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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과 고창의 고인돌을 답사한 뒤, 한동안 강화군을 찾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머리를 지배했다.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세 지역의 고인돌들을 모두 봐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지난 1월 26일 오후 1시 무렵 서울 개봉역 부근에서 버스를 타고 강화군으로 향했다.

강화의 고인돌은 화순·고창의 수천 개에 비하면 그 숫자가 많지 않다. 전체 150여 개 중에서도 70개만이 세계유산에 지정된 것. 하지만 강화의 고인돌은 양보다 질이라고나 할까.  교과서에 등장하는 유명한 '강화 고인돌'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인천 강화 '교과서 속 고인돌', 멋지다!

신성한 제단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태양신의 힘을 빌려 그림자나마 울타리 안으로 침범(?)해 보았다.
▲ 강화도 고인돌 신성한 제단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태양신의 힘을 빌려 그림자나마 울타리 안으로 침범(?)해 보았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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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박물관 공사로 분주하던 고인돌공원에서 만난 이애경 문화관광해설사는 설명을 부탁하자 추운 날씨에도 선뜻 고인돌이 서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오후 4시가 넘은 무렵 강렬한 태양빛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넓은 지역에 혈혈단신으로 서 있어서인지 고인돌의 생김생김은 저절로 감탄을 자아냈다.

"강화도 고인돌(정식 명칭은 '강화도 지석묘(支石墓)')은 이른바 탁자식으로 분류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인돌로 동북아시아 고인돌의 흐름과 변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유적입니다. 해발 30m 정도 높이에 홀로 서 있는 모양새를 보면 주변을 아우르는 듯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아마도 무덤보다는 제단 기능을 하지 않았을까 추정됩니다."

이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강화의 고인돌들은 고려산의 북쪽 지역에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따라서 한 번에 여러 군데를 돌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빨리 저무는 겨울 해를 감안, 이 해설사의 추천으로 오상리 고인돌을 향해 바삐 발길을 돌렸다.

강화 오상리 고인돌에는 '고인돌 지킴이' 푯말이 붙어있다. 고인돌 관리에 큰 의미가 있다.
▲ 고인돌 지킴이 강화 오상리 고인돌에는 '고인돌 지킴이' 푯말이 붙어있다. 고인돌 관리에 큰 의미가 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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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리 고인돌은 나지막한 산등성이에 10여개 정도가 모여 있었다. 크기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양한 모양으로 봐서 가족묘로 보였다. 이곳에는 이전에 봤던 고인돌과는 다르게 '고인돌지킴이' 푯말이 붙어있었다. 고인돌 하나하나에 지킴이 이름을 써 넣은 것이다. '고인돌실명제'쯤 될 것 같은데, 사소해 보여도 관리 차원에서는 이만한 게 없을 듯싶었다.

강화군청 문화재과 관계자는 "고인돌지킴이는 10여년 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꾸린 모임"이라며 "예산과 인력 부족 때문에 여러 군데에 분포한 고인돌들을 관리하기 힘든데 이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고창·화순의 고인돌과 강화의 고인돌은 여러 면에서 다르다"며 다음과 같이 하소연했다.

"강화의 경우는 다양한 문화재들이 존재하고 여러 지역에서 개발도 이뤄지고 있어 고창이나 화순과는 달리 고인돌 관리와 홍보에 집중하기 힘든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많은 탐방객들이 찾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치단체나 문화재청 등이 주민들의 사유지 등을 제대로 관리하고 보상할 수 있을 때 규제나 개발을 했으면 합니다."

세계 하나뿐인 '해중(海中) 고인돌'이 제주도에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현무암 덩어리에 지나지 않지만, 덮개돌 아래쪽을 다듬은 흔적은 분명해 보인다.
▲ 제주도 해중 고인돌 멀리서 바라보면 현무암 덩어리에 지나지 않지만, 덮개돌 아래쪽을 다듬은 흔적은 분명해 보인다.
ⓒ 제주고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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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고인돌을 알기 위해 현장 답사를 바탕으로 여러 문헌들을 참고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제주도 해안에 고인돌로 추정되는 조형물이 있음을 알았다.

그동안 고인돌 답사와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고인돌의 숫자와 조성 연대 등에서 서로 엇갈리는 정보들을 주었다. 하지만 유독 "고인돌은 집단정착생활이 가능했던 농경사회에서 조성했다"는 내용에서는 한 목소리를 냈다.

청동기 시대 대규모 인력이 정착하는 데는 벼농사와 같은 농경이 바탕이 되어야 했다. 거대한 고인돌을 세우려면 수많은 노동 인력이 필요했다는 점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물론 부분적으로 어로와 수렵 활동도 했지만 이는 큰 의미가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강창화 박사(제주고고학연구소 소장)는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는 곳에 서 있는 제주도의 조형물(일명 '해중 고인돌')에 대해 "기원 후 2세기 무렵 조성된 것으로 파악되는 이것은 고인돌이 맞다"며 "바다에서의 어로 활동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단이나 어업 활동 중 사망한 사람의 무덤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직 학술적으로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지만, 밀물 때 덮개돌 부분까지 차올랐다가 썰물 때 전체 모습을 드러내는 이 조형물이 '해중 고인돌'이 맞는다면, 이는 '고인돌의 농경사회 조성배경'을 벗어나는 아주 예외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번 답사기에서는 빠졌지만, 앞으로 세계자연유산인 '제주도의 화산섬과 용암동굴'을 찾아 제주도에 갔을 때 '해중 고인돌' 현장답사기를 직접 전할 것을 약속드린다.

