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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로 칭칭 감아 용틀임 하는 모양의 다리 난간
 밧줄로 칭칭 감아 용틀임 하는 모양의 다리 난간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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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믿어지지 않는 풍경이네, 폭포 꼭대기에 마을이 있다니."
"그렇죠! 그래서 6·25 한국전쟁 때도 이 마을 사람들은 전쟁이 난 줄도 몰랐답니다."
"설마, 춘천지역은 전쟁 때 격전이 심했던 곳인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겠어요?"
"사실 여부는 확인 할 수 없지만 이 동네에 그런 말이 전설처럼 전해오는 건 사실입니다."

지난 주말(20일) 찾은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문배마을에 들어서면서 일행들과 다른 등산객들이 나눈 이야기다. 경춘가도 강촌역에서 우회전하여 잠깐 올라가자 구곡폭포 입구가 나타났다.

"요즘 해빙기라 길도 썩 좋지 않은데 오늘은 느긋하게 좋은 길로 올라가도록 하지?"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길을 나서자 지난 달 다른 친구들과 다녀갔었다는 일행 한 사람이 앞장을 선다. 오른쪽으로 가면 구곡폭포 입구이고 왼편으로 오르는 길은 봉화산과 문배마을로 오르는 비포장 임도였다.

계절 변화처럼 느릿느릿 걸어 문배마을로 오르다

앞장선 친구는 왼편 길을 택했다. 자동차가 드나드는 임도는 길이 제법 넓었다. 그러나 넓은 길이라고 결코 편하지는 않았다. 구불구불 휘돌아 올라가는 길이 양지쪽은 진흙탕길, 응달은 빙판길이어서 그 어느 쪽도 걷기에 좋진 않았기 때문이다.

빙판길
 빙판길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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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조심조심 천천히 걸었다. 여행은 느림의 미학이라고 했던가. 어디 여행뿐이겠는가, 산길을 걷는 것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느릿느릿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는 맛도 나쁘지 않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주변을 둘러보며 걷노라면 정다운 모습들이 시나브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길가의 작은 바위며 나무 한그루, 바짝 마른 나뭇잎과 작은 열매들까지, 시선을 주고받으며 걷는 맛이 오롯하기 짝이 없다. 길가에 서있는 나무들의 모습도 다양하다. 응달의 나뭇가지들은 아직도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바짝 마른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양지쪽의 나무들은 달랐다. 가늘고 약해보이는 가지에 조금씩 초록빛이 돌고 있었다. 응달의 빙판과 달리 양지는 땅이 녹아 진흙탕을 이룬 것처럼, 지난 겨울 모진 추위와 눈보라를 견디며 인고의 시간을 이겨낸 나무들이 싹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흙탕길
 진흙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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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쉬었다 올라가지, 길이 만만치 않네."

일행 한 사람이 쉬어 가잔다. 마침 길가에 있는 벤치에 앉아 땀을 들이기로 했다. 간식으로 준비해간 고구마와 과일을 들며 잠깐 앉아 있자 온몸이 서늘해진다. 슬며시 불어와 품속으로 파고든 바람결이 차가웠다. 싸늘한 바람결에는 가버린 줄 알았던 겨울의 차가운 입김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좋은 길로 오르자고 이 길로 왔는데 이건 장난이 아니구먼, 빙판에 흙탕길,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모습이야. 그래도 저 길은 봄으로 가는 길이겠지?"

일행이 산굽이를 돌아가는 길을 가리키며 혼잣말처럼 하는 말이다. 느긋하게 노량 걸어 한 굽이를 돌아서자 왼편으로 봉화산 오르는 산길이 나타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산을 오르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목적지인 문배마을도 산위에 있긴 하지만 그래도 산 이름이 붙은 봉우리하고는 느낌이 다른 것이다.

해발 520미터 봉화산 정상에 오른 일행들과 함께
 해발 520미터 봉화산 정상에 오른 일행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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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을 오르는 길엔 빙판길이 더 많았다. 그래도 조심조심 걸어 해발 520m 정상에 오르니 시야가 툭 트인다. 맞은편 북한강 건너 등선봉이며 삼악산이 멀지 않아 보인다. 멀리 명지산도 어렴풋이 바라보인다. 작고 나지막한 표지석 뒤에 둘러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올랐던 길로 되돌아 내려와 문배마을로 향했다.

