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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옥 한나라당 의원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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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3일) 일본의 <제이피뉴스> 사무실 전화 및 핸드폰이 하루종일 울려댔다.

내 핸드폰이 불난 건 아니다. <제이피뉴스> 발행인 겸 편집장으로 있는 유재순 대표의 핸드폰이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로 몸살을 앓았다. 유재순? 어딘가 들어본 이름인데…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아! 그 사람!' 하며 무릎을 탁 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1월 13일, 어제는 일명 '전여옥 표절 재판'의 항소심 판결이 난 날이다. 무려 5년 반을 끌어온 재판이라 모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이 재판은 사실 상당히 중요하다. 저작권 개념이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기준이 될지도 모르는 재판이기 때문이다.

2004년 7월 1일, 나는 한 인터뷰 기사를 썼다. 기사의 탈고 자체는 6월 중순에 끝났지만 보름 동안 치밀한 '크로스체크'를 거쳤다. 이 기사가 나가자마자 전여옥 의원은 기사작성에 관련한 5명에게 명예훼손에 관한 민사소송을 걸어왔다. 

피고는 총 5명이었다. 유재순, 오연호, 정운현, 김동렬, 그리고 나. 유재순씨는 인터뷰이, 오연호씨는 기사가 실린 <오마이뉴스>의 대표, 정운현씨는 당시 편집국장이었다. 인터넷 논객인 김동렬씨는 이 인터뷰 기사를 토대로 모 정치칼럼사이트에 전 의원에 대한 비판글을 실었다.

원고는 물론 인터뷰에서 거론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었다. 그녀는 다섯 명에게 각각 1억 원씩 총 5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사건의 발단은 그 해 6월 초순 <오마이뉴스> 최경준 기자가 썼던 전씨의 인터뷰 기사였다. 이 기사 말미에서 최 기자는 100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일본은 없다>를 둘러싼 표절의혹을 물었고 이 물음에 전여옥 의원은 "표절이 아니다"라고 확실하게 말했다.

공익적 차원에서 인터뷰를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

일명 '전여옥 표절 재판'의 대상이 되었던 기사
 일명 '전여옥 표절 재판'의 대상이 되었던 기사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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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읽고 당시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이던 정운현씨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그가 이렇게 제안했다.

"전여옥씨의 <일본은 없다>가 십여 년째 표절 의혹에 빠져 있다. 표절 당했다는 유재순씨가 일본에 있다는데 한 번 만나보지 그래."

며칠간 수소문 끝에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유재순씨를 만났다. 그러나 그녀로부터 2시간 30분에 걸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반드시 기사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어떻게 이런 비화 혹은 의혹이 10여 년간 한 번도 공개적으로 문제제기 되지 않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온 기사가 "감옥갈 각오로 '표절' 진상 밝혀낼 것"였다. 이 기사는 아주 적나라하다. 기사를 쓰면서도 100% 소송에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인터뷰 기사의 밑바탕이 되는 '우라즈케(裏付け, 어떤 내용에 대해 사실여부를 제3자를 통해 확인하는 것)' 작업은 확실하게 진행했다. 이 작업을 통해 유재순 대표의 말 자체에 거의 거짓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전여옥씨가 '국회의원', 즉 '공인'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공인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의혹'이 있다면 보도해야 한다.

한국은 모르겠지만 일본은 그렇다. 일본의 영향력 있는 잡지들은 의혹차원에서부터 보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에서 저널리스트 활동을 시작한 나로서는 유재순씨의 말이 제3자의 '크로스체크'를 통해 거의 사실임이 밝혀졌고, 또 전여옥 의원이 공인이기 때문에 공익적 차원에서라도 이 인터뷰 기사를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운현 전 편집국장도 이런 생각에 찬성했다. 그래서 인터뷰 기사로는 이례적으로 무려 2주일간에 걸친 최종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사실 <오마이뉴스>의 과거 편집국장들을 보면 참 독한 사람들이 많다. <시사저널>에서 경력을 쌓은 서명숙 전 편집국장도 그렇지만 정운현씨도 이런 데에 있어선 한 치의 양보가 없다.

무엇보다 인터뷰이인 유재순 대표가 인터뷰 전문을 공개해 달라고 말했다. 명예훼손을 당한다면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기사가 나가면, 그래서 혹시라도 소송에 걸린다면 가장 큰 타겟이 될 것이 뻔한 유씨가 각오했다고 하니 편집하고 말 것이 없었다. 그래서 1만 자 인터뷰는 2004년 7월 1일 세상에 선보였다. 

하지만 말이 쉬워 5년 반이지 재판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은 이 심정을 잘 알 것이다. 특히 피고 입장에 선 사람에게 있어 재판이라는 것은, 원고 측 입장과 180도 상황이 다르다.

