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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6일)는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더니 급기야 몸살로 번져 밤에는 꼼짝없이 앓아 누워버렸다. 명절 증후군과는 전혀 무관한 이 현상은 고스란히 스스로 작심한 여행 때문이다.

 

제주도 바닷가를 따라 한 바퀴를 돌아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벌써 이렇게 무모하다는 판단으로 돌아서게 만들고 있다. 제주도 바닷가의 겨울은 스산하고 매섭다. 흐린 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어제처럼 화창한 날에도 찬 바람과 공기는 머리, 코, 손을 가리지 않고 모든 노출 부위를 시리게 한다. 그런데도 쉼 없이 이 바다, 저 바다로 내달아 다녔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몸이 으슬으슬하여 옷 소매를 끌어당기고 있다.

 

둘러본 곳은 다끄내포구 옆에서 시작하여 어영마을까지이다. 포구를 나와 길을 따라 서쪽으로 걸으면 바로 '레포츠공원'이라 안내하는 버스정차 표지판이 보인다. 좀 더 올라가면 해안경비초소가 보이는데 그 앞 바다가 볼 만한 풍경을 선사한다. 이리 좋은 풍경을 눈 앞에 두고 경계가 가능할까 싶은 이 곳은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이 우뚝, 또는 길쭉하게 놓여 있다.

 

보다 서쪽으로 바위를 타고 걸으면 '샘물터'가 있다. 횟집에서 끌어댄 검은 파이프들이 놓인 끄트머리 어디쯤에 자리한다. 물론 이 부근에 사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유명무실한 '터'임은 당연한 일이다. 쓸모를 잃은 시멘트 벤치가 그 쓸쓸함을 더한다.

 

울퉁불퉁한 갯바위를 밟고 밟아 서쪽으로 더 가다 보면 파릇한 식물들이 낮게 움츠려 살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갯질경이, 번행초 따위가 그것인데, 순비기나무도 낡은 빛깔의 군더더기 없는 몸으로 엎드려 겨울을 나고 있다. 이 순비기나무는 특히나 해수욕장 같은 모래사장이 있는 곳에 없어서 안되는 식물이다. 얽히고 설킨 덩굴로 자라는 순비기나무의 뿌리와 줄기가 모래를 묶어 유실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이 나무의 열매는 맑고도 찡한 냄새를 내는 덕에 베갯잇으로 넣어 쓰기도 한다.

 

언덕을 잔디로 조성한 너른 공간이 다가온다. 수근연대가 있는 곳이다. 외적의 침입을 경계하고자 만든 것이 연대인데 제주도내 여러 높은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말끔한 겉모습을 보면 이 연대도 원래 쌓았던 모습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표석은 연대만을 설명하고 있다. 말없는 안내자 역할을 담당하는 표석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수근연대라고 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근'은 '다끄내'를 이두식으로 적은 것이니 '1박 2일'의 이수근과는 관련이 없다.

 

제주목사를 지낸 이형상이 만든 '탐라순력도' '병담범주' 그림에 나온 연대가 바로 이 곳이다. 이밖에 '큰연디', '족은연디'라는 이름의 지명이 더 있는데 어느 지점인지 정확히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수근연대보다 서쪽 끝에 '까마귀쪽나무'가 아주 작은 숲을 이룬 것이 보인다. 이 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얕은 돌담으로 조성해놓은 것을 알게 된다. 이 곳에 신당이 있다. 연대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해서 '연딋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더 있는지 모르지만, 두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나는 바다를 바라보는 쪽 돌담에 기대어 있고, 다른 하나는 스레트로 지붕을 얹은 건축물 안이다. 별다른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오랫 동안 쓰이지 않은 듯하다.

 

 

이곳을 빠져나와 다시 바닷가 갯바위로 든다. 두 군데에 샘물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위치에 따라 '동물', '섯물'로 불렀다. 하지만 '동물'은 그 위까지 이어진 산책조망로 때문에 가까이 가기 어렵다. 쓸모가 없어진 샘물이니 이렇게라도 보탬이 되는 것에 만족스러워할 일인가보다.

 

'섯물'은 계단까지 놓여 있어서 쉽게 다가갈 수 있다. 표석은 '다끄내물'이라고 잘못 적혀 있다. 또한, 안을 보면 녹색으로 물들어 부영양화되어 있는데 이는 주변에 늘어선 횟집, 카페 따위의 영향으로 짐작된다.

 

조금더 걸어 오면 '어영마을'이라는 버스정차 표지판이 수줍게 서 있다. 뭍 쪽을 보니 여러 카페와 횟집들로 늘어선 사이에 조그맣게 고개를 내민 초록색 슬레이트집 역시 수줍게 다가온다. 그리 길지 않은 골목 막은창(막힌 곳)에서 들여다보니 그저 서너 집의 주택이 보일 뿐이다.

 

 

서쪽으로 걸어 어영소공원에 다다르면 큰 바람이 쉴새 없이 몰아치는 겨울바다의 진면목을 만끽(?)할 수 있다. '수근연대'까지 이어졌던 1차 경사 길이 이곳에서 꼭지점을 이루었다가 아래로 급하게 내려가는 아주 높은 벼랑지대이기 때문에 음악이나 문학에 쓰이는 용어인 '클라이맥스'가 떠오르는 곳이다.

 

게다가 화창하지만 파도가 높은 이런 날에 보는 바다는 시원하다 못해 시린 풍경을 자아낸다. 언덕에 서서 벼랑 아래를 내려다 보니, 높은 파도는 갯바위를 무심하게도 내려치고 있다. 그 다음엔 하얀 포말을 일으켜 맴돌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데 그 하얀 빛깔이 너무도 눈에 시린 것이다.

 

차를 몰고 온 사람들이 차 안이나 밖에서 경치를 보거나 사진도 찍곤 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와중에 운동복을 입은 몇 사람이 걷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겨울 바다는 비록 내게 몸살을 주었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도 보여 준 것이기에 사랑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보다. 아래는 이곳 풍경을 담은 사진, 감상하시기 바란다.

 

ⓒ 이광진


태그:#제주도, #수근연대, #어영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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