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줍는 노모
▲ 종이 박스 줍는 노모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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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로 회사에서 1차로 정리해고 당한
나는 이제 만나는 친구가 없게 되었다.
더구나 보증금 오백에 매월 15만원의 월세방에 살게 되면서
친구에게서 걸려 온 전화 받는 것 조차 부담스러워졌다.

노모는 오늘도 새벽 일찍 희망근로 현장으로,
고 3 짜리 쌍동이 동생들은 학교 마치면 취직 자리 찾아다니기 바쁘고
노부는 한끼라도 바깥에서 해결하는게
가계에 조금이라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인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무료 급식소가 있는
초읍공원행 2번 마을버스를 타러 오늘도 식전부터 나가셨다.

그런데도 친구의 끈질긴 문자메세지에 
한잔에 4000원이나하는 비싼 커피 마시며
이 커피값이면,
헌 종이박스를 몇개나 주워야 할까
문득 문득 떠오르니…

나는 내가 하루도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
단짝 친구를, 이제 만나지 않아도
하나도 그리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온 종일 방안을 뒹굴어도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은 강물처럼 흘렀다.

가끔 지루하면 깨끗하게 빨아 놓은 빨래를 다시 빨고
유리창의 유리가 보이지 않게 닦기도 하고
때론 옥상에 올라가서 두 팔을 벌리고
날고 싶다 날고 싶다 '이상'처럼 외치면서
나는 내가 정말 미친 건 아닌가 스스로 이상했다.

그러다가 한 지붕 아래 
똑 같은 구조인데 인형의 집처럼 꾸미고 사는
독신녀 만나 그녀가 끓여주는
즉석 컵라면 먹으며,

백수백조가 사백만을 육박한다는데
그래도 당신은 24시점에서 
야간에만 근무하는 그게 어디냐고
이게 다 당신이 믿는 예수님 덕분이 아니냐고
맞장구도 쳐주다 보면, 

저녁이 되어 고달픈 얼굴로 희망근로 업무 마치고
돌아와도 무슨 힘이 그리 좋으신지

(이 웬수야, 밥상은 차려놨으니 손있으면 쳐 먹어라 !) 

온 동네에 나팔 불듯이 고함치며
고물창고에서 시장보는 손수레 꺼내
폐지 주우러 나가시는 노모의 독설이
내 뻗쳐 오르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사정 없이 꺾고 또 꺽었다…

이제 입춘은 또 한번 내 인생을
바람처럼 지났는데도 
그렇게 많이 띄운 이력서에 대한
답장은 한 군데도 없고
대학교에 가야 할 쌍동이 동생들은 
동네 대형 영화관에 임시 일자리 구했다고
벌써부터 월급 탈 생각에 분주하다.

나는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싶으면서도,
노모보다 훨씬 기억력이 좋은 데도, 
희망근로자 원서 접수 날을 매번 놓치면서도
나는 내가 노모보다 기억력이 좋다고
굳게 믿는 것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디 가능한 일이겠는가


태그:#노모, #희망근로, #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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