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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귀족들이 담가 마셨다는 고급 막걸리 이화주
 고려귀족들이 담가 마셨다는 고급 막걸리 이화주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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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ml가 들어가는 아주 작은 투명한 유리병에는 우윳빛 액체가 들어 있었습니다. 병을 들어 내용물을 따르는데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한동안 병을 기울이고 있으니 그제야 걸쭉한 덩어리가 투명한 유리잔 속으로 툭 떨어집니다. 색깔이며 농도가 꼭 플레인 요구르트 같습니다.

잔을 입에 대고 내용물을 마시려는데 이게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니 겨우 한 방울, 입안으로 또르르 굴러 들어갑니다. 혀끝을 감도는 맛은 달콤하면서 새콤한 것이 플레인 요구르트과 비슷한 듯합니다. 알싸한 알코올 맛이 느껴지는 것도 같습니다.

이 액체의 이름은 이화주(梨花酒). 고려시대에 귀족들이 만들어 마셨다는 고급 막걸리라고 합니다. 백설기를 쪄서 손으로 일일이 뜯어서 만들었다는 이 막걸리는 배꽃이 필 무렵에 빚었다고 해서 이화주라고 불렸다고 하네요. 국순당에서 전통방식으로 복원했다고 합니다. 막걸리, 하면 서민들이 마시는 대중적인 술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고급 막걸리가 따로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습니다.

이화주는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소량 생산을 할 수밖에 없고, 값도 일반 막걸리에 비해 많이 비싸다고 합니다. 300ml리터 한 병에 만 원 정도 한다니 막걸리라고 가벼이 여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도보여행 하면서 막걸리와 새롭게 만나

지난 3월 18일, 국순당 횡성공장을 찾아갔습니다. 막걸리를 생산하는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서지요.

국순당 생막걸리
 국순당 생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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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술에 별로 관심이 없을뿐더러, 즐겨 마시는 술도 맥주로 한정되다보니 막걸리는 어쩌다 마시게 되는 술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도보여행을 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새롭게 막걸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각 지역마다 팔고 있는 막걸리가 달랐던 것이지요. 막걸리, 라는 주종은 하나인데 상표가 다르고 생산하는 술도가가 달랐습니다. 당연히 맛도 조금씩 달랐지요.

지리산 둘레길에서는 운봉, 인월, 마천 막걸리와 화개장터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문경새재에서는 오미자 막걸리를, 정선에서는 옥수수 막걸리를, 진도에서는 울금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여행을 떠나면 그 지역에서 생산·판매하는 막걸리를 자연스럽게 찾게 되더군요. 이 지역에서는 어떤 막걸리를 생산하고 판매하고 있는지, 그 맛은 어떤지 궁금해지더라는 것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점점 더 막걸리를 즐겨 마시게 되었습니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무엇을 마시겠느냐고 물으면 "막걸리"라고 호기롭게 외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같이 여행을 가는 이들도 당연한 듯 말합니다. "오늘도 막걸리 마셔야지?"

한국에서 막걸리를 생산하는 술도가가 7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영세한 업체부터 대규모 공장을 갖춘 업체까지 포함해서겠지요. 널리 알려져 애주가의 사랑을 받는 막걸리들도 제법 많다고 합니다. 송명섭 막걸리, 배다리 막걸리, 금정산성 막걸리, 월향 현미막걸리, 은자골 탁배기 등등이 있고, 지역마다 생산되는 특산품을 재료로 만드는 막걸리도 많고, 지역의 특산물을 첨가한 막걸리가 새롭게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막걸리에 대한 관심은 막걸리를 생산하는 술도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는 막걸리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특색이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만드는지 알고 싶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막걸리 기행>입니다. 여행을 떠나는 김에 막걸리 술도가도 찾아가면 어떨까, 싶어진 것이지요. 가장 큰 속셈은 핑계김에 전국 방방곡곡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막걸리를 마셔 보고야 말겠다는 것이지만.

