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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떠한 꾸밈이나 장식도 하지 않은 채 가사만 덮은 법정스님의 법구.
 어떠한 꾸밈이나 장식도 하지 않은 채 가사만 덮은 법정스님의 법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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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바람으로 조상(弔喪)을 했나 봅니다. 조의금조차 받지 말라고 하시니 바람으로라도 불어 무소유로 살다 돌아가신 스님의 법구에 묻은 미진(微塵)까지도 털어내 무소유의 뜻을 오롯하게 기려는 듯, 돌풍이 불어 많이 걱정했었는데 다비장 가는 길의 아침은 맑고 포근합니다. 

'무소유'를 말씀하시고, 무소유를 실천하시던 법정 스님께서는 태우면 한 줌도 되지 않을 몸뚱이조차도 버거운 듯, 훌렁 벗어던지시더니 마지막 가시는 길에 참말 많은 것을 가진 부자로 가셨습니다.

당신께서 소유한 것은 아니지만 모아지는 티끌이 태산을 이루고, 떨어지는 빗방울이 대하를 이루듯이 생전에 실천하신 무소유가 유형무형의 예경과 무색무취의 찬탄이 되어 마지막 가시는 길에 알알이 영글어 터지고 있으니, 가장 아름답고 최고로 보배로운 것을 가장 많이 가진 부자가 되셨습니다.  

3월 13일 아침, 송광사 전경.
 3월 13일 아침, 송광사 전경.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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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다비 방식은 수덕사와 비슷하다.
 송광사 다비 방식은 수덕사와 비슷하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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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이 가시는 길을 추모하기 위해 송광사로 속속 모여드는 스님들.
 법정스님이 가시는 길을 추모하기 위해 송광사로 속속 모여드는 스님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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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을 잃어야 하는 노보살님의 애통한 마음, 애별이고를 기도로 승화시켜야 하는 불자들의 발걸음은 물론 스님과의 사별(死別)을 지극한 마음으로 애도하는 남녀노소의 마음이 전국방방곡곡에서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밀물처럼 밀려들고 있으니 돈이나 권력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엄청난 것을 가진 진정한 부자가 되신 겁니다.

여느 분들처럼 그럴싸한 수의 한 벌, 튼실한 관(棺) 하나, 화려한 꽃상여 조차 챙기지 않으셨지만 보는 이가 버겁게 느껴질 만큼 헤아릴 수 없고, 셈 할 수 없는 무한존경심과 무량의 사모하는 마음을 수두룩하게 챙기셨으니 무소유야말로 시공을 초월하는 소유,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티끌처럼 버리신 스님의 수행이력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귀한 것을 한없이 소유하게 하는 진정한 소유임을 보이셨습니다.

스님께서 실천하신 무소유는 스님을 직접 뵙거나, 법문을 들었거나, 책을 통해서 읽었거나, 입소문을 통해서 들었거나를 가리지 않고 스님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하는 마음과 그리워하는 마음, 가난한 현실을 배부르게 하는 부자의 마음으로 소유되었을 겁니다.

법정스님의 모습이 담긴 책갈피를 나누며 법정스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들.
 법정스님의 모습이 담긴 책갈피를 나누며 법정스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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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이운행렬을 기다리는 사람들.
 스님의 이운행렬을 기다리는 사람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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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전을 행해 가고 있는 스님들.
 문수전을 행해 가고 있는 스님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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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전이되고 사람들에게 소유된 스님의 무소유는 행복의 싹으로 돋아나고, 소욕지족의 꽃으로 피어나서 무소유의 열매로 탱글탱글하게 영글어 갈 것이니 스님께서 남기신 무소유는 도(진리)에 가까운 가장 아름다운 것을 소유케 하는 무한한 소유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몸뚱이조차도 훌훌 벗어놓고 적적열반의 길을 휘적휘적 걸어가고 계실 스님의 뒷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삼베 줄기를 엮어 숭숭 구멍이 난 바랑을 짊어지고 운수행각을 떠나 구름처럼 떠돌고 있는 수도승의 모습도 연상되고, 오욕칠정이나 인생팔고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높고도 무수했을 번뇌와 망상, 마(魔)의 유혹에 들지 않기 위해 육감을 쪼아내고, 부처님의 말씀을 숫돌삼아 마음을 갈고닦는 구도자의 모습도 연상됩니다. 

법정 스님의 다비가 치러지는 송광사로 가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보니 마음의 편지, 마음속의 편지가 되었습니다.

