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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전직 대통령이 연이어 우리 곁을 떠나고 세계적 금융위기의 여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난히도 길게 느껴졌던 2009년이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새사연은 2010년을 전망하는 연속 기획 '2010 전망'을 마련했다. 올해는 '불확실의 시대'로 규정된다. 2009년 하반기로 가면서 차츰 소강상태로 접어든 위기가 다시 파국적 결말을 맞을 것이란 전망도 옳지 않지만, 그렇다고 OECD 최고의 경제회복과 G20 국격 제고라는 장밋빛 치장에만 몰두하는 전망 역시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2010년을 보는 시선 속에는 잿빛 비관과 장밋빛 낙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새사연은 이 실타래 속에서 '희망'이라는 가늘지만 질긴 실타래를 찾아 풀어내보려 한다. 여러분도 함께 찾아보길 기대한다. - 기자말

미국발 금융위기의 배경에는 미국 가계의 과도한 부채와 소득에 기반하지 않은 소비가 도사리고 있다. 2009년 한국의 가계부채는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증가하는 현상을 보였다. 가계부채가 파산으로 이어질 경우 금융 시스템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가할 수 있고, 소비의 급격한 축소를 일으키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세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다른 국가들은 부채를 줄이고 저축률을 높이는 데 반해 한국의 가계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운용의 취약요인으로 떠오른 이유는 2009년 2사분기 이후 실질소득은 감소하고 있음에도 가계부채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증가했기 때문이다.

2009년 3사분기 현재 개인부문 금융부채 총액은 836조8000억 원이다. 같은 기간 가계신용 잔액은 712조8000억 원에 이른다. 가계신용 잔액이란 가계가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사용으로 대표되는 '판매신용'을 뜻한다. 가계대출이 95퍼센트 정도, 판매신용이 5퍼센트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 사상 최초로 700조를 돌파한 결과 한 가구당 약 4213만5215원의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가계대출을 대출 기관별로 나눠 살펴보면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증가율이 가장 빠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금은행의 대출 증가폭은 3사분기 4조7000억 원으로, 전기에 8조2000억 원이 늘었던 것에 비하면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규모이다. 반면 비은행 예금취급기관과 기타금융기관의 경우 3사분기 증가폭은 각각 5조5000억 원과 3조9000억 원으로, 전기에 각각 2조9000억 원과 2조7000억 원이 늘었던 것에 비하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는 정부가 급증하는 주택담보대출을 잡기 위해 2009년 7월과 9월에 LTV(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확대했기 때문이다. 대출 규제 강화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워진 사람들이 제2금융권으로 몰린 것이다. 문제는 은행보다 제2금융권의 대출이자가 높다는 점이다. 은행의 가계대출금리가 대체로 5~6퍼센트 수준이라면,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대출금리는 7~12퍼센트다. 대부업체의 경우 30~40퍼센트에 달한다. 뒤에서 더 자세히 짚어보겠지만 높은 이자부담은 가계부채를 폭증시키는 요인이 된다.

가계대출을 대출 형태별로 살펴보면 역시나 주택담보대출이 절반에 가까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09년 3사분기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59조2000억 원이며,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은 60조9000억 원이다. 둘을 합치면 약 320조 원 정도에 달해 전체 가계대출 잔액인 675조5000억 원의 약 47.4퍼센트 정도이다.

예금은행의 경우만을 놓고 대출 형태별 구성비를 살펴보면 2009년 전체에 걸쳐 53.7~53.8퍼센트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사분기의 경우 전체 가계신용은 전기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을 줄이기 위해 7월과 9월에 LTV와 DTI 규제를 강화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며, 부동산으로 인한 가계의 부담도 줄어들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전체 가계신용은 전기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전체 가계신용은 전기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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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가계부채 위협을 증가시킬 요인은 무엇인가?

정부는 아직 가계부채가 심각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부채 문제는 서서히 심각해지는 것이 아니다. 부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주던 요인들이 한계점에 도달하는 그 순간 급격히 붕괴할 수 있다. 2010년 한국경제에서 가계부채로 인한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위협요인으로는 두 가지가 거론된다. 첫째, 가계소득의 감소이며 둘째, 이자비용의 증가이다. 2010년 가계부채의 핵심 키워드는 부채 규모의 단순 증가가 아니라 이러한 요인들이 될 것이다.