'자연과 물을 보존하라' 고인돌은 침묵시위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눈을 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흰머리 나부끼는 산신령 같다. 고인돌 위에 쌓아 놓은 돌탑은 어떤 소망을 담고 있을까.
▲ 화순의 고인돌 눈을 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흰머리 나부끼는 산신령 같다. 고인돌 위에 쌓아 놓은 돌탑은 어떤 소망을 담고 있을까.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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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의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곳곳에 분포하고 있는 고인돌들은 약 3만 5천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북한이 주장하는 1만 5천개를 더할 경우 5만 개를 뛰어넘는다(분포 지역이 워낙 넓고 숫자도 많다 보니 전문가들에 따라 의견 차이가 존재한다).

이는 고인돌을 비롯해 선돌, 열석 등 '거석(巨石, 큰 돌)문화'로 집계된 전 세계 거석물(유네스코 약 7만 3천개에서 7만 5천개 추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화순의 596개, 고창의 447개 그리고 강화의 70개 등 모두 1113개에 이른다. 단체 금메달이라 해도 이만한 숫자를 지닌 세계유산이 또 있을까. 하기야 집 앞마당에도 있고 뒤뜰 장독대 옆에도 있으니 고인돌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은 없을 터, 한 마디로 우리나라는 거석문화에 있어 세계 1위 국가다.

3일에 걸쳐 둘러 본 세 지역의 고인돌들은 세계유산답게 양과 질, 내용과 형식에서 모두 특별했다.

화순의 고인돌은 답사 당시 지난 연말 짊어졌던 폭설의 흔적을 아직 벗어내지 못했다. 덮개돌 위에 내려앉은 흰 눈은 인적 없는 곳에서 무정한 세월을 이겨내느라 몸의 기력을 소진한 할아버지의 백발을 닮아 보였다. 여행이 즐거운 건 뜻하지 않는 기억을 선물로 받기 때문이다. '화순 고인돌'은 그래서 흰 머리 나부끼는 '산신령'으로 떠오른다.

왼쪽에 보이는 것이 유적지 내 주민들을 이주시키느라 만든 한옥마을이다. 멀리 보이는 산자락에 고인돌이 줄 지어 있다. 고인돌박물관 옥상에서 바라 본, 사람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 풍경이다.
▲ 고창 고인돌 유적지 전경 왼쪽에 보이는 것이 유적지 내 주민들을 이주시키느라 만든 한옥마을이다. 멀리 보이는 산자락에 고인돌이 줄 지어 있다. 고인돌박물관 옥상에서 바라 본, 사람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 풍경이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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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의 고인돌도 특별한 기억을 남겼다. 고인돌 유적지 내에 살던 몇몇 주민들은 고인돌박물관 부근으로 집을 옮기는 불편을 감수했다. 군청은 멋진 한옥마을을 조성해 주민들의 삶을 먼저 보듬은 뒤에야 고인돌 유적지를 정비했다. 죽은 이의 무덤에게 산 자의 터전을 양보한 모양새는 사람이 자연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인상에 남는 건 강화 오상리 고인돌도 마찬가지였다. 고인돌 주변에는 봉분 2개가 봉긋 솟아 있었다. 고인돌과 봉분은 30m 남짓 떨어져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그들의 시간 격차는 수천 년을 넘나든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던 옛날 사람들과 자연으로 되돌아간 오늘날 사람들이 빚어낸 멋진 합작품이다.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고인돌에 감탄한 것은 많은 숫자에도 있겠지만, 이렇게 고인돌 하나하나가 자연과 한데 어울려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멀리 보이는 봉분과 바로 앞의 고인돌이 수천 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함께 있는 모습은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말없이 알려준다.
▲ 강화 오상리 고인돌과 무덤 멀리 보이는 봉분과 바로 앞의 고인돌이 수천 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함께 있는 모습은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말없이 알려준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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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는 더 이상 발전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의 고인돌이 세계 1위일 수 있는 비결이다. 세계유산에 지정되며 우리나라 곳곳의 자연을 지켜낸 고인돌은 수천 년 간 한결같게 농경사회를 지탱하던 '생명수'를 바라보고 있다(답사를 하며 접했던 수많은 고인돌들의 덮개돌 머리방향은 정확하게 물이 흐르는 곳을 향해 있었다).

어쩌면 '세계유산 고인돌'은 '4대강 사업'처럼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빛의 속도로 국토를 신음하게 만드는 우리에게 '자연과 물을 보존하라'는 강력한 경고를 전하기 위해 수년 천간 버텨오며 침묵시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태그:#고인돌, #세계문화유산,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해중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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