20대의 버스 행렬을 따라 도착한 송광사

아직은 어두운 13일 아침 5시, 송광사로 가는 길로 접어든 20대의 버스 행렬을 따라 송광사에 도착했습니다. 20대의 버스를 타고 온 880여명의 사람들은 서울 길상사에서 평소 법정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거나 수계를 받으며 연비까지 받았던 신도들로, 밤 12시에 출발해 그 시간에 들어서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룻밤을 모셨던 문수전에서 대중들을 향해 나가고 계시는 법정스님의 법구.
 하룻밤을 모셨던 문수전에서 대중들을 향해 나가고 계시는 법정스님의 법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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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법구가 대중 속으로.
 법정스님의 법구가 대중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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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구행렬
 운구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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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으니 "스님께서 이렇게 귀한 분인지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스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합니다.

북적댈 정도는 아니지만 한적하지도 않은 경내를 둘러보고 다비장을 찾았습니다. 스님의 법구를 다비할 다비장은 송광사로 들어서는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녹록치 않은 송광사 다비장 가는 길

빼곡한 측백나무 숲길을 걸어 올라가는 송광사 다비장 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지금껏 보았던 15개 사찰의 다비장 가는 길 보다 훨씬 가풀막진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려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먼 길입니다.

인산인해를 이룬 조문인파. 경찰 추정 약 2만 5천명이 운집했다고 합니다.
 인산인해를 이룬 조문인파. 경찰 추정 약 2만 5천명이 운집했다고 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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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송곳하난 꼽을 틈이 없는 엄청난 사람들
 정말 송곳하난 꼽을 틈이 없는 엄청난 사람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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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법구를 모시고 나머지 장작을 쌓는 광경
 스님의 법구를 모시고 나머지 장작을 쌓는 광경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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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의 다비 방식은 장흥 보림사에서 현광스님을 다비할 때 보아서 알지만 수덕사 다비방식과 유사했습니다. 땅을 파고 양쪽으로 돌을 쌓아 도랑 같은 공간을 만들고, 도랑처럼 생긴 공간에는 불쏘시개가 될 마른나무나 숯을 넣고, 돌로 쌓은 도랑가로로 나무다리를 놓듯 통나무를 나란히 놓고, 그 위에 법구를 모시고 장작을 쌓아 다비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다비장을 둘러보고 스님의 법구가 모셔진 송광사로 돌아와 보니 단체나 개인으로 찾아온 조문 인파로 경내가 북적입니다. 거반 오전 10시가 되니 하루 전에 길상사에서 모셔온 법정 스님의 법구가 있는 문수전으로 스님들이 모여듭니다.

108 범종소리를 시작으로 스님의 법구 이운

은은한 메아리처럼 108번을 울리는 범종 소리에 맞춰 마지막 가시는 스님의 길을 함께하려 찾아온 중생들 속으로 스님의 법구가 찾아 갑니다. 황토색 가사 자락만 나풀거릴 뿐 어떤 꾸밈도 어떤 장식도 없는 무소유의 모습으로 애도하는 대중들의 가슴을 쓰다듬듯이 대중들의 물결을 지나 다비장 가는 길로 걸어갑니다. 조계산이 휘청거리고, 계곡을 흐르는 물들이 울렁거릴 만큼 엄청난 인파를 뒤로하며 가풀막진 다비장 가는 길을 가는 세월처럼 걸어갑니다.

거화, 스님 불 들어갑니다.
 거화, 스님 불 들어갑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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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과 양옆으로 이미 쌓인 장작더미 사이로 스님의 법구를 모시고, 나머지 장작들을 쌓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아 둥그스름하게 쌓은 장작더미 형태의 연화대가 마련되었고, 그 연화대에는 흙탕물에 살면서도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오욕이 들끓고 칠정이 난무하는 혼탁한 세상에 살면서도 오롯이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신 법정 스님의 법구가 연실처럼 모셔졌습니다.

연화대가 마련되니 거화를 합니다. 준비된 솜방망이에 불이 붙고, 솜방망이의 불이 연화대로 옮겨 붙는 순간 사람들이 외칩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차마 "스님 불 들어갑니다" 하고 외치지 못해 울먹이는 노보살님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텀벙하고 떨어지는가 싶더니 주르르하고 흘러내립니다.

