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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떠돌이수행자님 당첨 되셨습니다."

 

다음 카페(효사모) 회원중 이어도라는 분이 이벤트를 진행 했습니다. 그분은 제주도에서 유기농 밀감 농사를 짓는다 했습니다. 이벤트 내용은 밀감으로 쨈도 만들고 밀감 선별 해보기와 밀감 껍질로 귤 차 만들기였습니다. 거기에 당첨 되면 왕복 비행기표를 무료 제공해 줄 것이라 했습니다. 나도 댓글을 남겨 응모 했었습니다. 이어도님은 내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제주도 가보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냥 토요일 특근하는 게 좋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특근을 취소하고 제주도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또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면서 사람들의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해서 기꺼이 더 열심히 더 많이 손,발을 움직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친환경 농사를 짓는 그 농부가 어떤 분인지 많이 궁금하고 또 그동안 카페 활동하면서 보니 나눔을 참 좋아하는 분임을 느낄수 있어서 이참에 제주도 가서 그 농부를 한번 만나 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제주도 왕복 비행기표 예매 해두었어요. 이번주 토요일 12시 50분 부산 비행장 가서 타시고 오시면 됩니다."

 

수고 스럽게도 그분이 미리 비행기표를 예매했고 문자로 내게 알려왔습니다. 나도 제주도 갈 채비를 시작 했습니다.

 

우선 회사측에 토요일 특근 취소 요청을 했습니다. 금요일 21시 야간 출근하고 토요일 아침 8시 퇴근 하자마자 집에 가서 가방도 챙기고 옷도 갈아 입고 어찌 될지 몰라 조금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알아보니 신복로타리에서 부산 비행장 가는 버스가 있었습니다. 도착해 7,900원 주고 버스표를 끊고 기다렸다가 10시 40분 버스 타고 출발하니 11시 30분 되어 부산 국내선 비행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분이 표를 예매 했다는 항공사에 가서 표를 발매하고 기다렸다가 12시 40분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기대만발입니다. 과연 제주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서귀포 어느 산 속 귤농장으로

 

약 50분후 드디어 제주 땅이 보였습니다. 하늘서 보니 제주는 밭이고 산이고 다 푸른 빛을 띠었습니다. 겨울에도 식물들이 자라고 있나 봅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제주 공항을 나와 다시 공항버스 타고 40여 분을 더 달려 서귀포 어느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초청한 농부의 안내에 따라 중문이란 곳에 내려 기다리니 그분이 트럭을 가지고 왔습니다. 또 얼마간 달려 산속으로 들어 가더니 말로만 듣던 귤 농장에 도착했습니다. 귤을 모두 따내고 띄엄띄엄 한두개씩 달려 있었는데 귤 달린 나무를 보니 참 신기했습니다. 또 여기저기 밭가엔 유채꽃 같은 꽃들이 피어 있었고 간혹 벌들이 날아와 꿀을 채취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먼저 귤 선별작업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선별 작업을 위해 창고로 가는데 창고 밖엔 상한 귤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너무 아깝게 보였습니다. 저렇게 썩히려고 1년간 애써 온 게 아닐 터인데 말입니다.

 

"저 귤은 왜 저렇게 버려져 있나요?"

 

"귤도 생물인지라 재 때 수확하고 수확되면서 바로바로 팔려 나가면 좋은데 그게 어디 맘대로 되나요?"

 

농부는 신경써서 보관한다지만 자연의 섭리앞엔 어쩔수 없다는 것입니다. 귤은 수분이 많은 과실이므로 따낸 후 하루빨리 어떤 용도로 쓰여야지 안 그러면 수 일 내 상하거나 곰팡이가 번식해 먹을수 없게 되어 버린다고 합니다. 귤 밭 옆에 수북이 쌓인 상한 귤을 보면서 많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사먹고 싶어도 이런 친환경 귤 농장을 몰라 못 사먹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친환경 귤 농장을 알아 더 많은 소비자가 직거래 할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농부는 주문 받은 물량을 보내야 한다면서 우리에게 10키로씩 귤을 담도록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귤은 효소용과 섭취용을 별도로 선별해 두고 있었습니다. 먹는 것보다 효소용으로 쓰이는 귤이 조금 더 작았습니다. 섭취용이 작년엔 10키로 한박스에 택배비 별도로 30,000원에 팔았는데 올해는 택배비 포함하여 25,000원에 균일한 가격으로 직거래 되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소비자 직거래를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중간상을 거치면서 일반 소비자는 터무니 없이 비싸게 사먹어야 하기 때문에 선별하고 포장하고 택배 보내고 하는 일들이 힘들고 번거롭기는 하지만 소비자를 내 가족처럼 여기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 합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 귤 껍질을 말려 끓인 물을 먹게 합니다. 그래서인지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잘 큽니다. 이처럼 우리 자식에게 먼저 먹여도 좋을 귤을 생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이 힘들지만 누구나 마음놓고 귤 껍질까지도 먹을 수 있는 귤을 생산하기 위해 친환경 유기농 귤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지요."

