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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다 쌌어요!"

 

이모를 찾습니다. 도화지에 양초로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물감을 칠하는 아이들을 돌보던 이모는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갑니다.

 

"강원이, 닦는 것 한 번 연습해볼까? 자, 휴지 4칸을 잘라. 이렇게 접고……, 오른손으로 할까 왼손으로 닦을까? …… 그래, 일어나서 닦아봐. 똥꼬가 어디 있을까? 아니, 옆으로 말고 아래로."

 

열심히 '똥꼬' 닦는 법을 가르치는 이모는 구로구 독산동에 있는 <새터 어린이집>(앞으로 새터로 줄임) 보육교사 강미자 샘(선생님)입니다. 방과후 선생님을 하다가 새터로 와서 영유아들과 함께 뒹군 지는 아홉 해가 됩니다.

 

새터를 찾은 날은 지난 1월 26일입니다. 찬바람이 어찌나 센지 얼굴이 깡깡 얼고 이빨이 달달 떨리는 날이었습니다. 세일중학교 옆 골목 주택가에 있는 새터를 물어 물어 찾아 도착하니 아침 7시 45분. 발을 동동 구르며 있으니 한 눈에 어린이집 선생님처럼 보이는 이보경 샘이 옵니다.

 

7시 50분. 어린이집 문을 열자마자 이보경 샘은 허둥지둥입니다. 냉장고 문을 열어 오늘 점심거리인 오징어를 물에 녹이고, 가스레인지에 주전자를 올려 물을 끓입니다. 전날 미처 치우지 못한 잡동사니를 서둘러 자리를 잡아주고 청소기를 찾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쫓아다니기가 민망합니다.

 

 꼬리 잡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

7시 55분. 이제 얼마 있으면 새터를 떠나 초등학교에 갈 건우가 엄마와 함께 들어섭니다. 건우는 청소를 하려는 이모(새터에서 선생님들을 이모라 부른다) 앞을 가로막습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털실이 걸려있습니다. 실뜨기 놀이를 하자고? 이모는 몸에 청소기를 기대놓고 건우가 만들어내는 실 모양을 위아래로 집어 새로운 모양으로 바꿉니다.

 

조금 있으니 요리하는 이모 김정숙 샘이 들어옵니다. 겉옷을 벗은 이모는 종종 걸음으로 주방으로 들어갑니다. 이모들이 모이고 아이들이 밀려듭니다.

 

이날처럼 이모란 소리를 많이 들어본 날은 없습니다. 쉴 새 없이, 사방에서, "이모, 이모"가 울립니다. 이모는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한 적이 없습니다. 손으로는 아이들 색칠하는 것을 도와주고, 입으로는 뜬금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꼬박꼬박 답을 하고, 눈은 이모의 시야에서 벗어나려는 아이들을 쫓아다닙니다. 음악을 들으며 만화책 보는 일조차 어려워하는 나에게 이모는 초능력을 가진 존재처럼 우러러 보입니다.

 

새터에서 이모들은 어떤 일을 할까요? 반쯤 넋이 나간 듯 진이 빠진 강미자 샘을 붙잡고 물었습니다.

 

"그야말로 엄마 역할에, 선생님 역할까지 해야 돼요. 양말 신는 법부터 가르치고, 머리 빗는 법, 세수하는 법, 화장실 가는 법, 휴지 쓰는 법, 양치질 하는 법, 일상에 필요한 기본 생활들을 가르쳐야 하고, 공부도 가르쳐야 하고, 남과의 관계에 있어서 서로 상처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원활하게 관계하는 방법까지 가르쳐야 하니까 ……, 가르치고 서로 나누고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지요."