우선 가계소득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다른 때보다 심각하다. 특히 현재의 소득 감소는 일자리 감소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고용 창출이라는 근본적 대책이 실현되지 않는 한 개선되기 힘들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3사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345만6000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4퍼센트가 감소했으며,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여 실질로 따졌을 때는 3.3퍼센트가 감소했다. 가계소득은 2008년 3사분기 이후 계속해서 증가율이 낮아졌다. 그러다가 2009년 2사분기에 -0.1퍼센트로 소득의 절대액수 자체가 감소하더니 이번 3사분기에도 -1.4퍼센트를 기록하며 연속 감소했다. 이는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의 감소율이며, 명목소득의 절대액수 자체가 줄어든 것은 2009년 2, 3사분기가 유일하다.

가계소득의 약 66퍼센트를 차지하는 근로소득은 전년 대비 -0.3퍼센트 감소했다. 2008년부터 계속해서 증가폭이 줄어들더니 2009년 3사분기에 들어서 드디어 절대액수 자체가 감소했다. 근로소득 감소는 최근의 일자리 감소와 임금 삭감으로 인한 결과이다. 2009년 3사분기에 정부의 희망근로를 제외하면 전년에 비해 대략 20만 개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또한 노동부 협약임금 인상 통계자료에 의하면 2009년 임금 인상은 3월에 1퍼센트 수준으로 떨어지더니 9월에는 1.5퍼센트 수준에 그치고 있다. 2008년 평균 임금인상률이 4.9퍼센트였다는 점과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사실상 2009년 임금은 줄어들었다.

이런 소득 감소를 반영하듯이 경기침체로 인해 생활자금을 빌리는 가계나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사업자금을 빌리는 자영업인이 늘어난 것도 대출 증가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2009년 주택담보대출 중 생활자금 및 사업자금 용도의 대출 비중이 평균 50퍼센트 수준으로 추정되어 과거 주택가격 상승기 동안 20퍼센트를 하회했던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의 경우 이미 자금상황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가 아니라 소비를 위해 대출했다는 점에서 상환능력은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소득은 줄어드는 반면 2009년 1월부터 9월까지 가구당 이자 지출액은 59만8000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7.8퍼센트 증가했다. 이는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3년 이후 가장 많은 금액이다. 이자 지출액을 약 60만 원으로 보고 전체 가구수를 약 1700만 가구로 보면 같은 기간 전체 가구에서 이자비용으로 지출된 금액은 10조2000억 원에 달한다. 이 같은 소득 대비 이자부담률의 상승은 특히 소득분위 중간계층, 이른바 중산층 가계에 가장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소득층의 경우 소득이 많기 때문에 이자 증가가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고, 저소득층의 경우 아예 대출을 받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소득 감소라는 근본적 문제 외에 가계부채 상황을 더 긴박하게 만드는 요인이 있다. 바로 시중 은행의 높은 대출금리인데, 앞으로도 금리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 큰 문제이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행은 2008년 8월 5.25퍼센트였던 기준금리를 점차 낮춰서 2009년 2월 2퍼센트로 대폭 낮춘 후 현재까지 11개월째 동결하고 있다. 역사상 최저금리이다. 하지만 신규취급액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금리는 11월에 6.00퍼센트로 기준금리보다 훨씬 높다.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경우 5.87퍼센트, 신용대출의 경우 6.25퍼센트에 이른다. 10월의 경우 가계 신용대출 금리는 무려 6.37퍼센트까지 올라갔다. 지난 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9년 1월에서 11월 동안 신규취급액 기준 가계대출 가중평균 금리는 5.71퍼센트에 달하여 같은 기간 평균 연 2.0퍼센트였던 기준금리와 차이, 즉 가산금리가 9년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기준금리와 시중은행 대출금리의 차이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은행은 대출받는 사람의 신용에 따라 기준금리에 가중평균 금리라는 위험부담비용을 더한다. CD(양도성 예금증서) 금리, 은행채 금리, 조달금리 등의 다양한 변수들이 사용되며 이들 역시 통상적으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에 따라 조절된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CD연동금리를 기본으로 하며 여기에 대출받는 사람의 신용에 따라 추가적인 가산금리를 덧붙여서 대출금리가 결정된다. 따라서 한국은행이 결정하는 기준금리가 일정하더라도 개별 은행이 결정하는 CD금리나 가산금리가 상승하면 대출금리가 상승하게 된다.

