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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 하노이의 거리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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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서 3일째 되던 날 아침이었다. 부릉부릉. 빵빵. 그날도 오토바이 엔진소리에 눈을 떴다. 천장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에 엄지 손가락만한 도마뱀 한 마리가 죽은 듯이 붙어있었고, 천정에선 '덜덜'거리는 팬 선풍기가 제법 위태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05시. 땀이 밴 몸을 일으켜 발코니로 나가보았다. 아직 신 새벽이었지만 이미 거리는 오토바이로 뒤덮였고 전기 줄 사이로 올려다본 하늘은 오늘도 잿빛이었다.

이건, 아니었다. 내 눈 앞의 하노이는, '시클로' 바퀴살의 싱싱함과 그린 파파야의 향기를 가진,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상상하고 동경해왔던 그런 하노이가 아니었다. 대신에 새벽부터 밤늦도록 저들 오토바이가 토해내는 소음과 매연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휴, 언제부터였을까…. 시클로를 대신한 저 오토바이들. 정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여행자가 별 수 있나. 카메라와 생수통을 들고 아침 일찍 오토바이의 바다 속으로 나선다.

갓 잡아올린 싱싱한 생선들이 팔딱거린다.
▲ 새벽 어시장 갓 잡아올린 싱싱한 생선들이 팔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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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보고 집으로 가는 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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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리 돈으로 600원 하는 베트남국수 '포'를 사먹기로 한다. 칼칼한 국물에다 숙주나물과 닭살코기 고명을 듬뿍 얹어 주는 담백하면서도 그 까칠한 맛. '포'를 언제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당시 내겐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날도 길거리 조그만 나무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빵빵' 경적을 울려대며 지나가는 오토바이의 홍수를 바라보면서 포 한 젓가락을 입안 가득히 밀어 넣는 순간이었다.

문득, 우리도 오토바이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모든 일은 밖에서 지켜보면 어지러울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속도와 흐름 속에 몸을 던지면 그 곳에 또 다른 고요와 일상이 존재하는 법. 나는 여전히 '포' 미식삼매경에 빠져있는 아내를 불러 소리쳤다.

호치민에서 구찌터널까지 동행한 오토바이.
▲ 사랑스런 애마 호치민에서 구찌터널까지 동행한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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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저 속으로 몸을 던지는 거야! 저들처럼 빵빵 경적을 울려대며 맘껏 질주하는 거지!"

이렇게 시작된 하노이에서의 오토바이여행.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오토바이족들은 좌우에서 옷깃을 스치며 앞질러 달려 나갔고, 행인들은 신호를 무시하며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왔다. 심지어는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오토바이들이 수시로 중앙선을 넘나들며 마치 서로의 담력을 시험하는 듯이 보였다.

나의 양손에는 땀이 흥건해지고 정신은 몽롱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우린 도시 하노이의 중심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시간은 '출근길 러시'에 딱 걸려있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 오토바이가 양옆으로 한 뼘의 공간을 사이에 두고 달리고 있고, 앞뒤에선 조금만 브레이크를 밟거나 엑셀을 당겨도 부딪칠 만큼 오토바이들이 가까이에 있어 도무지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들과 같은 속도로 흐름에 순응하며 똑바로 달리는 것, 그 외엔 다른 길이 없었다. 내가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스크린 앞에서 컴퓨터게임을 하고 있다는 착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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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하루 일상을 실어나르는 오토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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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나란히 달리던 옆 사람과 눈이 딱 마주친 것이다. 어떻게 그 혼돈의 상황에서 그의 눈을 볼 수 있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그는 나를 향해 분명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내가 베트남 말을 알아들을 리 없었지만, 그의 외침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뼘의 사이를 두고 질주하는 그들의 세계에 들어온 어느 이방인부부에 대한 '환영사' 정도였으리라….

사실 오토바이는 베트남의 현재를 이해하는 코드라 할 만하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하노이나 호치민의 오토바이 보유율이 가구당 1대 이상이란다. 오토바이가 없는 집이 없고, 남자든 여자든 오토바이를 타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그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일하러 가고, 오토바이에 기대어 식사를 한다. 젊은 청춘들은 그러고도 모자라는지 오토바이에 마주앉아 데이트를 한다. 하노이에서 처음 오토바이를 탔던 그날 밤 아내와 난 그 모습을 보았다.

한 발 물러서면 모두다 멋진 풍경...
▲ 메콩강의 저녁놀 한 발 물러서면 모두다 멋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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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오토바이들이 곧 멋진 데이트장소가 될 것이다.
▲ 밤의 연인들 저 오토바이들이 곧 멋진 데이트장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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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거리에 노란 가로등이 켜지고 오토바이가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그들은 긴 줄을 지으며 스스로가 수많은 '오토바이벤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위에 마주앉은 연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싱싱한 키스를 나누는 것이었다. 이보다 더 달콤한 로망은 흔치 않으리.

이제 여행자는 '시클로'와 함께 해온 오랜 상상과 동경의 세계를 그만 떠나보내고 새로운 만남을 준비해야만 한다. 어찌 보면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여행자는 늘 내가 그려온 세상을 향해 떠나지만, 정작 만나는 건 내 안의 그리움이고 내가 사는 세계의 결핍일 뿐, 본디 길 위에 있는 것들이 아니다. 깨어진 환상을 딛고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순간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되는 것일 뿐….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을까.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난다.
▲ 후에의 오래된 사원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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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차례 비가 쏟아진 후의 시장.
▲ 후에의 재래시장 한차례 비가 쏟아진 후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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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타고 학교갔다 집에 가는 길.
▲ 호이안의 꼬맹이들 자전거타고 학교갔다 집에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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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호이안, 후에, 나짱, 달랏을 거쳐 수도 호치민까지 베트남 땅을 종단하는 동안 이 나라의 모든 것이 내겐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오토바이는 물론, 잿빛 하늘과 흙탕물의 바다까지도 내겐 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또 하나, 베트남여행 동안 우리에게 생겨난 버릇이 하나 있었는데,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이면 서로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건 바로, 오토바이. 오늘도 여행자를 베트남 속으로 인도해줄 친구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지금부터 연재할 기사는 2003년 10월부터 2006년 6월까지 아내와 함께 967일 동안 세계 47개국을 여행한, 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그때 만난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어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예담)로 출간했지만, 못다한 이야기가 남았습니다. 이 이야기들을 그동안 월간 <행복한 동행>에 연재해 왔는데, 이를 다소 수정하고 덧붙여서 연재할 계획입니다.

기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wetravelin



태그:#베트남, #오토바이, #하노이, #길은사람사이로흐른다,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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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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