"어이쿠!" 털버덕!
그런데 뒤따라오던 일행이 아차!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방심한 때문이었다. 정말 넘어지기 쉬운 산길을 무사히 내려와 넓은 임도에서 안심하고 걷다가 넘어진 것이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호호호호~ 우헤헤헤헤~ 괜찮으세요."
마침 가까이 따라오던 여성 등산객 두 사람이 배꼽을 잡고 웃다가 미안했던지 가까이 다가와 괜찮으냐고 묻는다. 넘어졌던 친구는 기분이 상한 표정이었지만 곧 평상심을 회복하고 웃으며 괜찮다고 한다.

남이 넘어진 모습에 깔깔대다 넘어진 여성등산객

"웃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빙판에서 다른 사람이 넘어지는 걸 보면 왜 그렇게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호호호호~ 이렇게 웃으면 안 되는데. 또 웃음이 나오네요."

여성등산객은 여전히 웃음기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넉넉한 친구도 덩달아 웃는다. 어쩌겠는가? 같이 웃고 말아야지. 다행히 다치지 않았으니 함께 웃고 넘어갈 여유가 생겼을 테지만.

빙판길에서 넘어진 여성등산객과 부축해 일으키는 일행들
 빙판길에서 넘어진 여성등산객과 부축해 일으키는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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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
그런데 문제는 다음 순간에 일어났다. 우리들보다 조금 앞서 걷던 그녀들 중 한명이 꽈다당! 넘어진 것이다. 길 바깥쪽은 진흙탕이어서 얼어붙어 있는 안쪽 빙판길로 걷다가 넘어진 것이다. 바로 조금 전 우리 일행이 넘어졌을 때 배꼽을 잡고 웃어대던 바로 그 여성등산객이었다.

"어라! 많이 다쳤나보다, 일으켜 줘야겠는 걸."
일행 두 사람이 잰걸음으로 다가가 그 여성등산객을 부축해 일으켰다. 넘어졌던 여성은 몹시 아픈지 오만상을 찡그리며 신음한다.

"괜찮으세요? 어디 다치진 않았나요?"
조금 전에 넘어졌던 일행이 오히려 더 염려스러운 듯 묻는다.

"많이 아프긴 한데 어디 부러진 것 같지는 않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전에 너무 웃어서 죄받았나 봐요."
여성등산객은 몹시 미안한 듯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 여성등산객도 크게 다친 것 같지 않아 안심하고 문배마을로 향했다.

진흙탕이 된 문배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
 진흙탕이 된 문배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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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배마을로 들어가는 고갯길은 정말 진흙탕이 대단했다. 붉은 황토가 깊게 골을 이룬 고갯길은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등산객들의 발길을 끈적끈적 붙잡고 늘어졌다. 어렵게 고개를 넘자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은밀하게 자리 잡아 전쟁도 모르고 지나쳤다는 그곳

"히야! 이런 곳에 마을이 있었다니,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구먼."
"이런 곳에 마을이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그래서 이 마을은 6·25 한국전쟁 때도 전쟁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지나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놀라는 일행을 보고 앞서 걷던 다른 등산객이 일러준 말이다. 마을은 정말 놀라운 풍경이었다. 지형은 뭐랄까, 크고 높은 산 위에 푹 파인 화산구처럼 생긴 분지였다. 산을 올라올 때는 마을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곳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10여 채의 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옛날엔 농가였음직한 집들이 지금은 모두 음식점이 되어 있었다. 시간은 어느새 정오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특이한 이름을 가진 문배마을 음식점들
 특이한 이름을 가진 문배마을 음식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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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집을 지나쳐 적당한 음식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간판들이 매우 특이하다. 김가네, 신가네, 장씨네, 한씨네, 이씨네, 촌집, 통나무집, 도시의 식당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상호들이 아닌가. 몇 집을 돌아보다가 장씨네 집으로 들어갔다.

'문배 산나물집'이라는 또 다른 이름 때문이었다. 음식점 입구는 여느 농가처럼 허술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서자 방마다 손님들로 가득하다. 종업원에게 안내되어 들어간 곳은 임시막사처럼 만들어 놓은 제법 넓은 간이건축물 안이었다.

이곳에선 많은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나간 흔적으로 20~30개의 식탁에 미처 치우지 못한 지저분한 상차림이 그대로 있었다. 그 많은 식탁 중에 딱 한 개가 남아 있어서 우리들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문배 막걸리와 칡부침개, 그리고 산채비빔밥을 주문했다.

