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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이 18일 대법원 업무보고 자리에서 일제히 사법부를 흔들고 나섰다. 자유선진당·미래희망연대(옛 친박연대)도 한나라당의 공세에 합류했다.

 

이전부터 주장하던 우리법연구회 해체 요구는 기본. 이날은 또 사법행정권 강화·법관 평정 강화를 통한 '젊은 판사 솎아내기'가 덧붙여졌다. 전날(17일) 김형근 전 교사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무죄를 선고한 전주지법 형사1단독 재판부의 판결이 발단이 됐다.

 

김 전 교사는 지난 2005년 자신이 가르치는 중학생·학부모 180여 명을 '남녘통일·애국열사 추모제'에 데려가고 각종 이적 표현물을 인터넷 카페에 게재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검찰로부터 징역 4년·자격정지 4년의 중형을 구형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씨가 추모제 전야제에 참가한 사실은 인정되나,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구호를 외친 행위는 자유민주주의의 정통성을 해칠 만한 실질적 해악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김 전 교사가 게재한 글에 대해선 그 이적성을 인정했지만 "북한 활동을 찬양·고무·선전·동조할 목적에 대한 증명이 없다"며 검찰 기소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판결에 대해 한나라당 등 보수파 법사위원들은 '격분'했다. "붉은 군대가 내려오면 이런 판결을 내린 사람이니 봐달라고 할 것이냐"(손범규 한나라당 의원), "이념의 붓에 독선의 먹물을 찍어 판결문을 쓰면 안 된다고 했다"(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 등 거친 표현이 쏟아졌다.

 

최병국 "친일파 득세하는 나라에서 왜 판사하나, 김일성 수령 모셔라"

 

 

"요즘 재판을 보면서 '야 이래도 되는구나,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생각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법부의 독립을 빙자해 실정법을 정면으로 부정 혹은 위반하고, 자의적으로 원칙도 없는 재판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최병국 한나라당 의원은 김 교사의 무죄 판결을 맹비난했다. 최 의원은 "혹자들은 사법부 재판을 보면 '미친 사람이 널뛰는 식'이라고 한다"며 "그 원인은 후배 법관에 대한 지도를 포기했고 후배들의 집단행동에 주눅 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문제의 전주지법 국보법 무죄 판결문 중 "해악성은 있지만 피고인에게 이적성이나 이적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한 부분을 들어, "사람은 죽였지만 그 사람에게 살인의 고의가 없다고 한 것"이라며 "이런 판사가 재판을 해서 되겠냐"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이 사법개혁 1순위로 두고 있는 '우리법연구회'에 대해서도 최 의원은 "법원 내 이념적인 서클이 있는데 그것을 학술단체로 위장해 (법원이) 두둔하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 그는 특히 우리법연구회 2005년도 논문집에 실린 내용을 줄줄이 읽으며 "단순한 학술단체의 회원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냐"며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을 몰아세웠다.

 

박 처장이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대한 반성에서 나올 수 있는 글"이라고 답하자 최 의원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그는 논문집 중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내에서 누더기로 통과됐다는 비판적 인식을 담은 글을 지목하며 "친일파가 득세하는 나라에서 왜 판사하냐, 북한에 가서 김일성 수령을 모시든가 하지"라고 우리법연구회를 공격했다.

 

손범규 "시국선언·국보법 무죄 시리즈... 국민 불안하게 하려 작심했나"

 

다른 의원들도 전주지법 국보법 판결문을 한 자구씩 뜯어가며 강도 높게 사법부를 비난했다.

 

손범규 한나라당 의원은 "재판부가 (김 교사의 행동에) 실질적 해악이 없다고 무죄 판결했는데 핵무기가 어디서 터져 몇 십만 명이 죽어야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실질적 해악이 오냐"며 "사법부가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려고 작심했나"고 비난했다.

 

"시리즈로 시국선언 사건, 국보법 사건 무죄 내리고… 전방에 총 들고 있는 군대만 나라를 지키나? 나라가 망했을 때, 붉은 군대가 내려왔을 때 나 이런 판결을 한 사람이니 봐달라고 할 것인가. 뭐 이런 판결이 다 있나. 이런 분들을 법관 재임용을 안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식의 판결이 나오지 않게끔 법원행정처에서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도 "우리법연구회와 같이 이념적으로 편향된 법관 모임의 영향을 받은 젊은 판사들이 한마디로 마음대로 판결을 내리고 있다"며 "국민들은 사법부가 우리 헌법의 근본 이념인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잘 지키고 있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사법부가 무슨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민주노동당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8번이나 기각시키는 등 국가공권력을 무력화하고 있다"며 "사법부도 법질서 유지라는 마지막 보루라는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은 연이은 의원들의 공세에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1심 판결인 만큼 상급심에서 다른 판결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개인적 견해를 밝힐 수 없다"고 일관되게 답했다.

 

그는 또 "1심 판결에 대해 국회에서 이런 문제를 논의하는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며 "판사들이 외부기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법연구회가) 실정법에서 벗어난 행위를 하지 않도록 지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신영철 땐 사법부 독립 강조하던 한나라당, 불리하니 말 바꿔"

 

민주당 의원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질의 공세를 '사법부 흔들기'로 규정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사법행정권을 발동해 독립된 법관에게 재판 간섭하라는 이야기를 국회에서 공공연히 할 수 있겠냐"며 "신영철 대법관이 재판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 야당이 사퇴를 요구할 때 '사법부 독립'을 강조했던 한나라당이 말을 바꾸었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이어, "1심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면 항소를 통해 하면 된다"며 "유리할 때 (하던) 말과 달리, 불리할 때 사법행정권 발동해 재판권 간섭하라 이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춘석 민주당 의원은 "처음엔 우리법연구회를 이념적 편향성이 있다 공격하더니, 문제의 판결을 내린 판사들이 연구회 소속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니까 연구회가 배후에 있다고 주장한다"며 "무리하게 기소했던 검찰의 과오를 다 묻(어버리)고 법원만 타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어, "최근 일각에서 1970년대 일본의 '청년법률가협회' 해체 건을 예로 들어 우리법연구회 해체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직접적으로 편지를 보내 재판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 해체 사유였다"며 "이를 예로 들자면 신영철 대법관부터 사퇴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태그:#사법부 흔들기, #법사위, #사법개혁, #우리법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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