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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By Line)'은 기사 끝에 붙는 기자 이름이다. 영문 기사 끝에 'Reported by ○○○'라고 쓰는 데서 비롯했다. 고관대작은 새 사무실이 생기면 책상 위 명패부터 챙길 것이다. 기자들에겐 바이라인이 명패다. 제가 쓴 기사에 제 명패가 달렸는지 꼭 확인한다. 남들 몰래 쓰다듬기도 한다. 내가 쓴 기사는 내가 낳은 자식이다.

수습 기자는 바이라인이 달린 기사를 쓰지 못한다. 제가 취재해 작성한 기사에 제 이름을 달지 못한다. 내 기사를 내 기사라 부르지 못한다. 대신 수습 기자를 교육하는 '일진 기자' 또는 '사수 기자'(기자들의 세계는 조폭과 닮았거나 군대를 빼다 박았다)의 이름이 적힌다. 적어도 최초 두세 달 동안, 그 원칙이 지켜진다.

6개월 수습 기자 시절의 막판에야 바이라인이 허용된다. 다만 여기에도 문턱이 있다. 단독 발굴 기사, 단독 기획 기사를 쓸 경우에만 수습 기자의 이름을 달아준다. 그런 걸 못하면 하염없이 바이라인 등장이 늦춰진다. 그 정도는 해야 기자 대접해줄 수 있다는 '조폭적이고 군사적인' 선배 기자들의 텃세다.

수습 기자 시절, 나는 지진아에 가까웠다. 동료 수습 기자들이 하나둘씩 '신고식'을 치르는 동안에도 나는 내 이름이 달린 기사를 지면에 내놓지 못했다. 1997년 11월3일 신문사에 입사하여 1998년 2월13일에 첫 '바이 라인' 기사를 썼다. 그나마도 단독 발굴 따위가 못됐다. 민주노총이 파업에 돌입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밤샘 회의를 하던 현장을 취재해 보고했는데, 선배 기자가 자신이 쓴 기사에 내 이름을 붙였다.

다음날 새벽에야 신문에 적힌 내 이름 석 자를 보았다. 밤새 취재하느라 고생했다는 '정상 참작'의 결과였다. 반가움과 자괴감 사이에서 잠시 헤맸다. 좀 더 멋있게 강렬하게, 기왕이면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기분으로 첫 바이라인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 꿈이 무너졌다. '첫 경험'을 그렇게 치르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세상이 1등만 기억하는 것처럼, 나도 첫 번째 바이라인 기사만 기억한다. 두 번째, 세 번째 바이라인 기사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에 없다. 그보다는 다른 문제가 등장했다. '첫 바이라인' 전까지는 내가 취재했는데 내 이름이 없는 경우가 문제였다. '첫 바이라인' 뒤부터는 내 이름이 달렸는데 내가 취재한 흔적이 없는 경우가 생겼다. 내가 보낸 기사를 팀장이 '통째로' 뜯어 고친 것이다.

그것은 귀밑 머리털을 뽑히는 일이다. 치욕적이다. 약이 바싹 오르는데 버럭 주먹을 휘두르기엔 뭔가 모자라는 기분이다. '선배면 다야? 왜 이따위로 분리 해체해 버린 거야?' 그런 분통의 대부분은 수습 기자의 자기기만이다. 기자 생활 몇 달 치러본 것으로는 괜찮은 기사 하나 제대로 쓰기 어렵다. 데스크는 그런 허점을 보충한다. 물론 이 메카니즘을 악용해 '자본과 권력의 얼굴을 한 데스크'가 후배 기자의 기사를 제 맘대로 왜곡하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런 일을 겪진 않았다. 그래도 아프고 쓰리긴 매 한가지다. 내 바이라인이 오염되는 것 같아 치가 떨렸다.

2000년대 초반인가 신문사에서 작은 논쟁이 일었다. 바이라인에 두세 명의 기자 이름이 한꺼번에 붙는 일이 있다. 여러 명이 협업 취재한 경우다. 원래는 '선배-후배'의 순으로 이름을 적었다. "일은 후배 기자가 더 많이 했는데, 왜 선배라고 앞에 이름을 다느냐"는 항변이 제기됐다. 그 뒤로 <한겨레> 바이라인에선 '연공서열'이 사라졌다. 더 많이 취재하고 더 많이 쓴 기자의 이름이 앞에 나온다.

바이라인에는 이름만 적지 않는다. 기자의 전자우편 주소도 함께 적는다. 요즘 감성으론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껏해야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일이다. 몇몇 언론사를 필두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입했다. 그때마다 기자들의 '저어함'이 없지 않았다. 불만을 품은 독자가 기자의 이름 석 자를 벽에 휘갈겨 쓰고 그 먹물 자리에 칼을 꽂는다 한들, 기자에겐 별 위협이 되지 않는다. 언론사로 항의전화를 해도 이리저리 돌려받으며 순간을 모면할 수 있다. 그런데 전자우편은 다르다. 분노한 독자들이 바로 내 귀에 대고 항의한다.

