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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전 한국GIST환우회가 보건복지가족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7일 오전 한국GIST환우회가 보건복지가족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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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살겠다고 가족들 죽일 수는 없잖아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조규왕(41)씨의 심정이다. 그는 위장관기질종양(이하 GIST) 환자다. 지난해 7월에 GIST 판정을 받았다. 같은 달 21일에 수술을 받고 10월에는 휴직을 신청했다. 현재 글리벡 보조치료 중이다.

문제는 약 값이다. 한 달에 280만원이 든다. 그동안 조씨 가정은 맞벌이로 한 달에 약 400만원을 벌었다. 하지만 그가 휴직한 뒤 가계 수입은 100만원 남짓하다. 민간보험의 혜택도 없다. 아내 혼자 버는 돈으로는 5살, 7살 된 두 아이와 생활은 불가능하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그는 조만간 글리벡 복용을 중단할 생각이다. 약 값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는 "약을 끊는다고 당장 죽는 것도 아니잖아요"라며 말을 흐렸다. 가장으로서의 선택이었다. 아내 마음은 찢어졌다. 영하 13도에 육박하는 강추위가 몰아친 지난 7일. 그는 거리로 나섰다.

▲ 한국GIST환우회 기자회견 지난 7일 한국 GIST환우회가 글리벡 GIST 보조요법에 건강보험 적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이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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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재발하면 좋겠습니다"

한국GIST환우회 회원 30여명은 지난 7일 오전 한국 노바티스 본사와 보건복지가족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글리벡 보조요법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노바티스는 약값을 인하하라"고 요구했다.

글리벡 보조요법의 보험 적용과 약가 인하를 복지부와 노바티스에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양현정 한국GIST환우회 대표는 "복지부와 노바티스의 힘겨루기에 끼여 환자들만 고통 받고 있다"며 "복지부는 글리벡 약가 소송과는 별개로 GIST 보조치료에 신속히 보험급여 고시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GIST는 식도부터 직장까지 소화기관의 근육층에 생기는 종양이다. 국내 GIST 환자는 약 1000명 규모다. 이중 글리벡 보조치료 대상이 되는 환자는 연간 50명 정도다. GIST는 일반적인 소화기암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 발병하면 수술로 종양을 제거한다. 재발하거나 전이하면 수술 또는 약물치료를 받는다.

이 때 사용하는 치료제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로 유명한 글리벡이다. 재발성 GIST 치료제로서도 효능을 입증 받았다. 세계 3대 의학저널 중 하나인 영국 '더 랜싯'(THE LANCET) 온라인판에 따르면  GIST 수술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글리벡을 투여한 결과 1년 동안 98%가 암이 재발하지 않았다. 문제는 재발방지를 위한 글리벡 보조치료는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된다는 점이다.

양현정 한국GIST환우회 대표가 기자회견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 사람답게 살고 싶다. 글리벡 보험적용하라. 양현정 한국GIST환우회 대표가 기자회견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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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GIST 글리벡 보조치료 환자들은 약값의 100%를 부담해 왔다. 치료 기간은 약 2년이다. 비용만 6720만원에 달한다. 경제적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가 나오는 상황이다.

강대식(57)씨도 약 값 때문에 얼마 전 치료를 중단했다. 글리벡 비용을 포함해 한 달에 350만 원 정도를 썼다. 결국 집을 내놨다. 그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니라 유전무사 무전유사 아닌가요"라며 "보험 혜택이라도 받게 차라리 재발하는 게 낫다"고 했다. 재발하면 건강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재발을 막기 위한 치료는 보장이 안 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적용 연기에 생명 위협받는 환자

사실 지난해 10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는 GIST 글리벡 보조치료를 건강보험 대상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12월 1일자로 고시되어 보험급여가 시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복지부와 글리벡을 생산하는 다국적 제약사인 한국 노바티스 간 약가인하 행정소송이 발생했다. 복지부는 수차례 회의 끝에 올해 9월부터 약가를 14% 인하하도록 했다. 하지만 노바티스는 즉각 가처분신청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복지부는 '글리벡 약가인하 없이 보험급여는 없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결국 복지부와 노바티스의 힘겨루기 싸움은 한 해를 넘겼다.

GIST 환우 가족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 성실납구 건강보험료. 필요할 땐 비급여? GIST 환우 가족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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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식(56)씨는 허탈하다. 그는 작년 7월에 12.3cm짜리 종양을 제거하는 GIST 수술을 받았다. 위의 대부분도 도려내야 했다.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글리벡 보조치료를 위한 혜택은 받지 못했다. 전국민 건강보험이 시작된 1989년부터 의료보험료를 빠짐없이 납부해온 모범 납세자였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글리벡 값에 관계없이 건강보험 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행정법원 2부는 오는 22일 글리벡 약가 관련 소송 1심을 선고할 예정이다. 노바티스 측이 항소할 경우 환자들은 계속해서 글리벡을 전액 본인 부담으로 구입해야 한다. 글리벡 보조치료에 보험 급여가 적용되면 개인부담금은 5%로 줄어든다.

작년 8월에 GIST 수술을 받은 69세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지영일(37)씨는 만약 이번에도 보험급여가 안 되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이번에도 안 되면 대책 없어요."


태그:#GIST, #글리벡, #한국GIST환우회, #의료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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