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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닷컴 열풍 속에 IT 벤처 창업 붐이 인 지 10년. 아이폰 열풍에 힘입어 '모바일'이 새로운 기회로 떠오르고 있다. 과연 '모바일 혁명'이 그동안 침체에 빠진 IT 벤처 창업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직접 현장을 찾아가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두번째 순서로 18년 전 대학생 벤처기업으로 출발해 중견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한 김장중 이스트소프트 대표를만났다. <편집자말>
 김장중 이스트소프트 대표

"아, 알집 만든 회사요? 저는 알약, 알집, 알씨… 알툴즈 시리즈 6가지 다 써요. 요즘 대학생이면 모르는 사람 없을 걸요."

 

5일 오전 10시 인터뷰 약속에 맞춰 서울대입구 역에서 미리 만난 대학생 인턴기자에게 이스트소프트를 아느냐고 물었다 되레 '한방' 먹었다. 지난 10년 고작 '알집', '알씨' 정도만 써왔는데, IT 문외한임을 스스로 드러낸 꼴이 됐다.

 

20대 벤처 창업 CEO, 그 10년 뒤 모습은?

 

마침 보일러 고장으로 썰렁한 대표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자니 검은색 농구화가 성큼 걸어 들어온다. 김장중(39) 이스트소프트 대표다. 동안인 데다 검은 목 티셔츠에 회사 로고가 선명한 짙은 회색 재킷까지 갖춰 입으니 10년 전 개발자 시절 모습 그대로다. 

 

1999년 10월 말 코엑스에서 열린 벤처엔젤마트 취재 도중 처음 마주친 김 대표는 이미 대학 재학 중 회사를 창업한 20대 벤처 CEO였다. 당시 직원 18명이던 벤처기업은 10년 뒤 직원 300명에 연매출 250억 원을 넘나드는 중견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했다. 알툴즈 시리즈는 국내에서만 2500만 명이 쓰고 있고, 온라인게임 '카발온라인'이란 탄탄한 수입원까지 갖추고 있다.

 

개발에선 손 뗀 뒤 경영에 전념하고 있는 김 대표는 요즘 한창 '경제학'에 빠져있다. 책상 한쪽에 경제관련 서적들이 잔뜩 쌓여있고 그의 트위터(@jangjoong)에는 글로벌 증시 상황이나 경제 전망에 대한 글도 종종 올라온다.

 

"경제학에 관심 가진 건 한 2, 3년 된 것 같은데요. 사업이란 게 투자잖아요. 투자가 항상 시점이 중요한 데 전체적 흐름을 모르면 안 되더라고요. 회사 규모는 안 커도 수요가 줄고 침체기가 올 때 투자를 늘렸다간 회사에 위기가 올 수 있으니까, 나름대로 판단 근거를 가지려면 쭉 관심을 두고 있어야죠."

 

"탈옥한 아이폰 위한 백신 만드는 건 정상 아니죠"

 

 김장중 대표 책상 위에 쌓여있는 경제 관련 서적들.

10년 전 인터뷰 당시 인터넷이 새로운 사업 기회로 떠오른 시기였다면 지금은 모바일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스트소프트처럼 소프트웨어 개발에 전념해 온 IT업체에겐 나름 큰 기회인 셈이다.

 

"모바일이 확산되는 시점에서 큰 기회가 온다는 건 이미 90년대부터 생각하고 있었어요. PC와 인터넷에 모바일까지 섞이니까 기존 시장 잠식이 아니라 더 얹어져서 커지는 시기예요. 소프트웨어 수요도 크게 증가하고 PC용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큰 흐름에선 바보짓만 안 하면 중간만 가도 성장할 수 있는 거죠."

 

마침 이스트소프트는 지난달 28일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모바일과 애플리케이션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다음이 독자적으로 준비하는 사업들 중 먼저 협력할 걸 찾고 있습니다. 다음 스스로 애플리케이션 개발 경쟁력을 겸손하게 생각하고 있고 우리도 애플리케이션 서비스화에서 다음에 못 미쳐 서로 아쉬운 부분을 보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알약' 인기 덕에 주식시장에서 이스트소프트는 안철수연구소 등과 함께 보안 테마주로 곧잘 묶인다. 때마침 스마트폰 인기와 더불어 모바일 보안에 관심이 부쩍 커진 상태다.

