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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맞췄습니다. 난생 처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시력은 줄곧 좋았으니까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상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멀티메일'이라 불리는 휴대전화의 문자 메시지는 거의 안 보이다시피 했습니다. 생활의 불편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노안'의 초기증상이라 했습니다. 자신들도 그런 증상을 보이더니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40대 중반에 노안이라니 조금은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노안이 꼭 나이 든 사람들한테만 오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린이한테서도 노안은 발견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시간이 지나면서 눈이 자주 침침해졌습니다. 특히 컴퓨터를 오랫동안 보고 있을 때는 더욱 그랬습니다. 가끔은 신문을 볼 때 눈앞이 침침해지면서 흐릿해지기도 했습니다. 시력이 나빠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창시절엔 늘 1.5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1.0 전후였던 시력이었으니까요.

 

안경점을 찾았습니다. 시력을 정확히 측정해 보고 필요하면 안경도 맞출 생각으로요. 시력검사 결과 '노안 초기' 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안경을 맞췄습니다. 사무용으로. 가까이 있는 작은 글씨는 크고 선명하게, 조금 떨어져 있는 건 평소처럼 보이게 하는 기능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바깥 생활은 지장이 없으니 책을 보거나 컴퓨터 작업을 할 때만 끼라는 것이었습니다.

 

전교 유일의 금테 안경,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안경을 맞추고 나오는데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1970년대 중반쯤이죠. 어느 날, 한 친구가 안경을 쓰고 학교에 나타났습니다. 눈언저리를 다 덮는 검정 뿔테 안경을…. 한두 달쯤 뒤엔 또 다른 한 친구가 안경을 썼습니다. 그 친구는 금테 안경을 썼던 걸로 기억합니다.

 

안경 쓴 친구들이 다른 친구들의 이목을 한 몸에 받은 건 당연했습니다. 저 또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 전교생을 통틀어 안경 쓴 아이는 그 둘 밖에 없었으니까요. 안경의 값이 얼마나 하는지도 몰랐지만 왠지 비싸게 보였습니다. 그 친구의 집은 부자인가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안경 쓴 친구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저에겐 더더욱 그랬습니다. 희소가치 때문인지 안경 쓴 친구가 누구보다 멋있게 보였으니까요. 실제 여학생들로부터 인기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안경을 잠시 벗고 쳐다보는 찡그린 인상마저도 멋있게 보였습니다. 게다가 그 친구들은 공부도 잘 했거든요.

 

그날 이후 저에겐 목표가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안경을 써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친구들이 안경을 쓰고 나오기 전까지 안경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안경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안경을 끼면 세상이 멋있게 보일 것 같았습니다. 그 친구들처럼 부러운 시선을 받고, 여학생들로부터 인기도 많이 얻을 것 같았습니다. 못하던 공부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집에 가서 안경을 끼고 싶다고 하면 사줄 리 만무했습니다. 우선은 없는 형편에 돈이 부담일 것이고 또 안경을 낄 이유도 없었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안경을 낄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한 끝에 얻은 결론은 그것이었습니다. '그래, 눈이 나빠져야 해. 책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그 때부터 저는 안경을 쓰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눈 나빠지기'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그 첫 번째는 책을 가까이 보는 것이었습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책을 가까이 보면 눈이 나빠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때까지 책과 담을 쌓고 살았던 저는 갑자기 '공부벌레'가 됐습니다. 교과서는 물론 글자가 쓰인 종이는 무조건 코앞에까지 가져다 대고 보기 시작했습니다.

 

몇날 며칠을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저의 눈은 나빠지지 않았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어두운 곳을 찾아다니며 책을 봤습니다. 불빛이 약한 방안 모서리는 최고였습니다. 방안에 불을 켜놓은 채 마루에 나와, 문턱을 넘어 새어나오는 불빛을 벗 삼아 책을 보기도 했습니다.

 

텔레비전도 화면에 바짝 다가가서 봤습니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텔레비전 가리지 말라"는 원성도 많이 샀습니다. 당시 저희 집엔 텔레비전이 없었거든요. 밤이면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 모여서,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같이 흑백텔레비전을 보던 때였습니다.

 

흙으로 눈 비비기... 그렇게 노력했건만

 

이런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의 눈은 나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책의 글씨가 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선생님이 써놓은 칠판의 글씨도 평소보다 더 잘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럴수록 저의 눈 나빠지기 작전은 도를 더해갔습니다. 안경을 쓰고자 하는 저의 욕망은 결코 꺾이지 않았거든요.

 

내리는 비를 두 눈 부릅뜨고 쳐다보기, 눈 뜨고 세수하기, 흙 묻은 손으로 눈 비비기, 밥이나 국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김 내려다보기, 눈에 좋다는 음식 안 먹기 등등. 아무튼 그때까지 알고 있었던 상식 가운데 눈에 좋지 않을 것 같은 일은 거의 다 해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물불 가리지 않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저의 눈은 신체검사 때마다 '정상'이었습니다. 그것도 좌 1.5, 우 1.5. 그땐 1.5라는 숫자가 너무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안경 쓰기를 단기 목표에서 중장기 목표로 바꾸고 흐지부지 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저의 시력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양쪽 모두 1.5였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참 지난 뒤 알았습니다. 안경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번거롭고 불편한 일이라는 것을. 장난 하다가 안경 때문에 다칠 수 있고, 또 안경 파편으로 인해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것도. 더욱이 돈도 많이 들어간다는 것을….

 

그토록 원하던 초등학교 때의 꿈을 이제 이루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때 노력한 결과가 이제 나타났는지 몰라도 결국 안경을 끼게 됐으니까요. 그러나 불편하고 돈 들어갈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 어쩔 수 없이 끼게 되는 안경이지만, 어릴 적 꿈을 드디어(?) 이뤘다고 위안을 삼아 봅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땐 그토록 안경을 끼고 싶었는지, 헛웃음만 나옵니다.

 


태그:#안경, #시력검사, #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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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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