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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향의 집터. 집 터로 들어오는 비포장 길이 맹지라서 건축허가가 나질 않아 토지사용승낙서가 필요했다.
 남동향의 집터. 집 터로 들어오는 비포장 길이 맹지라서 건축허가가 나질 않아 토지사용승낙서가 필요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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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가깝게 지내던 건축사가 고개를 내 저었습니다.

"그 땅에다가 집짓기는 어렵겠는데요. 자세한 것은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지적도상으로 보면 도로가 없는 맹지로 돼 있네요."
"비포장 길이 터에 맞닿아 있는디도 맹지유?"
"길이 있다 해도 지적도상에 도로로 돼 있지 않으면 건축허가가 나질 않습니다."

3년 가까이 헤맨 끝에 고흥군 포두면 바다가 펼쳐져 있는 마복산 자락 아래 마을에 맘에 쏙 드는 새 터를 찾았는데 그곳이 하필이면 '맹지'(도로가 아닌 타 지번의 토지로 둘러 싸여 있는 토지)라는 것입니다. 주변 경치는 말할 것도 없고 좋은 터의 첫 번째 조건인 물이 풍부해 가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넉넉한 둠벙을 갖추고 거기에 농업용 전기까지 설치되어 있는 곳을 겨우 찾았는데 건축허가가 나질 않는 맹지라니 이게 뭔 날벼락인가 싶었습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일단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 상세한 것을 확인해 보세요. 지방마다 건축허가에 따른 조례 사항이 조금씩은 다르니까 어떤 방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 만한 땅이다 싶은 데를 만나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고 또 전기가 들어오면 물이 나질 않았습니다. 내가 맘에 들면 아내가 원치 않았고 아내가 맘에 드는 땅은 내가 원치 않았습니다. 이것저것 구색을 갖춰 아내와 내가 원하는 땅이 있다 싶으면 땅값이 감당할 수 없을 만치 비싼 곳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감당할 만큼의 싼 땅을 그것도 아내와 동시에 맘에 쏙 드는 땅을 찾아 한 시름 놓았다 싶었는데 한숨이 곱으로 나왔습니다.

가깝게 지내던 건축사 말대로 무작정 면사무소를 찾아갔습니다. 담당 직원에게 우리 식구가 평생 살고지고 할 터의 지번을 알려줬더니 친절하게 커피까지 권하며 이런저런 관계 서류를 뒤적거리더니 묻지도 않은 상세한 귀농 혜택 정보까지 곁들여 희망의 불씨를 지펴 주었습니다.

"우리 면으로 이사 오신다니 고맙지요. 그 터에 물려 있는 비포장 농로 길이 임야로 돼 있는디, 그 주인에게 토지사용 승낙서를 받아오면 가능하겠는데요."

"고흥이 아름다운 것은 당신이 아름답기 때문"

고흥에서 살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인심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명당자리라 할지라도 그 자리에 눌러 사는 사람이 고약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고흥 초입에 들어서다보면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고흥이 아름다운 것은 당신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랬습니다. 고흥이 아름답게 다가온 것은 바다를 끼고 있는 절경도 절경이지만 사람들의 후덕한 인심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고흥사람들이 타지 사람을 경계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전혀 달랐습니다. 고흥 땅을 헤매고 다니면서 열에 일곱, 아주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길을 묻는 낯선 이방인에게 웃는 얼굴로 아주 상세하게 알려 주었고 어떤 이는 아예 길잡이까지 자청하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포두면에 있는 한 낚시점에서 바다낚시를 위해 갯지렁이를 사려는데 지금은 겨울철이라 갯지렁이를 살 필요가 없다며 상세한 낚시 정보까지 알려 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포두면사무소 직원들은 더할 나위 없이 친절했습니다. 이전에 살던 곳에서는 어쩌다 면사무소에 볼일을 보러 가게 되면 최대한 공손한 자세로 공무원들을 대 할 것을 다짐해 가며 '공무원들이 불친절하더라도 참고 또 참아야 하느니라'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야 했습니다.