그 첫 출발로 국순당 횡성공장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국순당을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효모가 살아 있고 유산균이 들어 있고 비타민 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영양소가 들어 있어서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바로 생막걸리입니다. 생막걸리의 유통기한은 10일 이내입니다. 그 기간이 넘으면 효모가 활성화해 막걸리가 신맛으로 변하면서 식초가 된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막걸리가 지역의 경계를 넘지 못하고, 생산된 지역에서 판매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국순당을 가장 먼저 찾아간 이유

그런데 국순당 막걸리는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 팔리고 있었습니다. 문경새재에서도, 구례에서도 국순당 막걸리를 마셨으니까요. 국순당 막걸리는 어떻게 판매지역을 한정하지 않고 다른 지방까지 판매망을 넓힐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막걸리 기행>을 국순당에서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국순당 횡성공장
 국순당 횡성공장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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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순당 횡성공장은 소규모의 양조장이 아니라 전 생산설비가 자동화되어 있는 큰 공장이었습니다. 그런 공장을 견학하는 건 솔직히 재미있는 일은 아닙니다. 오래 전에 견학을 했던 콜라나 맥주 공장의 생산 설비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눈으로 직접 막걸리 제조 현장을 살펴보는 건 좋은 경험이었지요.

이날 이정훈 팀장(생산본부 품질보증팀)이 생산현장을 안내하면서 상세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막걸리를 생산하는 날에 맞춰 공장 견학을 하려고 했는데, 막걸리 판매량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국순당에서는 날마다 생막걸리를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국순당에서 생막걸리를 생산·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5월입니다. 국순당의 생막걸리 판매량의 증가속도를 보면 막걸리 소비가 얼마나 가파르게 상승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순당이 생막걸리를 처음 출시한 2009년 5월, 막걸리 판매량은 17만3천 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12월, 판매량은 465만 병으로 늘어납니다. 판매량이 거의 30배에 육박할 정도로 늘었습니다.

2009년 국순당의 막걸리 판매량은 1000만 병을 웃돕니다. 이 숫자만으로도 사람들이 막걸리를 엄청나게 마셔댔구나, 짐작할 수 있는데 2010년에 들어와서는 두 달 동안 생산한 막걸리가 1000만 병이랍니다. 아니, 사람들이 일은 안 하고 막걸리만 마시고 있나, 싶어집니다.

국순당에서조차 막걸리 판매량이 이렇게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국순당은 막걸리 판매가 늘어나고 대중적인 술이 될 수 있다는 예측을 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3년 전부터 했다는 것이 이정훈 팀장의 설명입니다. 그렇더라도 이렇게까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수요가 늘어날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국순당 하면 백세주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데, 예전에는 백세주가 아주 잘 팔리는 효자종목이었지만 지금은 막걸리가 효자종목 역할을 톡톡이 하고 있다네요.

앞서 설명한 대로 보통 생막걸리의 유통기한은 10일입니다. 그보다 짧게 유통기한을 표기한 막걸리들도 있습니다. 유통기한의 한계 때문에 지역에서만 팔릴 수밖에 없는 막걸리를 전국적으로 판매하려면 유통기한을 늘리는 것이 관건이겠지요. 국순당은 생막걸리를 출시하기 전에, 살아 있는 효모의 활성화를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합니다. 덕분에 유통기한이 10일에서 30일 이상으로 대폭 늘어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국순당 생막걸리의 유통기한은 다르다?

이정훈 팀장은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생막걸리의 유통기한은 30일이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으로 수출하는 막걸리의 유통기한은 그보다 긴 60일~70일이라고 합니다. 90일까지도 가능하다는 것이 이 팀장의 설명입니다. 국내에서는 30일 이상 유통기한을 늦출 수 없다고 법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30일로 한정되었다고 합니다.

국순당 막걸리 공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하얀 가운을 입고, 하얀 모자를 쓰고, 신발을 감싸는 종이신도 신었습니다. 당연한 수순으로 에어샤워도 했지요. 공장 안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났습니다. 술이 발효하는 듯한 냄새가 공장 안을 감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장 설비는 컴퓨터로 제어되고 있었습니다. 쌀을 씻어서 분쇄하는 과정부터 발효시키고 거르고 최종적으로 병에 담는 과정까지 전부 자동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공장 안에서 제가 본 것은 대형 스테인리스 용기들뿐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술이 대형 용기 안에서 발효되는 것은 볼 수 있었습니다. 통을 들여다보려면 계단을 통해서 2층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통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지요.

막걸리가 발효되고 있다.
 막걸리가 발효되고 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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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팀장은 닫힌 용기의 뚜껑을 열어서 내용물을 보여주었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려고 얼굴을 들이미니 훅 하면서 강한 알코올 냄새가 올라옵니다. 오래 맡고 있으면 발효되는 냄새만으로도 술에 취해서 해롱해롱할 것 같습니다. 통 안을 들여다보니 부글부글 끓고 있는 거품이 보입니다. 색은 아주 탁합니다. 이 거품,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쉬지 않고 꿈틀거립니다. 술이 숙성되는 중이라는데 이 과정을 이 팀장은 "제성"이라고 설명합니다.

