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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재 현장에서 불 끄는데 열중하고 있는 소방관. 영화 '리베라메'의 한 장면
 화재 현장에서 불 끄는데 열중하고 있는 소방관. 영화 '리베라메'의 한 장면
ⓒ 리베라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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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에서 소방관으로 근무하는 A씨가 소방서에 출근하는 시간은 오전 8시 30분. 근무자들과 교대한 그가 업무를 마치고 귀가하는 시간은 다음날 오전 9시다. 출근하고 다음날 퇴근하기에 집에서 자는 날도 하루 걸러 한 번씩이다. 근무일은 24시간 동안 언제 생길지 모르는 출동에 대비해야 한다.

비번인 날도 교육이나 훈련이 계획돼 있으면 심할 경우 휴가도 못 가고 5~6일씩 훈련에 임해야 한다. 소방검사 등의 임무도 근무일에 출동이 있게 되면 못하는 경우가 많아 주로 비번일 때 처리한다.

그가 한 달 근무하는 시간을 추산하면 365시간 정도. 주당 84시간으로 노동법에 규정된 월 40시간을 한참 웃돈다. 추가 근무 시간이 월 평균 170~180시간에 달한다. 그렇지만 지급받는 수당은 65~70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목포에서 만난 소방관 B씨는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적은 것이 24시간 근무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24시간 격일 근무를 하다 보니 일부러 휴가를 내지 않는 한 운 좋게 날짜가 맞아야 모임이나 친인척들의 경조사를 챙길 수 있다고 했다. 생활 리듬을 가족들과 맞추기 어렵다고 말한 그는 이날은 비번이라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들 소방관들은 요즘 업무 외에 소송 문제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노동법에 따라 미지급된 수당을 지급해 달라는 집단 민사 소송에 참여했는데, 취하하라는 압력이 만만치 않아서다. 이미 상당수는 이런 압력에 소송을 취하했지만 몇몇은 끝까지 버티는 중이다.  

미지급 수당 돌려달라는 소방관들의 집단 소송

 화재를 진압하고 있는 소방관들
 화재를 진압하고 있는 소방관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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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들의 집단 소송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 등 행정당국의 대응 방식은 논란을 빚고 있다. 주당 40시간으로 규정된 법정 노동시간은 빼더라도 한참 초과된 근무수당조차 받지 못해 이를 법에 호소해 판단을 구해 보기로 한 것인데, 행정당국이 이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소송은 지난 9월 대법원 판결이 영향을 끼쳤다. 대구상수도사업본부 공무원들이 제기한 초과근무수당 미지급분 청구소송에서 법원이 이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미지급된 수당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이에 비슷한 처지의 소방관들도 소송에 나선 것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충북에서 시작된 소방관들의 소송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졌다. 각 시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전체 3만여 명의 소방공무원 중 1만여 명이 소송에 참여할 만큼 소방관들의 행동은 적극적이었다.

소방관들의 소송이 잇따르자 청와대는 지난 11월 12일 관련 부처 대책 회의를 갖고 '제소전 화해'를 통해 미지급된 수당 지급을 약속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굳이 법적 소송으로 가지 말라는 지침을 내린 것이다.

 소방방재청이 만든 '지방자치단체 소방공무원 초과근무수당 소송 관련 부처별 조치사항 및 추진계획' 문건.
 관계부처 대책회의 문건. '지방자치단체 소방공무원 초과근무수당 소송 관련 부처별 조치사항 및 추진계획'
ⓒ 소방방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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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소전 화해'란 민사 분쟁이 생겼을 경우 당사자 간의 분쟁이 소송으로까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송 전에 법관 앞에서 화해를 성립시키는 절차이다. 소송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 좋은 방안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게 소방관들 이야기다.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곳에서 나온 판결을 기준으로 똑같이 지급해 주겠다는 것이지만, 모든 소송이 제소전 화해로 취하될 경우 기준이 될 판례가 나오지 않아 결국 정부가 마련하는 지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번 취하하면 다시금 소송을 제기할 수 없어 불만이 있더라도 다시금 이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행정안전부는 얼마전 2010년 지방공무원보수 등 처리지침을 통해 근무 및 휴식시간에 대한 기준을 내놓았다. 하지만 소방관들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식사 시간과 휴식 시간 등을 근무시간에서 제외시키는 등 작위적 기준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지침 따라 '제소전 화해' 무리한 강요

