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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권태롭고 허망한 마음에 시장을 찾으면, 그 안에 흐르는 활기와 온기에 감전돼 불쑥 눈물이 나곤 한다. 가식이 넘치는 사람들 틈에서 역겨움이 일 때도 오로지 삶을 잇기 위한 신성한 몸부림과 마주하면 채증이 가라앉고 겸허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시장은 대다수 평균 또는 그 이하(경제력) 사람들이 주머닛돈에 맞춘 의식주 해결을 목적으로 찾기 때문에 내숭없는 솔직한 거래의 장이 된다. 이 과정이 각각의 삶 만큼이나 다채로워 재미가 있고 때로 가슴 뭉클한 감동도 준다. 그래서 가장 진솔한 사람살이를 보려면 시장에 가라는 듯싶다.

 도부츠엔마에역 입구부터 시작되는 신카이수지 시장.
 도부츠엔마에역 입구부터 시작되는 신카이수지 시장.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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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가 있는 신이마미아역 근처에는 두 개의 재래시장이 있다. 숙소 앞 대로를 경계로 북쪽에는 신세카이 마켓이, 아래로는 신카이수지 주오 쇼땡가이(신카이수지 중심 쇼핑가, 이하 신카이수지 시장)가 있다.

한국에서 출발 전 이곳에 시장이 있다는 걸 알고 미리부터 마음이 끌렸다. 서울에서의 자취생활 때도 지척에 시장이 있어 하루에도 두세 번씩 구경을 가곤 했는데 아침, 점심, 저녁의 풍경이 다르고 적적함을 달래거나 기분전환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먼저 들른 곳은 신카이수지 시장. 여장을 푼 다음날 아침 일찌감치 주변 분위기도 살피고 먹을거리도 사자 싶어 길을 나섰다. 비가 내렸지만 천장이 있어 우산도 필요없었다.

 저렴한 가격의 기모노 가게.
 저렴한 가격의 기모노 가게.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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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와보는데도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 서울의 영등포시장과 흡사하고 다만 몇 가지 품목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골목 초입에서 만난 기모노 가게. TV나 영화에서 봤던 고급 기모노와는 확연히 차이가 났는데, 볼 때마다 손님이 없어 누구를 고객층으로 하는 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네와 다를 바 없는 이발소 풍경
 우리네와 다를 바 없는 이발소 풍경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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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이발소 내부모습. 이른 시간인데 노인 한 명이 머리 손질을 받고 있다. 아마도 이날, 사윗감 될 딸의 남자친구를 선보거나, 부부가 모처럼 나들이를 나가거나, 배꼽친구들과 멀리 관광이라도 떠나시는걸까. 이발사의 정성어린 가위질과 거울로 그 모습을 진지하게 보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며 마음대로 상상해봤다.

 당장 따끈한 쌀밥 한 그릇 생각나게 하는 절임 음식들
 당장 따끈한 쌀밥 한 그릇 생각나게 하는 절임 음식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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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고온다습하고 겨울엔 혹한이 찾아드는 섬나라 특유의 기후 때문에 일본에서 발달한 절인 음식들. 당장 따끈한 밥 한 그릇 떠서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침만 꼴깍 삼키고 자리를 옮겼다.

 한국음식 가게
 한국음식 가게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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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관광객이 워낙 많은 곳이라 그런지 다양한 한식에 막걸리까지. 그러나 주인은 일본인이다. 집 떠나온 지 겨우 이틀째라 별 감흥이 없었지만 나중에라도 얼큰한 김치찌개가 생각나면 가봐야겠다.

 미디어센터.
 미디어센터.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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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골목 중간쯤에 자리한 미디어 센터. '와보아! 미디어 센터'라는 한글이 눈에 띄어 바깥에서 서성거리니 젊은 여성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여러날에 걸쳐 본 바로는 주로 현지 일용직 근로자들을 위한 정보 제공처가 되는 듯하다. 바로 맞은편에 인포샵(information shop)겸 카페를 겸한 'COCOROOM'이란 곳이 있는데 대략 서너 시 이후에 가면 차나 맥주를 마시면서 다른 여행자나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주류 도매상가.
 주류 도매상가.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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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돈 없고 술 좋아하는 여행자들이 반길 만한 주류 도매상가. 각종 일본주에 와인과 한국 진로까지 다양한 주류들을 대형 할인마켓보다 더 저렴하게 팔고 있다. 