 

농부 한마디 한마디가 믿음이 갔습니다. 귤을 상자에 담는 작업을 하면서 농부의 살아온 이야기를 물어 보았습니다. 농부는 제주도 토박이였습니다. 어린 시절은 제주에서 보냈지만 대학은 서울서 나왔고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졸업후 모 대기업 영업부서에 입사하여 다니기도 하고 사업도 해보았지만 큰 재미를 못보고 나중엔 큰 손해를 본 후에야 그만두고 다시 고향으로 들어와 방황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5년전부터 '우리 자식에게 먼저 먹일수 있는 귤을 만들자'는 취지 아래 친환경 유기농 귤 농사를 해보기로 마음먹고 무작정 달려 들었다고 합니다. 지난 3년 넘게 어려움이 있었지만 작년부터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참 부지런한 농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덧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이제 귤 선별작업은 내일 다시 하기로 하고 귤 쨈 만들러 가자고 했습니다. 귤을 큰 바구니로 두 바구니나 차에 싣고서 다음 행선지로 향했습니다. 거기서 오늘 저녁에 쨈도 만들고 껍질도 잘게 자르고 저녁도 먹고 잠도 잔다고 했습니다.

 

한참 가다보니 무위재라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서울서 온 화가가 운영하는 곳이라 했습니다. 가정 집이 아닌 펜션이었습니다. 울산서 온 귀한 손님이라며 펜션을 하루 빌렸나 봅니다. 몸둘바를 모를 정도로 고마웠습니다. 가서 만나보니 참 멋진 화가분이었습니다. 농부와도 서로 잘 아는 사이인듯 보였습니다.

 

가마솥이 두개 걸려 있었는데 거기다 장작불로 쨈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화가 선생님이 장작과 불쏘시개를 다 준비해 놓았습니다. 불을 지피는데 연기가 많이 났습니다. 간만에 보는 시골 풍경이었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 불을 때서 밥 해 먹던 시절이 생각 났습니다.

 

여섯 일곱 분 정도가 모인거 같았습니다. 가족도 왔는지 아이도 있었습니다. 우린 준비 해 간 귤 두 상자를 모두 깠습니다. 그리고 가마솥에 넣고 설탕도 부었습니다. 누군가 물 넣지 말고 그냥 끓이라해서 그냥 끓였습니다. 다 타버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잠시 후 물이 엄청 생겨났습니다. 바닥이 눌러 붙지 않게 대나무로 계속 저어 주면서 장장 4시간을 끓였습니다. 한 쪽에선 또 제주산 흑돼지 구이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우린 그것으로 저녁을배불리 먹었습니다. 흑돼지 구이도 가마솥 뚜껑을 이용했습니다. 기름이 옆으로 다 흘러 내려 쫀득하니 고소하고 맛있었습니다.

 

저녁 6시경부터 시작된 귤 쨈 만들기는 4시간 후인 10시가 넘어서야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제 식힌 후 내일 아침에 보자고 했습니다. 갈사람 가고 남을 사람 남았습니다.

 

"귤 껍질은 두고 가세요. 제가 썰어 놓을게요."

 

농부는 귤 껍질을 바구니에 담아 차에 실었습니다. 저는 농부의 일손을 돕고 싶었습니다. 두 바구니라 꽤나 많은 양이지만 귤 껍질 차 만들기 좋게 채를 써는 일을 제가 해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야간 마치고 바로 제주도로 날라왔기에 많이 피곤 했지만 그래도 처음이자 마지막인데 도와 주고 싶었습니다. 칼과 도마는 화가 선생님께 빌렸습니다.

