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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10월항쟁 유족회 측의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 가창골의 흙을 가져와서 이곳 묘역에 합치는 합토식을 가지고 있다. 이 합토식의 배경 설명은 아래 기사 참조
▲ 행방불명 희생자 묘역 대구 10월항쟁 유족회 측의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 가창골의 흙을 가져와서 이곳 묘역에 합치는 합토식을 가지고 있다. 이 합토식의 배경 설명은 아래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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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구경북 활동가들이 지난 3월 '현대사 탐구'의 일환으로 '제주4·3항쟁' 현장 견학을 다녀온 바를 정리한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제주 4·3항쟁의 정신을 재확인하고, 아울러 대구에서 46년 일어난 '대구 10월항쟁'과 48년의 제주 4·3항쟁과의 연결지점 또한 찾아본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함께한 대구경북 활동가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기자 주

제주4·3항쟁의 정신을 찾아서

4월 3일 오늘은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당시 해방공간의 제주도에서 미군정의 폭압적 통치로 인한 '제주4·3항쟁'이 발발한 지 꼭 6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한국전쟁 다음으로 희생자가 컸던 이 '제주4·3항쟁'은 사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3만여명의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제주 4.3을 짧게 요약하면 위와 같이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3만여명의 주민이 희생당한 이 비극적인 사건은 사실 그동안 역사의 장막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의 폭압에 맞서 민중들이 떨쳐 일어난 4·19를 즈음하여 그동안 역사의 장막 속에 묻혀 있던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들의 진상규명에 대한 크고 작은 요구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들어선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번번이 묵살당한 채 '제주4·3항쟁'은 역사의 장막 속에 굳게 묻혀 있었던 것이지요.

제주4.3 당시 민간인들의 죽음의 이미지와 전래의 수의를 모티브로 한 조형물이다. 견학팀이 작품을 자세히 둘러보고 있다.
▲ 작품명 '귀천' 제주4.3 당시 민간인들의 죽음의 이미지와 전래의 수의를 모티브로 한 조형물이다. 견학팀이 작품을 자세히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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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것이 1987년 민주화운동 당시부터 진상규명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화되었고, 89년에 '제주4.3연구소'가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본격적인 진상규명운동을 통해 결국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0년에 '4·3특별법'이 제정이 되고, 참여정부 때인 2003년 대통령 사과에까지 이르게 되면서 이후 희생자 명예회복을 통한 화해와 상생의 해결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제주4.3'은 '인간 오류의 비극'이자, 동시에 '인간 신뢰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참으로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무고한 양민들이 국가에 의해 학살당한 이 사건은 현대사의 큰 아픔으로 영원히 기억되면서 다시는 이 땅에서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들의 공통의 바람일 것입니다.

제주4·3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담고 있는, 제주4·3평화공원

이러한 제주4·3의 아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제주4·3평화공원'이 제주4·3사건 60주년이 되던 해인 2008년 개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 3월 '대구경북 활동가 현대사 탐구'의 일환으로 저도 이곳엘 함께 다녀왔습니다. 이 '제주4·3평화공원'은 "4·3사건으로 인한 민간인학살과 제주도민의 처절한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 가기 위한 평화·인권기념공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추모승화광장이다. 뒤에 보이는 거대한 조형물 안에 4.3 희생자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 추모승화광장 추모승화광장이다. 뒤에 보이는 거대한 조형물 안에 4.3 희생자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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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승화광장 너머로 보이는 한라산. 영산 한라산이 제주4.3평화공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 설산 한라산 추모승화광장 너머로 보이는 한라산. 영산 한라산이 제주4.3평화공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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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위령추념의 공간과 기록의 공간 그리고 상생의 성지 등으로 넓게 조성되어 있는 이곳을 돌아보면서 무고하게 희생당하신 제주도민들의 넋을 위로하고, 제주4·3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주4·3항쟁은 엄청난 역사적 비극이지만, 이 사건의 핵심은 당시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민중들이 떨쳐 일어난 민중항쟁이라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의에 맞서 분연히 봉기한 민중들의 항쟁의 정신을 기억하고, 오늘에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고인들의 넋을 기리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위패봉안소 내부의 모습이다.
▲ 위패봉안소 위패봉안소 내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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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희생자 위패봉안소의 모습이다. 4.3 당시 희생자 14.000여 기가 봉안되어 있다. 하여간 그 엄청난 수의 위패의 모습에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 위패봉안소 4.3 희생자 위패봉안소의 모습이다. 4.3 당시 희생자 14.000여 기가 봉안되어 있다. 하여간 그 엄청난 수의 위패의 모습에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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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제주4·3항쟁은 1946년 대구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인 '10월항쟁'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구 '10월항쟁'과 제주4·3항쟁