1인 시위 소방행정당국의 소송 취하 강요에 항의하는 소방관 가족들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1인 시위 소방행정당국의 소송 취하 강요에 항의하는 소방관 가족들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소방관 권리찾기 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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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소방관들은 소송을 통해 확실한 법원의 판단을 얻고 싶다는 입장이다. 법원의 판단에 따른 기준을 만들어야 논란이 없지 행정당국의 지침을 통해 기준이 만들어질 경우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많고 소방관들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아서다.

그러나 지역 소방관들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지자체의 소방재난본부가 소송 취하를 과도하게 강요하면서 마찰이 일고 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경기도 소방재난본부는 지난 12월 23일 법원에 제소전 화해를 신청했고, 경기도를 뺀 다른 시도는 청와대에서 마련된 대책 방안에 따라 소송 취하를 권유하고 나섰다. 불응하는 직원들에게 상급자들이 나서 인사 상 불이익을 언급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소방관들은 밝히고 있다.

이번 소송 현황에 대해 잘 아는 부산의 한 소방관은 "해운대와 부산진 소방서를 빼고는 90% 이상이 소를 취하했다"며 "소방본부장 지시에 따라 서장과 과장이 인사 문제 등을 거론하며 소송 취하를 강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응하지 않는 직원들에게는 상급자들이 집으로 찾아가 인간적으로 도와줄 것을 호소하는 등 압박이 강하다"고 주장한 그는 "지자체들이 지방 선거를 앞두고 부담을 줄이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방관 가족들 일부는 이에 반발해 지난 1일 부산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며 소송취하 압박에 대한 항의에 나서기도 했다. 부산은 전체 대상자 2300여 명 중 1300여 명이 소송을 제기했으나 현재 100여 명 안팎의 인원만 소송 취하를 거부하며 버티는 상황이다.

소송 참여율이 가장 높은 곳은 전남으로 대상자 1500여 명 중 1000여 명이 참여했는데, 소송 취하 압박이 심해지면서, 지난달 27일 소방방재본부장과 일선 서장들이 전직 소방관 출신들의 모임인 소방발전협의회에 의해 고발당했다.

소방관들은 "서장들이 나서 진급이 안 될 수 있다거나 인사 문제를 거론해 소 취하를 요구한다"며, "멀리 떨어진 곳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3년 정도는 이동이 없을 것이라는 식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타 시도와 달리 제소전 화해를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소 취하만을 강요하고 있는데, 근무 환경이 가장 열악한 곳이라 소송 참여자가 많은 데도 불구하고 이의 개선 노력은 제대로 보이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압박이나 강요 없었다? 압력에 심적 부담 소송 취하

이에 대해 전라남도 소방본부의 실무 관계자는 압박을 가한 일도 없으며 강요한 사실도 없다면서 소방관들의 주장을 부인했다. 그는 "불만이 있으면 의견을 제시해 해결해야지 소송으로 가느냐?"며 분개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으며 조직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소송의 실익을 알려주기 위해 몇 가지 내용을 공지한 적은 있으나 강요한 적은 없다, 또 인사상 불이익을 언급했다고 하는데, 인사상 불이익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방관들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승진이 된 사람들은 소송을 취하한 사람들이며, 일선 소방서에서 정기 승진을 앞둔 직원들에게 인사 문제를 언급하면서 대상자들이 위축돼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진급 대상자였던 ㅈ씨의 경우 심적 부담을 느껴 취하를 했으며, 집에서 1시간 이상 거리로 출퇴근 하던 ㅊ씨도 '당분간 인사이동이 없을 수 있어 수 년 간 더 근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소를 취하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소송을 제기한 소방관들이 소방본부장과 도지사의 면담을 요구했으나 사실상 모두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일정이 바쁘다는 핑계로 면담 요청을 미루고 있는데, 만나지 않겠다는 의사로 보인다는 것이다.     

