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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참사의 변론을 맡은 김형태 변호사가 15일 오후 서울 역삼동 법무법인 덕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용산참사에 대한 검찰의 미공개 수사기록 2000여 쪽을 검토한 뒤 "경찰 지휘부들의 무리한 진압이었음을 시인했다"며 발표하고 있다.
 용산참사의 변론을 맡은 김형태 변호사가 15일 오후 서울 역삼동 법무법인 덕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용산참사에 대한 검찰의 미공개 수사기록 2000여 쪽을 검토한 뒤 "경찰 지휘부들의 무리한 진압이었음을 시인했다"며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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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감춰졌던 용산참사 수사기록이 드디어 피고인들에게 공개되었다. 용산참사 1심 재판 변호인단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끝까지 수사기록 공개를 거부하는 검찰과 이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공판만 강행하려 한 법원에 대하여 퇴정으로 항의하다 결국은 변호인을 사임했던 한 사람으로서 만시지탄이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누누이 말해 왔지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변호인들이 원하는 수사기록을 검토할 수 있어야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고 검사는 수사기록 중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출할 의무가 있다고 분명하게 밝혀 왔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개시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검사가 위반한 경우 피고인에 대한 공소를 기각하고 더 나아가 검사의 명령 불이행을 범법행위로 처벌하고 있다.

검찰의 수사기록 공개거부 문제가 한창 뜨거운 쟁점이던 지난해 8월 21일 서울지방변호사회도 '피고인에 유리한 증거에 대한 검사의 공개의무'라는 문서를 통해 "검사는 피고인의 무죄 또는 피고인의 형을 감경시키는 증거나 정보를 알게 되면 이를 피고인과 변호인에게 적시에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미국변호사협회 직무수행모범규칙에 대하여 지난해 7월 8일 미국변호사협회가 공식발표한 의견을 소개한 바 있다. 이 의견에서 미국변호사협회는 검사가 범죄에 대한 피고인의 혐의 유무 및 양형 결정에 유리하게 작용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즉시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런 유권해석이 없더라도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틀어쥐고 있는 거대한 검찰권에 맞서 개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으려면, 피고인에게 유리한 자료로서 검찰이 보관하고 있는 서류를 공개하고 제공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규정한 헌법 규정에 비추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수사기록을 공개하라는 요구에 대한 검사의 답변은 말문이 막힐 정도다.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이번 공개로 그 실체가 드러난 용산수사기록의 내용은 그동안 검찰의 변명이 얼마나 구차하고 기만적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이다.

1심 재판부도 피고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헌법적 권리와 형사소송법상의 수사기록 열람등사권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옹호하는 데 주저했던 잘못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형사재판은 피고인이 검사 주장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는가 여부에 대한 진실을 밝혀 그에 따라 국가의 형벌권 행사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다.

'곡학아세'의 표본, 이중적 태도의 검찰

 12일 오전 용산참사 화재현장에서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 등이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2009년 10월 12일 오전 용산참사 화재현장에서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 등이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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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재판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재판절차는 엄격하게 공정해야 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에 맞서 피고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 국선변호인 제도나 미란다 원칙 고지와 같은 제도가 그러한 예이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수사기록을 피고인과 변호인에게 제공하라고 명령하고서도 이를 거부하는 검찰에 대해 어떠한 불이익이나 사법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변호인들의 거듭된 촉구와 항의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헌법위반행위에 대해 일언반구 없이 무작정 재판을 강행하고 구속기간 만기 전 선고에만 급급했다. 이 때문에 공판과정을 지켜본 방청객이 '이게 재판이냐'라고 말했던 것이고, 필자는 1심 재판부가 피고인의 손발을 묶어 검찰이 샌드백 치듯 일방적으로 피고인을 두들겨 패도록 해놓고서 피고인이 쓰러지자 검찰 손을 들며 KO판정을 한 '샌드백치기 재판'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니 때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항소심 재판부가 최근 수사기록을 피고인과 변호인에게 제공한 것은 그나마 1심 재판의 잘못을 바로 잡아 피고인들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한 점에서, 그리고 향후 검찰은 피고인에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수사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를 피고인에게 제공해야 할 의무를 명백히 한 점에서 의미가 참으로 크다.