그러면 여기서 잠깐 '대구 10월항쟁'에 대해서 알아보면 이렇습니다. 아래 옮기는 짧은 글은 지난해 있었던, 4·9인혁재단의 김찬수 운영위원의 대구민중운동사의 강연 결과를 필자가 정리한 글인 <진보의 도시, 대구는 어떻게 보수의 아성이 되었나 - '대구민중운동사'를 통해 돌아보다>에서 요약 발췌해왔습니다. 

4.3평화공원 내에 있는 4.3 행방불명 희생자 묘역이다. 이 묘역은 제주4.3 당시 제주도내 적은 형무소로는 항쟁 관련 수감자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어, 전국 각지의 수용소로 분산 수감시켰고, 이들은 이후 한국전쟁 당시 무참히 학살당한 채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은 이 묘역을 통해 생생히 전달된다 할 수 있다.
▲ 행방불명 희생자 위령비 4.3평화공원 내에 있는 4.3 행방불명 희생자 묘역이다. 이 묘역은 제주4.3 당시 제주도내 적은 형무소로는 항쟁 관련 수감자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어, 전국 각지의 수용소로 분산 수감시켰고, 이들은 이후 한국전쟁 당시 무참히 학살당한 채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은 이 묘역을 통해 생생히 전달된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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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 희생자 위령비들이 늘어선 현장에 조성된, 이들의 쓸쓸하고 한많은 죽음을 상징하는 조각상의 모습이다.
 행방불명 희생자 위령비들이 늘어선 현장에 조성된, 이들의 쓸쓸하고 한많은 죽음을 상징하는 조각상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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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정국이던 46년 10월 초에 일어난 '10월 인민항쟁'은, "항쟁 당시 인민들의 정치적 요구는 친일파 청산과 토지개혁문제가 주였는데, 당시 미군정은 식량정책에 실패하고, 설상사상으로 친일파를 재등용하는 무리수를 두는 중 '9·23 총파업'이 계기가 되어, 10월 1일의 '기아행진'을 비롯한 노동자와 민중들의 집회가 일어나고, 그것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민중들이 폭발하게 된 사건이다.

이 '10월 항쟁'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민중들의 봉기로 분노한 군중들은 "대구경찰서들을 점거하고 무장해제 시키면서 대구를 해방구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사실 이 사건은 그동안 수구세력에 의해 왜곡되어 그 의미가 축소된 채 역사적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현대사의 공간에서 역사의 큰 물줄기를 이룬 사건임에 분명한 듯했다. 당시 이 "10월 인민항쟁의 기운은 전국으로 퍼져나가 싹을 내렸으며, 이후 48년의 제주 4·3항쟁과 그 해 10월 여순항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사망하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민중들이 폭발하게" 된 사건이다.>

불의에 맞선 고인들의 항쟁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이 진정한 추모

그렇습니다. 당시 해방공간이던 1946년 일어난 첫 민중봉기에 해당하는 '대구 10월항쟁'은 이후 '제주4·3'으로 '여순항쟁'으로 그리고 그 이후 '4·19'로 이어지는 도도한 민중저항의 상징인 것입니다.