 

"아이폰은 '탈옥'(jailbreak; 사용자가 해킹을 통해 보안잠금장치를 푸는 것)하기 전까지는 악성코드나 이런 것들은 별로 없어요. 우리나라는 '탈옥'을 많이 하지만 외국에선 그런 사례가 많지 않거든요. 제가 볼 때 아이폰을 위한 백신은 음지에 있어요. 애플 앱스토어에도 등록 안 해 주거든요. 해킹 폰을 위한 백신을 만드는 게 정상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아니죠.

 

안드로이드 폰이나 윈도모바일 폰 백신은 가능한데, 시장에서 확실히 받아들여질지 보고 있어요. 시장 선점도 중요하지만 알약 자체를 튼튼한 프로젝트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해요. 외견상으로 새로운 것 만드는 게 폼은 나지만 실제 쓸 만한 걸 만드는 게 중요하죠. 모바일 백신은 지금 '시장'이 없거든요. 이럴 때 하는 건 아니죠."

 

"버블기 부대효과 덕에 알툴즈 계속 만들 수 있었죠"

 

30대 CEO답지 않게 신중함이 읽히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지난 20년 IT업계의 숱한 곡절 속에서도 '소프트웨어' 한 우물을 팔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드웨어는 되는데 소프트웨어는 안 되는' 반쪽짜리 'IT 강국' 현실에서 그와 같은 벤처 1세대의 모습은 여전히 눈에 띈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는 워드프로세서로 시작했어요. 20년 전 아래아 한글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한메한글도 따라 나왔죠. 당시 국내 소프트웨어는 영어로 된 PC 환경에서 한글을 제대로 쓸 수 있게 해주는 시장이 컸어요. 우리가 '21세기 워드프로세서'를 만들어 창업한 것도 그때(93년)쯤이었죠. 그런데 94년쯤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나온 윈도3.1이 '한글 문제'를 해소해 주면서 우리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할 일이 없어진 거예요. 

 

그러다 90년대 후반 인터넷 바람이 불었는데 사실 저는 인터넷에 좀 회의적이었어요. 인터넷에 연결된 PC에서 필요한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주력했죠. 당시 소프트웨어 하던 사람들도 포털 서비스 쪽으로 많이 이동했어요. 그 당시 성공한 게 다음, 네이버, 싸이월드, 엠파스(현 네이트에 흡수) 등이고 한컴 이찬진 사장도 드림위즈를 옮겨갔죠."

 

2000년 전후 닷컴 열풍은 많은 벤처기업들에게 기회를 제공했지만 '머니게임'과 '인터넷 거품'이란 부작용도 낳았다. 그에게도 닷컴 열풍에 편승하고 싶은 유혹은 없었을까?

 

"남들이 다 그쪽으로 간다니까 안 간 거예요.(웃음) 저는 여전히 소프트웨어 사업이 더 큰 흐름이고 거기서 일부 파생되는 게 인터넷 서비스라고 봤거든요. 아무튼 인터넷 버블기에 부대 효과도 컸어요. 버블 중심에 있던 기업들은 무너졌지만 오히려 그 주변에 있던 기업들이 성공했죠. 우리 회사도 90년대 후반 인터넷 거품 덕에 투자를 받았고요. 4억이 채 안 되는 돈이지만 그게 씨앗이 돼서 알툴즈를 지속적으로 만들게 된 거죠. 소프트웨어 업체는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체력이 굉장히 중요하니까요."

 

'독점적' 국내 모바일 시장에 회의... 해외 시장 눈 돌려

 

 김장중 이스트소프트 대표

김 대표는 이미 회사 창업 시점인 92~93년부터 휴대폰용 소프트웨어나 게임, 서비스를 준비하며 '모바일 사업'을 시도했다. 99년 10월 당시 벤처엔젤마트에서 3억7500만원을 투자받은 뒤 10년 뒤를 내다보고 '체력'을 비축했지만 막상 국내 시장에서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너무 뒤늦은 아이폰 열풍이 아쉬운 대목이다. 

 

"그런데 (모바일 콘텐츠) 시장이 공정하지 않은 거예요. 이동통신사나 휴대폰 제조사 의존도가 너무 심하다보니까 장기적인 투자 의욕을 갖기 힘들었죠. 이건 시장 자체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조정되는 정상적인 '시장'이 아닌 거죠. 독점적으로 공급망을 통제하는 빅브라더의 정책 의지에 따라 모든 게 바뀌니까요."

