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농민들이 만든 죽곡농민 열린도서관.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대황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농민들이 만든 죽곡농민 열린도서관.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대황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태평리 대황강변. 돌에 새겨진 표지석 하나가 눈길을 끈다. '죽곡농민열린도서관'이라 씌어 있다. 이런 산골마을에 도서관이라니, 그것도 농민들이 만든 열린 도서관이라니.

겉보기에 그저 평범한 건물이다. 호기심이 발동한다. 다가가서 출입문 유리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안을 들여다본다. 책장에 책이 빼곡하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니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크다. 20평 남짓 된다.

책상과 의자가 단아하게 생겼다. 책꽂이에 소설이 있고 수필, 에세이집, 시집이 보인다. 사회과학서적과 농업서적도 보인다. 종교서적과 무협소설도 꽂혀 있다. 자연과 천체에 관한 책도 한자리 꿰차고 있다.

죽곡농민 열린도서관. '농민문고'로 시작한 것이 몇 년 사이 어엿한 도서관으로 변했다.
 죽곡농민 열린도서관. '농민문고'로 시작한 것이 몇 년 사이 어엿한 도서관으로 변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책꽂이 사이로 난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사롭다. 자연스레 시선이 창밖으로 향한다. 창 밖 풍경이 예쁘다.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봄햇살을 받은 봄바람이 강물을 간질이고 있다.

원형 계단을 따라 올라간 복층은 어린이들 공간이다. 책꽂이에는 위인전과 동화책이 즐비하다. 만화책도 보인다. 그 앞에 어린이 둘이서 사이좋게 책을 보고 있다. "학교수업 끝나고 왔다"는 이들은 죽곡초등학교 5학년 기나영, 박혜진 어린이다.

공부도 열심히 해서 전교 10등 안에 든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죽곡초등학교 5학년 학생은 모두 10명에 불과했다.

이들은 도서관에 와서 숙제도 하고 책도 보고 놀기도 한다고 했다. "조용하고, 읽을 것도 많아서 좋다"는 게 어린이들의 얘기다. "배고플 때 컵라면도 맘껏 먹을 수 있어서 더 좋다"고 했다.

학교수업 끝나고 도서관에 온 나영이와 혜진이. 이들은 도서관에서 숙제도 하고 책도 본다고.
 학교수업 끝나고 도서관에 온 나영이와 혜진이. 이들은 도서관에서 숙제도 하고 책도 본다고.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죽곡농민열린도서관은 '농민문고'가 모태였다. 곡성군농민회 죽곡면지회가 주인공이다. 지난 2004년 회원들이 집에 있던 책을 몇 권씩 가지고 나와서 처음 만들었다. 농민문고 얘기를 전해 들은 마을주민들도 책을 가져다 주었다.

이렇게 해서 모인 책이 2500권을 훌쩍 넘었다. 금세 5평 남짓 되는 공간이 책으로 꽉 찼다. 급기야 아이들이 차분히 앉아서 책을 볼 수 없을 정도가 됐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희망의 작은도서관 만들기 사업과 인연을 맺게 됐다. 2006년 책읽는사회국민운동본부와 삼성문화재단, 한겨레신문이 공동 주최한 사업에 제안서를 내 채택된 것.

여기서 1억원을 지원받고 곡성군도 힘을 보태 만든 게 지금의 도서관이다. 규모도 24평으로 늘고 보유장서도 7000여 권이 넘는다.

"마을주민 모두의 자랑거리죠. 농민회원들이 앞장서고 마을주민들이 함께 만든 도서관인데,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여기 있는 책상과 책꽂이도 재료비만 들여서 모두 저희 회원들이 직접 짰거든요."

농민회원 이균열(46)씨의 얘기다.

죽곡농민 열린도서관. 24평 규모에 보유장서가 7000여 권에 이른다. 산골마을 도서관치고 제법 큰 규모다.
 죽곡농민 열린도서관. 24평 규모에 보유장서가 7000여 권에 이른다. 산골마을 도서관치고 제법 큰 규모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죽곡농민 열린도서관은 이름처럼 실제 주민들에게 완전히 개방된다. 매일 밤 10시까지 누구나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마을주민이나 학생들이 원할 경우 24시간 개방도 한다.

대출도 따로 규제하지 않는다. 대출장부도 없다. 10권이고 20권이고 알아서 빌려가고 자유롭게 반납한다.

"도서관을 나간 책은 몸집을 불려 두세 권으로 돌아옵니다. 대출을 많이 해 갈수록 도서관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죠."

도서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김재형(46)씨의 얘기다.

죽곡농민 열린도서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김재형(왼쪽) 씨와 이균열씨. 동갑내기인 이들은 모든 일에서 손발이 척척 맞는다고.
 죽곡농민 열린도서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김재형(왼쪽) 씨와 이균열씨. 동갑내기인 이들은 모든 일에서 손발이 척척 맞는다고.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열린도서관은 도서관 고유의 역할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마을주민들을 대상으로 자격증 갖기 운동을 펴고 있다. 농작업에 필요한 농기계나 굴착기 조작은 물론 배관, 조경, 환경 등 관련분야의 자격증시험 공부를 돕고 있다.

전문책자를 갖추고 예상문제도 뽑아 나눠준다. 그 결과 산림기사자격증 등 전문자격증을 딴 주민들이 벌써 10명을 넘어섰다.

매달 둘째·넷째주 토요일에 두 차례씩 영화를 보여주는 것도 도서관의 일이다. <아바타> <천국의 계단> 등 올해 벌써 여러 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어른과 아이들 모두 좋아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기본지식을 나누고, 끝난 뒤엔 다과를 함께 하며 소감을 교환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죽곡농민 열린도서관을 찾은 주민이 책을 열람하고 있다.
 죽곡농민 열린도서관을 찾은 주민이 책을 열람하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죽곡마을 열린도서관이 이처럼 마을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은 것은 주민 모두가 내 일처럼 적극 참여한 결과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집에서 잠자던 책을 가지고 나오고, 운영비도 십시일반으로 보탰다.

책을 보던 아이들이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도록 컵라면을 조달해주는 것도 주민들이었다. 매달 1000원씩 계좌이체를 해줄 회원을 모집하고 있는 건 도서관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방안이다.

김재형 열린도서관 운영책임자는 "오는 6월엔 금명간 도법스님,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등을 초빙한 인문학강좌를 개설할 예정으로 현재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농촌여성을 위한 프로그램도 개발하는 등 면단위 도서관의 표본으로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죽곡농민 열린도서관 전경. 대황강과 죽곡천이 만나는,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태평리에 자리하고 있다.
 죽곡농민 열린도서관 전경. 대황강과 죽곡천이 만나는,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태평리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태그:#죽곡농민열린도서관, #곡성군농민회, #농민도서관, #김재형, #이균열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