마을 앞 해수욕장에서 만나 터를 소개해 줬던 서군섭씨는 두 팔 걷어붙이고 토지 승낙서를 받아 주는데 도움을 주겠다며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러 갈 것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아, 우리 마을로 이사 온다는 디 당연히 협조해야지. 거기다가 중학생이 둘이나 늘어나는디, 걱정 마소. 다 잘 될 테니께."

땅 주인 역시 토지 승낙서를 받아 줄 테니 아무 걱정 말고 계약서를 쓰자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귀동냥으로 들은 법적인 문제를 들춰가며 그를 쉽게 믿지 못했습니다.

"투기 목적으로 땅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집 짓고 살 터를 구하는 거라 건축허가가 나질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땅이라서 말유, 집을 지으려면 먼저 토지 승낙서부터 받아 놔야 한다는디요."
"뭐시 그리 사람을 못 믿소. 그 땅이 우리 형님 땅이라 안하요. 걱정마소. 계약하고 나서도 늦지 않아요."
"그래두 그게..."
"아따 속고만 살었소?"
"거참, 속고 안 속고가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기분이 팍 상해 큰소리를 쳤지만 속으로 뜨끔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세상이라 한탄하곤 했던 작자가 바로 나였는데 그깟 인감도장이 찍힌 토지 승낙서라는 종이 한 장을 받아 내기 위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

사진 속의 아담한 해수욕장에서 우연히 서군섭씨를 만나 터를 구할수 있었다.
 사진 속의 아담한 해수욕장에서 우연히 서군섭씨를 만나 터를 구할수 있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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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빈집을 구할 때는 건축물 등기 이전도 하지 않은 채 생면부지의 집주인을 믿고 약식 계약만 하고 10여 년을 별일 없이 생활했었는데 그동안 알게 모르게 사람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타인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내 자신의 문제였습니다.

그 어떤 두려움 때문입니다. 불신은 욕심과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내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욕심과 두려움에 눈이 멀어 내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토지 승낙서를 고집하면서 땅 주인을 믿지 못한 것은 나를 믿고 성심 성의껏 친절을 베풀어 줬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이기도 했습니다.

계약을 미뤄놓고 공주에 눌러앉아 사람을 믿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 '그냥 계약서를 쓸까?'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때마침 땅 주인이 부산에 살고 있다는 임야 주인의 인감도장이 찍힌 토지 승낙서를 받아놨다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불신에 대한 미안함을 감추고 적당한 날을 잡아 땅을 계약 하기위해 고흥으로 내려갔습니다. 서류 챙기는데 젬병인 내가 못 미더웠는지 아내도 따라나섰습니다. 면사무소에서 땅 주인을 만나 토지승낙서를 확인하고 계약금을 건네줬습니다.

"계약서 써 드릴까요?"
"에이, 그냥 됐습니다."

'땅 주인이 계약서를 써 드릴까요?' 했을 때 문득 이전에 "아따 속고만 살았소?"라고 했던 그의 말이 떠올라 돈만 건네주고 헤어졌습니다. 며칠 후 잔금을 내주기로 약속해 놓고 공주로 돌아오는 길에 종이쪽지 한 장 건네받지 않고 선뜻 계약금 500만 원을 건네 준 아내가 뭔가에 홀린 기분이라며 뒷말을 흘립니다.

"계약서 안 써도 될까? 괜찮겠지?"
"그럼 괜찮지, 수많은 사람 중에 한두 놈이 사기 치고 그러니께 괜히 불안해하는 겨. 괜찮어. 그 양반 계약금 떼먹을 사람 아녀.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면 그 땅은 어차피 우리하고 인연이 없는 겨."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니께 편하네."
"근디 당신은 왜 계약금 내 줄 때 가만있었던 겨? 계약서라도 받으려고 따라온 거 아녀?"
"그랬었는데, 인효 아빠가 됐다고 해서 나도 그냥 그래도 될 거 같았지."

