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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해를 맞아 호작도 기획전을 여는 권정순 교수
 호랑이해를 맞아 호작도 기획전을 여는 권정순 교수
ⓒ 김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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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 호랑이해를 맞아 호랑이와 관련된 문화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개화기 이전 한국은 호랑이가 아주 많은 나라로 유명했다고 한다. 때문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던가 '호랑이가 된 효자' 등 호랑이와 관련된 설화, 전설, 속담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민중들의 예술인 민화에서도 호랑이는 소재로 자주 사용되었다. 호랑이해를 맞아 대구 대백플라자 10층 전시실에서 우리 민족에게 아주 친근한 '호작도' 기획전을 여는 권정순 교수를 찾아 가 보았다.

- 어떤 계기로 호작전 전시회를 열게 되셨는지요?
"원래 우리나라, 우리 겨레는 호랑이랑 굉장히 가까이 지내는 편이에요. 우리나라 산맥이 많다 보니깐 예전에는 호랑이가 참 많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깐 이제 호랑이와 관련된 문화가 굉장히 풍부하죠. 우리는 어릴 때부터 팥죽 할머니 이야기, 곶감 이야기 등 호랑이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듣고 들었잖아요. 호랑이와 관련된 전설이나 설화뿐만 아니라 우리 민화에도 호랑이가 굉장히 많이 나타나요. 게다가 마침 올해 호랑이해를 맞이했으니까 이런 기획전을 열게 되었죠. 이런 호랑이 민화전은 전국적으로 많이 하고 있어요."

민화 속에 정감 있게 표현된 호랑이
 민화 속에 정감 있게 표현된 호랑이
- 우리 민화 속에 호랑이는 어떻게 나타나나요?
"한국에서는 호랑이를 일본, 중국이나 서양에서처럼 사납고 무섭게 느끼는 동물이 아니라 아주 친근하게 느끼는 동물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에서 호랑이는 굉장히 해학적이고 좀 바보스럽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게 나타나죠. 발톱을 보면 알아요. 일본이나 중국, 서양화에서 나타나는 호랑이는 굉장히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호랑이는 발톱이 솜방망이처럼 아주 부들부들한 (그림을 가리키며) 아주 뭐 부드럽죠? 저런 발톱을 가진 호랑이가 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이런 게 바로 우리 민족성이 아닌가 해요. 굉장히 무서운 상대를 저렇게 재미있고 푸근하고 정감 있게 표현함으로 해서 무서움을 극복하려고 하는 그런 것도 있고. 죽 보시면 알겠지만 얼굴이 무섭고 사납고 그런 게 아니라 아주 재밌죠. 우리가 새해 아침 되면은 아침마다 호랑이를 벽이나 문 같은데다가 붙여놔요. 그렇게 해서 액을 막아준다고 해서 '호축삼재'라고 해서 삼재를 막아준다 이렇게 믿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집집마다 벽에 호랑이를 붙여 놓자니 만약에 징그럽거나 무섭게 그려놓기 힘들죠. 귀신을 쫓으려 붙여 놓았는데 오히려 귀신보다 무서우면 되겠어요? 그래서 저렇게 재밌는 표정을 하고 있는 거예요."

- 까치를 같이 그리는 이유가 있나요"
"까치는 어떤거냐 하면은 까치는 민초의 대변인으로 등장하고 호랑이는 아주 권리를 남용하는 탐관오리나 부정부패 하는 관료로 대변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까치는 당당하게, 호랑이는 바보스럽고 우스꽝스럽게 오히려 까치가 호랑이를 비웃는 듯한 그런 표정이 돼요. 그러다 보니깐 호랑이의 표정이 그렇게 무섭기보다는 바보스럽게 비웃는 듯한 그런 그림이 나왔죠. 그리고 또 까치가 일반적으로 호랑이의 심부름꾼이다, 산신과 호랑이 사이를 날라 다니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는 사람도 있고요. 그냥 호랑이를 그리면 재미가 없으니깐 까치가 등장해서 재미를 더하는 거죠."

- 호축삼재라는 것은 뭐죠?
"삼재는 바람과 불과 홍수 세 가지로 오는 어떤 천재지변을 막아준다고 호축삼재라고 옛날부터 써붙였어요. 기둥에다가. 호랑이는 삼재를 막아준다. 그렇게 붙여놓고 호랑이를 떡 그려놓으면 재앙이 들어오다가 도망가겠죠. 호랑이가 겁이 나서. (웃음)"

- 그러니깐 일종의 부적 같은 실용화로 볼 수도 있겠네요.
"아, 이 민화 자체가 실용화예요. 이거는 감상화가 아니에요. 서양화는 아름다우니 아니니  비평가들이 그렇게 말하는데 이거는 절대 그렇게 비평하면 안 되고 그렇게 봐서는 안 되는 게 민화는 자체가 상징이기도 하고 그 옛날에는 우리의 종교였어요.

