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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김예슬'이라고 언론에 소개된 채상원씨의 글과, 채씨의 글에 문제제기를 하는 박연씨의 글이 서울대 학생회관 앞에 나란히 붙어있다.
 '제2의 김예슬'이라고 언론에 소개된 채상원씨의 글과, 채씨의 글에 문제제기를 하는 박연씨의 글이 서울대 학생회관 앞에 나란히 붙어있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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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아니 싸움을 시작한다.'

지난달 29일 저녁. 서울대 캠퍼스 곳곳에는 이와 같은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의 주인공은 서울대 지리학과 08학번 채상원씨.

채씨는 이 글에서 "대학이란 곳은 무한경쟁의 닫힌 공간일 뿐이며 그 공간은 우리에게 그 어떤 삶의 의미도, 방향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서 "자발적 퇴교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그러면서도 지금의 대학을 거부하기로 다짐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대학의 주인이 되어 대학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채씨의 글은 곧 언론에서 '제2의 김예슬 선언'으로 소개되었다. 누리꾼들의 '응원의 메시지'도 잇따랐다. 고려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김예슬씨는 지난 3월 9일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되어버린 대학의 현실을 비판하며 '자발적 퇴교'를 선언한 바 있다.

채씨는 지난달 31일 한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도 했다. 채씨는 이 방송에서 "고려대 김예슬 학우의 글을 보고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을 해봤는데, 더 이상 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직접 행동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런 대자보를 쓰게 되었다"고 밝혔다.

'제2의 김예슬' 채상원 학우의 대자보에 부쳐'

3월 31일 오후, 서울대 학생회관·중앙도서관·사회과학대학 건물에 게시된 채씨의 대자보 옆에는 한 장의 대자보가 위의 제목으로 나란히 붙었다. 이 글을 쓴 서울대 정치학과 08학번 박연씨는 채씨에게 "도청사건을 잊었는가? 전 예스위캔 선본원 채상원 학우, 당신의 선언을 책임지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박씨는 대자보를 붙인 후 서울대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 글을 올려 "반드시 따져야 할 사건이라고 판단을 내렸다"면서 대자보를 붙인 이유를 밝혔다. 채씨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부정선거와 무단감청으로 얼룩진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

때는 지난해 11월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17~25일에 치러진 총학생회 선거는 부정선거 의혹에 무단감청 논란까지 일면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채씨가 몸담았던 선거본부(이하 선본)인 '예스위캔'은 개표일인 26일, '선거관리위원회가 사전에 투표함을 열어 투표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그 근거로 선관위원들이 투표함을 미리 열어본 것으로 의심될 만한 2박 3일 분량의 녹음파일을 제시했다.

이 녹음 파일에는 선거관리위원장(당시 총학생회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38대 25대, 22...", "완패다. 완패"라고 말을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예스위캔'쪽은 파일의 출처에 대해 "선거관리위원실에 녹음기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학내언론들을 중심으로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지고 12월 1일부터 재투표가 실시되었지만, 투표율 미달로 결국 53대 총학생회는 꾸려지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선거관리위원장과 몇몇 선거본부 임원들이 사퇴했다. 현재 공석인 총학생회는 단과대 학생회장들의 모임인 '단과대 연석회의'가 대신하고 있다.

'진상조사' 역시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당시 진상조사위원회 의장을 맡았던 서울대 정치학과 08학번 전진원씨는 1일 기자와 만나 "녹음파일을 들어보니까 투표함을 봉인한 테이프를 뜯는 소리, 투표함을 흔드는 소리, 도장을 찍는 소리 등으로 추정되는 소리가 들리는 등 의혹은 있었지만 확증은 없었다"면서 "투표함이 뜯어진 흔적이라든지, 공식적인 투표용지 이외에 다른 투표용지가 발견되는 등 투표조작을 의심할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정확하게 알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되면서 '서울대판 초원복집 사건'은 그렇게 잊혀져 갔다.

'무단감청 해명' 전에는 '제2의 김예슬' 동의할 수 없다

지난 1일 서울대를 찾았다. 양복을 입은 학생들이 '총학생회장 후보 추천'을 받고 있었다. 4월 20일 서울대는 현재 공석으로 있는 53대 총학생회 재선거를 치른다. 채씨 역시 이번 선거에서 총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한다. 채씨가 학내에 대자보를 붙인 것은 '후보 추천 기간'을 이틀 앞 둔 날이었다. 전씨는 "학내에 웬만한 사람들은 (채씨의 대자보를) '제2의 김예슬'이 아니라 '출사표'라고 생각하면서 읽었을 거다"라고 말했다.

다시 박씨의 글로 돌아가자. 박씨는 대자보에서 "채상원 학우가 쓴 대자보를 읽는 내내 줄곧 '나서서 싸우겠다'는 힘찬 결의를, 이 글을 쓴 채상원 학우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다"며 서두를 뗐다.

그는 "나는 글쓴이(채상원씨)를 비롯한 '예스위캔' 선본원들이 도청 사건에 대해 보였던 안일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똑똑히 기억한다. 그러나 이 글에는 작년의 논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로 없다"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박씨는 "그렇게 정의로운 말투로 사회를 위해 싸워나가겠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본인의 정치적인 행보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라고 따져 물었다. 그리고 "도청 사건을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박씨는 1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언론이 채상원씨를 영웅적인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대자보만 본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해명되어야 할 부분이 있고 그 이전에는 그러한 규정('제 2의 김예슬'이라는)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앙도서관 근처에서 만난 화학생물공학부 09학번 김세영씨 역시 박씨의 글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중앙도서관 터널에 붙어있는 채씨와 박씨의 글을 차근차근 읽고 있었다. 그는 "'예스위캔'이 도청사건에 대해 해명을 하긴 했는데 이것이(도청이) 정당한 것이었다는 해명이었다"며 "(채씨의) 글의 내용에는 동의를 하지만 해명할 부분은 해명해야 한다"고 전했다. 

진상조사위원회 의장이었던 전씨 또한 "채상원씨가 이렇다할 사과를 안 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과 대자보를 붙였는데 그것이 자신들의 행위를 옹호하는 쪽으로 학우들에게 비쳤다는 것이다.

선관위 "채씨, 사전선거운동 징계"... 채씨 "공개대응 않겠다"

'김예슬로 사전선거운동 하지 마라'는 의견도 있다. 한 학생은 지난 1일 서울대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 글을 올려 "대자보에서 본인의 이름을 밝히고 후보 등록 기간에 맞춰서 대자보를 붙이는 것 자체가 고의적인 행동으로 여겨진다"면서 "굳이 후보추천기간에 걸쳐서 그러한 대자보를 붙인 행위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규열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채상원씨를 사전선거운동으로 징계조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개인 명의로 붙인 대자보이긴 하지만 시점과 내용이 사전선거운동의 성격이 있고, 후보자 본인이 조절할 수 있음에도 여러 언론사와 인터뷰를 가졌다"고 징계사유를 밝혔다. 징계의 수위는 공개하지 않았다.

한편, 채상원씨는 2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공개적인 대응을 하지 않겠다"며 별다른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다.


태그:#채상원, #제2의 김예슬, #김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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