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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을 맞은 조선인, 그들은 모국어로 울었고, 모국어로 신음했다. … 일본인 구원대는, '아이고,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어머니'하고 울부짖는 조선인들을, 결코 병원으로 옮겨주지 않았다. … 버려진 조선인들은 거리에서, 부서진 건물더미 아래서, 누군가의 집 처마 아래서, 다리 밑에서, 강가에서 죽어갔다. … 8월의 찌는 듯한 태양 아래서 썩어가는 조선인들의 시신에 새까맣게 까마귀들이 모여 앉았다. … 떼지어 날아든 까마귀들의 부리 아래서 조선인들의 시체는 살이 뜯겼고 눈알이 파여 나갔다." (한수산, <까마귀> 5권에서)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번역출간된 소설가 한수산씨의 장편<군함도>(軍艦島). 한국에서는 2003년 5권,<까마귀>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번역출간된 소설가 한수산씨의 장편<군함도>(軍艦島). 한국에서는 2003년 5권,<까마귀>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 작품사(作品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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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말기 나가사키로 징용되어 간 조선인 강제연행 노동자들의 가혹한 노동현장과 차별·학대 그리고 원자폭탄 피폭에 이르는 아픔을 장편소설로 엮어낸 작가 한수산씨의 <까마귀>(전5권, 해냄, 2003)가 일본에서 <군함도>(軍艦島)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됐다.

일본어로 번역 소개되는 과정에서 제목이 소설의 무대인 '군함도'로 바뀌고 편집도 새로워지면서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 출간된 <군함도>는 초판 3000부가 20여 일만에 매진돼 다시 찍어내길 거듭, 이미 3쇄까지 들어갔다. 또 <도쿄신문> <마이니치신문> <서일본신문> 등 일본 언론에서도 대서특필하고 있다.

일본인의 이러한 관심을 반영하듯, 지난 2월 20일과 22일 각각 후쿠오카와 나가사키에서 작가 한수산씨를 초청한 강연회가 개최되었다. 원래 일본에선 평일에는 사람이 잘 모이지 않는데, 월요일 저녁에 열린 나가사키 강연회에는 방송사와 신문사의 취재 및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이날 강연회에는 나가사키의 피폭자와 평화운동가, 학생과 시민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한수산씨는 어려서부터 "너 자꾸 울면 일본 순사가 온다", 즉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일본 순사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란 '반일 교육 세대'로서 왜 일본 나가사키를 무대로 소설을 쓰게 되었는가, 그리고 일본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저는 한국에서 어느날 '한수산 필화사건'을 겪게 됩니다. 제 소설('욕망의 거리') 속의 일부분이 문제가 되어 국가기관(보안사)에 잡혀가 일주일 동안 지독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물고문, 전기고문 등 상상할 수 없는 온갖 종류의 고문을 받았습니다. 육체적인 아픔은 시간과 함께 사라져갔지만, 작가인 저에게 그 사건이 남긴 것은 영혼의 상처였습니다.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믿기 때문에 소설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 내가 고문을 통해서 인간을 믿지 못하게 되고, 인간을 사랑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소설을 쓰지 못한 것이 3년입니다."

2월 22일 나가사키 교육문화회관에서 일본 시민을 상대로 강연을 하고 있는 소설가 한수산씨. 앞서 20일 후쿠오카 세난 대학에서도 초청강연이 이뤄졌다.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2월 22일 나가사키 교육문화회관에서 일본 시민을 상대로 강연을 하고 있는 소설가 한수산씨. 앞서 20일 후쿠오카 세난 대학에서도 초청강연이 이뤄졌다.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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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한수산씨를 비롯하여 당시 소설 <욕망의 거리>를 연재했던 <중앙일보> 권영빈 편집위원, 시인 박정만 등 6명을 연행해 갖은 고문을 했던 보안사의 총수 노태우 사령관이 대통령이 된다. 한수산씨는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라는 절망감과 함께 "그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만이라도 나라를 떠나 있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때 생각하게 된 것이 한국현대사와의 가장 깊은 관계를 가진 세 나라 중국, 미국, 일본이었고 최종적으로 일본행을 결정한다. 1988년 겨울이었다. 그리고 어느날 도쿄의 헌책방에서 조그마한 책자 하나를 발견한다.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에서 펴낸 <원폭과 조선인>이었다. 그 안에는 한수산씨를 놀라게 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하시마 탄광과 조선인 노동자들의 이야기, 그들이 피폭까지 당하게 된다는 매우 중대한 사실을 밝히고 있는 책이었다.

