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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고 난 10일, 여주 5일장을 찾았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걱정이 되는 분들은, 난전을 펼치고 있는 어르신들이다. 눈을 대충 치운 장거리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몇 가지 안 되는 물건을 펴놓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보인다.

 

하늘이 하시는 일인데

 

"할머니 추운데 나오셨네요, 춥지 않으세요?"

"좀 춥네."

"이나저나 왜 5일 장날마다 이렇게 눈이 오거나 비가 오네요."

"그러게, 올해는 계속 그러네."

"많이 파셨어요?"

"아직 개시도 못했어. 이나저나 하늘이 맘이 상하셨나."

 

좌판에 벌려놓고 있는 물건을 보니 몇 가지되지도 않는다. 깻잎과 새로 뜯은 냉이, 그리고 동치미무와 짠지무가 전부다. 이것을 들고 장마다 나오시는 할머니께 함자를 여쭤보기도 죄스럽다.  

 

"냉이는 어디서 캐셨어요?"

"집 근처에서 캤지"

"집이 어디신데요?"

"내양리"

 

 

여주 장날만 나오신다는 할머니

 

몇 가지 되지도 않는 물건을 벌여놓고 계신 할머니는, 장 한쪽 끄트머리 사람들의 왕래도 드문 곳에 자릴 펴고 계시다. 그렇게 하루 종일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어도, 이쪽은 왕래가 드문 곳이니 팔릴 것 같지도 않다.

 

"여기서 많이 파실 수 있겠어요?"

"아는 사람들은 오지. 이 짠지무는 식당을 하시는 분이 4만원 어치나 사셨어. 맛이 있다고. 사가서 양념해 놓으면 정말 맛있어"

"오늘은 좀 파셨어요?"

"이것 좀 사가, 남자가 개시하면 잘 팔려"

"그 깻잎 오천 원 어치만 주세요."

 

깻잎을 담고 계시는 할머니는 여주 장날만 나온다고 하신다. 이만한 물건을 갖고 어떻게 이 장 저 장을 다니겠느냐는 할머니는, 이렇게 작은 물건이나마 파는 것도 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고 하신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장날마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것도 다 하늘이 하는 일이요, 많은 사람들을 보내고 안 보내는 것도, 다 하늘이 정해 놓은 일이라는  것이다.

 

할머니의 하늘은 왜 마음이 상하셨을까?

 

그런 할머니의 하늘은, 오늘이 장날인데도 눈이 오고 날이 춥게 만들었다. 연세가 드신 분이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계시면서도, 날씨 탓을 하지 않으신다. 할머니의 하늘은 과연 무엇일까?

 

"깻잎 많이 담지 마세요."

"먹을 만큼은 주어야지. 개시를 잘 주면 하루 종일 손님이 많아."

"많이 파세요. 추운데 불이라도 좀 지피시지 않고."

 

할머니는 모든 것이 다 하늘이 알아서 하신다고 말씀을 하신다. 인간이 마음대로 일을 저지르면 결국 그것은 인간에게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눈이 많이 오는 것도, 비가 많이 오는 것도 다 인간들 스스로가 하늘의 뜻을 거역했기 때문이라는 것. 과연 할머니의 하늘은 어떤 것일까? 장을 돌면서 내내 생각을 해보아도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할머니의 하늘은 듬뿍 물건을 더해 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태그:#여주장, #5일장, #할머니, #마음,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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