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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보랑께박물관에서 만나는 전라도사투리. 김성우 관장이 전라도사투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와보랑께박물관에서 만나는 전라도사투리. 김성우 관장이 전라도사투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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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초,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비하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적 있다. 전라남도에서 방송드라마 작가들한테 공문을 보내면서 나온 것이다. 전라남도는 드라마 작가들한테 대본작업 때부터 전라도 사투리를 제대로 써줄 것을 당부하는 공문을 보냈었다.

드라마에서 폭력배나 사기꾼으로 묘사된 인물이 비정상적으로 전라도 사투리를 남발하면서 지역이미지가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런 사례는 군부독재시절에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한동안 뜸하더니 요즘 그런 경향이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 사이에서 너무 한다는 비판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비판을 두고 영화나 방송에서 그린 가상인물에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일부의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전라도 사투리가 악역의 대상으로 등장하고 있어 다른 지역 사람들의 눈에 전라도 사람들은 모두가 악한 사람들로 각인되기 십상이다. 또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지역이미지 개선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있는 전라남도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입장이다.

와보랑께박물관에서 만난 전라도사투리들.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몰라도 정겹고 재밌는 말들이다.
 와보랑께박물관에서 만난 전라도사투리들.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몰라도 정겹고 재밌는 말들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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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투리는 그 지역의 독특한 언어 영역이다. 거기에는 지역의 넋이 배어 있고, 지역민의 정서와 문화도 녹아 있다. 그런데 특정지역 사투리가 그 지역 사람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웃음거리 수단으로 자주 악용된다면 문제인 게 분명하다. 전라도 사투리는 부정적인 인물을 묘사하기 위한 전용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라도 사투리는 삐뚤어지고 그릇된 사람들을 지칭하는 대명사도 아니다. 사투리는 독특한 언어영역이고, 지역주민들의 정서와 문화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그 가운데서도 전라도 사투리에는 남도 특유의 순박하면서도 구수한 인심이 묻어난다. 그래서 더 정겹다.

와보랑께박물관. 컨테이너 건물이었던 전시관이 지난 1월 반듯한 건물로 새로 지어져 문을 열었다.
 와보랑께박물관. 컨테이너 건물이었던 전시관이 지난 1월 반듯한 건물로 새로 지어져 문을 열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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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라도 사투리가 괄시받지 않고, 제대로 대접받고 있는 곳이 있어 관심을 모은다.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도룡리에 있는 '와보랑께박물관'이다. 여기에 가면 정겨운 전라도 사투리를 보면서 미소 지을 수 있다. 나이 든 분들은 물론 어린이들까지도 전라도 사투리를 읽어보면서 좋아한다. 외지인들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면서도 재미있어라 한다.

그렇다고 와보랑께박물관이 사투리박물관은 아니다. 생활유물전시관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박물관 이곳저곳에 전라도 사투리를 적은 목재판을 많이 세워 놓았다. 생활유물을 보기도 전에 목재판에 적힌 사투리들을 보면서 전라도를 이해하고 정겹게 느낄 수 있다.

이 간판들은 김성우 박물관장이 직접 써놓은 것들이다. 사투리 쓰는 사람들이 많이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생각나는 대로 하나 둘씩 써놓았다는 것이다.

김 관장이 전라도 사투리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건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성우 관장이 교직원으로 학교에 근무할 때다. 같이 일하던 직원이 전라도 사투리를 오지게 썼는데, 김 관장은 처음에 무지 듣기 싫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투리를 자그마치 쓰라고 구박도 했단다.

그러나 사투리를 자꾸 듣다보니 관심이 가고 또 정겨웠다고. 거기에는 우리 선조들의 살아온 모습이 녹아있고 그 시대가 들어있더라는 게 김 관장의 얘기다. 그날 이후 김 관장은 전라도 사투리에 관심을 갖고 틈나는 대로 사투리를 수집하고 채록했다.

와보랑께박물관에는 '이리 뽀짝 와바야', '오매 사삭스렁거', '암시랑토 안하당께'…. 이렇게 정겨운 전라도 사투리에서부터 '오매 징항거 호랭이는 뭐한다냐', '저 자석은 꼬라지가 드러워서'…. 등 상스러운 말까지 다 있다.

이 사투리는 박물관 곳곳에 세워진 나무푯말로 만날 수 있다. 손수건과 책자로 따로 만들어 놓은 것도 있다. 홈페이지에 접속해도 정겨운 전라도 사투리를 접할 수 있다.

와보랑께박물관. 전라도사투리가 적힌 나무표지판과 석장승이 먼저 반겨준다.
 와보랑께박물관. 전라도사투리가 적힌 나무표지판과 석장승이 먼저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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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보랑께박물관의 김성우 관장이 옛 생활용품을 들고 거기에 얽힌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와보랑께박물관의 김성우 관장이 옛 생활용품을 들고 거기에 얽힌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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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밸시런 곳이다. 와보랑께박물관에선 전라도 사투리 외에 오래된 생활용품도 만날 수 있다. 전라도 말로 벼라별 꾸꿈스런 것들을 다 모태 놨다. 박물관 전시실은 시간창고처럼 오래된 물건들로 가득하다.

옛날 흑백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부터 사진기, 타자기, 계산기, 다이얼 전화기도 있다. 나이 60이 넘은 김성우 관장이 학창시절 자취생활하면서 썼다는 곤로도 있고, 지금의 것보다 서너 배는 더 큰 밥그릇도 즐비하다. 지금은 추억 속의 얘기가 돼버린 홍두깨, 수세미 그리고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교과서와 양은도시락, 장작난로, 풍금도 보인다.