소방관들의 불만은 왜 민사재판 문제에 상급자가 개입해 하급자에게 뭐라 하느냐는 부분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법에 보장된 권리 행사를 막으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소방관들은 입을 모았다.  

행정당국의 재판 받을 권리 방해는 직권남용

 응급 구조를 위해 출동하고 있는  소방관들
 응급 구조를 위해 출동하고 있는 소방관들
ⓒ 의왕소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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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서는 민사소송을 방해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처사는 헌법 27조 ①항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막는 위법적 행동이라 지적한다.

소방관들의 소송을 대리하는 송해익 변호사는 민사소송에 관청이 개입하는 행위는 협박과 강요로 볼 수 있고, 직권 남용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공무원 조직에서 가장 합법적인 절차인 소송을 취하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의 지침대로 소가 취하될 경우 정부가 일방적으로 마련한 규정에 따라 수당이 지급돼야 하는데, 1일 근무 시간 중 제외되는 시간 등에 대한 인식이 달라 갈등 소지가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 법 절차에 따라 판결을 통해 정확하게 인정받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압박을 당한 피해자들이 고소나 증언을 할 경우 조직 체계 내에서 또 다른 피해가 우려될 수 있는 부분에 애로사항이 있다"고 송 변호사는 덧붙였다. 

전남도 소방방재본부장과 일선 서장들을 고발한 전직 소방관들의 모임인 소방발전협의회 장재완 회장은 "소방관들이 지자체와 소방당국의 압박으로 법에 규정된 권리를 방해 받으면서도 직접 고소하기가 어려워 대신 고발한 것"이라고 말하고 "소송 취하 압박을 가한 증거가 확보되는 대로 다른 시도의 소방 행정 책임자들도 계속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송 취하 압박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엄연히 침해하고 있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장 회장은 "소방관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사고 재난 현장에서 영웅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상층부의 제왕적 방침에 혹사당하는 실정"이며 소방행정의 개혁과 소방권들의 처우 개선이 절실히 필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받을 권리 침해당하는 소방관은 국민 아닌가?

 화재 현장에서 불길을 잡고 있는 소방관들
 화재 현장에서 불길을 잡고 있는 소방관들
ⓒ 오마이뉴스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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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우 개선에 대한 부분은 소방행정당국이나 소방관들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소송이 단순히 돈 때문이고 3교대 근무만 이뤄지면 별 문제없을 것이라는 소방당국 인식과 수당 청구 소송은 근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요구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 법에 맞게 근무 시간을 조정해 달라는 소방관들의 요구 사이에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 때문에 일부 소방관들은 특수 직무지만 최소한 단결권은 보장해 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저 상명하복에 충실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의사 표현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채 일방적인 결정만 따르라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결국 정당한 민사소송도 부당하게 취급받고 있다는 것이다. 기본권마저 침해당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한 듯한 소방관은 이렇게 반문했다.

"제소전 화해로 해결하려는 정부는 지침을 통해 휴식 시간이나 식사 시간 등을 어떻게든 근무시간에서 빼려는 모습인데, 만일 밥 먹거나 휴식시간에 불났다는 신고 들어오고 새벽에 신고 들어오는데도 휴식 중이고 잠자는 시간이니 끝나고 출동하겠다고 한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그런 일방적 기준을 제시하면 무조건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리고, 헌법에 보장된 권리에 따라 민사 재판을 하겠다는데 왜 청와대까지 나서서 막습니까? 소방관은 민사 재판 받을 권리도 없나요? 우리는 국민도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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