 

보육교사는 선생노릇에 엄마노릇까지 해야 합니다. 강미자 샘은 "아이들에게 좋은 교재나 교구를 제공하여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편안함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강미자 샘처럼 보육교사로 돌봄 노동을 하는 사람은 이십만 명(이글에 나오는 통계자료는 2008년 11월 19일 공공노조 사회연대본부 중간보고서 초안을 기초함)이 넘습니다. 남자 선생님은 1%에 불과하고, 99%가 여자 선생님입니다. 평균 임금은 130만원, 주당 노동시간은 45.7시간입니다. 한 주일에 44시간 이하로 근무하는 사람은 21.8%에 불과하고, 45시간에서 56시간 일하는 사람이 66.7%, 그 이상 근무하는 사람도 11.5%나 됩니다.

 

"새터는 다른 어린이집보다 선생님에 대한 배려가 많아요. 근무시간도 아홉 시간을 맞추려고 하고요. 다른 곳에 가면 정말 장시간 노동이거든요. 부모들 출근시간 전에 문을 열어야 하고 부모들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곳이 어린이집이잖아요. 하루 열두 시간 일하는 걸 기본으로 알아야 되요. 새터는 아이들과 어울려 뛰어 노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하는데, 다른 곳은 보여주려는 행사를 많이 해요. 전시회니 발표회니 해서. 행사가 있으니 야근도 하고 그러죠. 퇴근 시간 이후에도 플러스알파가 되는 노동 시간이 많아요. 집에까지 일을 들고 가서 해오죠."

 

 그림책을 읽어주는 이보경 선생

새터에서 2년간 일한, 보육교사 경력 5년차 이보경 샘은 이전에 다른 보육시설에서 일했던 끔찍한 기억을 되살립니다. 보육교사 교육 때부터 노동보다는 교사라는 '사명감'만을 강하게 심어주며 '사랑과 희생'만을 강요합니다. 돌봄 노동에는 교사들의 희생이 숨겨져 있습니다.

 

"보육교사 한 사람이 돌봐야 할 아이들이 많은 곳은 선생님들이 많이 힘들어요. 거기에다 장시간 노동을 하다보면 당연히 짜증이 나죠. 그게 아이들한테 영향이 가지 않겠어요."

 

돌이 되지 않는 갓난아이를 돌보는 강미란 샘이 칭얼대는 재령이를 업고 골목길을 서성이며 말합니다. 돌봄 노동자들의 근로환경은 곧 아이들의 행복지수와 연결이 됩니다. 희생이 먼저가 아니라 사랑을 펼칠 터전이 우선되어야 할 겁니다. 새터의 도우미 선생님도  "교사가 힘들고 지치면 강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며 사랑을 펼칠 조건을 말합니다.

 

5살에서 7살 아이들이 있는 새터 온유반의 이번 주 학습내용 가운데 하나가 소방서 놀이입니다. 강미자 샘은 집에 있는 방독면을 가져와 아이들에게 선을 보입니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주홍빛 방독면을 보더니, 단박에 하는 말. "이거 우주인이 쓰는 거예요?" 방독면이 신기한지 서로 하겠다고 난리더니, 그것도 잠시. 아이들은 세일 중학교 운동장이 보이는 창틀로 달려갑니다.

 

 방독면을 쓰고 우주인이 된 아이

병뚜껑 놀이. 이것은 이모가 가르쳐준 놀이가 아닙니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음료수 페트병 마개를 모아가지고 오더니, 이걸 창틀 사이에서 굴려 부딪히는 놀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최고 인기 놀이입니다.

 

누군가가 다시 방독면을 쓰고 페트병과 플라스틱 호스로 만든 산소통을 어깨에 메자 아이들이 우르르 모입니다. 이모가 하자고 할 때는 잠깐 관심을 가지고는 모른 척하던 아이들. 얄밉게도 이모를 '왕따' 시키고 다시 소방관 놀이를 합니다.