"먼저는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있었고, 가혹한 노동조건의 지하탄광이 있었다는 것, 거기에 더해 나가사키는 피폭지가 되었다는 세 가지의 사실. 그것은 단순히 한국인에게만 비극적인 장소가 아니라 일본인에게도 비극적인 장소였습니다."

그때 한수산씨는 모든 비극이 함께 어우러져 있던 나가사키의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을 쓴 나가사키의 오카 마사하루 목사를 직접 찾아가게 된다. 소설을 쓰기 위해 일본 전역의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고 자료를 연구하고 사람을 만났지만, 특별히 나가사키는 열 차례 넘게 방문하여 치밀한 현장취재를 하고 실제 피해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미국에도 직접 갔다.

"원폭을 만들어 실험했던 곳이 미국의 캘리포니아 네바다주입니다. 군사시설이기 때문에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었지만 주변을 돌아볼 수는 있었습니다.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다른 두 개의 원폭을 떨어뜨리기 위해 수없이 핵실험을 했습니다. 핵실험 당시 멀리서 그 장면을 바라본 목동이 있었는데, 그는 후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 아주 먼 곳에 있었던 얼룩소들이 전부 하얗게 변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파괴력과 살상력을 가진 원폭입니다."

그러나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 그후 일본은 패전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 아수라 불지옥 속에서도 일본인 구조대가 "어머니, 살려주세요"라고 하는 사람은 버리고, "오카상, 다스케테"라고 말하는 일본인만을 구했다는 증언을 듣게 된 한수산씨는 피폭 조선인들이 "주검에서까지 차별받았다"고 쓰고 있다.

한수산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가사키 시민들.
 한수산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가사키 시민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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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씨는 나가사키 강제연행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죽어갔던 스미요시 터널 현장에서 주워온 돌맹이를 늘 책상 앞에 두고 소설을 써내려갔다고 한다. 그 날카로운 돌맹이를 보며 그것을 파느라 고생한 "우리들의 형님, 아버지를 잊지 말자"는 결심으로 마음을 다잡았다는 것이다. 긴 취재와 3년의 신문연재를 포함해 15년간의 긴 고생 끝에 소설을 내놓자마자 그는 곧바로 나가사키로 달려왔다. 2003년 여름이었다.

이튿날 하시마 주변을 배로 수 바퀴를 돌던 작가는 소설 속 인물들과 조우하게 된다. 소설 속에는 섬 유곽에서 일하다가 절벽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여성이 나오는데, 그녀가 흰옷을 입고 절벽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시마 탄광에서 탈출했으나 나가사키 시에 있다가 원폭을 맞아 죽게 되는 남자 인물도 '어쩌다가 다시 하시마로 돌아왔는지' 그곳에 또 앉아서 작가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수산씨는 소설 속 남녀주인공이 그곳에 서서 자신을 향해 "우리들의 이야기를 써주어서 고맙습니다, 고생했습니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고 한다. 한씨는 하시마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슬픈 눈물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이었다고 한다.

한수산씨는 취재과정에서 만났던 한 사람을 애틋하게 회상했다. 소설이 한국에서 출간되기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나가사키의 재일조선인, 소년이자 청년이었던 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분은 열 다섯 살(만 14살)의 어린 나이에 하시마로 끌려옵니다. 서정우씨는 패전후에도 한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에 남습니다. 직접 하시마에서 일을 했던 분이기 때문에, 자신이 일을 했던 자리, 밥을 먹던 자리, 두들겨 맞던 자리를 알려주셔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분은 아주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몸 전체는 일종의 종합병원처럼 어느 한 곳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폐의 한쪽이 아예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몸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함께 살던 부인도 집을 나가고 쌍둥이 아들도 아버지가 싫다며 떠나 홀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취재가 끝나던 날 마지막 인사를 위해 서정우씨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꼬질꼬질한' 파자마를 입고 쭈그리고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반찬도 없는 밥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작가는 가슴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누가 열 다섯 살의 아름다운 꿈을 키울 수도 있었을 소년을 끌고 와서 이런 노인으로 만들었을까. 열 다섯 살 소년을 이렇게 망가뜨린 것은 일본일까, 아니면 나라를 잃어버린 조선일까, 그것도 아니면 역사의 소용돌이가 이렇게 만들어 버린 것일까. 누가 그랬건 꿈많던 15살 소년을 이렇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를 소설에서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당시 서정우씨는 오후 11시가 가까운 시간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는 한적한 거리에서, 노면 전차를 타고 돌아가는 작가 한수산씨를 향해 파자마, '난닝구'를 입은 채 구부린 모습으로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고 한다. 