특히 CD금리의 변동은 이자부담에 큰 영향을 준다.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하여 가계대출의 70퍼센트와 중소기업 대출의 40퍼센트가 CD금리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계와 중소기업 대출잔액을 합치면 거의 1천조 원에 가깝다는 점에서 CD금리가 몇 퍼센트 포인트 상승하느냐에 따라 추가 이자부담이 몇 조 원씩 늘어날 수 있다. 그런데 이 CD금리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2009년 8월 2.41퍼센트였던 것이 2010년 1월 2.88퍼센트로 0.47퍼센트 포인트가량 올랐다. 이로 인한 가계와 기업의 추가 이자 부담은 연간 2조5000억 원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 되자마자 각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금리를 0.01~0.07퍼센트 포인트 인상했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졌는데 이것 역시 CD금리가 높아진 때문이다.

그렇다면 CD금리는 왜 상승하는 것일까? CD는 은행이 보유한 예금을 담보로 하여 발행한 채권이라 볼 수 있다. 예금 수신 외의 자금을 조달해야 할 때 발생하게 된다. 최근 은행들이 과도한 대출경쟁과 금융위기로 인한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CD를 많이 발행하게 되었고, 물량이 증가하여 시장에서 소화가 되지 않다 보니 금리가 높아진 것이다. 결국 은행들의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이 금리를 통해 가계로 전가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은행들의 과도한 대출경쟁과 금융위기로 인한 자금난으로 CD금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은행들의 과도한 대출경쟁과 금융위기로 인한 자금난으로 CD금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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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 요인에 취약한 현재 가계부채의 구조적 특징

정부는 아직 가계부채를 걱정할 단계가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몇 가지 지표를 제시한다. 먼저 주택담보대출의 건전성 지표인 LTV가 2009년 7월말 47.1퍼센트로 미국의 74.9퍼센트나 영국의 85.2퍼센트에 비해서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금융부채 비율 역시 2007년 말 기준 82퍼센트로 미국과 영국의 100퍼센트나 호주의 98퍼센트보다 낮다.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도 2008년 말 기준 47.8퍼센트로 절반 이하에 불과하다.

하지만 가계자산 중 유동성이 떨어지는 부동산 자산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없다. 2006년 기준 가계의 부동산 자산 비중은 83퍼센트로 미국의 58퍼센트, 호주의 68퍼센트 등과 비교할 때 현저히 높다. 만약 금리 상승으로 가계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만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도 자산의 83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부동산은 제때 처분되지 않는 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오히려 각 가계에서 이자비용 마련을 위해 부동산 매물을 내놓을 경우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문제는 더욱 가중된다. 이런 위험도를 잘 보여주는 지표가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인데, 2009년 1사분기에 142.3퍼센트를 기록했다.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소득보다 금융부채가 1.4배 이상 많다는 뜻이며, 소득이 5000만 원이면 빚은 7000만 원이라는 뜻이다.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아서 금리변동에 취약하다는 점도 문제이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90퍼센트 이상이 변동금리 대출이고 이것의 대부분이 91일물 CD금리연동형 대출이다. 91일물 CD금리는 3개월마다 바뀌기 때문에 이와 연동된 대출금리 역시 변동성이 커지고, 은행들이 CD금리를 올릴 때마다 그대로 가계부채의 증가로 이어진다. 원래 변동금리는 변동성이 심하다는 면에서 고정금리보다 1퍼센트 포인트 정도 낮은 것이 일반적인데 최근에는 CD금리와 가산금리 상승이 급격해지면서 둘이 뒤바뀌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때문에 주택담보대출 등의 경우 고정금리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변동금리가 CD나 은행채와 같은 은행의 시장성 수신자금과 연동되는 것이라면 고정금리는 국채나 주택채권 등 정부 차원의 정책자금과 연동되는 것이다. 따라서 주택담보대출에서 변동금리가 늘어나고 고정금리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부동산 대출에 투입되는 자금의 성격이 정책자금이 아닌 은행의 시장성 수신자금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부동산 시장을 정부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이라는 민간에 넘겨준 셈이다.

상승세를 이어가는 높은 주택담보대출
 상승세를 이어가는 높은 주택담보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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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를 금융위기의 희생양으로 삼은 정부와 금융기관

