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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을 나오면 바로 예전 '서대문(돈의문(敦義門))터'가 나온다. 현재는 경향신문사 앞 사거리 정도로 알려진 이곳은 1396년(태조 5) 한양 도성의 제2차 공사가 끝나고 8문이 완성되던 때 처음 세워졌다. 1915년 일제의 도시계획에 따른 도로확장 공사로 인해 철거되고 말았다.

서대문
▲ 돈의문 서대문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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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인 모습은 돌축대 한 가운데에 무지개문을 큼지막하게 내고 축대 위에는 단층 우진각지붕집의 초루(譙樓)를 세우고 둘레에 낮은 담을 설치했다. 서울시에서 조만간 복원을 한다고 하니 기쁜 일이다. 현재 이곳에는 보이지 않는 문을 알리는 작은 표식만이 있을 뿐이다.  

화교교회
▲ 화교교회 화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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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횡단보도를 건너면 건축가 김수근 선생의 작품으로 1968년에 완공된 '경향신문사' 건물이 보이고, 연이어 우측 골목 안에는 1958년에 설립된 '한성화교교회'가 있다. 이곳에는 교회와 작은 도서관이 있어 화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교육원
▲ 프란치스코교육원 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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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이 보인다. 정동길에 1988년 개원했는데, 이후 피정과 각종 모임 등을 위한 도심 속의 영성 쉼터로 열려있다. 평일미사, 고해성사, 평일 혼인예식, 음악, 예술, 공연 등 더욱 친근하고 알찬 교육,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가톨릭 신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영적 유익과 행복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이곳은 원래 '어서각(御書閣)터'로 최규서가 집안에 있던 영조의 어필을 보관하는 곳이다. 경종과 영조임금시대에 영의정을 지낸 최규서는 영조의 집권에 불만을 품은 무신란을 평정한 공로를 세웠지만, 그 공을 문서에 기록하는 것을 원치 않아 영조가 일사부정(一絲扶鼎)이라는 어필만을 내려 보관하게 했다고 한다. 참으로 충신다운 표상인 것 같다.

정동
▲ 정동아파트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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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정동에 몇 안 되는 민가인 '정동아파트'와 아파트 1층의 'GUGA도시건축사무소'가 보인다. 이곳에선 서울대와 동경대에서 건축을 공부한 건축가 조정구 소장이 주축이 돼 매주 수요일 서울시내를 답사하고 한옥건축을 연구한다. 경주의 한옥호텔 라궁을 설계하여 유명한 곳이다. 조정구 소장에 대해서는 출판 번역가로 활동 중인 내 친구 박영민과 서울대 건축과 동기라 이야기를 많이 들어 친근감이 있다.  

캐나다
▲ 캐나다대사관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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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요즘 동계올림픽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캐나다 대사관'이 있고, 대사관 앞에는 500년 회화나무가 나의 눈길을 끈다. 특히 여름과 가을에 참 인상적인 곳이다. 그리고 길을 건너면 '창덕여중'이다. 옆에는 '이화여고'와 '이화외고'가 있다. 최근 창덕여중의 건물 공사로 시끄러워서 인지 이화여고와 분쟁이 일기도 했다고 한다.

회화나무
▲ 500년 된 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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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여중 터는 구한말 '관립법어학교'가 있던 자리다. 다시 말해 법어(불어)를 가르치던 외교관 양성학교였다. 원래 정동 인근에는 대사관이 많고 외국인이 많이 살던 곳이라 외국어학교가 있었던 것이다. 다시 길을 건너면 예술중학교인 '예원학교'가 있다. 미술, 음악 등의 영재들을 가르치는 중학교다.

이어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정동근린공원'과 그 안쪽에 있는 덕수궁과 미국 대사관저, 언덕 위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터'가 보인다. 한국 근대사의 가장 큰 아픔 중에 하나인 고종 임금의 아관파천 현장이다.

러시아
▲ 러시아 공사관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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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사관은 조선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로 러시아인 건축가 사바친이 설계한 것이다. 이웃한 덕수궁의 중명전도 그가 설계를 한 황실도서관 건물이다. 고종은 인근에 위치하고 있던 러시아 공사의 처제였던 손탁이 경영하던 손탁호텔에서 커피를 가져와 즐겨마셨다고 전한다.

