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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착저레착 제주 마을다니기-협재리편]
저는 제주에 삽니다. 제주의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길을 무작정 걷기보다는, 제주마을을 테마로 걷는건 어떨까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마을을 다니면서 사람도 만나고 문화와 전통, 역사를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레착저레착'은 여기저기 다닌다는 말입니다.

때마침, 그래, 때마침이다. 온 몸의 기운이 바닥나서 집밖으로는 도무지 나가기 싫은 날이었다. 황사경보가 섬과 대륙을 뒤덮었고 바다는 뭐가 못마땅한지 울며 뒈싸지며 몽니를 부리던 날이었다. 소화가 잘 되지 않을 것 같은 꿀꿀한 날씨 속에 비양도는 물론이고 마을 전체가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를 찾아간 날이 하필, 그랬다. 이런 날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협재리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 곳에 해상케이블카가 세워진다고 했다.

제주 협재리 해안가
▲ 제주 협재리 해안가 제주 협재리 해안가
ⓒ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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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에 내리니, 협재 해수욕장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앞이 깜깜하다는 뜻. 별다른 내비게이션도 없고 방향감각 없는 아날로그인(그냥 대충 산다는, 뭐 그런 거)이다 보니 무작정 해안가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것 참, 바람이 사람 속을 뒤집을 정도로 불어왔다. 풍랑주의보가 내려졌다고 했는데, 경보 수준이다. 사람들은 모두 집안으로 대피한 모양인지 한 사람의 몰골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날 해수욕장을 찾아가다니, 정보시대에 뒤떨어진, 빌어먹을. 욕이 입 밖으로 나왔다. 누가 보면, 딱 미 친 년이다.

그래도 걸었다. 그래야 덜 춥다. 어디든 가도 잘 적응한다. 하나둘, 하나둘. 발을 놀려 뛰다시피하다, 방향을 잘못 틀었는지 막다른 골목이 나왔다. 눈치 빠른, '개' 놈이 짓는다. 줄행랑친다. 이해한다. 바닷 바람 때문인지 올레가 엄청 길었다. 아하, 여유롭게 웃고 넘어간다.

황사경보, 풍랑주의보가 있던 날, 협재해수욕장
▲ 협재해수욕장 황사경보, 풍랑주의보가 있던 날, 협재해수욕장
ⓒ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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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재리에 대한 자료를 찾다보니, 협재리가 해안마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태일 교수의 <제주건축>에 보면, 해안마을은 경지가 분리된 형태를 취하고 있는 특징이있는데, 협재의 경우도 거의 대부분의 경지가 해안으로부터 떨어진 지역에 집단적으로 형성되어 있어 촌락과 경지의 분리된 형태로, 중산간마을과 다른 특징이 있다고 돼있다.

해수욕장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바람이 허리케인 수준이다. 머리채와 나뭇가지와 빨래가 혼연 일체되어 바람의 리듬에 따라 같은 방향으로 꺾어진다. 해수욕장에 가지 말라고, 거기가면 큰일 난다고 누군가 뒤꼭지에 대고 얘기하는 것 같다. 제주바당, 참, 밉다.

협재해수욕장에있는 관광 마차
▲ 협재해수욕장에있는 관광 마차 협재해수욕장에있는 관광 마차
ⓒ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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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승마용 말 두마리가 마주서 있다
▲ 협재해수욕장에 있는 말 관광승마용 말 두마리가 마주서 있다
ⓒ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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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보니 의외로 관광객이 많다. 다들 '허씨' 렌트카를 끌고 있었다. '뽐' 부릴려고 외제차들 몰고 왔을 텐데(이들에게도 사랑과 평화가 함께 하시길) 하필 바당이 뒈싸지고 있었으니 난감해할 줄 알았는데, 다들 '나 잡아 봐라~' 놀이를 즐기고 있다.

