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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가장 슬픈 비밀공연>이란 제목의 사진이 공개되었다. 서울 충무로의 제법 알려진 갤러리에서 기획사진전을 열었다. 그리고 그 사진작가는 '노동의 새벽'의 박노해 시인이다. 시인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사진작가가 되었는냐고? 그건 아니다.

 

박노해 시인이 감옥에서 출소한 후 민주화운동 10년 동안 그는 무얼하고 있었던가 하고 궁금해하는 사람들과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변절이나 전향했다고 오해하거나 돌을 던진 사람들도 있었다.

 

시인이었던 그가 감옥에서 나온 10년 동안 무엇을 했던지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감옥에서 나온 첫 해에 정의평화위원회의 초청으로  우리 지방으로 와서 '사람만이 희망이다' 강연을 하는 것을 처음 보았기 떄문이다.

 

그것도 우연히 신부님 한 분이 소개를 해서 가보았다. 아무 강연 이야기를 듣지 못하지만 무언가 침묵 속에서 전해지는 강한 희망의 에너지를 나는 느꼈다. 그리고 신부님을 졸라 무엇을 이야기했는지 좀 자세히 전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신부님은 그냥 시를 한 편 전해 주셨는데 그것이 '사람만이 희망이다'였다.

 

그 이후 나는 해마다 줄기차게 그 시를 다양하게 붓으로, 나무에 새김으로, 모시에다가도 써본다. 쓸 때마다 희망의 색깔과 크기가 가슴에 다르게 전해진다. 같은 노래를 아침에 부를 때와 저녁에 부를 때 다른 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그 때의 만남은 내게 큰 감동을 주었고 세상으로 맨 발로 나오게 하고 사람들의 손을 적극적으로 잡게 하는 용기를 주었다. 시인의 시를 가지고 첫 개인전을 연 것이 계기가 되어 적극적으로 서로 나눔의 소통을 하게 되었다.

 

10년 전에는 여성 장애인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해서 사람들이 소 닭 보듯 할때 우리나라 문화예술인에서 최초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여성과 장애의 이중차별속에서 단체창립조차 힘겨웠던 여성장애인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아낌없이 물심양면의 지원을 나누어주었다.

 

지금 글로벌 나눔문화와 평화운동에 적극적인 시인을 두고 누군가는 이 땅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구태여 국외의 사람들 중심으로 나눔의 물꼬가 흐르는 것을 못 마땅해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10년 감옥에서 나온 시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세상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여성장애인과 이주노동자 그리고 산골동네 꼬맹이들을 보살피고 스스로 일어서게 하는 자주의 힘을 주는 일이었다는 것을 여성장애인 당사자로서 말할 수 있다.

 

마치 대나무 죽순이 나오게 되기까지 땅 밑에서 3~4년을 기다리는 것처럼 시인은 맨발로 낙타의 느린 걸음걸이로 소외된 세계구석을 본격적으로 다니기까지는 국내부터 보듬는 활동을 하며 준비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시인은 감옥에서 나온 첫 활동으로 그렇게 여성장애인운동과 이주노동자, 팔레스타인아이들 등에 평화의 나눔을 펼치기 시작했다. 항상 낡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열심히 사진들을 찍던 것을 기억했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시인이 나눔활동의 기록이나 아니면 좀 더 생생한 시를 쓰기 위한 기억의 사라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일 거라고 혼자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의 사진전은 10년 전 시인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강한 감동과 동시에 슬픔을 내게 전해준다. 희망이 아닌 깊은 어둠의 슬픔을 느끼고 그 슬픔은 어떤 각오를 일깨우기까지 한다. 그만큼 이 사진전은 충격이다.

 

아마도 시인에게서는 얼굴없는 시인으로서 '노동의 새벽'을 펴냈을 때보다는 더 모험이 아닐까 싶다. '얼굴을 내놓은 시인'으로서 거대한 자본주의에 눈부신 물신의 빛에 정면으로 등돌려 진실의 슬픔과 어둠을 세상에 드러내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4만 점의 필름사진 중에서 추리고 추린 37점은 한 점 한 점 마다 가슴을 저미고 영혼을 울리게 한다. 특히 내 가슴에 깊게 닿는 사진은 쿠르드 아이들이 비밀경찰에게  들키면 총살인데도 커텐을 두르고 어둠속에서 자신들의 모국어로 민속춤을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해 지상에서 가장 슬픈 비밀공연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은 일제치하에서 몰래 우리들이 태극기를 꺼내놓고 애국가나 아리랑을 부르던 것에 비하면 더하면 더하지 않을까?

 

그리고 13살의  어린 나이이지만 가족을 모두 잃은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소녀의 깊은 슬픔이 가라앉은 눈빛이 담긴 사진이다. 레바논 남부 까나 마을 집단학살 현장에서 찍은 사진은  건물 지하실로 대피한 마을 사람들 중 65명이 사망했고 그 중 35명이 아이들이었다. 폭격더미에서 살아나온 사나 샬흡은 하루아침에 부모와 언니와 오빠와 집을 잃고 혼자서 어린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소녀 가장이 되었다.

 

이 시대에 민족과 국경을 넘어 우리는 모두 하나의 큰 숙제를 안고 있고, 그 어려움을 함께 나눔으로써 비록 숙제를 당장 풀 수는 없지만 인간의 소중한 인간다움의 희망, 용기 그리고 더 큰 사랑을 마음에 담아야 하는 이유를 말해 준다.

 

그리고 그 숙제를 함께 풀어가려고 노력함으로써 서로의 소중한 사랑을 키워갈 수 있고 결국은 서로 다른 나라의 아이들의 고통과 슬픔은 우리를 좀 더 겸손하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키워드 중의 하나가 된다고 나름대로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 전시를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힘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홈페이지 http://www.ra-wilderness.com


태그:#슬픔속에 피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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