소설의 무대가 된 '군함섬' 하시마.
 소설의 무대가 된 '군함섬' 하시마.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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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소설이 식민지 시대 말기를 그렸으나 반일 소설도 아니고, 강제연행된 조선인의 비참함을 드러내거나 고발하려고 한 소설도 아니라고 말했다. 자연과 국가, 제도, 전쟁 그리고 핵무기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묻는 소설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작가로서 한일관계에 대한 의견도 덧붙였다.

"한국에서는 밥을 먹을 때 상 위에 올려놓고 먹습니다. 만일 어린이가 급하다고 손에 들고 먹으면 부모가 '거지처럼 먹지 마라'고 야단을 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밥그릇을 들고 먹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상 위에 놓고 고개를 숙여 밥을 먹게 되면 '개처럼 먹지 마라'고 야단을 맞습니다. 상대방 나라를 폄하하자고 생각하면 한국과 일본에는 전부 거지와 개만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두 나라의 문화와 삶이란 그 땅의 비를 맞고 햇빛을 받으며 만들어진 것입니다. 남의 나라, 옆의 나라를 볼 때 비하의 눈, 왜곡의 눈으로 보지 말자는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야옹야옹'이라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냐냐'라고 합니다. 울음소리는 똑같습니다. 과거사는 과거이기 때문에 변할 수가 없는 똑같은 과거사입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일본에서는 '냐냐'라 하고, 한국에서는 '야옹야옹'이라 합니다. 이제부터는 두 나라가 이름이나 울음소리를 가지고 이야기하기보다는 고양이를 어떻게 닦아주고, 뭘 먹여야 영양가가 많고, 고양이를 어떻게 키울까 하는 본질을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작가는 강연을 마치면서 한국과 일본에 놓여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 아닌 그 아래 바닷속에 감추어진 90% 이상의 얼음이라고 말했다. 한일간에 마음 터놓고 이야기해야 할 것은 바다 속에 가려진 거대한 역사라 했다. 그리고 소설 <까마귀>가 과거사를 정리하고 서로의 나라가 가졌던 비극을 이해하며, 역사의 어두운 길을 건너가는 징검다리가 되면 좋겠다는 꿈을 피력했다.

소설의 일본어 번역 감수를 맡은 인연으로 후쿠오카와 나가사키의 기념강연회에 동행한 문예비평가 가와무라 미나토(川村湊) 교수는 "1930~40년대 당시, 하시마뿐 아니라 일본 열도 전체가 잠기지 않는 군함도와 같았다"라고 말하며 그 때문에 바뀐 소설의 제목 군함도가 상징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했다.

"미쯔비시가 다카시마와 하시마 등지에서 캔 석탄을 신일본제철에 보내 철을 만들고, 그 철이 나가사키에 와서 전함이 되어 전쟁을 뒷받침"하는 군국주의와 군수기업의 구조를 지적한 가와무라 교수는 수많은 강제연행 노동자들이 피땀 흘린 오키나와, 규슈를 비롯하여 자신이 성장한 홋카이도 탄광마을 역시 일종의 군함도는 아니었을까 하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또 일본에서는 하시마와 관련한 사진집이나 자료, 책이 상당히 있지만 조선인 강제연행과 중국인 포로에 대해 제대로 쓴 책이나 문학작품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일본 문학이 전혀 다루지 않았던 부분을 한수산씨의 소설만이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절찬했다. 

지난 겨울 일본에서 <군함도>란 제목으로 번역 발행되어 주목받고 있는 한수산씨 소설 <까마귀>.
▲ 소설 <까마귀> 지난 겨울 일본에서 <군함도>란 제목으로 번역 발행되어 주목받고 있는 한수산씨 소설 <까마귀>.
ⓒ 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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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에서는 부친이 하시마 출신이고 자신은 그 옆의 섬에서 성장했다는 한 남성이 하시마에서 있었던 조선인과 중국인의 비극, 일본의 학대 등 역사적 사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있다고 고백했다. 그리운 섬으로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주관적 체험을 넘어서야 한다는 의지도 갖고 있다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국인 소설가에게 조언을 청했다.

한수산씨는 이에 대해 한국에서 <까마귀>라는 제목으로 소설이 나온 뒤 일본 <교도통신>의 기자로부터 받은 전화에 대해 소개했다. 그 일본인 기자는 다카시마 섬에서 성장하면서 늘 인근 섬 하시마를 바라보며 뛰어 놀았다. 그래서 하시마는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아버지가 다카시마 탄광 노동자로 폐광시 노조 조합장이었고, 폐광을 막지 못한 것에 책임감을 느껴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 괴롭고도 그리운 동시의 추억을 가진 하시마에 대해서 한국인 작가가 소설을 썼다는 데 대해 대단히 반갑고 나중에 일본어로 번역되면 꼭 읽어보겠다는 이야기였다.