 

이모가 책상을 펴고 양초 그림을 그리자고 하니 하나 둘 모입니다. 이모가 아이를 모으는 방법은 노래 부르기. 노래가 들리면 딴전을 부리던 아이들도 소리를 따라 모여듭니다. 도화지를 펼치고 양초로 그림을 그리고 물감을 접시에 풀고 물을 떠와 물감으로 덧칠을 하고. 이제 초등학교를 갈 동민이나 건이는 제법 작품을 만드는데, 준과 미르는 요즘 말로 '개념 없이' 뚝딱 그리기를 마치고 창틀로 달려갑니다.

 

준과 미르가 무엇 하나 따라 나섰더니, 준이 창문 귀퉁이에 낀 서리 위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미르도 서리에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자리가 없습니다. 준을 슬쩍 밀며 자리를 빼앗습니다. 곧바로 허공에 주먹이 오가고 몸은 뒤엉켜 엎치락덮치락. 눈 깜짝할 사이에 쌈이 벌어졌습니다. 방에서 다른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던 이모가 잽싸게 '날아와' 아이들을 뜯어 말립니다.

 

이모는 서로에게 왜 그랬을까? 말로 하고 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준과 미르에게 묻습니다. 쉽게 화해를 합니다. 하지만 준이의 입술은 여전히 삐죽 나와 있습니다. 아직 화가 삭여지지 않나 봅니다. 그렇게 서로 '절친'이더니, 오늘은 쉽게 풀리지 않겠네, 싶었습니다. 잠시 재령이를 재우고 있는 강애란 샘을 보고 왔더니, 이게 웬일? 준이와 미르가 언제 싸웠냐는 듯 말장난을 하고 있습니다.

 

 공기 일광욕을 하며 노는 아이들

참다래를 간식으로 먹고, 한판 풍물을 치고, 꼬리잡기 놀이를 하고 나니 점심시간. 이모들에게 점심은 놀이와 학습의 연장입니다.

 

이모는 아이들에게 맞게 식판에다 반찬과 밥의 종류와 양을 조절해 담아줍니다. 아토피가 있는 아이는 튀긴 반찬을 주지 않고 별도로 오이 무침을 챙겨줍니다. 식판에 담긴 밥과 반찬을 보니 아이의 몸과 성격, 습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네요.

 

밥을 먹을 때도 이모를 애타게 부르는 아이들의 절규는 끊임이 없습니다. 물론 이때는 이모의 '잔소리'가 더 많기도 합니다. 밥을 제대로 먹지 않는 아이에게는 입에 밥이 없네? 라고 묻고, 반찬이 사라지는 비율이 극과 극을 달리는 식판에는 이모의 젓가락이 침범해 이것도 먹어봐? 하며, 바쁘기만 합니다.

 

이모도 이때 밥을 먹습니다. 몽골 아이 테무진(준이라고 부름)은 꼬박 점심시간 한 시간을 거의 다 채우며 밥을 비웁니다. 꼴찌에서 두 번째가 이모, 정미자 샘입니다. 이모의 밥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걸 밥을 먹었다고 해야 하는지, 의심이 갑니다.

 

 밥을 먹기 전 감사의 기도를 하는 아이들

 

 요리 이모 김정숙 선생

잠깐, 요리하는 이모 김정숙 샘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요리 이모는 하루 종일 뒷모습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도 요리 이모는 싱크대의 조리대나 설거지통을 마주하지 내 눈을 마주치지 않습니다. 오늘 만든 해물 동그랑땡도 조리된 것을 사다가 후라이팬에 부쳐 내온 것이 아닙니다. 동그랑땡에 들어갈 재료를 일일이 사다가 식칼로 얇게 저며 만든 겁니다. 질긴 오징어에 얼마나 칼질을 했던지 어깨가 아프다며 가끔 팔을 가슴께로 모으며 어깨를 돌립니다. 새터에서 6년 차 요리 이모, 집에 가서 다시 주방에 서면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합니다. 요리 이모의 정성 때문일까? 아이들의 식판은 깨끗이 비어집니다.