솔직히 돈을 건네고 돌아서는 순간 나 역시 아내처럼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습니다. 다만  '속고만 살았소'라는 그 한마디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며칠 후 잔금 지불과 함께 토지매매 계약서를 쓰기 위해 다시 고흥으로 내려갔습니다. 계약서와 같은 서류 작성에 눈뜬장님이나 다름없는 아내와 나는 한때 법무사 사무소에서 일하다가 신용카드 회사에 다니고 있는 아내 친구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런저런 서류를 갖춰 아무 이상 없이 토지를 매입할 수 있었습니다. 등기소에 서류를 제출하고 땅 문서를 챙겨 돌아오면서 도우미를 자처한 아내 친구의 거절할 수 없는 권유로 원치 않았던 신용카드라는 것을 난생처음 만들었습니다.

소작농에서 땅을 소유한 지주로 대변신

"성영씨 신용조회 해보았는데 일 등급도 아니고 그냥 제로네요."
"그거 등급이 좋다는 거죠? 그동안 은행 돈 빌려 쓰거나 빚진 것이 한 푼도 없으니까 그럴 겁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그동안 부동산과 같은 재산도 없고 신용 거래한 사실이 한 건도 없어 놔서 신용카드 쓰는데 불리하다는 겁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원고료 받아 농협에 돈 넣어놓고 써 왔는디, 그건 신용과는 상관없나요?"
"그런거 하고는 상관없어요."
"결론적으로다 말하자믄 내가 신용이 좋지 않다는 건가요?"
"그렇죠... 일 등급에서 십 등급까지 있는데 성영씨는 등급이 나오질 않아요. 그냥 말 그대로 제로죠."

그동안 농약으로 찌든 땅을 소작해 자연농으로 살려 지주들에게 헌납하기 일쑤였기에 드디어 농지를 구해 마음이 한결 가벼웠는데 그놈의 신용카드가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거참 이상한 세상이구만, 그럼 돈 많이 빌려 이것저것 소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신용이 좋다는 얘긴가? 뭐 그런 게 다 있어! 물 급수처럼 등급이 낮을수록 좋은 건 줄 알았는 디, 그게 아니었구먼."

가진 것 없어 쓸 돈이 없는 사람은 신용이 없다는 것인가? 순간 나는 소작농에서 땅을 소유한 지주로 대변신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고리대금업자들의 잣대로 판단하는 그놈의 '신용'이라는 게 생긴 것입니다. 나 역시 가진 자들만이 누리는 신용의 반열에 끼어 등급이 생길 것입니다. 그 신용 때문에 좀 더 돈벌이를 하고 좀 더 소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불쌍한 중생, 그렇게 되면 좀 더 많은 일에 짓눌려 골머리를 앓겠지요.

그날 이후 13년을 살아온 공주 땅을 떠날 채비로 부쩍 이별주 자리가 늘어났고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고해성사하듯 주절거렸습니다.

"나 이제 지주 됐슈. 평당 이만 원짜리라고는 하지만 그 땅이 싸든 비싸든 간에 천오백 평이나 소유한 대지주가 됐단 말유. 우리 집 마누라 말대로 사기 쳐서 산 것도 아니고 주식 따위를 부풀려 땅 산 것도 아닌데, 기분이 왜 이렇게 찝찝한지 모르겠네요."

어느 개그맨의 술 취한 연기를 빌리자면 '뼈 빠지게 일하는 소작농들이 그 대가를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거기다가 신용까지 얻지 못하는 이 더러운 놈의 세상에서...'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편으로서 자식으로서 기쁠 수밖에 없었습니다. 땅을 구입했을 때 가장 좋아 한 사람은 아내와 어머니였기 때문입니다.

소박한 삶이 어쩌니저쩌니 나불거리며 돈벌이에 담을 쌓다시피 살아가는 지지리 못난 남편 만나 자식들에게 직접 옷을 만들어 입혀가며 땅 한 평 없이 빗물이 줄줄 새는 허름한 시골집에서 남몰래 돈을 모아왔던 아내와 소작농 남편을 만나 7남매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랴 힘겨운 세월 보내시며 평생 땅 한 평 갖지 못했던 어머니였습니다.

천오백 평이라는 너른 땅을 구입하여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아내의 자랑에 팔순을 넘긴 어머니는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아이구 에미야, 그려 그려 잘했다 잘했어… 내 소원풀이를 니가 했구나…"


태그:#맹지, #자연, #건축허가, #토지사용승낙서, #지주와 소작농, #고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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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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