하지만 뒷맛은 영 개운치 않다. 검찰이 스스로 수사기록을 내놓은 것도 아닌데다 수사기록 공개가 위법하다며 즉시 항고하는가 하면 용산참사의 항소심 재판부에 대해 기피신청을 하는 등 종전 입장을 바꿀 뜻이 전혀 없음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기갑 의원에 대한 무죄판결까지 뒤따르자 쑤셔놓은 벌집이 따로 없을 정도로 사법부를 맹공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검찰의 이런 태도는 정말 이중적이다.

"공판단계에서도 검사는 이렇게 수사단계에서 자신이 수집한 모든 증거를 법원으로 넘겨주어 공판절차의 주재자인 법원이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협조하여야 하는 것이고, 공판과정에서 법원의 활동이 적정한지 감시하고 견제하며, 공판과정에서도 피고인에게 유리한 활동도 하여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판결에 대하여 피고인에게 유리한 상소도 하여야 하는 것이다. … (중략) … 본 판례는 검사의 객관의무를 인정하고 그 전제하에 검사가 공판단계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은 것을 이 의무에 위반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하였고 이 결론은 타당하다고 본다."

한마디로 수사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는, 그것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것이든 유리한 것이든, 법원과 피고인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고 이를 제공하지 않으면 검사의 객관의무를 위반한 위법행위라는 것이다.

이 글은 용산참사 재판을 맡고 있는 변호인이나 형사소송법을 가르치는 교수가 쓴 것이 아니다. 이 글은 2004년 7월경 당시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으로 재직하던 모 검사가 쓴 <검사의 지위와 객관의무>라는 논문의 일부다.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이라면 검찰에서 형사소송제도를 연구하고 검찰의 입장을 밝히는 사람의 일원이지 않은가.

가관인 것은 용산참사 수사기록의 공개거부가 헌법위반이라며 피고인들이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용산참사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은 것이 검사의 객관의무 위반도 아니고 헌법을 위반한 것도 아니라는 취지로 검찰 의견서를 작성하여 제출한 사람이 바로 위 논문을 작성한 검사라는 사실이다. 이 정도면 '곡학아세'(曲學阿世)의 표본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곧 용산참사 이전의 형사사건에서 검찰은 '검사는 준사법기관이고 공익의 대변자'로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자료를 제출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해 오다가 용산참사 수사기록에 대해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돌연 입장을 바꾸어 피고인들에게 수사기록을 제출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 정권의 방위대 노릇 한다는 인식 뿌리내려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신용산역 부근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이 경찰특공대 진입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여 시커먼 연기를 내며 무너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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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철거민들의 농성을 무리하게 진압해 6명이 사망하도록 한 경찰의 위법행위를 조사하고 이를 공개해 철거민들이 자신들을 방어할 기회를 제공했더라면, 그리고 공권력을 위법하게 남용한 경찰 수뇌부와 지휘관들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었더라면 자기모순과 자기기만의 구렁텅이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고, 경찰과 정권 대신에 용산참사 수사의 잘못을 거의 혼자서 뒤집어쓰는 어리석음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이 믿을 수 없는 집단으로 전락한 것은 비단 용산참사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촛불집회 때도 무리한 기소권 남발로 원성을 샀던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개인의 인격을 모독하는 허위사실을 은근슬쩍 흘리고는 '빨대'에 대해 위법성이 없다며 불기소처분했다. 최근에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한명숙 전 총리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진술을 받아내는 대가로 곽 전 사장의 불법 주식거래를 혐의 없다고 결정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강기갑 의원에 대한 공무집행방해죄 무죄판결 역시 국회의장의 날치기 통과를 막으려는 국회의원의 연좌행위를 실력으로 끌어내고 플래카드를 철거하는 국회의장의 공권력 행사가 적법한 공무라고 보기 어려워서 그 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며 이것은 이전에도 법원에서 일관되게 보여온 입장인데도 그 판결을 꼼꼼히 따져보지도 않은 채 험악한 분위기만 연출하고 있다.

국민들 마음에는 이미 검찰이 스스로의 정치적 편향과 현 정권과의 공생관계로 정권의 방위대 노릇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 뿌리내린 지 오래다. 역시 검사 출신인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우리법연구회 소속 법관들의 행태'를 비난하며 '원내대표 산하에 사법제도개선특위를 만들어 개혁작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지만, 이쯤이면 정작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은 바로 검찰과 이를 비호하는 권력자들, 그리고 이들의 나팔수 같은 수구언론이 아니겠는가. 옛말에 하나 틀린 것 없다. '방귀 뀐 놈이 더 시끄럽다'는 말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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