발효가 완료되면 내용물에서 찌꺼기를 걸러낸 뒤, 물을 타서 알코올 도수를 맞춘 뒤 병에 넣는다고 합니다. 병에 넣는다고 막걸리 생산이 완료되는 것은 아닙니다. 갓 생산된 막걸리는 효모가 숙성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마시는 막걸리와 맛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막걸리를 이틀간의 숙성기간을 거쳐 다시 이틀간 냉장 보관해야만 비로소 생산이 완료되었다고 할 수 있답니다. 국순당에서는 막걸리를 냉장한 상태에서 유통하고 있습니다. 적정한 온도를 맞춰주지 않으면 효모가 활성화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통기한이 10일인 다른 생막걸리의 경우 뚜껑이 느슨해서 외부의 공기가 들어올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국순당의 생막걸리는 병이 외부 공기를 완전히 차단하게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이정훈 팀장은 설명합니다. 국순당 막걸리의 병 바닥이 다른 막걸리처럼 밋밋하지 않고 굴곡이 있는 것 또한 효모의 활동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병에 담긴 생막걸리.
 병에 담긴 생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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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현장에서 검병하는 직원이 생산이 완료된 막걸리의 병마개를 따고 내용물을 통에 붓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막걸리 주입과정에서 거품이 생기는데 일정 양보다 많이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거품이 너무 많이 생기면 효모가 활성화되어 내용물이 변질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생산과정에서 골라낸다는 것이지요.

현장 견학을 마친 뒤에 막걸리를 시음했습니다. 생막걸리와 이화주입니다. 이정훈 팀장은 국순당 생막걸리의 특징은 마셨을 때 느껴지는 청량감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탄산이 함유되어 처음 마셨을 때 톡 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을 청량감이라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생막걸리는 여러 번 마셔봤으므로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이화주를 마신(먹은)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생막걸리의 도수가 6도인 것에 비해 이화주는 14도라고 합니다.

현재 국순당에서는 생막걸리를 포함해서 7가지 종류의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살균 막걸리인 쌀막걸리와 맑은백세막걸리, 미몽, 이화주 등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것은 아무래도 생막걸리가 되겠지요. 맑은 막걸리와 미몽, 이화주 등은 고급 막걸리로 분류된다고 합니다. 생막걸리의 경우 수입쌀을 주원료로 사용하지만 이화주를 비롯한 고급 막걸리는 품질이 좋은 국산쌀을 사용한다는 것이 이 팀장의 설명입니다. 수입쌀이 생막걸리의 주원료가 되는 것은 가격 때문이라고 합니다. 서민들이 선호하는 막걸리는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장가격에 맞춰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순당 관계자는 수입쌀이라고 하더라도 양질의 미국산쌀이므로 품질이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국순당에서는 소비자의 호감도를 고려해 수입쌀의 비중을 낮춰나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 진출 긍정적으로 판단"

국순당에서 생산하는 막걸리
 국순당에서 생산하는 막걸리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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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순당 관계자는 현재 주류시장에서 막걸리가 차지하는 비율은 3%대인데, 앞으로 10%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막걸리의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지금의 막걸리 붐이 지속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막걸리 열풍에 힘입어서인지 대기업에서도 막걸리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는 입소문이 번지고 있습니다. 만일 대기업이 막걸리를 생산·판매하게 된다면 영세한 막걸리 술도가가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데 국순당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국순당 관계자는 대기업의 참여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막걸리는 가격경쟁으로 인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합니다. 낮은 판매가격으로 인해 일부 영세한 양조장에서는 맛과 품질이 떨어지는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합니다. 그 때문에 막걸리가 질 낮은 '싸구려 술'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국순당에서는 대기업에서 막걸리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면 막걸리의 품질이 향상되어 막걸리가 '싸구려 술'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남은 물론 저가의 가격경쟁에서 품질경쟁으로 전환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관계자는 대기업이 막걸리 시장에 진출하는 경우의 부작용에 대비해서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는 특색 있는 양질의 막걸리는 지원·육성해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대기업의 진출이 양질의 막걸리를 생산하는 지역 업체에 타격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 진출이 긍정적인 효과만을 불러올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품질과 관련한 문제는 곱씹어볼 만한 것 같습니다.


태그:#막걸리, #국순당, #이화주, #생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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