'이메일 바이라인'을 도입한 것은 잘한 일이다. 기자들이 직설적인 분노와 격려에 노출되는 것은 언론의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다. 그 전까지 기사에 대한 품평은 데스크의 몫이었다. '이메일 바이라인' 이후 그것은 독자의 몫이 됐다. 물론 악의적인 것도 있는데, 감수할만하다. '이주 노동자가 저지른 한국인 테러·폭력·살인 사건'을 스크랩하여 매주 나한테 보내는 독자가 계신다. 이주 노동자 인권 기사를 쓴 뒤에 생긴 일이다. 그 독자 분은 나를 계몽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쌍욕을 적어 보내는 독자도 계신다.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인내심을 단련한다. 아직은 버틸 만하다.

이제 바이라인은 기자 개인의 인격을 표상하지만,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90년대 초반까지도 한국 신문의 대다수 기사에는 바이라인이 없었다. 특히 정치·사회·경제면 기사에는 기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는 영미권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기사는 기자 개인이 아니라 언론사 전체가 책임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여기에 깃들어 있다. 지금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엔 바이라인이 없다. <이코노미스트> 기자는 기사를 써도 제 이름을 달지 않는다. 방송 뉴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뉴스는 방송사를 대표하는 앵커가 읽었다. 현장을 취재한 기자가 직접 얼굴·이름을 노출시키며 리포트 하는 일은 드물었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묻는다면, 단연 명패를 내거는 편에 내 기자직을 걸겠다. 나는 무색무취의 기계가 아니다. 나는 보고 듣고 느끼고 판단하고 쓴다. 나는 <한겨레>의 한 구성원으로서 이 매체의 품위를 표상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내 기사를 책임진다. 가끔 <한겨레>도 지면을 통해 헛발질을 하고 뻘짓도 하는데, 그걸 전부 내가 책임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 기사를 쓴 기자에게 우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 헛발질 기사가 나오도록 <한겨레> 뉴스룸의 민주성과 유능함을 높이지 못한 책임의 일부는 물론 나의 몫이다. '연대 책임', '대표 책임' 등은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바이라인은 '편집권 민주화'에 대한 잣대이기도 하다. 지면(또는 방송 보도)은 대표이사가 책임지는가? 아니다. 대표이사에게만 편집권이 있다면, 기자들은 대표이사의 명에 따르면 된다. 그 때의 언론은 대표이사의 '사유물'이다. 독재정권 시절의 언론이 그랬다. 그런 일을 막으려고 편집권을 지키는 대표자를 따로 정한다. 편집인, 편집국장, 보도국장 등이 그런 자리다.

그렇다면 지면(또는 방송보도)은 편집국장·보도국장이 책임지는가? 아니다. 편집국장에게만 편집권이 있다면, 기자들은 편집국장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그런 언론사에선 편집국장이 대표이사의 명을 받들어 취재 지시를 해도 편집권이 독립됐다고 강변할 것이다. 요즘 보수 언론이 그렇다. 그런 건 진정한 편집권 독립이 아니라는 게 현대 언론의 정석이다. 취재·보도 기자의 편집권까지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편집국장의 지시가 부당하면 그에 저항하는 기자가 탄생한다. 그때 편집권 독립을 지키는 것은 편집국장이 아니라 기자 개인이다. 

그렇다면 지면(또는 방송보도)은 기자가 책임지는가? 아니다. 기자에게만 편집권이 있다면, 언론자유는 기자 마음대로 휘갈기는 일과 다름없다. 제 하고 싶은 대로 날뛰는 게 언론자유라면 한국은 진작에 아비규환이 됐을 것이다. 편집권은 독자에게도 있다. 언론은 사회의 사실·진실·관점을 담는다. 그걸 발생시키고 유통하며 소비하는 독자야말로 '뉴스'의 주체다. 오피니언 면을 늘리고 독자참여 기회를 넓히는 것은 편집권의 주체를 기자로부터 독자로 넓히려는 시도다. 

그렇다면 지면(또는 방송보도)은 그 매체를 소비하는 독자가 책임지는가? 아니다. <조선일보>를 사서 보는 독자만 <조선일보>의 편집권에 대해 감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신문·방송·인터넷을 가리지 않고 모든 언론은 '1차 소비자'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조선일보>를 정기 구독하는 독자는 그 신문에서 취득한 사실·진실·관점을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사회화'시킨다. 생각을 품고 토론도 하고 행동도 한다. 그가 권력을 갖췄다면 타인을 '강제'하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편집권은 궁극적으로 '공중(public)'에 있다. 나는 <조선일보>를 정기구독하지 않지만, <조선일보>가 자신의 독자를 발판삼아 공공의 여론장을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만일 나의 세금이, 내가 뽑은 정부가, 내가 숨쉬고 있는 시민사회가 그런 <조선일보>를 수수방관하는 쪽으로 움직인다면 나는 반대할 것이다. 나 역시 '공중'의 하나이므로.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 언론의 편집권은 '편재'한다. 두루 곳곳에 나뉘어져 있다. 이 점을 수긍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전제 하에서 기자는 '편재하는 편집권'의 핵심고리다. 기자가 '바이라인'을 쓰는 이유는 대표이사-편집국장으로 이어지는 언론사의 편집권과 공중-독자로 이어지는 시민사회의 편집권의 한 가운데서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편집권 수호의 병사'라는 표식이다. 공중은 기자를 매개로 뉴스룸과 만나고, 뉴스룸은 기자를 통해 공중과 만난다. 이런 맥락에서 기자는 진정한 단독자다. 