 

새터에서 하루를 보내며 짬짬이 인터뷰를 해야지 했던 계획은 초반부터 깨졌습니다. 정말 말 한번 건네기가 어찌나 미안하던지, 수첩만 매만지고 이모들 주변만 맴돌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은 양치질을 하고 옷을 훌훌 벗더니 내의 바람입니다. 아예 팬티만 입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공기 일광욕 시간. 아이들은 몸으로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놉니다. 잠시 뒤 이모가 방안에 이불을 폅니다. 낮잠 시간. 이모는 옛날이야기를 해주고 아이들은 드러누워 이모의 이야기에 키득키득 거립니다. 그 옆에서 벽을 등지고 앉아 있던 내가 먼저 좁니다. 온유반 5살 아이들이 설핏 잠이 들자 큰 아이들은 슬며시 이불에서 빠져나옵니다. 이모는 욕실로 들어갑니다.

 

너댓 시간을 옆에 있으면서 강미자 샘이 화장실을 간 걸 본 기억이 없네요.

 

다른 직종의 돌봄 노동자들보다 보육교사들이 두 배 넘게 걸리는 질병이 뭔지 아십니까? 방광염을 비롯한 비뇨기질환(47.5%) 입니다. 안정되게 밥을 먹지 못하다보니 셋 가운데 한 명은 위장병(33.5%)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안고 업고 뛰놀다보니 요통 및 디스크(32%)나 근육질환(31%)은 보육교사에게는 당연한 사령장과 같습니다. 시설의 모든 높이를 아이들에게 맞추다보니 무릎 및 관절질환(40.4%)은 병으로 치지도 않습니다. 실내에서 아이들과 뛰놀다보니 호흡기 질환(돌봄 노동자 평균 14.9%, 보육교사 39.7%)도 보육교사에게는 유난히 높습니다.

 

새터 이모 가운데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튼튼한 이모 정미자 샘은 올해 마흔둘입니다.

 

"저도 마흔이 되면서 조금 아프기 시작해요. 근골격계 질환, 허리 아픈 것, 어깨 아픈 것은 보육교사 일하면 당연한 것이고요. 기운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껴요. 쉼이 없이 움직이잖아요. 빡빡한 하루 일정을 보내다 보면 몸이 아플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걸 깨우치죠."

 

 풍물을 치는 아이들

이런 정미자 샘의 꿈은 뭘까? 보육교사 말고, 정말, 꼭,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정미자 샘은 서슴없이 답을 합니다.

 

"보육교사로 정년퇴직 하는 거예요. 사명감 이런 것도 있지만 꿈, 저의 순수한 꿈도, 보육교사로 정년퇴직하고 싶은 거예요."

 

정말 별 수 없는 돌봄 노동자, 보육교사들이 모인 곳이 새터입니다. 새터의 원장은 근속연수에 따라 연장자가 한다고 합니다. 김진숙 원장은 새터에서만 17년을 이모라 살아온 분입니다.

 

새터는 보육이나 돌봄이라는 개념조차도 없었던 시절인, 1987년에 서울 구로구 가리봉3동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탁아'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 시절 지역탁아운동을 하던 시설이 서울에 아직까지 살아남은 곳은 새터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만큼 이곳은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뛰놀아야 할지를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흑미 찐빵을 간식으로 먹은 뒤 사포에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려 도화지에 다림질을 하여 배여 나오게 하는 교육, 아니 놀이를 하던 정미자 샘이 한숨을 내쉽니다.

 

"씨씨티브이 앞에 하루 종일 있는 것 같네요. 다른 분들은 (취재 와서) 늦어도 간식 먹고 나면 돌아가시던데 선생님은 안 가시네요. 좀 귀찮네요."

 

헉, 정미자 샘의 집까지 쳐들어갈 계획이었는데……. 인사를 하고 새터를 나섰습니다. 겨울 해는 짧습니다. 하는 일이 없이 덩달아 정신없이 바쁜 하루였습니다. 보육교사들의 돌봄 노동, 그 사랑과 희생을 고스란히 가슴에 담은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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