불붙은 연화대는 거칠 것 없는 불꽃으로 타오릅니다. 바라춤을 추듯 흔들리는 불꽃 너머로 법정 스님의 영정이 투영됩니다. 당신의 몸뚱이가 훨훨 타들어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도 적적열반에 들고 나서야 진정한 무소유를 이루었다는 표정입니다.

사람들이 떠나지 않는 다비장, 놀랄 만큼 두터운 법정스님의 그림자

다비장엘 가면 빠트리지 않고 거화 후 1시간쯤이 경과된 후에 다비장에 남아 있는 사람의 수를 어림해 봅니다. 그 시간쯤에 남아 있는 사람의 수를 그 스님께서 남기신 삶의 그림자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침 없이 타오르는 연화대
 거침 없이 타오르는 연화대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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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줄은 모르는 추모객들
 떠날 줄은 모르는 추모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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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대는 야트막해졌지만 아직도 사람들 수두룩
 연화대는 야트막해졌지만 아직도 사람들 수두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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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명성에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거화를 하고 한 시간 쯤 후에 확인해 보면 주변이 삭막할 정도로 몇 사람이 없는 경우도 있었으니 가라는 사람 없고, 기다리거나 오라는 사람 없는 다비장에서 그 시간 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이야 말로 심상(心喪)을 치르는 상주의 마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살펴본 법정 스님의 다비장은 정말 이상했습니다. 거화를 하고 1시간, "스님 불 들어갑니다"를 외치고 2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이 미동을 하지 않습니다. 숫자를 어림하기는커녕 자리를 이동하는 것조차 불편할 만큼 두텁고 진한 그림자, 심상을 치르는 상주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적지 않은 스님들의 다비장을 스케치 했던 입장에서 놀랐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거화를 하고 3시간이 지난 오후 2시가 되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리를 떠났지만  연화대 주변에는 사진을 찍기 위한 접근이 힘들 만큼 아직도 사람들이 빼곡합니다.

당신의 몸뚱어리를 태우고 있는 연화대를 바라보고 있는 법정스님의 영정
 당신의 몸뚱어리를 태우고 있는 연화대를 바라보고 있는 법정스님의 영정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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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낮아진 연화대
 많이 낮아진 연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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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들어가고 있는 스님의 법구를 향해 합장예를 올리고 있는 제자 스님들
 타들어가고 있는 스님의 법구를 향해 합장예를 올리고 있는 제자 스님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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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사람들의 발걸음, 엄청난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듯 소유하실 수 있는 분이기에 타들어 가는 당신의 몸뚱이를 보고 있는 스님의 영정에서 평온함이 느껴졌을 지도 모릅니다.

사리대신 보이신 백옥 같은 유골

불꽃 훨훨 피워내더니 수북하였던 연화대가 야트막하게 되었습니다. 불꽃을 내고 있는 등걸나무, 타고 있는 숯덩이 사이로 스님의 유골이 백옥처럼 하얗게 드러납니다. 뼈 속까지 하얗게, 한 점 부끄럼 없이 무소유를 실천하며 무소유를 말씀하였다는 것을 삼천대계의 정령들이 입증하려는 듯이 뽀얀 유골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무소유의 사리를 처처심심에 뿌려놓고 사리를 찾지 말라고 하셨지만 이렇듯 백옥 같은 유골로 무소유를 다시 한 번 말씀하시니 감복하고 감탄할 뿐입니다. 유골이 드러나니 덧불을 때듯 생나무 등걸과 장작을 던져 넣습니다. 탁탁 소리 내며 타들어가는 생나무 등걸은 덧불에 대한 불편함처럼 느껴집니다.

연화대에서 백옥 같이 드러난 스님의 뽀얀 유골
 연화대에서 백옥 같이 드러난 스님의 뽀얀 유골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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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대 옆에 놓여있는 종이연꽃
 연화대 옆에 놓여있는 종이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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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대가 야트막해진 시간에도 남아 있는 사람의 숫자가 적지 않으니 비탈진 산길을 내려 걷는 발걸음에 저절로 예경의 두 손이 모아집니다. 이승에서 맺은 인연 저승 갈 때 짐 된다고 하였으니 혹시라로 있을지 모른 법정스님과의 이런 인연 저런 인연 모두 거두며 일상 속으로 돌아갑니다.

사는 일이 힘들고, 가는 세월이 버거우면 법정스님께서 무형으로 남겨주신 무소유의 사리를 마음으로나마 108염주 돌리듯 돌리고 또 돌리겠습니다.


태그:#법정스님, #성인 경지가 이런것입까 ?, #다비식, #송광사, #무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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