90년대 이후 신문·방송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국내 언론이 바이라인을 도입했다. 기자 이름을 걸고, 기자 개인의 인격과 품위를 걸고, 진실을 보도하겠다는 약속을 한 셈이다. 대신 뉴스룸은 좋은 기자, 유능한 기자, 착한 기자, 성실한 기자, 공정한 기자, 진실을 보도하는 기자를 길러내고 보호하겠다는 약속이다. 

내가 쓰는 기사 끝에 붙는 '안수찬 기자 ahn@hani.co.kr'의 바이라인은 따라서 이런 뜻이다.

'이 기사는 안수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한겨레> 뉴스룸을 거쳐 지면에 나가는 기사이지만, 취재·보도의 일차적 책임은 안수찬에게 있습니다. 중대한 착오는 매체 전체가 책임지겠지만, <한겨레>는 안수찬 기자의 능력과 시각을 신뢰하므로, 오늘 그의 이름을 빌어 <한겨레>의 기사를 전합니다.'

김인규 <KBS> 사장이 얼마 전, KBS 기자를 징계했다. 김 사장이 기자 시절, 전두환 정권을 찬양하는 리포트를 했는데, 그 화면을 공개했다는 이유다. 마이크 잡고 직접 리포트 했으니 김인규 기자의 바이라인이 달린 기사였음은 당연하다. 기자가 보도한 기사를, 그것도 이미 공중에 공개된 공영방송의 리포트를, 비록 수십 년이 지났다 한들 공중의 소유임에 분명한 보도를, 잠시 들춰 사람들에게 내보인 게 무슨 죄인가. 김 사장은 그 바이라인이 부끄러운가, 아니면 바이라인을 달았지만 데스크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 강변하고 싶은데 그럴 기회를 얻지 못해 억울한가. 

비록 이번의 시도는 모욕적인 징계로 귀결됐지만, KBS 기자협회는 바이라인의 의미를 새로 '발견'했다.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고 난 다음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기왕 들춰진 '바이라인의 휘발성'을 좀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금 <KBS> 9시 뉴스가 '땡이뉴스'로 전락하고 있는가. 그 기자의 이름을 모두 적어라. <KBS>의 주요 교양 프로그램들이 모두 정권 홍보물로 변질되고 있는가. 그 피디의 이름을 모두 적어라. 지금 권력의 방송장악을 강 건너 불구경하며 오히려 찬양하고 있는 신문 기자들이 있는가. 그들의 이름을 모두 적어라. 

기왕이면 그 기자들이 지난 10년 동안 무슨 기사를 쓰고 보도했는지도 적어라. 그들이 제 이름을 걸고 내보낸 기사 가운데 무엇을 책임질 것인지, 반드시 따져 물어라. 지금 당장 따질 수 없다면, 5년 뒤에 10년 뒤에, 그들의 생전에 안 되면 훗날 역사책에라도 밝혀 적어라. 그것이 현대 언론이 기자 개인에게 '바이라인'의 명패를 씌워준 이유다. <KBS>를 비판하지 말고, <KBS> 기자 개인의 이름을 적어 비판하라. 조중동이라 싸잡지 말고, 문제의 기사를 쓴 기자의 바이라인을 들어 비판하라. 기왕이면 그 바이라인으로 떠받든 수많은 텍스트를 한두름에 엮어 비판하라. 

지금 언론자유가 흔들리고 편집권 독립이 위협받는가. 기자한테 일일이 책임을 물어라. 그 기자가 역사의 죄인이 되기 싫다면, 공중과 만나고 대표이사·편집국장과 긴장할 것이다. 제 이름 석자 내걸고 기사 쓰는 일에 자부심을 느꼈다면, 제 이름 석자에 오욕의 낙인이 찍히는 일에 공포감을 느낄 것이다. 기자의 인격을 걸고 보도하겠다고 언론 스스로 공언한 일이 벌써 20년 전이다. 그들의 잘못을 왜 매체에게 뭉뚱그려 묻는가. 한 놈씩 잡아 패라. 그러라고 바이라인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안수찬씨는 현재 한겨레 기자로 재직중에 있습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바이라인, #김인규, #KBS, #편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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