대구 10월항쟁 유족회 측의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 가창골의 흙을 가져와서 이곳 묘역에 합치는 합토식을 가지고 있다. 이 합토식의 배경 설명은 아래 본문 기사 참조
 대구 10월항쟁 유족회 측의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 가창골의 흙을 가져와서 이곳 묘역에 합치는 합토식을 가지고 있다. 이 합토식의 배경 설명은 아래 본문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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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날 제주4·3항쟁 현장 견학에 함께한 '대구 10월항쟁' 유족회 측 유족분들과 대구경북 활동가들에겐 그 의미가 남다른 현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날 그 현장에서는 의미있는 행사가 하나 소박하게 열렸습니다. 바로 평화공원 내에 있는 영남지역 행방불명 희생자 위령묘소에 대구 가창골에서 가져온 흙을 합토하는 행사를 가진 것입니다.

이 행사는 당시 제주4·3 관련 정치범들이 좁은 제주도내 감옥을 떠나 전국으로 분산 수감중이었는데, 그중 대구형무소에 수감중이던 제주4·3 관련 정치범들과 10월항쟁에 연루된 정치범들이 한국전쟁 당시에 대구 가창골에서 무참히 학살당한 것이고, 그래서 그 땅의 흙을 떠와서 이곳 위령묘소에 함께 묻는 합토식을 연 것이지요.

4.3평화기념관 내부의 모습들이다. 이 기념관에는 제주 4.3항쟁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 4.3평하기념관 4.3평화기념관 내부의 모습들이다. 이 기념관에는 제주 4.3항쟁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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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평화기념관 내부의 모습이다. 이 기념관에는 제주 4.3항쟁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학살의 현장을 그린 작품.
▲ 제주4.3평화기념관 4.3평화기념관 내부의 모습이다. 이 기념관에는 제주 4.3항쟁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학살의 현장을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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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10월항쟁과 제주4·3항쟁으로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들의 넑들이 이곳에서 마침내 함께 승화되어, 이 자리에 함께한 후배들에게 그대로 전달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제주4·3항쟁을 대구 10월항쟁과 연결해서 바라보며 민중들의 도도한 저항의 정신을 오늘에 되새기게 된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분명 제주4·3항쟁은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당한 비극임에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고인들의 넋을 기리는 것은 당연히 우리 후손들의 몫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넋을 기리는 일이 단순한 참배로 끝날 것이 아니라, 불의에 대한 그들의 항쟁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란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 제주4·3항쟁이 발발한 6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고인들의 넑을 기리고, 그분들의 정신을 되새겨 봅니다.

제주 4.3평화기념관에 널린 방문객들의 소지
▲ 4.3평화기념관의 소지 제주 4.3평화기념관에 널린 방문객들의 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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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현대사 탐구단'의 김찬수 선생이 소지를 매달고 있다
▲ 제주4.3기념관의 소지 '대구경북 현대사 탐구단'의 김찬수 선생이 소지를 매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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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의 마지막 출구 앞에는 이렇게 추모객들이 소지를 매다는 장소가 있고, 4.9인혁 재단의 김찬수 운영위원도 대구경북 현대사 탐구단을 대표해서 "4.3항쟁 진실규명 명예회복운동 이어받아,10월항쟁 진상규명 명예회복을 꼭 이루겠습니다"는 소지를 매어달고 있는 모습이다.
 기념관의 마지막 출구 앞에는 이렇게 추모객들이 소지를 매다는 장소가 있고, 4.9인혁 재단의 김찬수 운영위원도 대구경북 현대사 탐구단을 대표해서 "4.3항쟁 진실규명 명예회복운동 이어받아,10월항쟁 진상규명 명예회복을 꼭 이루겠습니다"는 소지를 매어달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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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활동가 현대사 탐구단의 기념촬영 모습이다. 함께한 대구경북 활동가들에게 감사드린다
▲ 대구경북활동가 현대사 탐구단 대구경북활동가 현대사 탐구단의 기념촬영 모습이다. 함께한 대구경북 활동가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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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블로그 앞산꼭지'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태그:#제주 4.3항쟁, #제주4.3기념공원, #4.3기념관, #대구 10월항쟁,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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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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