민사재판이 원래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오래갈지 몰랐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내 경우엔 <오마이뉴스>가 전부 책임을 져주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5년 반을 끌어온 재판은 1심 판결과 마찬가지로 항소심에서도 원고 전여옥 의원 측의 패소로 끝났다. 즉, 우리 측의 승리로 끝났다. 전 의원이 다시 대법원 상고를 할 것이라고 예상되지만, 민사재판에서 대법원이 1심 및 항소심의 판결을 뒤집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일언반구' 없는 행태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전여옥 표절 재판'에 대한 '사실심리'는 13일 항소심 판결로 마무리되었다. 전여옥 의원이 상고를 해서 대법원까지 가더라도 그것은 법리적용의 여부를 따질 뿐이다.
 '전여옥 표절 재판'에 대한 '사실심리'는 13일 항소심 판결로 마무리되었다. 전여옥 의원이 상고를 해서 대법원까지 가더라도 그것은 법리적용의 여부를 따질 뿐이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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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순 대표는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축하전화 받느라 정신이 없지만 솔직히 나는 담담하다. 별다른 감흥이 없다. 물론 간혹 찾아왔던 악몽을 더이상 꾸지 않아도 되겠지만 말이다. 감흥이 없는 이유는, 내 신조에 비추어 봤을 때 특종이니 뭐니 그런 개념보다 그냥 당연하게 써야 할 기사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신조는 공적인 자리에 있는 이가 거짓말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워낙 그런 게 많다. 출세를 위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일정한 거짓말도 필요하다는 인식이 많다. 거짓말했다가 들키면 둘러대고 또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린다. 위정자가 어디 취임할 때 항상 불거져 나오는 '위장전입' 같은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잖냐 라고 쉽게 봐주는 것이 한국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다. 혹시라도 거짓말을 했거나 세간의 상식에 비추어봤을 때 문제되는 행동을 했다면 '공인'은 깔끔하게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엔 이념이 없다. 아니, 이념을 떠나 극우든 극좌든 스스로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있다고 깨끗하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응원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전여옥 의원은 법정에서 수많은 '팩트'가 이미 밝혀졌고, 그에 따라 법원이 두 번이나 원고 측 패소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오히려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 집권여당의 대변인까지 했고 최고위원까지 올랐다. 참 재밌는 세상이다.

결정적으로 전여옥 의원은 사람을 잘못 봤다. 나도 그렇지만 유재순 대표는 일본에서 주욱 글쟁이 생활을, 그것도 프리랜서로 일해 왔다. 이곳의 저널리스트 문화는 한국의 기자 문화와 많이 다르다. 프리랜서로 일가를 이루기 위해선 별의별 고생을 다 한다. 그리고 그 고생을 통해 신뢰를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프리랜서는 자신의 저작물에 상당히 민감하다. 서명(바이라인)에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 재산이기 때문이다. 아마 전여옥 의원처럼 거대매체 KBS라는 방패의 보호를 받는 직업기자, 그것도 약 2년에서 3년 동안 잠시 머물다 가는 특파원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혹독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래서일까? 2004년 7월 2일 전여옥 의원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대문짝만하게 "오마이뉴스와 박철현 기자에게 그 책임을 묻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소송을 걸겠다고 했을 때 '그래, 한번 붙어보자!'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다. 저널리스트로서 도대체 내 기사의 어느 부분이 잘못됐는지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확인'은 13일에 나온 항소심 판결로 대강 마무리된 것 같다. 아니, 대강 마무리가 아니다. 민사재판의 경우 사실심리는 2심에서 끝이 난다. 전여옥 의원이 상고를 해서 대법원까지 가더라도 그것은 법리적용의 여부를 따질 뿐이다. 즉 사실 관계에 관한 부분에서 법원이 전 의원 측의 패소를 최종적으로 인정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워낙 당한 것이 많은 유재순 대표는 대법원(상고심) 판결을 기다려 본 후, 그간 입은 손해배상 청구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유 대표는 지난 5년 반 동안 법원출석을 위한 비행기삯과 제반 재판 비용으로 1억 원 가까이 썼다. 이 실질경비를 제하더라도 재판 때문에, 일상적 집필활동을 통해 충분히 벌어들일 수 있었던 소득을 손해 봤다. 물론 재판으로 입은 정신적 피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하다.

나 역시 유재순 대표나 <오마이뉴스>와는 별개로 따로 소송을 걸 생각이다. 다른 당사자들이 '이겼는데 그거 뭐하러 하냐?'고 유야무야 넘어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런 문제는 절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판결이 만약에 일본에서 나왔다면 당사자는 그날로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 하지만 전 의원은 일언반구조차 없다. 나는 이런 행태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대한민국 법원이 최종적으로 인정해 준, 정당한 내 인터뷰 기사에 대한 명예를 되찾아야겠다. 아 참, 그리고 유재순 대표만큼은 아니겠지만 나 역시 전여옥 의원이 정기적으로 꿈에 나타나는 등 상당히 참기 힘든 정신적 고통을 겪었으니 정신적 피해에 관한 위자료도 청구해야겠다. 민사·형사 다 걸 생각이니, 전 의원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시길.

덧붙이는 글 | 박철현 기자는 일본전문 뉴스사이트 <제이피뉴스>의 정치사회부 기자로 있습니다. 이 글은 <제이피뉴스>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태그:#전여옥, #유재순, #일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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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최신작은 <쓴다는 것>. 현재 도쿄 테츠야공무점 대표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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