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춥다. 너무 춥다. 곰이나 개구리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춥다. 출퇴근길마다 완전무장을 해야 하는 요즘, 저소득층은 어떻게 겨울을 나고 있을까? 이런 날씨에 보일러 안 틀고 전기장판만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걸까? 지난해 말 국회에서 보건복지부의 에너지보조금 903억 원은 모조리 깎였다는데….

<오마이뉴스>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도시 빈곤지역, 쪽방촌, 비닐하우스촌 등을 다녀왔다. 하필 올 겨울 중에서도 제일 춥다는 1월 2째주에 인턴 기자들이 발바닥에 얼음 박히도록 뛰었다. 굳이 서울광장의 남극체험 행사 안 가봐도 우리 사회는 곳곳이 남극이었다. [편집자말]
# 상황 1. 미아동 촛불 화재사건

2009년 12월 3일 저녁 서울 미아동에 사는 인중환(84세) 할머니네 전세방에 불이 났다. 화재 원인은 촛불. 인 할머니는 40여만 원의 보조금으로 삶을 이어가는 독거노인이었고, 고장 난 연탄보일러를 수리하지 않은 채 양초로 난방을 대신했다.

다행히 큰 화상을 입지는 없었지만, 오갈 곳이 없어진 인 할머니는 현재 노인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 적십자사 등 지원단체들이 인 할머니가 머물 새로운 주거시설을 찾아보고 있다.

# 장면 2. 국회 보건복지위 소위(2009년 11월 23일)

유용학 보건복지가족부 차관 "(저소득층 에너지보조금은) 한시사업으로 시작을 했던 것이고 재작년 7월 당시에는 유가가 한 140불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상당히 유가가 감소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이걸 계속 지원하기는 좀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명순 한나라당 의원 "빈곤층은 아직도 피부적으로 회복이 안 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일정 부분 반영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태현 보건복지가족부 보육정책관 "공동모금회·민간 쪽에서 연탄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데들이 많이 있습니다. (……) 최저생계비라는 게 광열비라든지 이런 난방비가 들어가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들어가 있기 때문에…(하략)."

 폭설에 이은 한파로 인해 서울시내에 내린 눈이 하루가 지나도록 녹지 않아 시민들이 통행에 불편을 겪고 있는 가운데 5일 낮 서울 마포구 합정역 부근 자전거보관소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폭설에 이은 한파로 인해 서울시내에 내린 눈이 하루가 지나도록 녹지 않아 시민들이 통행에 불편을 겪고 있던 지난 5일 낮 서울 마포구 합정역 부근 자전거보관소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겨울 한파가 만만치 않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올겨울 가장 춥다는 13일 서울의 최저온도는 -15℃. 경기 북부나 강원 지역 대다수가 -20℃ 아래로 내려가고, 철원은 -26℃까지 떨어진다.

그러나 지난해 말 국회는 보건복지부 예산심의 과정에서 903억 원 상당의 저소득층 에너지보조금을 전액 삭감했다. 일부 의원들이 "기본적인 기름값은 내야 한다"면서 반대했지만, 복지부는 "민간 쪽에서 연탄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데가 많다"고 발을 뺐다. 올해 복지부 에너지보조금은 0원이다.

이 같은 복지부 방침은 지식경제부의 정책 방향과는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 당시 최경환 지경부 장관은 "내년 안에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별도의 에너지 비용을 지원하는 '에너지복지법(가칭)'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덴마크 코펜하겐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돌아온 뒤 "에너지 가격현실화 정책이 서민들에게 경제적 부담이 되지 않도록 에너지 복지정책을 철저히 강구해 함께 가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올해 복지부 에너지보조금은 0원... 해마다 한시 사업 땜질

정부 부처끼리도 엇박자를 보인 에너지보조금 예산 심의과정은 일관성 없이 해마다 땜질식으로 이루어지는 에너지복지 정책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강준 에너지정치센터 기획실장은 이번 예산심의 과정에 대해 "정부는 에너지 복지를 시혜적 차원의 일회성 지원으로만 이해하고 있다, 올해 제정될 에너지복지법도 걱정이다"라고 우려했다.

에너지 관련 단체들은 "매해 보조금 액수를 늘렸다 줄였다 하는 한시사업만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면서 실태 파악과 관련 법제화를 통한 종합적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에너지복지정책 수단에 대해서도 "소비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열공사 등 저소득층 주거시설 개선으로 에너지효율을 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 에너지복지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법제도적 기반이나 체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된다는 점이다. 예산 심의과정에서 유용학 차관이 주장했듯이 에너지보조금은 한시적 사업이라서 이를 추진할 법적 근거가 없다.

