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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클래식 연주를 몇 번이나 듣는지 묻는다면 아마 한 번도 듣지 않는다고 대답할 이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렇지는 않다. 적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라면 지하철 역 안내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듣게 되는 것이 클래식이다. 그뿐 아니라 휴대폰 통화 연결음, 자동차 후진음악, CF 배경음악, 드라마 등등 꼼꼼히 세어본다면 우리가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이 결코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싫건 좋건 클래식은 우리 생활 요소요소에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그 음악들은 모두 옛날 것들이며 남의 것이다. 클래식이야 본래부터 남의 것이며, 옛날 것인데 무슨 흰소리냐고 혀를 차기 전에 잠깐 생각해보자. 우리가 기억하는 윤이상의 예를 들자. 그는 타계하기 전 '현존하는 유럽의 5대작곡가'로 인정받을 정도로 뛰어난 작곡가였다. 1995년 임종했으니 그의 음악은 결코 옛날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남의 것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그의 음악이 남의 것이 아닌 이유는 단순히 같은 핏줄이라는 것만은 아니다. 그가 작곡한 음악의 주요 소재인 도교와 함께 오보에 대신에 피리, 하프는 가야금으로 그리고 플루트를 대금 등으로 바꿔서 한국 전통악기를 활용도를 높였다. 결과도 그렇거니와 그 과정과 노력은 윤이상의 음악을 우리 것이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윤이상 말고 또 우리가 기억하는 작곡가는 누가 있을까? 언뜻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작곡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국내외를 통틀어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곡가들이 적지 않음을. 그러나 그 전문가의 단계를 한 치만 벗어나도 이들의 이름은 대단히 낯선 것이 되고 만다. 이처럼 우리는 국악만이 아니라 클래식에서도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잘못은 아니다. 관심 가져야 할 것이 널린 세상에 베토벤, 모차르트만으로도 클래식에 대한 지식은 충분할 수도 있다. 다만 그런 무관심 속에서도 꿋꿋하게 제2의 윤이상 아니 그 이상의 꿈을 꾸며 오선지를 메워가는 작곡가들의 외로움이 좀 커질 따름이다. 많은 작곡가들의 역작들이 연주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 혹시라도 베토벤 같은 천재가 태어난다 해도 한국의 토양 속에서는 베토벤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 작곡가들의 토로이다.

 

지난 1월 30일 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는 독특한 연주가 열렸다. 이 연주는 같은 형식으로 이번 주(2월 6일) 토요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이어지는데, 연주단체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로 익숙한데 레파토리는 통 낯선 것들이었다. 작곡가들 이름을 보니 모두 한국인이다.

 

이 연주회는 올해로 3번째 계속되는 한국 작곡가를 지원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특성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열린 '창작 관현악 축제'이다. 국내 최초의 시도이며 대규모 창작 관현악을 대중에게 소개한다. 전석 무료로 초대되는 창작관현악축제는 이틀에 걸쳐 총 10명의 작곡가들의 신곡을 연주한다.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박은성)에 의해 연주된 곡들은 '현을 위한 세레나데(정승재)', 'Windtree(신성아)', '메타 오케스트라(정현수)', '꿈을 찾아서(김자애)', 'Ritual Season(이근형)' 등이 소개됐다. 이번 주에는 '순환(신만식)', '노래-II(석윤복)', '이중성(김천욱)', '기도(김은혜)', '세븐데이즈 스테인드글라스 미러(이재문)'의 작품이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지휘 성기선)에 의해 선보인다.

 

강원도 출신의 이근형이 어릴 적 할아버지 장례에서 느낀 감상을 토대로 그린 Ritual Seasons가 특히 인상적이었던 지난 30일 연주는, 조금은 비조성의 경향도 보여 다소 현대음악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한가한 오후에 틀어놓고 차 한 잔을 마시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특히 연주되기 전에 KBS 1FM에서 음악프로를 진행하는 음악평론가 장일범이 작곡가들과 무대에서 곡에 대한 해설을 미리 전해줘서 신곡을 대하는 낯섦을 다소 줄여주었다.

 

이번 창작관현악축제가 갖는 의미는 낯선 클래식작곡가들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작품을 연주되게 한다는 점이 크다. 일반 오케스트라의 입장에서 한국 작곡가, 그것도 신진일 경우 레파토리로 선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음악회 티켓을 사는 입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작곡가들은 연주되지 않고는 성장은커녕 존재조차도 알릴 기회가 없다는 점에서 이번 연주가 갖는 의미는 크다. 게다가 그간 창작관현악축제에 의해 선정된 곡들을 국내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경우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별도의 지원도 해주는 등 지속적인 서포트를 하고 있다. 이 사후 지원이 창작관현악축제를 일시적인 행사가 아닌 진정한 작곡가 서포트 프로젝트로 인정케 하는 단서가 된다.

 

이제 한 번 남은 창작관현악축제는 오는 주말에 열린다. 티켓을 구입할 부담도 없으니 방학의 끝에 가족들끼리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그 작은 관심으로 한국 창작관현악의 발전에도 힘을 보태게 되니 두루 좋은 일이다. (무료관람 문의 02-701-4879)


태그:#창작관현악축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코리안심포니, #강남심포니, #윤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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