한편에서는 마릴린 몬로 포즈로 사진을 찍고, '셀카'놀이에 빠진 남자도 눈에 띄었다. (잘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패스!) 아, 여기서 '관광마차'도 처음 봤다. 말 한 마리가 마차를 끌고 있었다. 그리고 비양도를 배경으로 승마를 할 수 있도록(?) 말 두 마리가 마주 서 있었다. 얼마나 추울까. 나보다 말들을 걱정하긴 처음이다. 몸을 부르르 떠는 것 같았다. 관광지에서 말(馬)만 보면, 할 말(言)이 떠오르지 않는다. 관광 승마장에 가보면 더 그렇다. 나보다 무려 두세 배는 커 보이는 말들이 안쓰럽게 날 쳐다본다. 구해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암튼, 그렇다는 거다.

협재해수욕장에서 관광객들이 비양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 협재해수욕장 협재해수욕장에서 관광객들이 비양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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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에 대충 자리를 깔고 앉아 삼각모자를 눌러쓴 비양도를 바라봤다. 비양도는 행정구역상으로 1950년대 초반에 협재리에서 분리됐다. 원래는 한 마을이었다. 이 곳에 케이블카를 세우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해상 케이블카 사업이라고 했다. 비양도 관광케이블카는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 바다와 협재·금릉 해수욕장, 울창한 소나무 숲, 그리고 한라산과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오름 절경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다고 사업자들은 홍보한다.

우중충한 하늘아래 숨죽이고 있는 비양도
▲ 협재해수욕장에서 보이는 비양도 우중충한 하늘아래 숨죽이고 있는 비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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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비양도~협재·금능해수욕장~한림공원~골프장과 연계된 관광자원을 활용하여 사계절 체류형 관광 기능 강화 (제주광역도시계획, 2007년 4월, 제주특별자치도),  기존 운영중인 라온골프클럽, 라온관광목장, 라온더마파크(The Ma Park)과 현재 개발사업 인·허가절차 진행 중인 라온 휴양리조트 관광개발사업을 연계하여 개발함으로써 서부권 관광벨트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뭐, 줄여서 관광객 유치하겠다는 뜻이다.

비양도케이블카 조감도
▲ 비양도케이블카 조감도 비양도케이블카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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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눈으로 케이블카가 세워진 뒤의 모습을 그려본다. 거대한 기둥이 세워질 테고, 4인승 곤돌라가 머리 위에 오락가락할 테지. 파란 하늘위로 전깃줄들이 그어질 테고, 위에서 사람들이 내려다보고 있겠지. 비양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도 몇 줄의 낙서가 생길 테고, 바다에 조각그늘이 떠다니겠지. (아차, 아직 제대로 된 비키니 한 번 못 입어봤는데, 누가 쳐다보면 뱃살을 감추기 못하잖아!!)

관광객들이 많이 올까. 얼마나 장사가 될까. 관광마차 주인은 돈을 더 많이 벌수 있을까. 케이블카에 대해 옆 동네인 금능리 주민들은 반대를 하고 나섰다. 하지만 아직 협재리 주민들은 움직이고 있지 않다. 주민들간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 것이다. 서로의 이해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을 테니 그럴 것이다.

협재리에 있는 폐가들
▲ 협재리에 있는 폐가들 협재리에 있는 폐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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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재리 폐가
▲ 제주 협재리 폐가 협재리 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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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재리 민박집 화장실 간판
▲ 협재리 민박집 협재리 민박집 화장실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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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에서 일주도로로 빠져나온다. 마을 안쪽으로 무작정 들어섰다. 바람이 잠잠하다. 해수욕장 주변이 화려한 대형 펜션과 식당들이 줄을 서고 있는 대신, 안쪽은 여자의 생얼처럼 초라하기만 하다.

가는 곳곳마다 폐허가 눈에 들어왔다. 빈집을 이렇게 많이 본적이 없다. 바람은 지붕이며 돌담이며 집까지도 헝클어 놓은 듯했다. 이곳에 원주민이 많을 터다. 소규모 민박집이 눈에 들어왔다. 모래들이 길이며 집 마당이며 밭이며 장악하고 있으니 농사가 될 턱이 없다. 해수욕장 주변은 외지인들의 화려한 숙박건물들이, 마을 안쪽은 아담하고 볼품없는 민박집들이 들어선 셈이다. 

