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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 뒤라 복수초를 찍으려고 무등산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이었다. 문빈정사 앞에서 현수막을 달려고 하기에 무엇인가 궁금해서 펼치고 들여다보았다. 법정 스님 입적 소식과 열반 기원문이었다. 기어이 가셨구나 싶어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고운 자태를 보여주어 고마웠다
▲ 눈속에 피어난 복수초 고운 자태를 보여주어 고마웠다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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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5시 45분에 입적하셨다니까, 소식 듣자마자 준비해두었다가 바로 달고 있었던 모양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 그지없이 아까운 사람을 우리는 잃었다. 스님은 늘 보아도 건강해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병이라는 것이, 나이라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앗아가는 것임을 새삼스럽게 되새기며 먼 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내려왔다.

법정스님과의 인연은 대학 2학년 때였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도시로 대학을 왔는데 갈 곳이 없어 시간이 나면 늘 도서관에서 살았다. 사람 사귀는 것도 서투른 나는 도서관에 있으면 집에 대한 그리움도 외로움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그날 도서관에서 신문을 보다가 법정 스님의 첫 책인 <영혼의 모음(母音)>이란 책이 나왔다는 단신을 보고나서부터였다. 도서관장이신 교수님께 이 책을 구입했으면 좋겠다고 추천하고 나왔다.

그리고 며칠 후 도서관 입구에 있는 신간안내판에 영혼의 모음 표지가 붙어있었다. 표지가 참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사서에게 물어서 그 책을 찾았다. 작고 앙증맞게 편집되었다. 다 읽고 나서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해주시는 은사님께 이 책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은사님께서는 잊지 않고 계시다가 그 책을 졸업선물로 사주셨다. 그땐 책 한 권  사기도 어려운 학생이었으니 그 책을 받아들고 마치 부자가 된 것처럼 하루 종일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은사님께서는 읽으시면서 마음에 다가오는 부분은 빨간 줄도 그어놓았고 군데군데 한자로 써넣으시기도 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은사님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은사님의 글씨만 보아도 좋았다. 그렇게 좋아했던 은사님께서 결혼하실 때는 마치 영원히 잃어버린 것처럼 슬펐다.

은사님께서 주신 책을 나는 늘 곁에 두고 얼마나 자주 읽었는지 내 분신 같았다. 은사님께서 주신 <영혼의 모음>은 오래오래 간직하면서 정말 아끼는 여러 사람들에게 수없이 사주곤 했다. 뒤에 나온 <서있는 사람들>도 선물용으로 많이 나갔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나처럼 그 책들을 좋아했을지는 모르겠다.

결혼하고서도 10여 년 동안 간직하면서 자주 뵐 수 없는 은사님 뵙듯이 했었다. 그런데 스님을 좋아하는 시누이가 그 책을 빌려간다기에 빌려주었다가 영영 잃어버렸다. 그 해는 비가 유난히 많이 내려서 홍수가 나는 바람에 저지대에 살고 있던 시누이 집이 물 속에 잠겨버렸던 것이다. 그때 내 소중한 <영혼의 모음>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시누이의 처지보다 먼저 그 책 잃어버린 것이 아깝고 원망스러웠다.

그 책에는 은사님의 고운 필체가 남아있었고 다시는 그런 표지의 책은 나오지 않아 구할 수도 없었던 때문이었다. 이후 출간된 스님의 책들은 최근까지 계속 구입해서 읽고 있지만 그 <영혼의 모음>처럼 내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한다. 아마도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만난 첫마음자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소유>를 먼저 떠올리지만 나는 무소유보다 먼저 <영혼의 모음>을 떠올린다.

스님의 글에서는 맑은 바람소리가 난다. 그래서 읽고 있으면 마치 내가 스님 계시는 그곳에 있는 것처럼 정갈하게 느껴진다. 이제 거꾸로 책을 읽어가야겠다. 마지막 저서인 <아름다운 마무리>부터 첫 저서인 <영혼의 모음>까지.

시인 백석을 사랑했던 여인, 김영한이 법정 스님에게 조건 없이 기부한 1000억대의 토지로
만든 사찰인 길상사에서 스님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보냈다. 법정 스님에게 조건 없이 1000억을 기부한 김영한을 보면서 그토록 큰 불심을 자아내게 만든 스님의 큰 그릇을 다시 보았었다.

기부한 1000억 원이 아깝지 않느냐는 기자의 말에 1000억이란 백석의 시 한 구절보다도 못하다고 말한 그녀는 길상사 마당에 한 줌 재로 뿌려졌다. 고귀한 사랑을 지녔던 김영한의 넋이 깃든 곳, 길상사. 그곳에서 스님은 마지막 호흡을 멈추었고 이제 송광사에서 한 줌 재로 남으실 법정 스님.

이 꽃은 곁에 앉아서 꽃망울이 열리는 신비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 복수초 이 꽃은 곁에 앉아서 꽃망울이 열리는 신비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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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자태
▲ 복수초 고운 자태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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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식에 가서 스님께 마지막 인사드리고 싶은데 아무래도 무리가 되어 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어제 눈속에서 만난 고운 복수초를 스님께 삼가 올리며 대신 집에서 스님의 맑은 글을 읽으면서 기도하고 싶다.

스님!
스님과 함께 동시대인으로 호흡하며 살아갈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부디 극락왕생하소서 아멘!


태그:#법정 스님, #영혼의 모음, #복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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