또 한 가지 짚어보아야 할 것은 예대금리 차이이다. 가계 처지에서 보면 예금금리는 수익이고, 대출금리는 비용이다. 그런데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올리는 만큼 예금금리를 올리지 않았다. 즉 가계가 받아야 할 예금금리는 줄어들고 가계가 지불해야 할 대출금리만 늘어난 것이다. 가계로서는 손실이요, 은행으로서는 이익이다. 실제 시중 은행은 2009년 3사분기 이자 이익으로 전기보다 6000억 원 증가한 7조8000억 원을 벌었다. 주목할 것은 이 기간 동안 은행의 가계대출은 4조7000억 원으로 8조2000억 원이던 전기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음에도 오히려 전체 이자 이익은 증가했다는 점이다. 은행이 대출 규모를 줄이는 대신 금리 차이를 높여서 이익을 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 한국은행이 출구전략을 고민하면서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어 금리상승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부가 은행의 예대율 규제 강화에 나서겠다고 밝힘에 따라 개별 은행 역시 대출금리를 더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예대율 100퍼센트를 맞추기 위해서는 예금수신을 늘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예금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손익을 맞추기 위해서는 대출금리 역시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가계가 부담해야 하는 이자비용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10년 가계대출이 1사분기에는 6조 원, 2사분기에는 6조3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았다. 가계는 2010년 상반기에만 12조 원이 넘는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2009년보다 가계대출 규모가 1.2퍼센트 늘어나고 대출금리는 1사분기에 5.80퍼센트, 3사분기에 6.00퍼센트로 증가할 것을 예상하여 계산한 결과이다. 상당히 보수적으로 산정한 예측이다.

결국 정부도 은행의 금리인상에 제재를 가하기 위해 나섰는데, 앞서 언급했던 예대율 규제 강화와 함께 가산금리 공시 제도를 도입하고 현재 CD금리를 대신하여 주택담보대출의 새로운 기준을 도입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이 과연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산금리 공시의 경우 이제까지 은행 창구에서 상담을 받아야만 알 수 있던 가산금리를 공시하여 국민들이 이를 보고 은행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들이 눈치보기를 통해 담합 아닌 담합을 할 경우 실질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는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 산정방식 변경의 경우, 현재 은행의 평균 조달금리가 대체 기준으로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기준을 무엇으로 정하더라도 지금처럼 은행이 대출자의 신용에 따라 부과하는 가산금리를 높게 책정해버리면 소용이 없게 된다.

최근의 가계부채는 개별 가계들의 씀씀이가 헤퍼서 일어난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말 세계 금융위기를 지나오면서 정부와 금융기관이 가계를 희생시킨 결과이다.

2008년 말부터 정부는 경기부양이라는 이름으로 대폭적인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을 단행했고, 가계대출 규제와 부동산 규제를 완화했다. 정부가 앞장서서 부동산 시장을 띄웠고, 부동산 가격 상승이 계속되자 여기에 투자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가계는 늘어났다. 그러다가 주택담보대출이 너무 증가하자 정부는 2009년 7월에 들어서야 LTV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가계는 대출 이자 부담과 부동산 폭락을 우려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돈을 풀고 부동산 경기를 띄우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을 통해 가계소득을 증가시키고 그것이 소비회복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금융기관은 금융위기로 인해 자금난에 시달리는 등 타격을 입었다. 이는 그동안 예대율을 훨씬 뛰어넘는 무리한 투자, 파생상품에 대한 위험한 투자를 해온 결과이다. 은행은 잃어버린 수익을 회복하기 위해 더욱 안전한 수익처를 찾았고 그것이 바로 가계였다. 가계가 은행으로부터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은행이 가계에 주택담보대출을 주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정도로 은행은 가계대출 확대에 앞장섰다. 대신 위험이 높은 중소기업 대출은 줄였다. 은행의 이런 얄미운 행태 때문에 중소기업은 자금을 구하지 못해 쓰러져 갔고, 가계는 결국 막대한 부채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앞서 보았던 CD금리의 상승 역시 은행이 무리한 대출경쟁으로 인해 발생한 손실을 메우기 위한 자금 조달 비용을 가계로 떠넘긴 것이었다.

따라서 현재의 가계부채 문제는 단순히 금리책정방식을 변경하는 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제까지 가계를 희생양으로 삼아왔던 정부와 금융기관의 경제정책과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가계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가계경제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우리 경제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이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국민들은 국가부도 상황에 직면한 정부를 위해 금반지를 빼주었고, 은행의 회생을 위해 공적자금을 지원해주었다. 그런데 정부와 금융기관은 가계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는가? 대출 받아서 집을 사야 돈을 벌 수 있다고, 펀드 가입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주식투자를 해야 한다고 부추긴 것은 누구인가? 경제정책을 잘못 사용하거나 경영을 잘못한 것은 정부와 금융기관인데 왜 결국 책임은 가계의 몫으로 돌아오는가? 2010년 성장률 4~5퍼센트, G20 정상회의 개최 등의 장밋빛 소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덧붙이는 글 | 필자 이수연은 새사연 연구원입니다.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2010 가계전망, #가계부채, #금융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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