현행 에너지기본법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에너지공급자는 빈곤층 등 모든 국민에 대한 에너지의 보편적 공급에 기여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선언적 문구일 뿐 구체적 정책에 대한 내용은 여기에 전혀 나와 있지 않다.

기본적인 정책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정부는 그때그때 국제유가 상황이나 사회 여론에 따라서 에너지지원책을 발표한다. 그렇다 보니 당장 전시 효과를 거두기 쉬운 현금 지원을 선호하게 된다. 한시적 성격의 에너지보조금 사업이 매해 반복되는 까닭이다.

사실 에너지보조금과 같은 소액 현금 지원의 전달 효과를 놓고 빈곤 현장에서 논란이 있다. 지난해 보조금은 가구당 2만 원. 당장 의약품이나 다른 의식주가 급하기 때문에 저소득층 수급자는 이 돈을 생계비로 '전용'하고 전기장판으로 난방을 때운다. 올 겨울에는 단체 차원에서 전기 온열기구를 공동구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소득층 특성과 주거·난방 형태에 따라 어떤 지원을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연구 조사 결과도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에너지복지법을 제정하면서 2011년부터 쿠폰형태의 에너지바우처를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정도다.

최예륜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그동안의 에너지보조금은 액수도 너무 적고 실효성이 부족했다"면서 "에너지복지 정책을 위해서는 실태 조사와 같은 '기본'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0년도 예산안 등이 통과된 가운데 31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방청객들이 예산안 처리를 규탄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2010년도 예산안 등이 통과된 가운데 지난 2009년 12월 31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방청객들이 예산안 처리를 규탄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한국의 현실은 프랑스의 사례와 매우 대조적이다. 프랑스는 지난 1998년부터 '최저사회복지보조에 관한 법(현재는 사회활동가족법에서 규정)'에서 "빈곤 상태로 특별한 곤란에 직면한 모든 자 및 가족은 수도, 에너지(전력 및 가스), 전화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사회의 보조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정했다.

프랑스 정부와 전력공사·가스공사·수도공사 등은 전국협정을 체결해 재정지원액과 지원방법을 정해야 하고, 이에 따른 조치가 취해질 때까지 저소득층은 대금이 미납됐더라도 에너지 및 수도를 공급받을 수 있다.

영국 역시 지난 1999년부터 에너지빈곤층 지원 전략의 목표·대상·정책수단 등의 개발을 위해 정부 관계부처의 연합그룹을 결성한 뒤, 2년 동안 의견 수렴을 거쳐 2001년 '에너지빈곤층 지원전략'을 발표했다.

이강준 기획실장은 "우리도 법과 조례를 통해 에너지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지역별로 자치단체와 에너지 공급자 및 노조, 사회단체들이 공동으로 에너지복지기금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서 "지역위원회를 구성해 복지지원 대상과 전달체계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별로 저소득층의 특성, 주거 및 난방형태를 감안해 효과적인 에너지 복지를 지원하자는 아이디어다.

4대강 살리기보다 확실한 녹색 일자리, 저소득층 집수리

환경에너지 분야의 시민사회단체들이 근본적인 정책 대안으로 주장하는 것은 저소득층 주택 에너지효율화 지원사업이다.

경제적 지원을 통해 당장 급한 추위는 녹여야 하지만, 에너지소비를 지원하는 것보다 주거시설을 고쳐서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것이 더 친환경적 사업이라는 주장이다.

저소득층의 주거시설 상당수가 노후 불량주택인데, 이 때문에 쪽방이나 판잣집, 비닐하우스는 물론이고 단독주택 셋방이나 임대아파트에서도 '냉골'이라는 말이 나온다.

관악구·강서구와 함께 서울의 3대 에너지빈곤 지역으로 꼽히는 노원구의 경우 지난 2008년 조사 결과, 구내 약 19만 개 주택 중 30년 이상 된 고건물이 4632호나 됐으며, 20년 이상 된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도 2522가구에 달했다(2005년 11월 현재).

