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장면1] 난 믿지 않는데... 예배 봐야 해?

"난 믿지 않는데... 예배 봐야 해?"

서울 Y여고에 입학한 한 학생이 입학식에 다녀와서 던진 첫마디다. 학교에서 나눠준 '2010 신입생교육자료' 가운데 연간학사일정을 보면 예배시간이 여러 차례 잡혀 있다. 신입생 환영예배, 기드온성경전달예배에 이어 4월은 부활절 예배와 정기예배가 세 차례다. 달마다 3~4회씩 예배를 본다. 학사일정에 종교를 믿지 않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학생에 대한 대체수업 같은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헌법 제20조 ①항"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는 조항은 이 학교에서는 해당되지 않는 듯.

신앙교육은 특별활동에도 이어진다. 그 학생 말에 따르면 선생님이 "학교 방송부는 주로 찬송가를 틀고, 밴드부는 찬송가를 연주하고 무용반은 찬송가에 맞춰 춤추는 곳"이라고 설명했단다. 종교를  갖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참 특별난 활동으로 기억될 듯싶다. 물론 자유롭게 비보이를 할 수 있는 댄스 동아리가 있기는 하다.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이라면 무슨 문젤까. 입학생 모두에게 억지로 요구하니 탈이다. 특정 종교를 바탕으로 세워진 학교일지라도 믿을지 말지 선택권은 오롯이 학생의 몫이어야 한다. 학생들이 마음대로 고등학교를 골라서 갈 수 없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장면2] 두발 '불량' 10명 적발시 학급 전원 '일자형 단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게시판에 올라온 강제이발 사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게시판에 올라온 강제이발 사진.
입학생 최고 관심사는 두발이다. 이 학교 생활지도부 '용의복장 규정'도 두발에 관한 조항이 10개로, 다른 조항보다 훨씬 많다. "두발은 단정한 학생 커트나 단발, 또는 자유롭게 기를 수는 있으나 반드시 검정색 끈으로 단정히 묶어야 하며 목덜미가 보이도록 하나로 항상 묶고 다녀야 한다." 항상 묶지 않으면 황당하고 엄한 벌칙이 기다린다. "2개월 동안 학급인원 중에서 묶지 않고 다니는 학생 10명 적발 시, 그 학급 전원을 "일자형 단발"로 자른다.

'반드시 묶어야 한다'면서 '자유롭게 기를 수 있다'는 말은 뭔가. 꼭 묶어야 한다는 규정을 인정하더라도 학급 전원을 "일자형 단발"로 자르는 벌칙은 문제다. 규정을 어긴 학생 때문에 다른 (규정을 지킨) 학생들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심어 주기 위한 의도인 듯한데 오히려 "너 때문에 죄 없는 나도 일자형 단발로 잘렸다"는 학생들간 미움과 증오심만 키우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두발 단속은 학생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교사가 가르치는 본연의 일에서 벗어나 학생을 감시해야 한다. 학급별로 실적 경쟁(두발규정위반적발)에 들어서기라도 하는 날이면 교사는 학생들 개성을 죽이는 첨병구실을 할 뿐이니 학생 교사 두루, 피곤하고 짜증나는 일이다.

두발단속은 이 학교가 '용의복장 규정'을 만든 목적인 "학생의 긍지를 드높이고, 외양보다는 내실을 기할 수 있도록" 지도하자는 뜻과도 한참이나 어긋나 보인다. 하나님을 믿듯, 학생한테 한 번 맡겨보면 어떨까.

[장면3] "난 읽고 싶은데... 불온서적일까봐?"

국방부에 의해 불온서적으로 지적된 책들
 국방부에 의해 불온서적으로 지적된 책들
ⓒ 알라딘

관련사진보기


학생선도 규정 '태도'에 관한 조항, "불온문서를 은닉, 탐독, 제작, 게시 또는 유포한 자는 사회봉사나 특별교육을 받는 징벌을 받거나 퇴학"을 받는다. '대외활동'에 관한 조항, "허가 없이 서클을 조직 운영하여 교칙을 문란하게 한 자. 학교장 허가 없이 대외 행사에 출품, 출연 또는 참가하여 학교 명예를 더럽힌 자. 학생을 선동하여 질서를 문란하게 한 자. 동맹휴학을 선동, 주동하거나 동참한 자는 사회봉사부터 퇴학"까지 징계를 받도록 되어있다.

어떤 책이 불온서적인지 누가 그 기준을 정하는지 '학생선도 규정'만으로는 알 길이 없다.

대학입시로 시간도 없으니 그냥 교과서만 읽는 것이 신상에 좋다는 건지? 흐릿하기만 하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달마다 모여 수다 떠는 서클을 학생들 마음대로 만들어도 규정에 따라 퇴학이니. 교칙이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까지 짓이기는 꼴 아닌가.

학생이기 전에 인권을 지닌 사람이다. 학칙은 인권을 규정한 헌법정신에 어긋날 수 없는데현실은 그렇지 않다. '용의복장 규정'과 '학생선도 규정'을 만든 학교는 '사람의 존엄성과 기본적 인권보장'을 적은 헌법 10조가 있음을 알기나할까. 국민과 나라를 학생과 학교로 바꾸어서 읊조리며, 씁쓸한 입학식을 지켜본다.

모든 학생(국민)은 사람으로서 지니는 가치와 존엄성을 가지며,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학교(나라)는 개인이 지닌 침범할 수 없는 기본적 인권을 확실히 인정하고 이를 보장하여야 할 의무를 진다.


태그:#헌법 위에 교칙, #학생인권 , #인권을 가르치는 학교라면 교칙을 바꿔라! , #자유억압 학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나무와 숲 그리고 조경일을 배웁니다. 1인가구 외로움 청소업체 '편지'를 준비 중이고요. 한 사람 삶을 기록하는 일과 청소노동을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