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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0년 5월 18일, 대한민국의 군대는 '충정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작전을 수행했던 곳은 대한민국 광주, 작전의 내용은 바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었던 자국의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것이었다.

 

강압적인 국가 권력에 의해 무수한 희생자들(2003년까지 집계된 광주민주유공자 현황에 의하면 당시 광주의 희생자는 사망자 179명, 부상자 1,795명, 기타희생 582명이었다)이 발생했지만, '폭도'로 내몰린 그들은 우리들의 기억에서 한동안 지워져 망각이라는 또 다른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그들의 죽음은 1980년보다 더욱 뜨거웠던 87년 6월 항쟁을 맞이한 이후 역사의 수면 위로 다시 부활할 수 있었다. 1988년 노태우 정부 출범 이후 민주화합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5·18을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규정하였고,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도 제정되면서, 5·18의 '폭도'들은 '민주시민'으로 되살아날 수 있었다.
 

5·18을 바라보는 현 정부의 퇴행적 인식

 

5·18이 어렵게 부여받은 한국현대사에서의 시민권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위협 받게 되었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 당시 외쳤던 '잃어버린 10년'에서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일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치적과는 무조건 반대되는 행보를 걷게 되는데, 민주화운동을 기념, 기억하는 일도 그 중 하나였다.

 

이명박 정부의 이러한 인식은 예산배정에서도 노골적으로 표출되어, 출범 첫해부터 민주화운동 관련 예산은 큰 폭으로 삭감되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5·18 기념재단의 예산이 전년대비 30% 삭감되었으며, 2009년에 있었던 국회 예결위에서는 5·18 30주년 기념행사 예산으로 신청한 169억원 중 161억이 삭감되고 8억원만을 기획재정부로 넘겼다(참고로 5·18 20주년이었던 2000년의 경우 20억원이 배정되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출범 후 비대해진 국가기관을 효율적으로 운영한다는 명목을 내걸면서 공무원의 급여 동결과 절약을 통한 예산 절감을 통해 전 분야에 걸쳐 일괄적으로 10~20% 정도의 예산 삭감을 단행하였다. 하지만 이런 예산 삭감도 민주화운동기념 사업관련 단체의 예산 삭감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더구나 2009년 이명박 정부와 성격을 같이하는 한국자유총연맹, 새마을운동중앙회,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등 보수 3단체에 대해서 1999년 이후 10년 만에 50억 4000만 원이라는 돈이 지원된 것을 생각한다면 현 정부의 이념적 편향성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권위주의적인 태도

 

이명박 정부의 이념적 편향성 외에 권위주의적 태도 역시 5·18이 부여받은 시민권을 위협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8년 한미쇠고기협상문제로 시민들이 각지의 광장으로 모여들었던 것을 들 수 있다. 광장으로 모여든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면서 시위 자체를 즐기는 성숙된 민주주의를 보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들에 대해서 강경하게 대처하여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6월 10일 새벽에 쌓여졌던 '명박산성'은 시민들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 날은 6월항쟁 21주년을 맞아 100만 촛불 대행진이 계획된 날이었는데, 성숙된 시민들의 민주의식에 미치지 못한 경찰은 청와대로 통하는 모든 길을 약 60여개의 컨테이너박스로 철저하게 봉쇄하였다.

 

특히 광화문에는 컨테이너박스가 2단으로 쌓여져 네티즌들로부터 '명박산성'이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시민들의 성숙된 민주주의와 대비되는 모습으로 분노와 실소를 자아냈다. 시민들이 광장으로 촛불을 들고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정부가 진지한 협상에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정부는 시민들과의 대화를 '명박산성'으로 대표되는 컨테이너박스들을 통해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8년 시민들의 강렬한 저항을 경험한 이명박 정부로서는 4·19 50주년, 5·18 30주년을 맞이하는 2010년의 관련 행사들을 정부가 나서서 기념하고 기억하는 일들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한국의 민주화운동 중 시민들의 저항이 가장 강렬했던 5·18을 기념하는 일에는 더욱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관련예산을 삭감해서, 5·18을 광주지역만의 행사로 축소하려 하고 있다.

 

그동안 5·18은 학계의 꾸준한 연구 및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정당한 자신의 지위를 찾아왔고, 2007년에는 5·18을 소재로한 영화 <화려한 휴가>의 성공과 더불어 대중적인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이명박 정부의 정책적인 무관심과 5·18을 기억할 수 있는 매개체의 부족으로 인해, 5·18은 광주지역에서만 외롭게 기억될 위기에 처해있다.

 

지금까지 5·18은 정부의 관심과 정책적 지원에 따라 수동적으로 기억되어온 측면이 강했다. 정책적 지원이 사라진 빈자리에서 30주년을 맞이하는 2010년 5·18에 대한 기억은 정부에 의해 수동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30년 전 광주시민들이 보여준 적극적인 시민의식과 같이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태그:#5.18, #민주화운동, #기억되기, #기억만들기, #5.18 3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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