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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사람들이 많다."

 

산사를 찾은 사람들이 많다. 더디 오는 봄을 탓하지 않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봄을 시샘하는 거친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의 정기를 흡인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활기 넘치는 모습이 아름답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깊게 들이마시는 공기에 힘이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빛난다.

 

완연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서는 봄을 즐기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오늘은 춘분이다. 낮의 길이와 밤의 길이가 똑같은 날이 춘분이다. 일 년 중 태양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날이기도 하다. 날짜 상으로는 분명 봄은 익어가고 있다. 그러나 날씨는 봄날이 아니다. 마냥 기다리고 있다가는 봄을 놓치고 만다. 봄이 저만큼 멀어져 있음에 후회할 것이다.

 

삼신산 쌍계사. 봄이 되면 벚꽃으로 이름이 나 있는 곳이다. 꽃이 만발하지는 않았어도 개화는 되었을 것이란 생각으로 출발하였다. 함께 따라 나서는 집사람은 꽃이 피기에는 아직은 이르다고 하였다. 쌍계사가 있는 남도에는 분명 봄기운이 넘쳐나서 꽃이 피었을 것이라고 우겼다. 고집을 잘 알고 있는 집사람은 더는 어쩌지 못하였다. 산사로 향하는 길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쌍계사는 조계종 제 13교구 본사로서 서기 723년에 만들어진 절이다. 천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가진 사찰이다. 신라 선덕왕 때 삼법 스님과 대비 스님이 눈 속에 칡꽃이 피어 있는 곳을 찾아서 세웠다고 한다. 눈 속에 칡꽃이 피어날 수 없지만 옛사람들의 믿음이니, 수용한다. 그만큼 경이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곳임을 강조하고 있다.

 

봄이 더디 오고 있어 아직은 꽃이 피지 않았지만 산사를 찾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어 좋았다. 기대하고 있던 꽃을 볼 수는 없었지만 봄의 기운을 듬뿍 받을 수 있어 좋았다. 일주문을 지나 금강문으로 들어서니 곧바로 천왕문이 반겨준다. 3개의 문이 나란히 서 있어서 산사를 찾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대웅보전 앞에는 진감선사 대공탑비가 서 있었다. 국보 제 47호로 지정되어 있는 비는 오랜 세월에 닳아져 있었다. 진감 국사는 쌍계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겨두고 있는 분이었다. 특히 선과 다 그리고 범패를 오늘까지 이어지게 한 스님으로서 산사와 함께 하고 있는 대 선승이시다. 비 앞에 서서 닳아진 비문을 읽을 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겼다.

 

쌍계사는 보물 제 500 호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이다. 전면 5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을 한 건물이다. 대웅전은 산사의 중심이 되는 구역으로서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부처님의 눈빛을 바라보면서 부처님의 가피를 얻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삼배를 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산사를 둘러보면서 오고 가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봄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마음도 그렇고 봄이 가는 것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마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오고 가는 것에서 벗어나 오는 봄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지혜로운 행동이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 봄에 집착하지 않고 봄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봄이 더디 오면 더디 오는 대로 수용하고 즐기는 여유가 필요하다. 오는 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봄기운을 누리는 일이 현명하다. 빨리 오면 오는 대로 인정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하고 더디 오면 그런대로 인정하고 누리면 되는 일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지금 이곳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 되는 일이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즐기는 여유에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다면 금상첨화다. 사람은 말로 인생의 집을 짓는다. 좀 더 고운 말을 사용하게 되면 아름다운 집을 짓는 결과다. 긍정의 말이 더 좋은 집을 지을 수 있고 평화의 말이 더욱 더 화려한 집을 만들어낸다. 오고 감에 집착하지 않고 늘 이곳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천년 고찰 쌍계사를 찾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거기에다 봄기운을 듬뿍 느낄 수 있어서 더욱 더 좋았다. 지금 이곳의 아름다움을 모두 다 간직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담아두었던 것을 비워버리는 지혜도 필요하다. 비우고 산사의 봄기운을 듬뿍 담았다. 벚꽃은 보지 못하였지만 즐거운 나들이였다.<春城>

덧붙이는 글 | 데일리언


태그:#쌍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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