 과일가게
 과일가게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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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과일가게. 이웃한 대형마트의 물량 공세와 파격 세일가에도 아랑곳 않고 꿋꿋이 장사를 하고 있어 뭐라도 꼭 사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저녁 숙소에서 먹을 토마토 한 바구니 구입.  
                                            
 대형 슈퍼마켓 'TAMADE'
 대형 슈퍼마켓 'TAMADE'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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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SSM(슈퍼슈퍼마켓), 'TAMADE'.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재래시장 한 가운데 들어서서 주변 상권을 휘청이게 하고 있다. 그러나 주머니가 헐거운 여행자가 저렴하면서도 푸짐한 음식들을 구매하기에 더할 나위 없어 얄밉지만 어쩔 수 없이 자주 가게 됐다.

단점이라면 노숙자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근처에 모여 음주와 담소를 즐긴다는 것. 그렇다고 해코지를 하거나 하진 않는다.

 TAMADE에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각종 도시락과 사시미(회)
 TAMADE에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각종 도시락과 사시미(회)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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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도시락 천국'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는 현장. TAMADE에서 파는 수십 가지 종류의 도시락과 사시미 때문에 갈 때마다 뭘 먹을까 고민에 휩싸였다. 식사로도 술 안주로도 좋다.

 단골이 된 야키소바 가게
 단골이 된 야키소바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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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수지 시장에 가면 이 청년의 가게를 꼭 방문하시길!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매시간 따끈하게 먹을 수 있는 야키소바를 볶고 있는데, 맛은 물론 손님을 맞는 까까머리 청년의 웃음이 언제 봐도 기분좋은 곳. 서너 번 들러 음식을 사먹으면서 어느새 오가며 눈인사를 하는 사이가 됐다.

 신세카이 마켓 입구 모습
 신세카이 마켓 입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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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신세카이 마켓이다. 이곳은 머문 지 닷새쯤 돼서야 가게 됐다. 이유는, 앞서 말한 신카이수지 시장과 경계를 이루는 대로변으로부터 넓게 펼쳐진 일명 '먹자골목'에 가려 관광객은 물론 현지 사람들의 발길도 뜸한 곳이기 때문이다. 본인도 자전거를 타고 산책하던 중에 우연히 들어서 알게 됐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대부분 노인. 그러나 오래 이웃한 상점 주인들간의 정겨운 분위기와 어머니 손길 같은 따뜻함이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생선가게 할아버지
 카리스마 넘치는 생선가게 할아버지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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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 넘치는 생선가게 할아버지. 입에 문 것이 금연담배인지 연기는 나지 않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생선을 다듬고 있는 와중에 감히 말을 걸 수가 없어 옆에 있는 할머니께 대신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시장 초입에 위치한 다코야키 가게
 시장 초입에 위치한 다코야키 가게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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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코야키를 굽는 아저씨 옆에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아주머니의 표정이 재미있다. 부부인 것 같기도 하고, 아저씨의 냉담한 표정에 아닌 것 같기도 하고(그래서 더 부부인 건가?).

 장사 준비에 한창인 시장 사람들
 장사 준비에 한창인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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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인 듯 보이는 할머니와 중년 남자가 장사 준비에 한창인 가운데, 양복을 입은 거구의 외국인이 옆을 쳐다보며 걷고 있다. 차림새가 여행자는 아니고, 이곳에는 무슨 일일까?

 사진기를 보며 활짝 웃어주신 빵집가게 아주머니
 사진기를 보며 활짝 웃어주신 빵집가게 아주머니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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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이제 막 문을 열고 진열대에 빵을 정리하던 아주머니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어줬다. 가게빵은 안쪽 주방에서 직접 만드는 듯. 빵이 먹고 싶으면 주변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대신 이곳을 찾으면 좋겠다.

 달콤해보이는 다양한 떡과 빵류
 달콤해보이는 다양한 떡과 빵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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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장에서 최고령일 듯한 할머니가 운영하는 가게.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 여쭸더니 손사래를 쳐서 맛있어 뵈는 음식들만 '찰칵'. 어릴 적 해변가나 시장에서 먹었던 듯한, 잎사귀에 쌓인 분홍색 떡이 가장 맛있을 것 같다.

 신발가게
 신발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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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있게 오스카 스타일로! 원한다면 산책용으로 하나 구입해도 좋을 듯하다.

 
 꽃가게
 꽃가게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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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꽃향기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곳. 꽃을 보면 항상 어머니가 생각난다. 지금쯤 '혼자서 잘 있을까' 걱정하고 있을 어머니를 위해 마음의 카네이션 한 다발, 텔레파시 퀵배송!

아마도 멀지 않은 때에 이 두 시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대형 슈퍼마켓이나 편의점과 비교해서 가격이나 제품의 다양성 어느 하나 경쟁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세상엔 분명 오래돼서 좋고, 그저 있어서 좋은 것도 있다. 훈훈한 사람냄새 가득한 이곳이 앞으로도 상존하길 바라며, 가능한 한 다시 전성기를 누리는 날이 왔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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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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