협재리라는 마을 지명유래에 대해서는 조금씩 다른 설(說)이 있었는데, 김태일 교수에 따르면, 마을 촌로(?)의 말에, 어느 시대인가 명확하지는 않으나 어떤 지관 한 사람이 마을을 지나치며 들러 마을의 지세를 점쳐봤더니 많은 인재가 마을에서 배출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사라졌고, 이를 전해들은 마을 사람들이 즉시 협(夾)재(財)를 협(挾)재(才)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본래는 협(挾)현(峴)이었는데 지명을 미화하기 위해 현(峴)을 재(才)로 바꾸었다고 하는데, 현은 고개마루의 의미로 재와 동일한 발음을 내기 때문에 고개 마루를 사이에 두고 전개되는 취락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협재마을 뒤쪽으로 작은 동산이 둘러싸여있는데 이러한 작은 동산을 경계로 이웃 마을과 경작지와 연계되는 공간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협재리 밭은 모래가 점령
▲ 모래가 점령한 밭 협재리 밭은 모래가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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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명 교수의 <제주도 마을이름의 종합적 연구>에 따르면, 협재굴 입구에는 동물뼈와 조개류들이 확인되는 탐라시대의 동굴입구 집자리라고 하므로 일찍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았던 것으로 추정, 협(俠)재(才) 협(夾)재(財), 협(挾)재(才) 협(狹)재(才) 등은 모두 음이 모두 '협ㅈ.ㅣ>협재'인데 민간에선 소리가 '섭지'로 변해, '협'의 어두음 'ㅎ'은 'ㅅ'으로 구개음화하여 '섭'으로 실현되고 '재'는 단모음화하여 '지'로 실현, 민간에서는 '섭재' 또는 '섭지'라고 한다. 그 뜻은 명확하지 않아, 이때의 '섭지'는 신양리 '섭지코지'의 '섭지'와 동일한 음성형과 뜻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중후반부터 협(挾)재(才)로 표기했다고 한다.

마을 홈페이지에는 섶나무가 많으므로 '섭재' 또는 '협재'라 불렸다는 짧은 소개가 있다. 셋 다 그럴싸하다. 협재리에는 재릉초등학교가 있고, 402세대, 905명(2007.12.31.현재)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작년 한 해 여름 금능과 협재해수욕장을 이용한 사람은 31만4천명에 이른다. 그러니 사는 사람보다,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더 많은 마을인 셈이다.

한림공원 입구
▲ 협재리에 있는 한림공원 한림공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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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왔는데, 한림공원까지 가본다. 튤립을 보려고 부러 들어간 것이다. 튤립이라고 발음할 때의 그 긴장감이 예쁘다. 색이 화려해 슬픈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뿐이다. 한림공원입구에 재암천이 있다. 굴 안에 풍부한 샘이 흘러 재암천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여기 사람들은 이 바위가 있어 재물이 들어온다고 믿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한림공원이 재암 돌바위 때문에 잘 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고.

한림공원 앞 정류장에 옛날에는 작은 식당이 있었다. 무조건 MT를 협재해수욕장으로 간 덕분에 기억한다. 이곳에서 만났던 녀석의 얼굴까지. 그런데 지금은 전국 어디에 가도 보이는 편의점이 있다. 아쉽다. 그래도 그 운치는 그대로다.

여긴 앞으로도 매 여름마다 사람들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마을에 정착하는 사람보다 바람처럼 떠나는 사람이 더 많아질 테고, 폐허가 더 많아질지 모른다. 아, 물론 바람은 적당히 불어야 한다. 바람이 몽니부리면, 케이블카 운행이 안될 테니까.


태그:#비양도케이블카, #제주도 협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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