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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용산참사 희생자인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가 8일 오후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시신을 마지막 확인한 뒤 오열하고 있다.
 용산참사 희생자인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가 8일 오후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시신을 마지막 확인한 뒤 오열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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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나쁜 놈들! 사람을 저렇게 태워 죽이다니!"

검게 그을린 시신을 보고 나온 유가족들은 모두 허물어졌다. 온전히 자기 발로 걸어 나오지 못했다. 350일 전에 불에 탄 시신을 다시 보는 건 참혹한 일이다. 350일 만에 장례식을 치르는 건 정말 기막힌 일이다.

그래서 이미 사막이 됐을 유가족들의 가슴은 다시 꿈틀댔고,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은 다시 펑펑 쏟아졌다. 떠난 사람, 가슴에라도 묻었으면 조금 나았을 터. 하지만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사람을 가슴에 묻는 건, 흙으로 보낸 다음의 일이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뜨거운 불에 타 숨진 시신을 땅으로 보낼 수 있다. 땅으로 보낸 뒤 열흘이 지나면 다시 망자의 제사를 지내야 한다. 세상에, 이런 장례식이 또 있을까.

천국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그렇게 오른 게 아니었다

지난해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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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가 벌어진 게 2009년 1월 20일이다. 삶터를 빼앗는 재개발에 맞서 가진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은 망루를 세워 저 높은 곳으로 올랐다. 지상에 온전히 발붙이고 인간답게 살고 싶은 가난한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늘 높은 곳으로 향했다.

90년대 초반 울산의 노동자들은 '골리앗'으로 올랐고, 21세기 노동자들은 고공크레인에 올랐으며, 2009년 평택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공장 지붕에 올랐다. 그리고 재개발에 밀리고 밀린 철거민들은 망루를 세워 올랐고, 용산 철거민들은 남일당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서 그렇게 오르고 또 오른 게 아니었다. 지금, 여기서,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며 살고 싶어 그리 오른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장로'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불지옥'을 내렸다.

사과 한 마디 없었다. 높은 지위의 책임 있는 사람들은 저 낮은 땅의 사람들에게 지나가는 말로라도 "그래, 미안하다"고 한 마디 던지지 않았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그래서 싸웠다.

사람이니, 그리고 가족이 죽었으니 정확한 그 원인이라도 알고 싶었다. "도심 테러리스트"가 아닌 정확한 이름으로 불리고 싶었다. 그리고 남일당 점거 하루만에 그리 강경하게 진압에 나선 책임자들에게 사과 한 마디 듣고 싶었다. 보상은 그 나중의 일이었다.

모진 1년 동안 싸우고 싸웠지만... "미안하다" 말 한 마디 듣기도 어려웠다

정운찬 총리가 지난 8일 오전 9시 30분경 한남동 순청향대병원을 찾아 용산참사 희쟁자를 조문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 정운찬 총리 용산 희생자 분향소 방문 정운찬 총리가 지난 8일 오전 9시 30분경 한남동 순청향대병원을 찾아 용산참사 희쟁자를 조문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 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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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그야말로 꽃이 피고 지고 계절이 바뀌어 다시 겨울이 올 때까지 싸우고 또 싸웠다. 거리에서도 싸웠고, 법정에서도 싸웠다. 지난여름, 그 무더운 날씨에 시선을 들고 밖으로 나가겠다고도 했다.

그때 유가족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다"고 떨궜다. 그리고 무정한 세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유가족들의 "참 외롭고, 쓸쓸하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거의 1년 동안 "인간이 할 수 있는 걸 다 하고 또 한 후에야" 겨우 정운찬 국무총리에게 "유감이다"는 말을 들었다. 정운찬 총리는 장례식 전날인 8일 한남동 순천향대 병원을 찾아 "좀 더 일찍 해결됐으며 더 좋았을 텐데, 내 능력이 부족해 여기까지 왔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류주형 용산범대위 대변인은 "정 총리는 병원을 두 번이나 찾는 등 그나마 나은 사람"이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정 총리는 용산참사가 발생했을 때는 이 정부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좀 더 자유로운 입장에서 유감과 사과의 뜻을 밝혔는지도 모른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7일 오후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기 위해 분향소로 향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7일 오후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기 위해 분향소로 향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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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사건 책임자가 아닌 정부 고위 인사에게 사과의 뜻을 받는데도 약 1년의 모진 세월이 걸렸다. 이 땅에서 없이 사는 사람들은 온전하게 인간답게 사는 일도 힘들지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듣는 일도 무척 어렵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7일 병원을 찾아 "돌아가신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용산참사 353일만에 전한 위로의 말이다.

8일 장례식장을 찾은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은 "이제 야만의 세월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없이 사는 사람들이 살기 위해 높은 곳으로 향하는 세월은 한동안 계속 될 것이다. 야만의 세월은 그냥 끊어지지 않는다.

이제야 "미안하다"는 말을 들은 용산참사 희생자들은 9일 흙으로 돌아간다. 살기 위해 하늘로 오른지 350일 만이다.


태그:#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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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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