아들이 없으면 '아들 낳게 해 주세요'라며 씨가 많은 모란도를 갖다놓고 빌었을 테고. 아들이 과거 시험을 보면서 잉어가 튀어 올라와서 출세하는 영리도 같은 그림을 환쟁이한테 부탁해서 벽에 걸어놓고 빌었을 테고. 십장생도 그려놓고 '우리 부모님 오래 살게 해 주세요'하면서 빌기도 하고. 모든 기념일이나 소원을 빌 때 우리가 바라는 모든 걸 그려서 집안에 쳐놓고 부적처럼 비는 거예요. 민화가 전부 이런 주술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실용화이면서 상징화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게 (민화를) 그냥 그림으로 볼 수 없는 거죠. 어떻게 보면 부적 같은 거죠."

부적으로 된 호작도
 부적으로 된 호작도

- 그럼 저 두 그림은 판화인가요? 저건 완전 부적처럼 생겼는데요.
"저 두 개는 19세기,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넘은 부적이에요. 부적인데도 알다시피 저 부적에 까치와 호랑이가 등장하죠. 집집마다 저걸 붙이려 하니깐 환쟁이가 아무리 많아도 수요자를 다 채우지를 못하는 거야. 그러니깐 목판으로 찍어서 만든 거죠. 전 국민이 그렇게 하면 전부 그려서 못해요. 지금도 베트남에 가면 새를 저런 식으로 부적으로 만들어서 절하고 불태우고 하는데 전부다 목판으로 찍더라고요. 우리나라도 저 때는 많은 수요자가 있었으니 목판으로 찍은 거예요."

- 그럼 선생님 개인적인 질문으로 넘어 가 볼게요. 선생님께서는 언제부터 민화를 접하셨는지요?
"저는 안동 출신이니깐 우리집안만 해도 외갓집이나 우리 할아버지 댁에 가면은 전부 민화예요. 벽장에도 전부 민화가 붙어져 있고 열면 문이 전부 그림으로 되어 있고. 또 웬만하면 호랑이 영호를 써 붙이기도 하고 굉장히 가깝게 지냈어요."

- 그럼 어릴 때부터 민화를 좋아하셨는지요.
"아니요. 제가 젊을 때는 이런 민화라는 민자도 잘 취급을 안 해줬고 그림으로 취급을 안 해줬어요. 그때 또 한창 아파트 붐이 일고 그러다 보니깐 집집마다 있던 그런 그림(민화)들 전부 다 막 버리고 그랬었거든요. 저도 학교 다니면서 서양 문물을 배우고 학창시절에는 취미활동으로 수채화나 유화를 그리고 또 제가 대학 때 영어를 전공해서 노래도 팝송 좋아하고 우리 전통을 별로 안 좋아하면서 살았죠."

- 저도 선생님 프로필 보면서 영어를 전공하신 분이 어떻게 민화를 하게 되었는지 의문이었는데 그럼 어떻게 민화를 공부하게 되었는지요?
"졸업하고 영국 대사관에 취직이 되었어요.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하고 보니깐 우리가 업신 여기던 민화를... 그 대영제국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렇게 권위의식이 많거든요. 근데 그런 나라 사람들이 우리 민화에 껌뻑 넘어가는 거야. 너무 좋다고. 나는 서양화가 좋아서 대사관 들어가고 나서도 계속 유화를 그리고 있었는데 왜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민화) 사러 다니는 거 자꾸 따라만 다녔는데, 통역도 좀 해주고. 근데 자꾸 따라다니다 보니깐 이게 (민화가) 더 좋은 거야. 그래서 민화를 좋아하게 된 거죠. 실제로 민화를 시작하게 된 건 그보다 훨씬 더 뒤의 일이지만."

담배 피는 호랑이
 담배 피는 호랑이
- 그럼 언제부터 민화를 시작하신 거죠?
"한 15년 됐어요. 결혼도 해야 되고 아이들 다 키워놓고 주부로서 일이 많잖아요. 그러면서 틈틈이 유화는 그렸었죠. 그러다 정식으로 민화를 배운 건 15년 정도 되었죠. 선생을 찾았는데 잘 없었어요. 특히 이 경상도 쪽에는. 근데 포항에 계신 이정옥 선생이라고 대구에 와서 처음에 가르치신 그 때 시작하게 된 거죠. 거기서 3-4년 배우고 나서는 욕심이 다 안 차니깐 그 때 KTX가 없던 시절이라 비행기 타고 서울에 왔다 갔다 하면서 배웠요. 파인 송규태 선생이라고 우리나라에서 민화라면 제 일인자이고 민화의 대부이신데 그분한테 배웠어요. 아직도 배우고 있고요."