전시품들은 불과 30∼40년 전 우리 생활에서 긴요하게 쓰였던 물건들이다. 하지만 빠르게 변해온 우리의 생활에서 너무 쉽게 잊혀지고 밀려난 것들이다. 옛날에는 귀해서 보기 드물었고, 지금은 없어서 보기 드문 것들이다.

와보랑께박물관에서 만난 이발기계. 어릴 적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그 이발기계다.
 와보랑께박물관에서 만난 이발기계. 어릴 적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그 이발기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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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보랑께박물관의 김성우 관장이 양은도시락과 함께 놓여있는 냄비를 들고 학창시절 곤로에 라면을 끓여먹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와보랑께박물관의 김성우 관장이 양은도시락과 함께 놓여있는 냄비를 들고 학창시절 곤로에 라면을 끓여먹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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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관장이 옛 생활용품을 모으기 시작한 것도 우연이었다고. 20여 년 전 새로 지은 창고에 집에서 쓰던 농기구들을 늘어놓다 보니 농기계박물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는 창고도 넓고 해서 다른 집에서 버리려고 내놓은 생활용품까지도 가져다 넣어 놓고, 일부러 가서 얻어다 놓기도 하면서 하나씩 모았다.

그러다가 병영성을 보러 오는 외지인들에게 다른 볼거리를 주면 좋겠다 싶어서 박물관으로 만들어 개방했다고. 한동안 컨테이너 건물에 보관해 오던 생활용품들을, 지금은 반듯한 박물관으로 지어 진열해 놓고 있는 와보랑께박물관. 이곳에서는 가난해서 불편했고, 불편해서 더 가슴 아리던 옛 추억을 더듬어볼 수 있는, 정말 매력적인 공간이다.

빗살무늬 형식의 돌담. 지그재그로 약간씩 눕혀 촘촘하게 쌓고 그 위에 엇갈려 다시 담을 쌓았다.
 빗살무늬 형식의 돌담. 지그재그로 약간씩 눕혀 촘촘하게 쌓고 그 위에 엇갈려 다시 담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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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병영에서 만날 수 있는 옛 추억은 와보랑께박물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어린시절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풍경 가운데 하나가 골목길과 돌담이다. 골목길과 돌담은 친구를 불러내 고만고만한 어깨를 마주하고 돌아 나오던 추억의 공간이었다. 이 돌담길이 멋지게 구부러지는 곳도 병영이다.

이 마을은 병영성 기념비가 서있는 곳이다. 병영성은 전라도의 군수권을 통괄했던 병마절도사가 주둔하던 성이다. 당시 성 안에는 군사들이 머물렀고, 이 군사들은 말을 타고 마을을 순시하곤 했다. 따라서 주민들은 군사들의 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집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담을 쌓았다.

이 담이 상당히 이채롭다. 아무렇게나 돌담을 쌓은 게 아니라 지그재그로 15도 정도씩 눕혀 촘촘하게 쌓고 그 다음 층에 엇갈려 쌓은, 이른바 빗살무늬 형식을 띄고 있다. 다른 지방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형식인데, 네덜란드 사람 하멜(?∼1692)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제주에서 표류하다 선원들과 함께 압송된 하멜은 1656년부터 7년 동안 이곳에 머물렀는데, 마을 담장이 이때 쌓여진 것이라고. 하멜전시관에 가면 그때 하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고 당시 역사의 흐름도 살필 수 있다.

강진 병영성.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쌓은 석성이다. 지금은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강진 병영성.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쌓은 석성이다. 지금은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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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사업이 한창인 전라병영성지는 사적(397호)으로 지정돼 있다. 병영성은 조선태종 17년(1417)에 초대 병마절제사 마천목(1358∼1431) 장군이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쌓은 것이다. 이후 고종 32년(1895)년 갑오경장 때까지 제주도를 포함해 53주 6진을 총괄했으니 그 위치와 역할이 대단했다.

총 길이 1000m가 넘는 병영성지에는 옹성이 12개, 포루가 2개, 우물이 9개 있었고 2층 누각의 남문, 동문, 북문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동학농민전쟁 때 화재로 없어지고 성곽만 남았다. 지금은 복원 공사가 한창이지만 들어가 볼 수는 있다.

와보랑께박물관이 있는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은 영암읍과 장흥읍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병영 소재지에서 외곽도로를 타고 장흥 방면으로 2킬로미터 정도 가면 왼쪽에 돌장승이 반겨주는 와보랑께박물관이 보인다.

먹을거리도 알차다. 병영은 돼지불고기백반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곳. 연탄불에 구워낸 돼지불고기가 별미임. 철따라 바뀌는 찬도 다양하다. 그러면서도 값이 저렴하다.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햅쌀 막걸리도 여기서 만날 수 있다. 병영에는 쌀막걸리를 만드는 주조장이 있다.

돌담길과 와보랑께박물관, 그리고 돼지불고기와 막걸리. 마치 흑백사진 속의 한 장면처럼 애틋한 풍경과 먹을거리를 만날 수 있는 강진 병영. 가난해도 정겨웠던 그때 그 시절의 얘기와 풍경이 병영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햅쌀로 빚은 동동주. 강진군 병영면에 있는 주조장에서 빚은 것으로 요즘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햅쌀로 빚은 동동주. 강진군 병영면에 있는 주조장에서 빚은 것으로 요즘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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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와보랑께박물관, #병영성, #김성우, #전라도사투리, #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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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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