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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라이스가 말한 평화체제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반 장관에게 뭘 말했다는 건가?"
이에 반기문 장관이 머뭇거리다가 답변했다.

"사실은 얼마 전에 미국에서 제가 라이스 장관을 만났는데 그때 한 말입니다."

노 대통령이 놀라서 물었다.

"그러면 아까 한 말하고 같은 말을 들었다는 거요?"
"예, 그렇습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노 대통령이 언성을 높였다.

"아, 그런데 왜 지금까지 그 사실을 당신 혼자만 알고 있었소?"
(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 351쪽)

2005년 3월 20일 청와대를 방문한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전에 반기문 장관께도 말씀드렸지만 미국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데 관심이 있다"며 "향후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데 한국정부와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불과 얼마 전에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말해 북한을 격분시켰던 라이스 장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자, 혼란스러웠던 노 대통령이 반 장관에게 경위를 물었다. 이에 반 장관이 노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던 내용을 털어놨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반기문 장관을 질책한 까닭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 표지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 표지
외교국방 전문지인 D&D포커스의 김종대 편집장은 최근 출판한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 에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는 이후에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 반기문 외교부 장관을 대통령이 혼냈다는 '가십성'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북핵문제 해결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반 장관은 왜 라이스의 발언을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것일까.

"전통적으로 외교부는 만일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그것은 남북한 사이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 북한의 주장처럼 미국과 북한간에 체결될 수는 없다고 보았다. 그것은 유엔사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는 북한의 기만전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라이스를 만났을 때 반 장관의 답변은 이러했다. "북한의 기만전술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352쪽)

그해 8월 워싱턴을 방문한 반 장관은 '선 6자회담, 후 평화협정' 방침을 강조하는 발언을 해, 당시 NSC(국가안전보장위원회) 상임위원장이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그런 냉전적 시각으로 외교를 하니까 제대로 될 리가 있느냐"고 질책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 편집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평화체제에 반대하는 외교부의 노력은 참으로 집요했다"고 적었다. 2005년 9.19공동성명 때는 청와대가 박선원 비서관(당시는 행정관)을 '감시병'으로 파견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평화체제에 대한 외교부의 이같은 방침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대세가 됐다. 유명환 장관은 "북한이 주장하는 북미간 평화협정 체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핵무장한 북한과의 평화협정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회 14대부터 10년간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비서관으로 국방문제를 다룬 김 편집장은 16대 대통령직 인수위 국방전문위원회를 거쳐 청와대 국방보좌관실에서 유일한 민간인 행정관으로 2년간 근무했다. 이어 국무총리 산하 비상기획위원회 혁신기획관으로 일한 뒤 김장수 국방장관 정책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참여정부 5년의 외교국방 정책수립과 집행과정을 지켜봤다.

"전작권 환수, 평화체제 구축의 제1의 전제조건 충족"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교국방분야의 최대 쟁점이자 성과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문제였다.

"이것은 냉전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식으로의 전환이었다. 주권국가의 상징인 작전권은 '한반도 정세를 우리 스스로 주도해 보자'는 결의의 상징이었고, 국가 생존을 위한 대전략 차원의 변화였다." (244쪽)

전작권 문제는 노 전 대통령의 동북아 구상과도 연결되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전작권 환수로 한국의 군사주권이 확립되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제1의 전제조건이 충족된 것으로 보았다. 자주적 방위역량과 주권을 기반으로 한국은 당사자로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참여하게 된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동북아 시대를 구성하는 핵심축이다.… 우리는 이런 취지를 북한에게도 설명했다." (413쪽, 박선원의 증언)

김 편집장은 이를 "한반도 운명의 주인이자 당사자로서 평화체제를 주도할 수 있는 국가로서의 격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큰일이다, 노 대통령은 평택이 미국의 대중국기지라고..."

<FONT COLOR=A77A2>전직 국방장관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 반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한 전 국방장관들의 모임이 지난 8월 10일 오전 서울 신천동 향군회관에서 열렸다. 전직 국방장관들은 회의를 마친 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언제라도 좋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결코 이 발언에 동의할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간 성명서를 발표했다. <FONT COLOR=A77A2>전직 국방장관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 반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한 전 국방장관들의 모임이 지난 8월 10일 오전 서울 신천동 향군회관에서 열렸다. 전직 국방장관들은 회의를 마친 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언제라도 좋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결코 이 발언에 동의할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간 성명서를 발표했다.
 2006년 8월 10일 전직 국방장관들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반대하는 모임을 가졌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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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정말 큰일이다. 이제껏 대통령께서는 평택기지가 단순히 용산이나 동두천의 미군시설을 이전하는 기지로만 생각하고 이 문제를 관리해왔다. 대통령은 미국의 대중국 전략이 반영된 기지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554쪽)

2006년 초 '전략적 유연성' 관련 유출파동에 대한 청와대 내부조사 과정에서 한 문재인 민정수석의 토로라고 한다.

김 편집장은 "'자주의 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2006년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보건대 분명 노 대통령은 서거 당시까지 자신은 한미동맹이 한국의 의도와 무관하게 중국까지 견제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차단했다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주한미군 출입시 사전협의'등의 조건으로 '전략적 유연성'을 제한적으로 적용하겠다고 생각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고, 이명박 정부에 와서는 완전히 문이 열렸다. 김 편집장은 그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12월 태국에 억류됐던 북한 무기수송기 사건을 들었다. 평양에서 이륙한 이 수송기의 정체를 알아낸 것은 오산의 미7공군 사령부에서 발진한 스텔스 무인정찰기였는데, 이 작전의 내용은 사전은 물론 사후에도 한국군에게 통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주한미군이 점차 스텔스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용산기지 이전 협상과 전략적 유연성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청와대내 NSC와 국정상황실의 갈등을 세세하게 추적했다. 또 김대중 정부 말기 남북한이 금강산 육로교통을 합의하자 이미 유엔사로부터 남북간 합의이행문제를 일임받은 국방부가 유엔사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합의이행을 저지한 사건, 노무현 정부 때 국방연구원의 남북한 군사력 측정결과 보고서 조작 의혹, '전략적 유연성'관련해 대통령에 대한 보고를 생략한 외교부의 비밀외교각서 추진 등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들도 소개했다.

군내 사조직의 대부로 군부를 호령했던 한 원로장군이, 노태우 대통령 시절 군부가 평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동의한 이유를 "1980년 광주소요 때 광주로 군을 동원하는데 병력이동을 통제하는 주한미군이 걸림돌이 됐다는 당시의 경험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대목은 특히 눈길을 잡아끈다.

노무현 정부시기는 통일외교안보분야의 대논쟁기였다. 노무현 정부의 대외전략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어떻든 당시 논쟁들은 현 정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책은 이 논쟁들을 전체적으로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한 첫 작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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