- 그럼 뒤늦게 공부하시면서 힘드신 적은 없었습니까?
"힘든 거요. 별로 없었어요. 다만 늦게 하다 보니깐 아무래도 젊은 사람보다 손도 늦고 그렇겠지만 워낙 좋아하니깐 밥 먹고 일하는 거 외에는 일체 모든 걸 접고 그림만 그렸을 정도로 지금까지 웬만하면 2-3시는 보통이에요. 낮에 일을 하다 보니깐 시간이 없다 보면 보통 밤  늦게 그리게 되는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그 열정이. 그러니 내가 좋아해야 하는 거고. 운동도 그렇잖아요? 저 수영을 했는데 3년 이상 못 하겠더라고요. 자기가 좋아야 평생을 하죠. 단거리에 끝나는 건 안 좋은 거죠. 내가 좋아하다 보니깐 아마 죽을 때까지 눈이 안 보이면 못하겠지만 눈이 보이면 계속 할 거예요."

- 근데 전통 문물이라면 다른 동양화도 많은데 선생님께서 민화를 더 좋아하는 이유도 있나요? 
"민화는 굳이 어떤 이유를 찾기 전에 그냥 보면 좋지 않아요. 딱 보면 가슴에 뭔가 떡 와닿는 그런 느낌이 있죠. 색채도 그렇고. 민화 모든 그림들이 굉장히 정감이 있죠. 우리 겨레의 토종 문화다 보니깐."

이리보고 저리 보는 호랑이
 이리보고 저리 보는 호랑이
- 그러면 선생님께서 대사관 있을 때 만났던 외국 사람들이 다른 동양화보다 민화를 더 좋아 하던가요?
"민화를 좋아했죠. 이유가 동양화는 세련됐죠? 민화는 그렇게 세련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전문화가가 그린 게 아니라 비전문화가가 그리다 보니깐 구성이나 원근법 같은데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그리다 보니깐. 이게 오히려 자유스러움에서 오는 재미있죠? 그림에 나타나는 재미가 아주 순박하고 또 그게 서양 사람들 눈에 매력적으로 비춰졌던 거 같아요.

피카소 같은 화가들이 앞모습 옆모습 합쳐 놓은 듯한 큐비즘 그림 있죠? 우리나라 민초들이 그림을 그렇게 그렸어요. 그게 해부학이나 원근법 같은 지식이 없다 보니깐. 저런 그림들 보면 한 눈은 저 쪽으로 다른 눈은 다른 쪽으로 보게 그려 놓고. 근데 민화를 그린 사람들은 현대 미술가들이 가지는 미술 상식 이런 게 없이 그린 게 아니거든요. 그런 면과 맞아 떨어지면서도 소박하고 유머있는 그런 감각 때문에 서양 사람들이 좋아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저도 그때부터 좋아하게 된 거죠."

- 그럼 민화를 그리면서 가장 보람 있는 점은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들한테 민화를 알리게 된 것이 가장 보람 있죠. 그 전에 내가 경상도 이쪽으로 민화 구경하기가 너무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서울까지 갔잖아요. 근데 내가 이 그림을 어느 정도 배우고 나서 전파를 많이 했어요. 안동으로 구미로 다니면서 많이 가르치고. 지금 경상도 쪽에 민화 인구 굉장히 많이 늘었고. 그래서 우리 회원들 구미도 가고 영주도 가고 안동도 가고 해마다 회원전을 하거든요. 이번에는 청도도 가고요.

이런 식으로 사방 다니면서 민화를 그려서 사람들한테 보여주면 민화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겠죠. 옛날에는 천박한 그림, 아주 쓸모없는 그림 그렇게 생각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와서 보면 결코 얕볼 수 있는 그림이 아니잖아요. 특히 경상도는 민화에 대해 무지한 곳이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민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또 민화를 그리는 사람도 엄청 많이 늘었죠. 지금 가르친 게 5년도 안 되었는데 지금은 배우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 민화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안 좋았습니까?
"못 받았죠. 민화라는 걸 회화 장르에 넣어 주지도 않았다니까요. 얘기했잖아요. 아파트 지을 때 다 버렸다고. 그거 엿장수들이 걷어가서 외국사람들한테 다 팔았거든요. 지금은 경상북도 미술대전에 민화 장르가 들어갔어요."

- 선생님 같은 분이 있어서 민화에 대한 인식이 좀 더 좋아질 거 같습니다. 
"그래도 민화작가들이 많이 활동을 하다 보니깐 이제 민화도 국전에 들어가야 할 만큼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거죠."

권정순 교수는 현재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특임 교수로 학생들에게 민화를 가르치고 있고 대구, 구미, 안동에 있는 평생 교육원에서도 민화를 가르치고 있다. 권정순 교수가 운영하는 민화 관련 홈페이지(http://www.minhwagallery.com/)를 방문하면 권정순 교수의 프로필과 그린 민화를 볼 수 있다. 호작도 기획전은 오는 11일까지 대백 플라자 10층 전시실에서 계속 된다.


태그:#민화연구가, #권정순 선생님, #호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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