한수산씨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소년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 또는 폐광이라는 아픈 기억도 있겠지요. 제 바람은 하시마, 즉 군함도를 위해서라도 거기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좀 더 있는 그대로 밝혀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지금 공개되고 있는 관광코스는 군함도를 말할 때 의미가 없는 코스입니다. 아파트들이 서 있고 나무들이 무성한 그곳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군함도가 가진 역사적 의미를 담아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를 말입니다. 섬 안 어딘가에 조선인과 중국인, 미군포로 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방파제라든가 어딘가에 제대로 써서 알려주는 것이 하시마의 앞날을 위해 옳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소설 <까마귀>는?
"조국의 이름으로 살다, 조국의 이름으로 죽어갔으나, 그 주검조차 조국의 이름으로 버림받아야 했던, 나가사키 피폭 조선인의 영령 앞에 이 책을 바친다."

<까마귀>는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일간지에 연재 후, 2003년에 5권의 장편(해냄출판사)으로 출간돼 그해 교보문고의 '올해의 책' 문학부문에도 선정된 바 있다. 나가사키 하시마 탄광에서 가혹한 노동과 인간 이하의 노예같은 생활에 지친 강제연행 조선인 노동자들이 탈출을 시도했다가 결국 주검이 되어 돌아오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소설의 무대는 식민지 통치하의 조선과 일본 나가사키 시내 및 하시마 탄광 등을 무대로 한다.

친일파의 아들이지만 징용을 피할 수 없었던 지상과 어쩔 수 없이 끌려왔지만 끊임없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삶을 꿈꾸며 탈출을 시도하는 정의의 사내 우석, 겉으로는 일본인 직원과 노무관리자, 감독자들에게 고분고분한 듯 하지만 나라잃은 백성의 설움과 울분을 가슴에 품고 사는 명국, 그리고 아버지의 빚 때문에 이리저리 팔려 일본까지 오게 된 술집 여인 금화, 아버지를 찾으러 스스로의 발로 일본에 온 길상 등 실제로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듯한 인물 군상들이 소설 속에서 역사를 증언한다.

핵심적인 무대가 되는 것은 탄광섬 하시마다. 그속에서 벌어지는 탄광노동의 리얼리티, 그리고 노동자들이 함께 저항과 탈출을 모의하고 꿈꾸는 장면, 괴로움 속에서도 옛 속담과 유머를 통하여 참혹한 현실을 눈물겹도록 익살맞게 뱉어내는 사내들의 말투, 땀 냄새와 눈물, 우정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 지옥 속에서 살아있었구나 하는 슬픔을 준다. 특히, 작가는 당시 조선 전역에서 노동자들이 징용당했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서 각 인물들에게 다양한 사투리를 구사하게 했다.

소설 속에는 가슴 아픈 로맨스도 있고, 가미가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원자폭탄과 핵실험, 도쿄 대공습, 남경대학살 등 우리가 학교에서는 배우기 어려웠으나 꼭 알아야만 할 역사적 사실들이 철저한 자료수집과 취재, 검증을 통하여 그려지고 있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픽션이지만, 이 소설은 등장인물과 사건 전개에 있어서 실제 있었던 인물과 사건 등을 소재로 하고 있다.

제목 '까마귀'는 탄광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눈의 흰 자위만 빼고는 얼굴과 온몸이 시커멓다고 해서 서로를 "까마귀가 따로 없다"고 놀리는 장면에서 엿볼 수 있듯이 우선은 노동자들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리고 지옥같았던 하시마를 탈출해 나가사키 시내로 숨어든 조선인들이 원자폭탄 투하까지 맞닥뜨리게 되면서 죽어갈 때 아무도 조선인 피폭자들을 구하거나 시체를 수습해주지 않아 방치된 그 시체를 까마귀들이 날아들어 파 먹었다는 비극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작가 한수산 씨는 작가후기를 통해 "시체마저 차별받아야 했던 조선인, 시체까지도 차별했던 일본인…미국의 원폭투하로 인해 조금이라도 빨리 조국을 되찾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징용으로 끌려와 있던 조선인 원폭피해자에 대해서만은 그렇게 물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죽음은 무참했고, 그들은 순결했다"고 썼다.

한국에서 <까마귀>로 소개된 이 소설이 일본에서 <군함도>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출판된 데는 탄광섬 하시마의 별칭이었던 '군함도'가 주는 임팩트가 일본 사회에서는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발간을 통하여 일본 사회에서 군함섬 하시마가 재조명될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국내의 독자들에게도 필독을 권한다.


태그:#강제연행, #한수산, #까마귀, #군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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