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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삼매경에 빠져 있던 일요일 오후, 아내한테서 다급한 전화가 결려왔다.

 

"호연이가 없어 빨리 와 봐."

"먼 얘기야...차근차근 말해봐."

"분명히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는데...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장난치지 말고......!"

"장난 아냐, 진짜 없어...하영이도 지금 놀이터 부근 돌아다니며 찾고 있어."

 

13살 하영이까지 찾아 나섰다는 걸 보니 장난은 아닌 듯싶었다. 축구화도 벗지 않은 채 자동차로 뛰어가 시동을 걸었다. 갖가지 끔찍한 상상이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혹시 사이코 패스가 호연이를...술래잡기를 하다가 어딘가에...큰 아이들을 따라 어딘가에 갔다가 길을 잃은 것은...'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정맞은 생각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는데...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부정 탈 일인 듯싶었다. 호연이가 놀고 있었던 놀이터로 가 보았다. 진짜 없었다.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족구 하는, 대보름을 맞아 윷놀이 하는 어른들 틈에 간혹 아이들이 섞여 있기는 했지만 호연이는 없었다. 얼굴을 보니 아는 사람들이다. 동네에서 형님, 동생 하면서 지내는 얼굴이 꽤 있었다.

 

도움을 요청해 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호연이가 사라진 지 이제 겨우 20분 지났을 뿐이다. 공연히 호들갑 떨다가 어디선가 '쨘' 하고 호연이가 나타나면 웃음거리가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동네를 몇 바퀴 돌다가 안양천변으로 핸들을 꺾었다. 규모가 꽤 큰 대보름맞이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여섯 살 꼬마가 가기에는 먼 거리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상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용감하고 엉뚱한 데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호연이 또래 아이들이 아빠 엄마와 함께 쥐불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스치며 후회가 밀려왔다. '오늘은 축구하지 말 걸 그랬어, 호연이 녀석 데리고 와서 불 깡통이나 돌렸으면 잃어버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한쪽에는 대형 무대가 세워져 있고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도 북적였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 명함 돌리기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꽤 흥미로운 구경거리였지만 초조한 탓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 틈을 헤집고 다니면서 찾아보았지만 호연 이는 없었다. 무대 사회자에게 호연이를 찾아 달라는 방송을 부탁했다. 잠시 후 방송이 나왔다. 연락처를 남겨 두고 그 곳을 떠났다.

 

'결심' 경찰서에 신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 요청

 

다시 끔찍한 상상이 밀려 왔다. 몇 년 전 안양에서 벌어진 혜진 예슬양 사건, 그 이후 벌어진 갖가지 어린이 유괴 사건, 대구에서 벌어진 개구리 소년 사건까지. 머리를 흔들어 털어 버리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이제 결심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경찰서에도 연락하고 동네 자율 방범대에도 연락했다. 또 놀이터에서 윷놀이, 족구 하던 형님, 동생들에게도 연락했다. 경찰들, 마을 형님, 동생들 모두 자기 일처럼 도와 줬다.

 

신고가 들어가자마자 순찰차가 놀이터 주변을 탐문하기 시작했고 자율 방범대 차도 마을 곳곳을 누비며 호연이를 찾기 시작했다. 또 놀이터에 있던 동네 형님 동생들도 호연이 찾기에 나섰다. 다행인 것은 동네 형님 동생들이 호연이 얼굴을 안다는 것이다. 평소 마을 사람들과 이물 없이(임의 없이) 지낸 것이 참 다행이다 싶었다.

 

난 호연이가 다니는 어린이 집 부근 뒷산을 뒤지기로 했다. 차에서 내려 뒷산으로 오르려 할 때 쯤 아내한테서 전화가 왔다.  

 

"호연이 찾았어."

"뭐 찾았다고 어디서?"

"아 이 녀석이 놀이터에서 만나 함께 놀던 친구 집에 가서 놀았다지 뭐야...놀이터 부근."

"알았어 금방 갈게."

 

놀이터에 가보니 호연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또래로 보이는 꼬마와 모래 놀이를 하고 있었다. 번쩍 안아들고 "너 이 녀석 엄마한테 말도 하지 않고 사라지면 어떡해" 하고 눈을 흘기니 "아빠 나 많이 찾았어" 하며 천연덕스럽게 싱긋 웃는다.

 

걱정했던 순간이 찾아왔다. 호연이가 '쨘' 하고 나타났으니 웃음거리가 될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겨우 1시간 30분 정도 눈에 보이지 않는 아들을 찾는답시고 난 동네방네 설치고 다니며 호들갑을 떤 꼴이 된 것이다.  

 

도움을 요청했던 사람들한테 일일이 악수를 청했다. 웃음으로 맞아 주었다. 비웃음이 아니라는 것은 환한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호연이와 함께 지구대를 찾아가서 고마움을 전했다. 역시 환한 웃음으로 맞아 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호들갑이었다. 내 어릴 적을 생각 해 보니 호연이만할 때 친구들과 함께 산으로 들로 온종일 쏘다녔것 같다. 밥 먹을 때만 잘 맞춰 가면 부모님도 별로 나무라지 않으셨다.

 

근데 난 왜 이럴까!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후유증이다. 각종 어린이 유괴 사건을 자주 접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후유증이 발생 한 것이다. 한마디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다.

 

28일 대보름날, 13살 소녀 실종 사건이 뉴스에 났다. 실종 된 지 사흘 동안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다고 한다. 경찰은 납치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뉴스를 들으면서 호연이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봤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내 모습이 안쓰럽다. 안도하는 내 모습이 아무래도 이기적인 듯해서 기분이 살짝 나빠지기도 하고. 어쨌든 안타깝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일까!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태그:#호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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