이런 노후 주택들은 단열공사만으로도 난방 에너지를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환경정의와 한국에너지복지센터가 은평구 녹번동에서 저소득층 가구 6곳을 선정해 창문과 현관문을 이중창으로 바꾸고 외벽 단열공사를 한 결과, 주택 기밀성(공기를 차단하는 정도)이 44% 높아진 것이다.

주택 에너지효율화 지원 사업의 또 다른 장점은 복지와 환경은 물론, 고용까지 세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데 있다. 건설과 관련된 다양한 일자리가 창출되기 때문에 "정부 주도의 대규모 토건 사업보다 효과가 장기적이고 성격도 훨씬 '녹색'에 가깝다"고 환경단체들은 주장한다.

 환경정의가 에너지효율화 개선 주택으로 선정한 원주시에 사는 안재옥 할머니 댁.  벽에는 단열을 하고 틈새에 충전재를 넣어야 한다. 오래된 출입문은 샤시로 교체해서 찬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고, 종이가 뜯어져 찬바람이 들어오는 방문을 기밀성이 높은 문으로 교체한다.
 환경정의가 에너지효율화 개선 주택으로 선정한 원주시에 사는 안재옥 할머니 댁. 벽에는 단열을 하고 틈새에 충전재를 넣어야 한다. 오래된 출입문은 샤시로 교체해서 찬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고, 종이가 뜯겨 찬바람이 들어오는 방문을 기밀성이 높은 문으로 교체한다.
ⓒ 환경정의

관련사진보기


해외의 대표적인 에너지효율화 사업 모델로는 미국 주택단열 보조프로그램(WAP)이 있다. 미국은 오일쇼크 이후 저소득층의 에너지 비용이 늘어난 1970년대부터 '저소득가정 에너지지원 프로그램(LIHEAP)'과 WAP의 양 축으로 에너지지원사업을 펼쳤다.

미 에너지부 통계에 따르면, WAP에 따라 지원받은 가구는 연간 난방비가 약 200~250불 줄어들었다. 주택 수리 연한을 20년이라고 가정할 때 한화로 약 520만 원에서 660만 원 정도의 돈을 아끼는 셈이다. 수리 사업으로 고용 수요가 증가하면서, 지역의 일자리는 투자비용 100만 달러당 52개씩 늘어났다.

가난한 사람들의 환경 죄악?

에너지복지의 역설 중 하나는 저소득층이 사용하는 난방 시스템이 일반 중산층에 비해서 훨씬 반환경적이라는 점이다.

같은 지역에서도 소득수준이 높은 아파트 거주자는 도시가스를 사용하지만, 저소득층은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등유를 사용하고 있다.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 낡은 집에 세 들어 살기 때문이다.

아껴 써도 한 달에 난방비가 20만 원이 넘다 보니, 아주 추운 날 밤에만 잠시 불을 때고 낮에는 경로당 등 시설에서 지내는 경우도 많다.

빈곤층이 사용하는 전기장판이나 전기열풍기 등도 에너지효율 면에서는 낙제점이다. 지난해 에너지복지재단 국정감사에서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은 저소득층 전기매트 지원을 지적하면서 "전기로 하는 난방은 열역학 교과서에 '죄악'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매우 비효율적 방식"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지적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 가스비를 부담할 능력도 안 되는데 환경까지 생각할 착한 기초생활수급자는 없다.

일단 전기요금이 후불제이다 보니 당장 등유를 살 돈이 없는 가구는 난방은 물론 취사까지 모든 에너지를 전기로 해결하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도 지난 2007년 저소득층 에너지 효율개선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산업자원부와 한국에너지재단은 보일러·단열·창호·이동식난방필름, 보일러식 온수매트를 선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사업 내용이 주택 개선이 아닌 난방기구 교체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한다. 현금만 지원하던 것보다는 진일보했지만 여전히 에너지 공급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기순 환경정의 초록사회국 간사는 "건물 공사 실사업비는 가구당 90만 원 정도인데 주택에 따라서는 외풍이 심한 창문 2개 중 하나만 수리해야 하고, 내외벽 단열공사는 꿈도 못 꾼다"면서 "도배나 장판을 새로 하는 일반적 집수리와 다를 게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기순 간사는 "애초 주거시설 공사도 시민사회 요구에 따라 사업에 포함됐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에 대한 사업 모니터링이나 효과 검증이 없었다"면서  정부측 의지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명박 대통령이 17일일 오후(현지시각) 코펜하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Taking Action Together'이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7일 오후(현지시각)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Taking Action Together'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