일행들이 칡부침개를 안주삼아 이 지역 특산주라는 문배 막걸리에 젖어들고 있을 때 산채비빔밥이 차려 나온다. 그런데 이게 웬일, 밥 산채와 함께 누렇고 커다란 양은 양푼이 함께 나왔기 때문이다.

양푼에 비벼먹는 산채비빔밥
 양푼에 비벼먹는 산채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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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선 모두의 밥을 이 양푼에 함께 비벼 먹어야 제 맛이 난다는구먼, 자 어때?"
전에 한 번 다녀간 친구가 모두의 밥을 양푼에 쏟고 산채나물들과 함께 비빈다. 점심 자리에는 이 마을을 찾아오다가 빙판에 넘어진 친구를 보며 웃음보를 터뜨리고 자신도 넘어져 쩔쩔맸던 여성등산객 두 사람도 진기한 인연(?)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산채비빔밥 점심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모두들 맛있게 점심을 먹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내려가기로 했다. 마을은 주변풍경과는 썩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었다. 깊은 산꼭대기에 숨어 있던 농촌마을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삿속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농가 그대로 있는 집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마을을 지나 구곡폭포로 나려가는 길목에 있는 '통나무 집' 비닐 벽에는 이 마을 유래가 어설픈 모습으로 붙어 있었다. 마을 어느 집에선가 들려오는 노래 소리가 요란하다.

"문배마을은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에 형성되었다. 문배마을의 유래는 이 지역 산간에 자생하는 돌배보다는 조금 크고 일반 배보다는 작은 문배나무가 많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마을의 모양이 짐을 가득 실은 배처럼 생겼대서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는 또 다른 유래도 있다는 것이다.

마침 근처에서 만난 마을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마을 주민들이 모두 토박이냐고 물어보자 아니라고 한다. 토박이는 50%뿐이고 나머지 50%는 서울 등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라며 자신도 외지인이라고 한다.

빙벽이 모두 녹아버린 구곡폭포
 빙벽이 모두 녹아버린 구곡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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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울에 살던 사람으로 이곳에서 음식점을 하기 위해 옮겨온 사람이라고 했다. 식당마다 사람들이 와글와글 한 것이 장사가 아주 잘 되는 것 같다고 하자 오늘은 주말이어서 그렇지 평일엔 파리만 날린다며 손사래를 친다.

마을에서 오르막길을 잠간 오르자 구곡폭포로 내려가는 가파른 길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곳은 모두 응달이어서 길이 온통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길옆에 밧줄이 있어서 미끄러지지 않고 내려갈 수 있었다.

녹아버린 폭포빙벽과 용틀임하는 골짜기 다리 난간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서자 오른편으로 '구곡폭포'로 가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주차장으로 곧장 내려갈 수도 있었지만 얼어붙은 빙벽모습이 장관인 폭포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본 구곡폭포는 빙벽이 모두 녹아버리고 작은 물줄기가 바람에 흩날리는 어설픈 모습이었다.

빙벽의 장관을 기대했다가 실망한 마음으로 골짜기 길로 나섰다. 골짜기 풍경도 겨울과 봄이 공존하고 있었다. 양지와 음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자연생태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골짜기를 걸어내려 오며 또 다시 아주 특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개울 위에 걸린 다리들, 그 다리들의 난간 모습이었다. 다리마다 난간들이 밧줄로 칭칭 감겨 있는 모습이 그랬다. 콘크리트 다리의 난간을 밧줄로 섬세하게 감아 놓은 모습은 매우 독특했다.

밧줄로 칭칭 동여맨 다리 난간 모습
 밧줄로 칭칭 동여맨 다리 난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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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모양이 다른 다리 난간들을 밧줄로 감아 놓아서 또 다른 형태의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이색적이었다. 어떤 다리는 밧줄로 감겨 있는 모습이 용틀임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역동적이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길목, 3월 중순에 찾은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에 있는 봉화산과 문배마을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두 계절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풍경과 산속 깊이 은둔하고 있던 아름다운 마을이 상업적으로 변화된 모습이 한편 안타까운 풍경이었다.


태그:#문배마을, #봉화산, #봄이 오는 길목, #이승철, #양지와 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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