 

김 대표가 일찍부터 해외시장에 관심을 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스트소프트는 2007년 일본법인 설립에 이어 지난 4일에는 미국법인 설립 계획을 공시했다. 그 밑거름이 된 건 다름 아닌 온라인게임이었다. 2005년 개발한 뒤 이미 일본, 미국, 중국 등에 수출한 '카발 온라인'은 이스트소프트 연간 매출의 66%를 차지할 정도로 확실한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고 올해는 '하울링쏘드' 서비스를 앞두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사로서 국내 시장에서 자금을 확보해야 외국에 나갈 수 있는데, 국내 소프트웨어는 죽어있었고 포털은 문화적, 언어적 한계 때문에 세계화가 불가능한 사업이었죠. 국내에서 성장성 있는 건 게임이라고 보고 2005년 카발온라인을 출시한 게 주효했어요. 지금 우리가 해외 투자할 수 있는 것도 게임에서 벌어준 돈이에요."

 

"금융위기 때 우린 100명 더 뽑았어요"

 

이스트소프트의 지난해 잠정 매출은 243억 원에 영업이익 80억 정도다. 각각 254억 원에 107억 원을 달성했던 2008년도보다는 영업이익이 30% 가까이 줄어든 수치지만 거기엔 나름 이유가 있다.

 

"제가 작년에 개발 투자를 많이 늘려서 그래요. 2008년 9월 리만 브라더스 망하고 경기가 급격히 안 좋아져 다들 투자를 멈추고 그럴 때 우리는 좋은 사람들을 왕창 뽑았어요. 2008년 후반에서‐2009년 상반기 사이에 직원을 100명 더 늘렸는데 60% 이상이 개발인력이죠. '시큐리티인사이트'란 보안소프트웨어 회사도 인수했고요. 영업이익률이 40% 정도로 높은 편이어서 투자를 좀 더 해서 30%대까지 떨어져도 적당하겠다 생각했어요."

 

삼성전자는 지난 4일 국내 첫 안드로이드 폰을 공개하면서 소프트웨어 경쟁력 때문에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전한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  

 

"우리나라에선 흔히 IT(Information Technology)하면 '정보통신'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보기술'이 맞거든요. 그래서 IT하면 통신이나 하드웨어를 먼저 생각하는데, 'I'라는 말 자체가 정보를 어떻게 다루느냐, 즉 소프트웨어가 핵심인 거죠. 이제는 인터넷 망이나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하나의 부차적인 '원재료'일 뿐이고 포털이 대표적인 IT기업인 거죠. 그런데 우린 아직 IT 성장한다고 하면 망이나 기기 이런 하드웨어 먼저 생각하죠." 

 

이런 환경 속에서 막상 IT 기업들이 소프트웨어에 투자하려 해도 그걸 판단할 만한 인재가 없었다는 얘기다. 

 

"우수한 개발자가 우수한 경영자로 성장할 기회가 우리는 없었어요. 이제는 개발자 대우 잘하는 회사 많지만 너무 늦은 거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임원으로 올라가기 위한 1번 조건이 뭔지 아세요?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지만 승진이 돼요, 우리나라는 MS 규모 만한 소프트웨어 회사가 없어 그런 인재들이 성장할 기회가 없었어요. 소프트웨어와 전체 구조를 이해하고 애플리케이션을 적절히 분할해서 개발자를 적재적소 배치하는 역할을 할 사람이 모자란 거죠. 삼성이 소프트웨어에 투자하자고 돈을 쌓아놔도 그걸 움직일 사람이 없는 거예요."

 

거꾸로 이스트소프트가 지금까지 이 분야에서 버텨온 것도 이런 '인재'를 키웠기 때문이다. 10년 전 기사에서 김 대표와 함께 포즈를 취한 초창기 멤버들 가운데 3명이 이사, 2명이 총괄팀장으로 계속 남아 소프트웨어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 개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1999년 11월 신문기사에서 함께 촬영한 초창기 멤버 11명 가운데 김 대표를 포함한 6명이 회사에 남아있다.

 

"전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따라쟁이예요"

 

10년 전 김 대표의 1차 목표였던 코스닥 등록은 지난 2008년 뒤늦게 이뤘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해외시장을 향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뒤를 그려본다면 나스닥에 상장된 회사로서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로이터, 블룸버그 같은데서 실적 발표를 기다리는 그런 회사가 되고 싶어요. 국내에서는 당연히 자리를 잘 잡고 있으면서 글로벌하게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IT 회사가 되는 게 꿈이죠. 요즘에야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얘기 많이 하지만 제겐 20년 전부터 롤 모델이었어요. 수학과를 간 것도 빌 게이츠 때문이고, 졸업 전에 회사를 만든 것도… 그들 흉내 내고 있는 거죠. 전 '따라쟁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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