 

하룻밤 빌린 펜션 방에다 귤 껍질 바구니 두개와 도마, 칼을 가지고 들어 왔습니다. 손을 씻고서 방에 앉아 심호흡을 하고 귤 껍질 썰 채비를 했습니다.  밤 11시경부터 귤 껍질을 가지고 채를 썰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계속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그렇게 졸면서 2시간 남짓 썰다가 도무지 잠이 쏟아져 더이상 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4시경 일어나 다시 썰기로 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휴대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새벽 4시 다시 일어나 나머지 귤 껍질을 채썰기 시작했습니다. 절반 가량 써니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다 썰고 나니 아침 8시가 되었습니다. 두 바구니 다 써는데 6시간이나 걸렸습니다. 농부의 일손을 덜어 주려고 어려운 길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귤 채 써는 일이나마 돕고나니 기분은 좋았습니다. 채를 썬 귤은 따뜻한 방바닥에 널어 두었습니다. 다시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잠시 누웠다 일어 나려는데 화가 선생님이 깨웠습니다. 시간을 보니 오전 9시였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잠을 쫓았습니다. 무위재 주인장이신 화가 선생님은 잠시 나와 보라 했습니다. 화가 선생님을 따라 가보니 한 컨테이너 박스로 안내 했습니다. 속으로 이런 곳엔 왜 데려오나 했는데 그곳이 바로 화가 선생님이 그림 그리는 방이었습니다. 저는 예술 하시는 분들 보면 참 존경스러운데 더구나 이렇게 소탈하고 겸손한 화가 선생님을 보니 더 멋져 보였습니다.

 

잠시 구경 하고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 화가 선생님 어머니가 아침 먹으라며 불렀습니다. 저는 그냥 손님인데 저의 아침 밥까지 챙겨 주시는 자상함이 왜 그리 기분 좋던지요. 조촐하지만 더없이 풍성한 아침 밥상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손 맛 가득한.

 

아침 밥을 먹은 후 화가 선생님과 어머니는 성당 다녀 온다며 가셨습니다. 신앙심이 깊으신가 봅니다. 잠시 후 농부가 와서 저도 짐 싸들고 다시 농장으로 갔습니다. 어제 못다한 선별작업을 하고 박스를 트럭에 싣고서 택배 회사로 갔습니다. 단골이다보니 서로 잘 아는 분들 같았습니다. 택배 영업소 하시는 부부가 울산에서 제주도로 이사 왔다는 소리에 많이 반가웠습니다. 급한 주문량부터 택배 처리하고 농부는 저에게 점심을 사준다며 식당을 찾아 갔습니다. 허름한 한식당이었습니다. 할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분이 음식을 내왔습니다.

 

"그래도 제주 오셨는데 잠시 구경이나 해 보시죠."

 

점심을 먹은 후 차를 끌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볼거리들을 이것저것 잠시 잠시 보여주고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후 3시경 다시 농장으로 가서 효사모 회원 분들이 주문 한 물량을 담아야 한다며 선별작업을 했습니다. 거기엔 제주도에서 채취한 꿀이나 어젯밤 만든 귤 쨈 중 하나씩을 덤으로 넣어서 포장했습니다.

 

이번에 주문한 스무명에게 덤으로 사은품을 넣어 보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못말리는 나눔의 대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포장 작업이 마무리 되고 시간이 조금 나자 이번엔 올해부터 귤 농사 규모를 더 키울거라며 다른 귤 밭도 구경시켜 주었고 귀농한지 얼마 안된 농부네 집에도 방문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올해 귤농사 지은 거라며 한상자씩 주었습니다.

 

"이렇게 다 퍼주면 뭐 남는게 있나요?"

 

농부는 저의 그 말에 씨익 웃으며 말했습니다.

 

"퍼주는게 남는거요."

 

이제 울산으로 다시 가야 할 시간이 다와 갑니다. 농부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집으로 저를 데려 갔습니다. 집 전체를 1년간 임대 받았다고 했습니다. 단층짜리 옛날 주택인데 안은 방이 여러 채였고 마당도 있었습니다. 별도로 마당 옆에 빈 방 두개가 있었는데 거긴 꾸며서 오는 손님 주무시고 가게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사모님은 한 방 가득한 짐을 챙기느라 정신없었습니다.

 

"오늘 아들 생일이라 멀리 못 바래다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농부 집을 나와 차를 타고 잠시 달리더니 공항가는 버스 오면 타고 가라며 데려다 주었습니다. 제주 온 기념선물이라며 귤 한박스를 포장해 들고가기 좋게 테잎으로 손잡이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무거웠지만 주는 마음이 고마워 낑낑거리고 울산 집까지 들고 왔습니다. 농부는 제가 버스에 오를 때까지 함께 있다가 갔습니다. 제가 떠난 후 부랴부랴 아들 생일잔치 준비해 주느라 바빴을 것입니다. 덕분에 저도 집에 잘 도착했습니다.

 

저는 이번에 제주도 친환경 귤농장 체험차 가서 자연과 소통할 줄 알고 이웃과 나눌줄 알며 어떻게 사는게 올바르게 사는 길인지를 배우고 또, 착하고 부지런한 농부의 도리도 배우고 왔습니다. 다녀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또 가보고 싶어 집니다.


태그:#제주도, #밀감, #서귀포, #친환경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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