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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새싹이다."

땅을 뚫고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차가운 겨울의 심술로 인해 얼어붙은 대지의 단단함도 그 힘을 막아내지는 못하였다. 아직 삭풍의 위력이 남아있지만 새싹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새싹의 기상을 통해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수선화 새싹. 고개를 쏙 내민 모습이 경이롭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초록 색깔로 빛나고 있어 가슴에 박히고 있었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마음에 환한 얼굴로 다가왔다.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나를 질책하고 있는 듯했다. 겨울이 아무리 심술을 부려도 찾아오는 봄을 막아낼 수는 없다는 점을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집을 나설 때는 옷깃을 세워야했다. 얼굴을 할퀴는 겨울바람이 매서웠다. 봄을 기다리고 있는 마음은 앞서고 있었지만 피부에 와닿는 느낌은 겨울이었다. 조급하게 서두른다고 하여 달라질 것이 없다는 점을 온 몸으로 실감해야 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봄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바람 사이로 달렸다. 전북 정읍시 내장동 내장사로 향하였다. 산사를 찾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음에 놀랐다. 등산복 차림을 한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겨울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겨울에 밀려 아랫목만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바보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일주문을 지나 단풍 터널을 지나가는데 반갑게 맞이해주는 친구가 있었다. 돌 틈 사이를 가볍게 드나들고 있는 다람쥐들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활기가 넘치는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작은 구멍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들의 활동에 겨울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사천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연못의 물이 꽁꽁 얼어 있었다. 산사에는 목탁소리가 공명되고 있었다. 극락전에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기도하는 정성으로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 지극정성으로 기도하게 되면 하고자 하는 일이 모두 다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기도하는 소리가 아름다운 화음으로 다가오는 까닭일 것이다.

 

수선화 새싹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곳은 내장사 대웅전 뒤 화단이었다. 오래된 탑이 서 있는 곳이었다. 얼마나 많은 세월에 깎였는지, 탑은 닳아 있었다.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아서 더욱 더 정감이 가는 것인지로 모를 일이었다. 탑 사이에는 사람들의 기원을 담은 작은 돌멩이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뭔가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원력이 담겨 있어 성스럽게 보였다.

 

 

사람들의 원력이 넘쳐서 그 힘이 새싹에게까지 전해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개를 내밀고 있는 새싹들이 모습이 아름답다. 최선을 다 하여 끊임없이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세상에 적응하고 세상을 더욱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알고 충실하게 채워갈 때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삭풍에 고개를 내민 새싹은 인생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아픔의 연속이다. 넘어야 할 고개는 높고 극복해야 하는 고통은 많다. 그러나 그 모든 가시밭길이 있기에 인생은 즐거워지고 신바람을 낼 수 있다. 어려움이 없다면 인생은 무미건조할 뿐만 아니라 단조로움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 분명하다.

 

 

겨울의 삭풍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새싹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따뜻한 여름날에 새싹을 틔어내는 일은 놀랄 일이 아니다. 역경 속에서 새싹을 틔어내고 있기 때문에 경이로움을 가질 수 있으면 감동할 수 있다. 고난을 극복해내씩에 세상이 웃을 수 있고 내일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견뎌내야 하는 아픔이 클수록 더 큰 웃음을 터뜨릴 수 있다.

 

의욕만 앞선다고 만사형통일 수는 없다. 새싹을 고개를 내밀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혹한 속에서도 봄을 맞이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차근차근 성실하게 채워왔기에 가능하였다. 한 번 시작하였으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추진하였기 때문에 찬바람 속에서도 새싹을 당당하게 틔워낼 수 있었다.

 

 

산사의 뒤안길에서 고개를 내민 수선화 새싹을 통해서 봄을 보았다. 겨울의 삭풍이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제풀에 힘이 꺾일 것이란 점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녹색의 경이로움을 발산하고 있는 새싹에는 봄이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봄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을 성실하게 채워가게 된다면 내일의 희망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새싹이 가슴에 꽉 채웠다.<春城>

덧붙이는 글 | 데일릴언


태그:#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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