신의 가족들에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천안함 침몰 후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뉴스를 되도록 보지 않는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딸이 충격을 받을까 봐 염려된다. 한 번은 딸이 TV를 보면서 '아버지도 바다에 빠지면 어떻게 해?'라고 묻더라. 그 말을 듣고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학교를 마친 딸과 함께 집으로 향하던 대위 부인 박연주(가명·35)씨는 초조하게 말했다. 박씨는 "내 남편이 천안함 안 탔다고 웃을 수도 없고, 미래가 걱정돼 울 수도 없는 처지"라며 "마음 같아서는 남편이 군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박씨는 "남편이 스트레스가 더 심해졌다"며 "천안함 이야기만 하면 짜증을 내거나 밖으로 나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오후 6시께 2함대에서 휴가를 나가는 해군 사병 두 명이 아파트 단지 상가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천안함 이야기를 슬쩍 꺼냈다. 그들은 바로 '경계 태세'로 돌입했다.

"마음 아픕니다. 할 말 없습니다. 나중에 제대하고 기회 되면 말하겠습니다. 부대는 지금 계속 비상입니다. 우린 아는 게 없습니다."

"해군이면서도 육지에 근무하는 게 가장 잘 빠진 경우"

 한 군인이 퇴근 후 해군 2함대 사령부 앞 해군 아파트로 향하고 있다.
 한 군인이 퇴근 후 해군 2함대 사령부 앞 해군 아파트로 향하고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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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대기 세 개'인 한 사병은 "솔직히 배를 타는 사병들은 제일 '재수 없이' 빠진 것이고, 해군이면서도 육지에 근무하는 게 가장 잘 빠진 경우"라며 "배 타고 한 일주일 바다에 나가 있으면 축구 한 번 하는 게 소원일 정도로 몸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해군이지만, 바다보다는 육지를 욕망하는 현실. 이는 사병들만이 아니었다. 2함대 사령부에서 만난 한 소령은 "솔직히 배 타고 1~2주 바다에 나가 있으면 가족도 볼 수 없고, 개인 생활이 없는 집단 생활이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다"며 "장교들은 어쩔 수 없이 교대로 배를 타지만 최대한 육지에 머무는 게 가장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오후 6시부터 7시까지 노란색 학원 버스가 해군 아파트에 자주 나타나 학생들을 내려놨다. 한 무리의 아이들에게 다가가 좀 미안한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아빠들 많이 바쁘지? 아빠 얼굴은 자주 봐?"

아이들을 서로 얼굴을 마주치더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한 아이가 용기(?) 있게 입을 열었다.

"아저씨, 기자죠? 엄마가 기자들이 물어보면 대답하지 말래요. 아저씨 그냥 가세요!"

아이들은 말 없이 집으로 들어갔다. 저녁이 지나고 밤이 되도 해군 아파트에 사람의 이동은 거의 없었다. 천안함이 침몰한 지 열흘이 훌쩍 지났지만 해군 아파트는 여전히 '비상'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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