3층짜리 건물 하나만 달랑 남은 러시아 공사관을 보고 난 다음, 아래에 있는 정동근린공원에서 재미난 표식을 하나 발견한다. 1888년 이곳에 한국 최초의 가톨릭 수녀회에서 세운 '정동수녀원'이 있던 자리를 알리는 표식이다. 이곳에 수녀원이 있었다니 재미있다.

수녀회
▲ 정동수녀회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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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사 자리에는 예전에 러시아 정교회가 있었고, 이곳에 수녀원, 좀 더 나가면 정동제일교회가 있었으니 인근에 참 교회가 많았구나 싶다. 현재의 화교교회까지 합하면 굉장하다.

극장
▲ 정동극장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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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나와 신아일보사 별관, 일제시대부터 서울우유공장으로 쓰였던 정동극장과 마주한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인 정동제일교회, 현재 한참 공사 중인 황실도서관이었던 중명전 등을 둘러본다.

교회
▲ 정동제일교회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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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정동 사거리를 둘러본 다음, 옛 신아일보사, 배재학당 터와 역사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을 둘러본다. 이곳에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퇴계 이황 선생의 서울 집터가 바로 이곳이었다는 표지석이다. 율곡 선생의 집터가 인사동의 SK건설빌딩이었다는 사실과 이황 선생의 집터가 서울시립미술관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반갑다.

박물관
▲ 배재역사박물관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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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이전에 우리나라 최초의 법원인 평리원인 있던 자리로 일제가 다시 법원으로 쓰다가 해방이 된 이후에도 한국의 대법원으로 쓰였다. 1995년 대법원이 강남으로 이전을 한 다음, 현재는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1928년에 지어진 건물이라 앞면을 남겨두고 뒷면은 전부 새롭게 지어진 건축물이다.

미술관
▲ 서울시립미술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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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미술관을 둘러 본 다음, 점심을 우동으로 간단히 먹고는 덕수궁으로 갔다. 대한제국의 정궁으로 쓰였던 덕수궁은 월산대군의 옛 사저로 임진왜란 이후 한양에 복귀한 선조가 머물 곳이 없어 터를 잡은 곳이다.

이황
▲ 이황 선생 생가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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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광해군은 이곳에서 즉위식을 하고 나서 '나라의 운을 기린다'는 의미에서 경운궁이라 불렀다가, 그뒤 구한말 고종이 왕위를 잃고 이곳에 혼자 남아 '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다.

덕수궁이 세종대왕
▲ 세종대왕 덕수궁이 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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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덕수궁을 대한제국의 심장으로 만들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덕수궁 내에 석조전을 만들어 조선을 서구식 근대국가로 탈바꿈하려고 노력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고종이 강제 폐위를 당한 후 석조전은 만찬장 정도로만 쓰이다가 일본인들의 의도대로 미술관으로 쓰임이 바뀌게 된다.

덕수궁
▲ 정관헌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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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덕수궁은 이웃에 태평로가 확장되면서 터가 대폭 줄고, 영국 대사관, 미국 대사관저 등이 들어오면서 점점 줄어들었다. 현재의 모습 또한 초라하기만 하다.

우리 일행은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을 둘러 본 다음, 궁궐 후원에 속한 휴식용 건물인 정관헌으로 갔다. 커피를 즐기던 고종이 이곳에서 손님맞이를 많이 했다고 한다.

덕수궁 미술관
▲ 석조전 덕수궁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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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석조전과 그 앞에 있는 서양식 분수를 보았다. 대한제국이 도약을 했다면 이런 곳에 이런 미술관이 들어와 있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멸망한 제국의 영화라는 것은 허무하기만 하다. 일행은 궁궐 내부를 대략 둘러본 다음, 인사동까지 걸어가 모과차를 마시고 약과를 하나씩 먹고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해산했다.

덧붙이는 글 | 역사문화와 함께하는 종로 중구걷기 모임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daipapa.cafe



태그:#정동 ,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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